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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92권, 중종 34년 10월 20일 갑신 3번째기사 1539년 명 가정(嘉靖) 18년

전주 부윤 이언적이 올린 나라를 다스리는 방법에 대한 상소문②

일곱째는 언로(言路)를 넓히는 것입니다.

신이 들으니, 옛날에 천하를 다스릴 때는 조정에 선한 말을 올리는 깃발과 잘못을 비방하는 나무385) 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정치를 통창하게 하여 간하는 자를 오게 한 것이었습니다. 공자(孔子)순임금의 큰 지혜를 칭찬하여 ‘묻기를 좋아하고 이언(邇言)도 살피기를 좋아했으며 나쁜 것을 숨겨주고 선한 것을 드러내며 백성을 위해 양단(兩端)을 잡아 그 중도(中道)를 썼다.’고 했습니다.

대체로 천하의 이치는 끝없는 것이므로 사람들의 의견도 같지 않은 것이 많기 때문에, 성인의 지혜를 가진 임금이라도 반드시 중론(衆論)을 폭넓게 받아들이고 여러 사람의 말을 널리 들어서 동이(同異)를 참고하고 가부를 살펴 중도를 가려 썼으므로 옛 성제 명왕(聖帝明王)들의 정치는 공명 정대하기가 맑은 하늘에 해가 비추는 것처럼 조그만 흠집도 없었는데, 그것은 이 도(道)를 썼기 때문이었습니다.

당 태종(唐太宗)은 중서문하(中書門下)에 내린 조칙에서 ‘서로가 조사하여 바로잡고 지극히 마땅한 것을 힘써 구하며 분별없이 함부로 남의 말에 동의하지 말라.’ 하였으니, 역시 이런 견해가 있었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체로 양약(良藥)은 반드시 달고 쓰고 차고 더운 것이 화합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서로 돕고 서로 견제하여 병을 낫게 할 수 있는 것이고, 좋은 맛은 반드시 시고 짜고 달고 매운 것이 화합해서 이루어지므로 온화하기도 하고 순하기도 하여 입을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일 같은 것만 취하고 다른 것을 버리는 것은 비유하자면 물에 물을 탄 것과 같은 것이니 장차 어디에 쓰겠습니까.

신이 보건대, 지난번의 폐단을 보니 조정에는 대중 지정(大中至正)한 도가 없어지고 호오(好惡)가 사사로이 한쪽으로만 치우쳐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비위에 맞는 말을 하는 사람은 진출시키고 자기 비위에 거스르는 말을 하는 사람을 물리쳤으며 말이 자기 생각과 같으면 즐거워하고 말이 자기 생각과 다르면 성을 내었으며 자기와 의견을 같이 하면 바르다 하고 자기와 의견을 달리 하면 사특하다고 하였습니다.

때문에 사림(士林)들 중에는 조건없이 따르겠다는 태도를 취한 이들이 많았고 조정에는 두려움없이 사실대로 곧은 말 하는 기풍이 없어져서 대소(大小)가 서로 결탁하여 드디어 분별없이 남의 의견에 동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간흉의 무리들이 이를 이용하여 임금을 속이고 사정(私情)을 행하였고 마침내 국정을 혼란시켰어도 위에서는 알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때 사람들은 누구나 장마(仗馬)의 경계를 앞세우고 있었으니 누가 다시 지록(指鹿)의 그름386) 을 밝힐 수 있었겠습니까. 분별없이 동조하는 앙화가 이렇게 하여 극에 달했던 것입니다.

지금 조정이 다시 맑아지고 정치도 혁신되었으니 마땅히 그때의 풍습도 개혁하여 밝은 정치를 새롭게 해야 할 것입니다. 전에는 시종(侍從)이 드린 말이 시론(時論)에 어긋나면 바로 배척당하고 지방으로 좌천되기에 이르렀으므로 언직(言職)의 기개와 절조가 없었으며, 또 공론에 지탄을 받게 되면 속마음까지 의심받게 되었었으므로 조야(朝野)가 벌벌 떨며 말하는 것을 경계하여 충성스런 말과 곧은 의논을 다시 들을 수 없는 형편이었으니, 이것은 국가의 복이 아니었습니다.

《역경(易經)》에 ‘군자라야 천하의 뜻을 알 수 있다.’ 하였으니, 예부터 백성의 뜻을 알지 못하고 정치를 잘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중화(中和)의 극(極)을 세우시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는 습관을 없애시어 인재를 등용하실 때는 친소(親疎)의 구별이 없이 오직 그 사람의 사정(邪正)만 보시고 말을 들으실 때는 자신의 뜻과 다른 것을 탓하심이 없이 오직 그 말의 시비만 살피소서. 그리고 가부를 논하여 양쪽의 의견을 정제해서 이치에 맞게 하시기를 힘쓰시고 시비를 논하여 양쪽의 의견을 참조해서 중도로 돌아가게 하기를 힘쓰시면, 아름다운 말이 모두 받아들여지게 되어 공도(公道)가 이를 힘입어 서로 언로가 막히는 근심이 생길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탕평(蕩平)한 정치를 다시 볼 수 있게 될 것이니, 상께서는 유념하소서.

여덟째는 사치와 욕심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신이 들으니 ‘공검은 수복을 누리는 근원이며, 사치와 욕심은 위망(危亡)의 근본이다.’ 하였습니다. 예부터 제왕들이 덕을 쌓고 인(仁)을 쌓아 유족(裕足)한 도를 후손들에게 전해 보인 것은 공검으로부터 시작되지 않은 것이 없는데, 후사(後嗣)가 잘 지키지 못하여 자기도 죽고 집도 망치게 되었으니, 모두 사치와 방종으로 인하여 그렇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대체로 임금은 마음을 맑게 하고 자기를 공순히 하며 스스로 검소하고 절약하기를 힘쓰면 기욕(嗜欲)이 엷어지고 마음이 평정되어 안으로는 청순한 즐거움이 있고 밖으로는 인의(仁義)를 짓밟는 잘못이 없게 되어 성품을 기를 수 있고 덕을 기를 수 있으므로 자연히 혜택이 만물에 미치게 되니, 이는 수명(壽命)의 근원이요 복록(福祿)의 기초인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제멋대로 하고자 하는 욕심이 한번 싹트면 억제할 수가 없어 용도가 사치스러워 재화를 낭비하게 되고 그 피해는 백성들에게까지 마치게 되며, 심지(心志)가 방탕해지고 즐기고 싶은 욕심을 절제할 수 없게 되어 생을 좀먹고 성품을 비뚤어지게 하며, 정치를 어지럽히고 법도를 무너뜨리게 되어 마침내 반드시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부터 잘 다스린 임금들은 많았으나, 끝까지 잘 다스린 사람은 매우 드물었습니다. 대개 높은 자리에 앉아서 지극한 부귀로 받들어졌으므로, 스스로 참되고 바르게 몸을 닦고 집안을 정제하는 내실이 없으면 그릇되고 방종한 곳으로 흐르지 않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치하고 싶은 욕심의 발단은 지극히 작은 일에서 시작되나 나중에는 막기가 어려워지므로 순(舜)이 칠기(漆器)를 만들자 간하는 이가 10여 명이었으며,주(紂)가 상저(象箸)를 만들자 기자(箕子)는 걱정을 하였으니, 이는 미세할 때 막으려는 것이었습니다.은 간하는 말을 받아들여 그만두었으니 이것이 성인(聖人)이 된 이유이며, 는 간하는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였으니 이것이 망하게 된 이유인데, 이는 만세(萬世)의 귀감이 아니겠습니까.

