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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93권, 중종 35년 6월 1일 신유 1번째기사 1540년 명 가정(嘉靖) 19년

혼인·의복 등의 사치한 풍습을 바로잡도록 전교하고 당상과 제조들의 파직을 명하다

삼공에게 전교하기를,

"물론(物論)을 들을 때마다 혼인의 사치한 풍습은 사대부들이 모두 궁중을 본받은 탓이라고 하는데 이 말이 매우 옳다. 옛 제왕이 먼저 궁중에서 검소함을 솔선한 것은 사대부들로 하여금 본받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내가 이런 사치스런 풍습을 일변시키기 위해 노력했으므로 궁중의 의복과 음식에는 사치스런 풍습이 별로 없다. 짙은 초록색을 물들이는 것도 이미 궁중과 상의원(尙衣院)에 금지시켰다. 그런데 듣기로는, 외간에서는 아직도 구습(舊習)을 고치지 않고있고, 금선(金線)을 두른 초혜(草鞋) 같은 신발은 궁중에서도 신고 다니지 않는데 외간의 창기(娼妓)들이 다투어 본받고 있다고 한다. 이는 필시 폐조(廢朝)의 풍습에서 연유한 것이 틀림없다.

혼인에 대한 일은, 위에서는 비록 횡간(橫看)145) 에 의하여 하고 있으나 부인(夫人)과 부마(駙馬)의 집들은 금해도 중지되지 않아 또한 많은 폐단이 있다. 대체로 풍속을 일신시키는 데에는 위에 있는 사람이 솔선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은 없다. 안으로 궁금(宮禁)에서부터 밖으로 공경 대부에 이르기까지 몸소 검소함을 실천하여 구습을 대대적으로 혁신시킨다면 사서인(士庶人)들은 저절로 본받게 될 것이다.

외간의 혼례는 너무 사치스럽기 때문에 혼기를 놓치기 일쑤이고 상례(喪禮) 또한 제도를 지나침이 많기 때문에 시기가 지나도록 장사를 지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흉년들어 물건이 귀하여 민간의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사치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각사(各司)의 관원이 거개가 다 노비(奴婢)들을 침탈하여 주식(酒食)으로 많이 허비하기 때문에 매양 물의가 있어 왔다. 그래서 법을 만들어 금지하려 했었으나 적발하여 드러내기가 매우 곤란하였다. 각사의 당상과 제조(提調)들이 어찌 듣지 못했겠는가. 이러한 관원은 일일이 엄하게 밝혀 전최(殿最)한다면 폐습을 일신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관(下官)뿐만이 아니라 각사의 당상과 제조들 또한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소치이니, 아울러 파직시켜야 한다."

하였다. 윤은보(尹殷輔) 등이 의논하여 아뢰기를,

"정연(鄭淵)은 청백리(淸白吏)로서 일찍이 상직(賞職)을 받은 바 있고 지금 또 포장해야 한다는 감사의 계문이 있었습니다. 청렴한 행실이 특이하니 품계를 올려주고 그대로 유임시킴으로써 염치를 격려시키소서. 현사숙(玄思肅)황세헌(黃世獻)에게는 향표리만 하사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의복과 음식을 사치스럽고 화려하게 하는 폐습(弊習)이 이미 오래되었으니 통렬하게 혁신시켜야 됩니다. 만일 드러나서 적발된 자가 있으면 그 사(司)의 당상(堂上)과 제조(提調)가 전최할 때 빙고(憑考)하여 조처하고 그래도 조심하지 않으면 당상과 제조까지 다스려야 한다는 상의 분부가 지당합니다. 신들은 통솔하는 지위에 있으니 마땅히 육조와 당상이 있는 아문(衙門)의 낭관(郞官)을 시켜서 소속된 각사(各司)에 교유(敎諭), 조심하게 하겠습니다.

그 가운데 초록(草綠)을 짙게 물들이는 폐습은 매우 심한 고질이 되어 갑자기 중지시킬 수가 없으니, 예조로 하여금 엄하게 금제(禁制)를 만들게 하고 또 법사로 하여금 금선을 두른 신발 등의 물품을 극력 단속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혼인(婚姻)과 상장(喪葬)은 인도(人道)의 시종(始終)에 관한 큰일이므로 때를 넘기거나 시기를 지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혼인에 때를 넘기기도 하고 상장에 시기를 지나게 하기도 하는 그 이유를 캐보면 모두가 사치한 풍습에 구애된 탓입니다. 해조(該曹)로 하여금 중외에 이문(移文)하여 신명(申明)시킴으로써 예문(禮文)에 따라 거행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신들이 정승의 자리에 있으면서 제대로 검소함을 솔선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랫사람들이 모두가 사치스런 의복을 숭상하게 되었다는 상의 분부가 지당합니다. 매우 황공스러워 대죄(待罪)합니다."

