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실록 92권, 중종 34년 12월 6일 기사 2번째기사
1539년 명 가정(嘉靖) 18년
전주 부윤에 안현을 임명한 것이 문제가 되어 체직시키다
간원이 아뢰기를,
"무릇 시종(侍從)의 반열에 있는 사람을 잡직(雜職)에 주의(注擬)하지 않는 것은 유래가 오래 되었는데, 이는 그 직임을 중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안현(安玹)은 부제학으로서 특별히 전주 부윤에 제수되었으니, 내직과 외직은 경직의 간격이 있는 것인데 시종의 장관을 내보내 외직에 보임하시니 상의 본의가 어디에 있는지를 몰라 물론이 경악하고 해괴하게 여깁니다. 이러한 일은 전일에는 없던 일인데 갑자기 그 단서를 열어놓으면 뒷폐단이 될까 염려됩니다. 성명(成命)을 거두소서."
하니, 답하였다.
"안현의 일에 대해 나는 애초에 다른 생각은 없었다. 전주 부윤이 마침 체직되었고 또 전주는 대처(大處)일 뿐만이 아니라 그곳은 앞서 이언적이 청렴 간이한 정치로 백성을 돌보던 곳이라서 각별히 택차(擇差)하여야 겠기에 특명으로 제수한 것이다. 그러나 물론이 이와 같으니 체직하는 것이 좋겠다."
- 【태백산사고본】 47책 92권 49장 A면【국편영인본】 18책 364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