신이 보건대, 전하께서는 초년에는 맑고 밝으셨으며 절약하고 검소하기를 힘써 숭상하시더니 나라를 다스린 지 오래되자 사치하고 싶어하는 뜻이 점점 열리어 궁정(宮庭)의 기완(器玩)도 자못 지나치게 화려한 것을 숭상하시고 왕자(王子)의 저택들도 극히 크고 화려하게 하기를 힘쓰십니다. 드디어 낭비하는 것을 절제할 수도 없게 되니, 백성들은 세금 내기에 곤욕을 겪고 계속되는 영선(營繕)에 노역(勞役)으로 동원되어 마침내 지칠 대로 지쳐 있는 형편입니다. 그런데 높은 상투에 넓은 소매387) 를 본뜨는 것은 더욱 심하여 사대부들이 옷·집·음식에 지나치게 사치하여 다투어 숭상하므로 모두들 남에게 뒤지는 것을 부끄럽게 여깁니다. 따라서 사치하는 풍습이 날로 새로워지고 달로 달라지니, 재물이 바닥나고 백성들이 가난해지는 것은 실로 이러한 데 연유하는 것입니다.

옛말에 ‘사치로 허비하는 것이 천재(天災)보다도 무섭다.’ 하였으니, 그 연유를 돌이켜 찾아서 금제(禁制)할 방법을 생각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주서(周書)에 ‘문왕(文王)은 나쁜 옷을 입고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는 일과 백성들을 위해 농지를 개간하는데 힘썼다.’ 했고 또 ‘문왕은 절대 돌아다니며 사냥을 즐기지 않았고, 여러 나라에서 정수(正數)의 조공만 받았으며……그 후 50년 동안 나라를 누렸다.’ 하였으며, 양웅(揚雄)은 ‘수 문제(隋文帝)가 검소한 옷을 입자 후궁(後宮)들은 대모(玳瑁)388) 를 천하게 여겼었다. 이러함으로써 옥형(玉衡)이 바르고 태계(太階)가 화평했다.’389) 하였습니다.

대개 임금이 자신에게 절약하여 만물을 윤택하게 하면, 몸도 편하고 신수도 펴지며 사람들은 즐거워하고 하늘은 도와주므로 나라를 오래도록 누리게 되고 또한 태계의 화평을 이루에 되는 것입니다. 그런 반면에 사치를 숭상하여 백성을 해치는 사람은 기필코 하늘의 노여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윤(伊尹)이 ‘검소한 덕을 삼가 지키며 원대한 계획을 생각하라.’ 하였고 《역경(曆經)》에 ‘천지에 절제가 있어 사시(四時)가 이루어진다. 법도로 절제를 가하면 재물을 상하지 않고 백성을 해치지 않게 된다.’ 하였습니다.

전하께서는 스스로의 욕심을 눌러 이기고 끊으셔서 검소한 것을 숭상하고 사치한 것을 버리며 천지의 절도를 본받고 씀씀이를 줄여 나라의 근본을 공고히 하여 천심(天心)을 누리소서.

대저 욕심이라는 것은 꼭 탐닉하는 것만이 아니라 마음이 향하는 바가 있다면 바로 욕심이 되는 것이므로, 마음이 향하는 것을 스스로 다잡지 못한다면 그것이 탐닉하게 될 징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자(程子)는 ‘임금은 마땅히 욕심이 싹트기 전에 막아야 한다.’ 했습니다. 이 말은 참으로 마음을 바르게 하고 덕을 삼가게 하는 요점이니, 상께서는 깊이 음미하소서.

아홉째는 군정(軍政)을 닦는 것입니다.

나라를 보위하고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이므로 걱정이 없는 때라고 해서 더욱 완만히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옛날 성왕(聖王)들은 태평할 때에도 난세를 잊지 않고 편안할 때에도 위태로울 때를 잊지 않아서 한가할 때에 더욱 잘 익혔으므로 급할 때 크게 쓸 수 있게 하였으니, 이것이 이른바 유비 무환(有備無患)이라는 것입니다.

대개 군정에서 힘쓸 것은 장수를 선출하고 군졸을 훈련시키고 저축을 늘리고 병기를 날카롭게 하며 성보(城堡)를 수축하는 이 다섯 가지이지만, 군정의 근본은 역시 화합하게 하고 믿게 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화합되지 않아 여러 사람이 믿지 않는다면, 백만 대군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디다 쓰겠습니까.

맹자(孟子)가 ‘천시(天時)가 지리(地利)를 얻는 것만 못하고 지리가 사람들이 화합하는 것만 못하다.’ 하였고, 공자(孔子)는 군사와 식량은 버려도 신의(信義)를 지키라고 하면서 ‘백성에게 믿음을 얻지 못하면 군림할 수 없다.’하였으며, 오자(吳子)는 ‘나라가 화합하지 못하면 군대를 출동시킬 수 없고, 군대가 화합하지 못하면 결승에 임할 수 없다.’ 하였고, 울요자(尉繚子)는 ‘위에서 의심스러운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대중이 한마음으로 따르고, 위에서 의심스런 일을 하지 않으면 대중들이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 마음에 믿음을 얻지 못하고서 그 힘을 얻은 사람은 없으며, 힘을 얻지 못하고서 죽기를 각오하게 할 수는 없다.’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옛날의 성현(聖賢)과 양장(良將)들 역시 화합과 신의로써 나라를 공고히 하고, 그것을 군사 부리는 근본으로 삼지 않은 이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인심을 거두어 대중을 화합하게 하고 이어 믿게 하는 것은 또한 지략만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요는 선왕들의 정치를 행하고 어루만져 기르는 도리를 극진히 하며 또 반드시 효도하고 우애있고 예의 바르게 가르치면 백성들이 부모를 섬기고 처자를 보살피는 즐거움을 잃지 않게 될 것이므로, 사람들이 모두 윗사람을 어버이같이 여기고 어른을 섬기는 마음이 생기게 될 것이니, 화합과 신의는 그 가운데 있게 될 것입니다.