하니, 답하였다.

"내가 말한 것은 고금을 통론(通論)한 것이지 경들을 지적한 것은 아니었다. 당금의 사세를 보건대 원로(元老) 재상들도 오히려 검소하려고 하는데, 연소(年少)한 왕자(王子)들이 먼저 사치를 일삼고 있으니 이는 실로 내가 잘 금억(禁抑)하지 못한 탓이다. 어찌 재상만을 지적하여 한 말이겠는가. 대죄하지 말라."


  • 【태백산사고본】 47책 93권 34장 A면【국편영인본】 18책 394면
  • 【분류】
    윤리(倫理) / 풍속-예속(禮俗) / 의생활(衣生活) / 식생활(食生活) / 사법-법제(法制) / 인사-관리(管理)

  • [註 145]
    횡간(橫看) : 나라의 예산안(豫算案) 가운데 세출(歲出) 항목을 나열해서 적어놓은 명세서(明細書).

○辛酉朔/傳于三公曰: "每聞物論, 婚姻奢侈之習, 士大夫皆効宮中云, 此言甚是。 古昔帝王, 先儉於宮中者, 使士大夫効之也。 予欲變奢風, 宮中衣服飮食, 別無奢侈之習, 深染草綠, 已禁於宮中及尙衣院, 而聞外間, 猶不變其舊習。 金線草鞋若屨, 宮中不著, 而外間娼妓之類, 爭相效之, 此必由廢朝之風也。 婚姻之事, 自上雖依橫看, 而夫人駙馬家, 禁亦不止, 亦多有弊。 大抵移風易俗, 莫先於在上者。 內自宮禁, 外至公卿大夫, 躬行儉素, 丕變舊習, 則士庶人自効焉。 外間婚禮, 極爲奢侈, 故婚姻失時, 喪禮亦多踰制, 故過期不葬。 年凶物貴, 民間艱苦, 不可勝言, 正由此也。 且各司官員, 率皆侵虐奴婢, 多費酒食, 故每有物論。 雖欲立法禁止, 難以現摘。 其司堂上提調, 豈不聞之? 如此官員, 一一嚴明殿最, 則可變弊風。 非但下官, 其司堂上提調, 亦不職之所致, 竝令罷職爲當。" 尹殷輔等議啓曰: "鄭淵以淸白吏, 曾受賞職, 今又有監司褒啓。 淸行特異, 加階仍任, 以勵廉恥。 玄思肅黃世獻, 只賜鄕表裏何如? 衣服飮食奢侈靡麗, 弊習已久, 在所痛革。 如有現捉者, 其司堂上提調, 殿最憑考, 猶有不戢, 治及堂上提調, 上敎允當。 臣等在統率之地, 當招六曹及有堂上衙門郞官, 轉諭所屬各司, 使之知戒, 其中深染草綠, 弊習甚痼, 未能遽止, 令禮曹嚴立禁制, 又令法司, 幷金線鞋等物, 另行檢戢何如? 婚姻喪葬, 人道始終大端, 不可越時踰期。 婚或失時, 喪亦過期, 究其所以, 皆拘於侈習。 令該曹, 申明移文中外, 使之依禮文擧行何如? 臣等在具瞻之地, 不能儉素, 故在下之人, 皆尙奢侈衣服之事, 上敎至當, 至爲惶恐待罪。" 答曰: "予所言者, 通論古今也, 非指卿等也。 見當今之事, 老相元臣, 猶欲儉素, 而年少王子, 先爲奢侈, 此實予不能禁抑之故也。 豈獨指宰相乎? 勿待罪。"


  • 【태백산사고본】 47책 93권 34장 A면【국편영인본】 18책 394면
  • 【분류】
    윤리(倫理) / 풍속-예속(禮俗) / 의생활(衣生活) / 식생활(食生活) / 사법-법제(法制)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