지금 성상의 은택과 성상의 교화가 아직 막히어 여항(閭巷)에는 걱정과 고통과 원통해 하는 소리가 많고, 사족과 평민들에게는 충성스럽고 신의 있고 예절 바르고 겸양하는 풍속이 없으니, 진실로 이미 군정의 기본을 잃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 장수가 된 사람은 병사들과 고락을 같이 하고자 막걸리 한 병도 강물에 던져 함께 나누어 마셨고, 병사의 곪은 상처를 입으로 빨아주는 등의 은혜를 베풀며 병사들 보기를 사랑하는 친자식같이 했으므로 더불어 함께 죽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재물이나 수탈하고 노역(勞役)으로 괴롭히며 차마 하지 못할 말로 꾸짖어 원망하고 비방하고 있으므로 장수는 병사들을 초개(草介)처럼 보고 병사들은 장수를 원수처럼 보니, 또 어떻게 화합하고 신의가 있기를 바라겠습니까. 인심이 화합하지 않고 믿지 않으니 이것이 흙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형세입니다. 생각하면 한심하다고 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변경(邊境)에는 도적이 침구하는 경계가 있은 병사들은 이미 쇠약할 대로 쇠약해져 병이 들었으니, 그 죄는 진실로 변장(邊將)이 어루만져 불쌍히 여기지 않은 데 있는 것이지만, 그 근본을 찾아보면 역시 조정이 규획(規畫)을 극진히 하지 않은 데 연유한 것입니다. 대개 보병(步兵)은 기병(騎兵)보다 신역이 고달픈데도 보인(保人)390) 은 2명이고, 수졸(水卒)은 보병보다 신역이 고달픈데도 보인은 1명이므로, 신역이 고달플수록 보인은 적어지고 부담해야 할 세금은 많아집니다. 그리하여 견딜 수 없는 형편에 이르러 보인 1명이 도망치면 몸도 보존할 수가 없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 조세를 이웃이나 일가에게 물으라고 독책하게 되어 이웃이나 일가도 도망을 치게 됩니다. 따라서 한 보인이 역(役)을 도피하면 한 동네가 파산(破産)하게 되니, 원통하고 억울함이 하늘에 닿아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지경입니다.

이런한 폐단은 신이 직접 본 것으로 감히 사실대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구중 궁궐에서 새벽에 일찍 일어나고 해가 진 뒤에 저녁을 들면서 부지런히 하시면서 어찌 이를 가엾게 여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대저 수졸에게 보인이 1명인 것은 조종(祖宗)의 옛법이 아닙니다. 번(番)드는 것을 드물게 하는 것이 약간 힘을 펴게 하는 것이긴 하나 보인을 1명으로 하였으므로 실로 지탱하기 어렵습니다.

왕도(王道)에서 가장 귀하게 여길 것은 때에 따라 감하기도 하고 보태주기도 하여 세상을 구하고 백성들을 제도(濟度)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보인의 수를 늘리어 번휴(番休)를 편하게 하여 주는 데 대한 방법이 어찌 없겠습니까. 어찌 지극히 곤폐한 상황을 앉아서 보기만 하면서 가엾게 여기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만일 관습을 그대로 따르고 굳게 지키면서 다시 개혁하여 바로잡지 않는다면 10년이 못되어 보병은 거의 남지 않을 것이고 전쟁에 대한 준비는 씻은 듯 없어질 것인데, 도둑떼가 다투어 일어나고 이웃하고 있는 적국이 쳐들어오면 국가에는 장차 어떻게 대처할는지 모르겠습니다.

양계(兩界)로 말하자면 야인(野人)들과 국경이 맞닿아 있어 방어할 일이 더욱 급한 곳인데, 근래 갈수록 더욱 모진 흉년이 들어 굶어 죽은 사람들이 길에 즐비합니다. 그래서 조정에서는 진휼(賑恤)하려 하나 저축이 바닥나 있고 관방(關防)을 튼튼히 하려 하나 백성들과 병사들은 피곤에 지쳐 있어 국경의 방위가 더할 수 없이 허술하기에 이르렀으니, 사나운 무리들의 침구가 곧 있을 터인데 어찌 상께서 유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듣건대, 서·북 두 도의 백성들은 초서피(貂鼠皮)391) 공납(貢納)에 시달리고 있고 관서 지방 일로(一路)는 중국으로 오가는 사신들을 보내고 맞이하는 뒤치다꺼리에 피폐해 있는데, 수령이나 변장들은 불쌍히 여기어 돌봐주는 일에는 힘쓰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수탈을 일삼음으로써 도망쳐 떠도는 백성이 날마다 늘어나서 국경이 텅 비게 되었다 하니 작은 일이 아닙니다. 지금 어루만져 편안하게 할 방법은 세공(稅貢)을 탕감해 주고 미납된 부채를 감면해 주어 피폐된 백성을 되살리고 장수와 수령을 다시 골라 뽑아 은혜로운 정치를 베풀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정에서도 마땅히 상벌을 밝게 하시고 호령을 삼가 출척(黜陟)을 엄히 하여 징계하는 본보기를 보이고 불쌍히 여겨 슬퍼하시는 성지를 자주 내리어 병사들과 백성들을 기쁘게 위로하고 장수와 군졸을 격려하여 권하면, 거의 인심이 화합하고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되살아날 것입니다.

예부터 천하의 화변(禍變)은 대중의 마음이 떠나가고 원망하는 데서부터 일어났고, 대중의 마음이 떠나가고 원망하는 것은 그 성품을 순하게 못하고 그 생활을 편하게 못해준 데서 일어났습니다. 지금 백성들은 곤궁하고 재물은 바닥나서 온 나라가 텅비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국세가 이토록 약해진 지금 믿을 것은 민심뿐입니다.

신은 원하건대, 조정에서는 마땅히 안정을 지키면서 인정을 베풀고 번거롭고 급하지 않은 일은 힘써 덜어주고 진정시켜 편안하게 하고 모여 살게 하는 도리를 다하면 민심이 안정되고 나라의 근본이 흔들리지 않을 것이니, 나라를 공고히 하고 군사를 강하게 하는 것도 여기서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성상께서는 유념하소서.

열째는 기미(幾微)를 살피는 것입니다.

《서경(書經)》에 ‘하루나 이틀 사이에도 온갖 기무(幾務)가 있다.’ 하였고, 《역경(曆經)》에 ‘오직 기미를 살피기 때문에 천하의 일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기미라는 것은 동(動)의 조짐이요 길흉에 앞서 나타나는 것인데, 천하 국가의 치란 성쇠에 대한 발단은 모두 지극히 작은 것에서 시작되어 막을 수 없는 데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조금씩 새는 물을 막지 않으면 하늘까지 차 오르기도 하고 타오르기 시작하는 불길을 끄지 않으면 평원을 다 태우기도 하지만, 갓 돋아나는 싹을 꺾어버리면 끝없이 클 나무도 자라나지 못하고 개미 구멍을 소홀히 하면 천길 제방도 유지할 수가 없는 것이니, 기미를 살피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이 때문입니다.

옛날 대도(大道)를 지닌 이들은 어지럽지 않을 때 제지하여 다스리고 위태롭지 않을 때 나라를 보존케 하였습니다. 어지럽지 않을 때에 어지러울 조짐이 있고 위태롭지 않을 때에 위태로울 징조가 있는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기미라는 것입니다. 예부터 어지러운 것은 어지러울 때 생긴 것이 아니고 언제나 다스려졌을 때에 생겼으며, 위태로운 일은 위태로울 때 생긴 것이 아니고 언제나 편안할 때에 생겼습니다.

기미가 숨어 있을 때는 임금이 편하고 풍요로운 데 습관이 되어 살피지 않고 기미가 나타났을 때는 임금이 편하고 풍요로운 데 습관이 되어 살피지 않고 기미가 나타났을 때는 온 조정이 벼슬자리에만 연연하고 제몸만 아껴 감히 말하지 아니하여, 위아래가 눈앞의 편안한 것만 즐겨 인습대로 구차하게 살아가면서 점점 어지럽고 망하는 지경에 빠져드는 것을 깨닫지 못하니, 이것이 고금의 통환(通患)이었습니다. 지금 국가의 형편이 눈앞의 걱정은 없는 것 같아도 걱정할만한 화란(禍亂)의 기미가 많이 있습니다.

그 중 큰 것만 예로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예부터 사정(邪正)의 소장(消長)에 따라 국가의 흥망이 판별되었고, 인심의 이합에 따라 천명(天命)이 떠나기도 하고 머무르기도 했습니다. 정도(正道)가 자라나고 사도(邪道)가 소멸되면 천하가 편안해져서 백성들이 그 은혜를 받게 되고 정도가 소멸되고 사도가 자라나면 천하가 막혀서 백성들이 그 화를 입게 되니, 이것은 인심의 이합에 따라 천명이 오가는 것도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는 조정이 화합하지 못하고 사림(士林)이 양분되어 서로 용납하지 않았으며 사정이 번거롭게 뒤섞이어 서로 소장되었으므로 수십년 동안은 다스려진 때가 언제나 적었고 어지러운 때가 언제나 많아 백성들은 아래에서 근심하고 하늘은 위에서 노하였으니, 막힘이 극에 달했다고 할 만하였습니다. 그러나 어지러움이 극에 달하면 다스려지기를 생각하고 막힘이 극에 달하면 편안한 때가 오는 것이 필연적인 이치입니다. 오늘날 온갖 음(陰)은 소멸되거나 잠복되고 양(陽)의 덕이 바야흐로 펴지고 있으니, 편안하게 하는 도가 자라나 왕화(王化)가 다시 행해지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단지 걱정되는 것은, 성상의 뜻이 확정되지 않아서 간악한 자들이 기회를 타는 것을 용납하신다면 편안한 것이 도리어 순식간에 막힘이 되어 구할 수도 없게 될 것입니다. 신은 항상 송(宋)나라의 뭇 신하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정이 서로 공격하고 치세와 난세가 서로 섞이다가 왕안석(王安石)이 정권을 잡음에 이르러서는 충성스럽고 어진이들이 일망 타진되고 아첨하면서 빌붙는 이들이 대거 진출해서 천하를 무너뜨리고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림으로써 인심이 이산되고 하늘이 싫어했던 것입니다.

다행히 원우(元祐)392) 초년에 이르러 노성(老成)393) 한 이들을 진출시키고 군사(群邪)들을 축출하였으며, 언로(言路)를 열어 백성들의 뜻을 통하게 하고 신법(新法)을 혁파해서 백성들의 피해를 감면해 주니, 9년 동안 덕택이 천하에 스며들었으나 원망하는 소인들 또한 적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시기가 바뀌고 일이 변하면서 군사들이 다시 진출하여 사해(四海)가 독에 휩쓸렸으므로 송나라는 드디어 망하게 되었으니, 전감(前鑑)이 매우 뚜렷해 후세의 경계가 될 만합니다. 대저 신하들이 조정에서 화합하면 백성들이 초야(草野)에서 화합하는 것입니다. 조정이 화합하고 백성들이 편하고 즐겁다면 어찌 이런 화(禍)가 일어나겠습니까.

원하건대, 전하께서는 옛일을 귀감삼아 오늘의 상황을 살펴봄으로써 길흉이 소장되는 이치를 밝히고 막힘과 태평함이 오가는 기미의 조짐을 경계하고 작을 때 막으시며 이르지 않았을 때 먼저 아시고 나타나지 않았을 때 미리 도모하시면, 환란이 싹트기 전에 소멸될 것이며 화란이 나타나기 전에 그칠 것이니, 국가가 오래도록 다스려지고 편안해지는 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며 다시 전철을 밟지 않게 될 것입니다.

대저 길하고 흉하고 막히고 편안해지는 기미가 사물(事物)에 나타나긴 해도 실상은 임금의 마음에 근원하는 것이므로, 한결같이 마음이 바르다면 길한 도와 편안한 것이 이로부터 싹트게 될 것이고, 마음이 그렇지 못하다면 흉한 도와 막힘이 그로 말미암아 이르게 될 것입니다. 임금이 진실로 깊이 생각하고 멀리 보아, 자기에게로 돌이켜 정관(靜觀)하면서 늘 생각의 기미에 삼가고 싹트려 하는 시초를 깊이 살피며 천리(天理)의 기미와 인욕(人欲)의 나누임을 성찰해서 막는 공부를 확충시키면, 마음에 밝은 빛이 넘칠 것이요 어두운 그늘은 소멸될 것입니다. 본체(本體)가 맑고 밝으면 지기(志氣)가 신 같아져서 천하의 일에 밝지 않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음사(陰邪)는 제 스스로 자랄 수는 없는 것이니 화란이 어디로부터 일어나겠습니까. 그러므로 ‘그 근본을 바르게 하면 온갖 일이 다스려지고, 털끝만큼만 틀려도 나중에는 천리나 어긋난다.’ 하였습니다. 상께서는 깊이 생각하소서.

이상 열 가지는 모두 늦출 수 없는 것이나 그 벼리[綱]는 전하의 마음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전하의 마음이 맑고 밝고 한결같이 순수하며 한 생각도 어긋남이 없고 한 순간도 끊어짐이 없어서 위로는 천명(天命)을 마주 대하고 아래로는 가정과 국가의 표준을 세워 바르게 하시면, 열 가지 조목은 저절로 시행될 것이니 다스리는 도를 다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쉽고도 어렵지 아니하며 간단하고도 번잡하지 아니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대저 간이(簡易)는 하늘의 이치입니다. 성인(聖人)이 마음을 한결같이 하는 간이함이 천지의 간이함과 화합하면 자신과 가정과 국가와 천하의 모든 일에 대한 수위(修爲)와 거조(擧措)가 명백하고 쉬워서 누구나 쉽게 알고 쉽게 따를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 없으며, 오래게 할 수 있고 크게 할 수 있는 업(業)이 아닌 것이 없어서, 다시 어둡고도 위험하고 번잡한 일이 마음을 어지럽히고 다스림을 해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만일 이러한 도를 터득하지는 못하고 지혜와 술수를 동원하여 소소한 업무까지 샅샅이 살피면서 정치를 하려고 한다면 마음만 점점 더 수고로와질 뿐 일은 더욱 어그러질 것이니, 이는 강령을 이미 잃어서 조목 또한 얼크러져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신이 처음에는 불식(不息)이라는 두 자를 전하께서 경계해 힘쓰도록 하였고, 간이(簡易)라는 두 자를 전하께 진달하였습니다.

전하께서 진실로 불식하는 마음을 가지시고 간이한 도를 다하며 두려워하여 삼가고 위태로운 양 지키시어 게으르게 아니하고 그만두지 않으며 아주 오래도록 이르게 하시면, 태평 성세에 위엄을 갖추고 가만히 앉아 계실 수 있으며 마음을 고달프게 하지 않아도 온갖 교화가 그 궤도를 따르고 만물이 제자리를 얻을 것이니, 옷만 드리우고 있어도 백성들이 화락하게 잘 사는 정치를 오늘에 다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어찌 하늘이 감응해서 일세(一世)의 화(禍)만 소멸시킬 뿐이겠습니까. 편안히 뒤를 잇게 함은 물론 후세까지 끝없이 드리워지게 될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유념하소서.

옛날 송(宋)나라의 주희(朱熹)효종(孝宗)에게 ‘세월이 가는 것은 시내가 흐르는 것 같아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아, 오늘도 전하께서는 시간을 아끼어 스스로 굳세게 쉬지 않고 힘쓰며 바른 덕을 하늘에 이르게 하고 기회를 잃지 마소서. 그러므로 신은 감히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것을 이렇게 다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신의 논한 바가 비록 세정에 어둡고 먼 것 같으나 다 제왕의 도에 근본하고 있는 것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도의 요점이 아닌 것이 없으니, 온갖 기미를 살피시는 틈틈이 자애로움을 베풀어 때때로 살펴보아 주신다면 성상의 정치에 만에 하나라도 반드시 도움되는 것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왕세자(王世子)께서 삼시(三時)로 뵈러 나오실 때에도 특별히 이런 뜻을 보이어 유념케 하소서. 만세토록 크게 다스려질 근원이 또한 여기에 있으므로 신은 삼가 마음을 다하여 마지 않습니다.

신이 보건대, 근래에 말씀드리는 이가 있어도 그 말이 채택되어 쓰이는 경우는 보기 드물고 화를 당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중외(中外)의 식자(識者)들이 모두 입을 굳게 다물고 자라나 지키는 것을 현명하다 여기고 위태로운 말로 충성을 다하는 것을 어리석은 사람으로 여기니, 신 또한 입을 봉하고 묵묵히 있으면 몸을 보전하고 비방을 멀리할 수 있으며 말하면 반드시 허물을 부르고 화를 빨리 당하게 되는 것을 모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신같이 어리석고 용렬한 것이 성상의 신임을 받으면서도 성세(聖世)에 털끝만큼도 도움을 드리지 못하고 외람되게 벼슬자리만 탐하면서 이제까지 지내 온 것을 생각하면 하늘같은 성상의 은혜를 갚을 길이 없는데, 7년 동안 시골에서 늘 탄식하면서 드리고 싶은 말을 드리지 못했고 하루에 세번 여는 경연(經筵)에서도 정회(情懷)을 누르고 다 진달하지 못했습니다. 몸은 비록 시골에 있으나 마음은 조종으로만 달리며, 임금을 그리고 나라를 걱정하는 충정을 어찌할 수 없어서 감히 만번 죽기를 무릅쓰고 진심을 드러내어 시골 사람이 미나리를 바치고 햇볕을 바치고 싶어하는 뜻을 본받으려 하였으나394) , 충성심이 속에 너무 간절한 나머지 말을 조리있게 할 줄을 몰랐습니다.

생각하건대, 전하께서 저의 충성심을 애처롭게 여기어 주제넘고 경망스러움을 용서해 주신다면 신은 만번 다행한 것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사신은 논한다. 언적(彦迪)은 청렴하고 근검하며 학문을 좋아하고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것을 자기의 임무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권간(權奸)에게 밉게 보이어 시골로 물러가 있으면서 늘 국사(國事)가 날로 잘못되는 것을 한탄하였고 절로 들어가 세월을 보내면서 경서(經書)를 탐독하고 사서(史書)를 열람하여 학술이 더욱 정미로와졌다. 권간을 축출한 뒤 불러 돌아오게 하자 사림(士林)이 바야흐로 중히 여겼었다. 얼마 안 있어 외직에 보직되었었는데, 특별히 가려 보내어 사방 수령들의 본보기로 삼으려 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 고을만을 오로지하게 하였을 뿐 더 크게 쓰이지 못한 것을 식자(識者)들은 한스럽게 여겼다. 상소를 올리어 정성스럽고 간절한 말을 진달한 것을 보면, 그는 청렴하고 근검할 뿐만이 아니라 또한 충직하고도 확고 부동한 사람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47책 92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18책 345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역사-고사(故事) / 과학-천기(天氣) / 왕실-경연(經筵) / 사상-유학(儒學) / 출판-서책(書冊) / 왕실-비빈(妃嬪) / 왕실-종친(宗親) / 윤리(倫理) / 인사-임면(任免) / 구휼(救恤) / 재정-공물(貢物) / 재정-전세(田稅) / 사법(司法) / 사상-불교(佛敎)

  • [註 385]
    선한 말을 올리는 깃발과 잘못을 비방하는 나무 : 임금이 백성들에게 정치의 미비점을 건의하게 하던 제도. 《대대례(大戴禮)》 보부(保傅)에 "요(堯)임금 때에 선한 말을 진달하게 하는 깃발과 폐정(弊政)을 비방하게 하는 나무를 세웠다." 했고 그 주에 "선한 말을 진달하고픈 사람은 깃대 아래 서 있게 했고, 폐정이 있으면 교량(橋梁) 가의 판자에다 기록하게 했다."고 하였다.
  • [註 386]
    장마(仗馬)의 경계를 앞세우고 있었으니 누가 다시 지록(指鹿)의 그름 : 장마의 경계란 바른 말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고 지록(指鹿)이란 국권을 멋대로 휘두른다는 말. 장마는 매일 말 8필을 궁문(宮門) 밖에다 벌여 세우는 말인데, 이 말들이 말없이 가만히 있으면 매일 3품의 여물을 먹을 수 있지만 한번 울면 쫓겨나게 된다고 한다. 《당서(唐書)》 권213 이임보전(李林甫傳) 지록은 진(秦)나라 때 조고(趙高)가 권세를 휘두르기 위해 이세(二世)에게 망아지를 바치고서 이를 사슴이라고 하자 이세가 신하들에게 질문했는데, 이때 망아지라고 대답한 사람은 모두 조고에게 중상당했고 사슴이라고 한 사람들은 무사했었다. 《사기(史記)》 권6 진 시황본기(秦始皇本紀).
  • [註 387]
    높은 상투에 넓은 소매 : 유행이 퍼져 나가는 것을 비유한 말. 《후당서(後漢書)》 권24 마원열전(馬援列傳)에 "도성에서 상투 높이기를 좋아하면 지방에서는 1척(尺)이나 높이고, 도성에서 소매 넓히기를 좋아하면 지방에서는 필백(疋帛) 통째로 만든다" 하였는데, 여기서 온 말.
  • [註 388]
    대모(玳瑁) : 거북 껍질로 만든 장식품.
  • [註 389]
    옥형(玉衡)이 바르고 태계(太階)가 화평했다.’ : 옥형은 천체를 살펴보는 기구로 여기서는 천체의 운행을 가리키고, 태계(太階)는 사람의 상하를 나타내는 별이름으로, 상계(上階)는 왕을, 중계(中階)는 제후(諸侯)와 삼공(三公)을 비록한 벼슬아치를, 하계(下階)는 사서인을 가리킨다. 이는 태평 성대를 뜻하는 말이다. 《문선(文選)》 양웅 장양부(揚雄長楊賦).
  • [註 390]
    보인(保人) : 정병(正兵)의 농작(農作)을 돕기 위해 두는 국역(國役)의 하나로, 뒤에는 보미(保米)와 보포(保布)만을 바쳤다.
  • [註 391]
    초서피(貂鼠皮) : 노랑 담비 가죽.
  • [註 392]
    원우(元祐) : 송 철종(宋哲宗)의 연호.
  • [註 393]
    노성(老成) : 사마광(司馬光) 등을 말함.
  • [註 394]
    시골 사람이 미나리를 바치고 햇볕을 바치고 싶어하는 뜻을 본받으려 하였으나 : 임금에게 충성을 바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는 뜻. 옛날 송(宋)나라의 어떤 농부가 허름한 옷으로 겨울을 보내고 나서 봄이 되자 양지 쪽에 앉아 햇볕을 쪼이다가 자기 아내에게 "이렇게 따뜻한 햇볕을 쪼이는 방법을 임금에게 아뢰면 중한 상을 받을 것이다." 하였다. 이때 같은 마을의 부자가 그 말을 듣고 "옛날 미나리를 가진 자가 그 지방의 토호(土豪)에게 자랑하자 토호가 그것을 가져다 먹어보고는 비웃으며 나무랐는데, 그대가 바로 이와 같다." 했는데, 여기서 온 말이다. 《열자(列子)》 양주(楊朱).

〔○〕 其七曰, 廣言路。 臣聞古之治天下, 朝有進善之旌, 誹謗之木, 所以通治道, 而來諫者也。 孔子之大智曰: "好問而好察邇言, 隱惡而楊善, 執其兩端, 用其中於民。" 蓋天下之理無窮, 而人之所見, 亦多不同, 故雖聖智之君, 亦必廣迎衆論, 博採群言, 參同異察可否, 擇中而用之。 古昔聖帝明王之治, 正大光明, 如靑天白日, 無少瑕翳者, 用此道也。 太宗詔中書門下, 互相糾正, 務求至當, 戒勿雷同, 其亦有見於此歟? 蓋良藥, 必合甘辛寒熱而一之, 故相助相制, 〔而〕 能已疾; 美味, 必合酸醎甘苦而一之, 故乃和乃平, 而能悅口。 若必取其同, 而去其異者, 則譬如以水投水, 將焉用之? 臣竊見頃者之弊, 朝廷無大中至公之道, 而有偏跛好惡之私, 言之合者則進之, 言之違者則斥之, 言之同者悅之, 言之異者則怒之, 同己爲正, 異己爲邪, 士林多唯唯諾諾之態, 朝著無蹇蹇諤諤之風, 大小相和, 遂成雷同, 奸兇資之, 罔上行私, 迷國亂政, 而上不得知。 是時, 人皆仗馬之戒, 誰復辨指鹿之非? 雷同之禍, 至是極矣。 今者朝廷復淸, 政治更張, 宜革曩時之習, 以新淸明之治, 乃者侍從進言, 有乖時議, 便至被斥而補外, 言職無氣節。 被彈於公論, 反疑其潛布腹心, 朝野慄慄, 以言爲戒, 忠言讜論, 勢不復聞。 是非國家之福也。 《易》曰: "惟君子, 爲能通天下之志。" 自古不通下情, 而能善其治者, 未之有也。 伏願殿下, 建中和之極, 消偏黨之習, 取人, 無間於親疎, 而惟視其人之邪正, 聽言, 不嫌於異同, 而惟察其言之是非。 曰可曰否, 可否相濟, 而務合於理, 曰是曰非, 是非相參, 而要歸於中, 則嘉言罔攸伏, 公道賴以立, 壅塞之患, 無自以生, 蕩蕩平平之治, 庶復見矣。 惟聖明留念焉。 其八曰, 戒侈欲。 臣聞恭儉者, 壽福之原; 侈欲者, 危亡之本。 自古帝王, 積德累仁, 垂裕後昆者, 未有不始於恭儉, 而其後嗣之不能持守, 以至於亡身滅家者, 亦未有不由於奢縱矣。 蓋人主, 淸心恭己, 務自儉約, 則嗜欲薄而心慮靜, 內有淸純之樂, 外無戕賊之累, 可以養性, 可以養德, 而自然澤及於物。 此壽命之原, 而福祿之基也。 如不能然, 而逸慾一萌, 不能防制, 則非惟侈用傷財, 害及於民, 心志蕩而嗜欲無節, 戕生伐性, 亂政敗度, 卒至喪亡必矣。 自古人君, 善治者多, 克終者少。 蓋以處崇高之位, 極富貴之奉, 自非有誠正之功, 修齊之實, 未有不流於邪縱者。 侈慾之端, 始於細微, 其終難遏, 故造漆器, 諫者十餘人, 造象箸, 箕子憂之, 蓋欲防之微也。 能受諫而止, 此所以爲聖, 不受諫而縱欲, 此所以亡滅, 是非萬世之鑑乎? 臣伏見殿下, 始初淸明, 務崇節儉, 享國旣久, 侈意漸啓, 宮庭器玩, 頗尙侈靡, 王子第宅, 務極宏麗, 遂致浮費無節, 而民困於引徵, 營繕不休, 而卒疲於勞役。 高髻廣袖, 慕效益甚, 士大夫服飾居第飮食, 爭尙侈靡, 恥居人後, 奢侈之習, 日新而月異。 財匱民窮, 實由於此。 古語云: "奢侈之(費)〔害〕 , 甚於天災。" 可不反求其所由來, 而思所以禁抑耶? 《周書》曰: "文王卑服, 卽康功田功。" 又曰: "文王不敢盤于遊田, 以庶邦惟正之供, 厥享國五十年。" 揚雄言: "孝文躬服節儉, 而後宮賤玳瑁。 是以, 玉衡正, 太階平。" 蓋人主能約已而澤物, 則身安而體舒, 人悅而天祐, 故斯有永年之效, 而又致泰階之平。 然則其崇侈害民者, 獲譴於天, 必矣。 伊尹曰: "愼乃儉德, 惟懷永圖。" 曰: "天地節, 而四時成。 節以制度, 不傷財, 不害民。" 伏願殿下, 克己絶欲, 崇儉去奢, 法天地之節, 省用度之煩, 以固邦本, 以享天心。 夫所謂欲者, 不必沈溺, 意有所向, 卽爲欲矣。 意之所向, 不知自檢, 則沈溺之漸也。 故程子曰: "人主宜防未萌之欲。" 此言眞格心愼德之要。 惟聖明, 其深味之。 其九曰, 修軍政。 衛國安民, 兵爲最急, 無虞之世, 尤不可緩。 古之聖王, 治不忘亂, 安不忘危, 克詰於閑暇之時, 張皇於緩急之際。 此所謂有備而無患者也。

蓋軍政之務, 在於選將帥、訓士卒、廣儲蓄、利甲兵、修城堡五者, 而軍政之本, 則又在於和與信也。 人心不和, 衆志不信, 雖有兵百萬, 何益於用? 孟子曰: "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 孔子去兵食而存信曰: "人無信, 不立。" 吳子曰: "不和於國, 不可以出軍, 不和於軍, 不可以決勝。" 尉繚子曰: "上無疑令, 則衆不二聽; 上無疑事, 則衆不異志。" 未有不信其心, 而能得其力者也, 未有不得其力, 而能致效死者也。 然則古之聖賢良將, 亦未嘗不以和與信, 爲固國用兵之本也。 然所以收人心而使之和, 一衆(者)〔志〕 而使之信者, 又非智力之可致, 要在行先王之政, 而盡撫育之道。 又必敎之以孝悌, 習之以禮義, 則民不失仰事俯育之樂, 而人皆有親上事長之心, 和與信, 在其中矣。 今者, 聖澤尙壅, 聖化尙阻, 閭巷多愁苦怨痛之聲, 士民無忠信禮讓之俗, 固已失其軍政之本矣。 古之爲將者, 有投醪之惠, 有吮咀之恩,視士卒如愛子, 故可與俱死。 今則割剝之甚, 勞役之苦, 怨詈謗讟, 有不忍。 主將視士卒如草芥, 士卒視主將如仇讎, 又何望其和與信乎? 人心不和, 衆志不信, 此土崩之勢也。 思之可謂寒心。 邊境有犬吠之警, 而軍卒已極於凋(療)〔瘵〕 , 其咎固在邊將之不撫恤, 而求其本, 則亦由朝廷規畫之不盡也。 蓋步兵, 役苦於騎兵, 而其保有二; 水卒, 役苦於步兵, 而其保有一。 愈苦而愈單, 掊克多端, 勢不能堪, 一保旣逃, 身亦不能存矣。 於是, 責督於隣族, 隣族又逃, 一卒逋役, 一里破産, 怨痛極天, 有不忍見。 此弊, 臣所目擊, 敢以備陳。 九重宵旰, 寧不惻然於是乎? 夫水卒之給保一丁, 非祖宗之舊典。 疏其番, 雖似小紓, 單其保, 實所難支。 所貴王道之大, 在於隨時損益, 以救世濟民。 量加給保, 而便其番休, 豈無其策? 何可坐視窮弊之極, 而不爲之恤乎? 若因循膠固, 不復更革以救之, 不及十年, 步兵將孑遺, 兵備蕩然, 寇賊競起, 隣敵竊發, 不知國家, 將何以處之? 至於西北二界, 境接(墅人)〔野人〕 , 備禦尤急, 近來兇荒益甚, 餓莩相望。 朝廷欲施之賑恤, 則儲蓄虛竭, 欲固其關防, 則民卒羸困。 邊圍凋虛, 至於此極, 桀驁之萌, 將在朝夕, 寧不軫聖慮乎? 蓋聞兩道之民, 困其貂、鼠皮之貢, 而關西一路, 又疲於迎送供億。 守宰邊將, 不務矜恤, 惟盜侵漁, 遂致流亡日增, 疆場空虛, 非細故也。 方今撫綏之策, 莫急於蠲稅貢減逋負, 以蘇疲氓, 選將帥擇守令, 以施惠政, 而朝廷之上, 又宜明賞罰愼號令, 嚴黜陟示(觀)〔勸〕 懲, 屢下惻怛之旨, 以慰悅軍民, 激勸將士, 則庶幾人心和, 而衆情信矣。 自古天下禍變, 起於衆心之離怨, 衆心之離怨, 起於不順其性, 不安其生也。 今者民窮財盡, 域內虛耗, 國勢危弱至此, 所恃者民心而已矣。 臣願朝廷, 宜守靜以施仁, 務省勞擾不急之事, 以盡鎭撫安集之道, 則民心定, 而邦本不搖矣。 固國强兵之道, 不外於此, 惟聖明留念焉。 其十曰, 審幾微。 《書》曰: "一日二日, 萬幾。" 《易》曰: "惟幾也故, 能成天下之務。" 幾者, 動之微, 吉凶之先見者也。 天下國家理亂興衰之端, 皆自芒忽毫釐, 至於不可禦, 故涓涓不塞, 或至滔天, 焰焰不滅, 或至燎原。 折句萌則百尋之木, 不能成矣, 忽蟻穴則千丈之堤, 不能固矣。 幾微之不可不審也如是。 若昔大猷, 制治于未亂, 保邦于未危。 未亂而有亂之漸, 未危而有危之兆, 此所謂幾也。 自古亂不生於亂, 而常生於治之日, 危不生於危, 而常生於安之日。 幾之已藏, 人君, 狃於安富, 而莫之察, 幾之已著, 朝廷, 持祿愛身, 而不敢言, 上下偸安, 因循苟且, 浸浸然入於亂亡之域而不悟。 此古今之通患也。 方今國家之勢, 雖若無目前之患, 禍亂之幾, 有可慮者多矣。 試以其大者言之。 自古邪正之消長, 而國家之興亡判焉, 人心之離合, 而天命之去留, 由焉。 正道長而邪道消, 則天下泰而民受其惠, 正道消而邪道長, 則天下否而民被其禍。

此人心之所由離合, 而天命之去就, 亦決於此矣。 自頃〔年〕 以來, 朝廷不和, 士林氷炭, 邪正雜糅, 而互相消長, 數十年間, 治日常少, 亂日常多, 民愁於下, 天怒於上, 可謂否之極矣。 亂極思治, 否極泰來, 理之必然。 今日群陰消伏, 陽德方亨, 庶幾泰道之長, 而王化復行矣。 第慮聖心未一, 聖志未定, 或容讒邪之乘隙, 則反泰爲否, 直在呼吸之間, 而不可救矣。 臣常思之群臣, 邪正相攻, 治亂相雜, 及王安石秉政, 網打忠賢, 引進諂侫, 敗壞天下, 塗炭生靈。 於是人心離, 而天意厭矣, 幸至元祐之初, 進老成黜群邪, 開言路以通下情, 罷新法以除民害, 九年之間, 德澤深於天下, 而小人怨者亦多, 一朝時移事變, 群兇復進, 流毒四海, 室遂亡。 前鑑甚昭, 可爲後戒。 大抵衆臣和於朝, 則萬民和於墅。 朝廷協和, 黎庶康樂, 豈有是禍? 伏願殿下, 懲之於古, 驗之於今, 炳吉凶消長之理, 審否泰往來之幾, 戒之於漸, 防之於微, 未至而先知, 不見而豫圖, 則庶幾消患於未萌, 弭禍於未形, 國家有長治久安之福, 而不蹈往轍之覆矣。 夫吉凶否泰之幾, 雖著於事物, 而實原於人主之心。 一念之正, 則吉之道, 而泰之所由始也; 一念之邪, 則凶之道, 而否之所由來也。 人主誠能深思遠覽, 反已靜觀, 每謹於念慮之微, 深省於萌動之初, 察天理之幾人欲之分, 致擴充遏絶之功, 則方寸之間, 陽明勝而陰濁消矣。 本體淸明, 志氣如神, 於天下之事, 幾無不照, 微無不燭, 陰邪無自而長, 禍亂何由而作乎? 故曰: "正其本, 萬事理。" 差之毫釐, 謬以千里, 惟聖明深念焉。 凡此十者, 皆不可緩, 而其綱, 在於殿下之心。 殿下之心, 淸明純一, 無一念之差, 無一息之間, 上以對越天命, 下以表正家邦, 則十目自無不張, 而治道畢矣, 是非易而不難, 簡而不煩者乎? 夫所謂易簡者, 天之理也。 聖人以一心之簡易, 而合天地之簡易, 自身、而家、而國、而天下, 凡有修爲擧措, 明白坦易, 莫非易知易從之事, 可久可大之業, 而無復有暗昧傾險, 勞擾煩雜之事, 亂于心而害于治矣。 如不得此道, 而規規於智術, 察察於細務, 而欲以爲治, 則心愈勞而事愈乖, 綱已失而目已紊矣。 臣始以不息二字, 爲殿下勉戒, 以簡易二字, 爲殿下獻〔之〕 。 殿下誠能持不息之心, 而盡簡易之道, 兢兢業業, 無怠無荒, 以至於悠久, 則可以端冕凝旒於穆淸之上, 不勞心而萬化循其軌, 萬物得其所, 垂衣熙皞之治, 復見於今日矣。 豈獨應天消禍於一世而已, 亦可以貽謀燕翼, 而垂裕無疆矣。 伏願殿下留神焉。 昔 朱熹, 言於孝宗曰: "日月愈邁, 如川之流, 一往而不復返。" 嗚呼! 今日亦殿下愛惜時日, 自强不息, 格德格天, 不可失之機會也。 故臣敢竭素蘊如此。 臣之所論, 雖若迂緩, 皆本帝王之道, 無非治道之要。 儻蒙聖慈, 萬幾之暇, 時賜省覽, 未必無補於聖治之萬一。 王世子三朝之際, 亦特宣示, 使留心, 萬世大平之源, 亦在於是。 臣不勝惓惓焉。 臣見近世言者, 鮮見採納而多取禍, 故中外有識, 咸以囊括保位, 爲明哲, 危言盡忠, 爲癡漢。 臣亦非不知緘默可以全身遠謗, 言發必致招尤速禍, 第念臣以愚劣, 遭遇聖明, 曾無絲髮有裨聖世, 而叨冒祿位, 以至於此, 聖恩如天, 報效無階。 七載畎(畎)〔畝〕 , 常歎有懷而莫達, 三侍經幄, 又抑情懷而未盡。 身在江湖, 心馳魏闕, 不勝愛君憂國之誠, 敢冒萬死, 刳瀝肺肝, 以效墅人芹曝之言, 誠切於衷, 言不知裁。 伏惟殿下, 哀其忠款而赦其狂僭, 臣不勝萬幸。

【史臣曰: "彦迪, 淸謹好學, 以愛君憂國自任, 方其見忤權奸, 退居村墅, 常歎國事之日非, 或往山刹, 經時逾月, 探經閱史, 學術益精。 比其去奸召還, 士林方爲重焉, 未幾補外。 雖因擇差, 以爲四隣守令之表, 然專一州而不能咸, 識者恨之。 觀其抗疏陳悃, 則豈但淸謹而已哉? 其亦忠讜不撓者乎!"】


  • 【태백산사고본】 47책 92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18책 345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역사-고사(故事) / 과학-천기(天氣) / 왕실-경연(經筵) / 사상-유학(儒學) / 출판-서책(書冊) / 왕실-비빈(妃嬪) / 왕실-종친(宗親) / 윤리(倫理) / 인사-임면(任免) / 구휼(救恤) / 재정-공물(貢物) / 재정-전세(田稅) / 사법(司法) / 사상-불교(佛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