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와 봉선사의 철거를 건의하였으나 도적에 기재되어 있음을 들어 허락치 않다
성균관 생원 유예선(柳禮善) 등이 상소를 올렸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들이 삼가 어제 답하신 성비(聖批)를 보았습니다만 의심이 없을 수가 없었습니다. 때문에 신들이 용렬함을 무릅쓰고 다시 아뢰게 되었습니다.
신들이 살펴보니 우리 나라는 역사(役事)가 번거롭고 부세(賦稅)가 무거워 백성이 그 고통을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에 중이 된 자가 한 고을에는 수천 명, 한 마을에는 수백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중들의 번성함이 지금 극도에 이르렀는데 이들은 부모 형제가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따라서 산골짝에 모여 자취를 숨기고 도둑질을 할 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이 의지하고 있는 곳을 다 철거해서 발붙일 곳을 없게 만든다면 모두 그들의 부모 형제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가 해뜨면 일하고 해지면 쉬는 태평한 습속에 젖어들어 편히 생업을 즐기며 살게 될 것입니다. 누가 감히 도적이 되어 조정에 수토(搜討)할 걱정을 끼치려 하겠습니까. 이런 폐단을 염려하면서도 다시 사찰을 철거하지 않는다면 이 당시의 사람들 뿐만이 아니라 만세토록 통쾌하게 여기지 않을 듯합니다.
도적(圖籍)에 기재되어 있는 사찰은 철거하지 않는다는 데 대해서 신들은 더욱 의혹스럽습니다. 도적이란 게 대체 어느 시대에 만들어졌기에 철거하면 안 될 이유가 있단 말입니까. 아니면 치도(治道)에 관계가 있어 철거할 수가 없단 말입니까. 도적은 지금 시대에 만든 것이고 이것이 반드시 치도에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닌데, 어찌하여 일국(一國)의 권병(權柄)을 갖고 계신 전하께서 도적에 기재된 사찰을 다 철거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까. 도적에 기재되어 있지 않은 것은 철거하고 도적에 기재되어 있는 것은 철거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중이 된 무리들이 도적에 기재되어 있지 않은 사찰에 모여 있고 도적에 기재되어 있는 사찰에는 모여 있지 않다는 것입니까? 도적에 기재되어 있는 사찰을 철거하라는 법령이, 어떻게 조정에서 사체에 알맞게 하는 도리가 될 수 있겠습니까. 전하께서 한때에 정해진 법령을 따르고자 하시어 도적에 기재되어 있는 사찰을 철거하지 않으신다면 신들은 더한층 의혹에 빠지게 됩니다.
시의(時宜)에 알맞게 조절하고 예를 미루어 이제를 증험하는 것은 바로 제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에 있어 큰 법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조정에서는 아침에 만든 법을 저녁에 고치기도 하는데, 이것도 조절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까. 전하께서는 시리(時利)를 위하여 조절한 일이 적지 않은데 도적에 기재되어 있는 사찰을 철거하지 말라는 법령만은 유독 고칠 수가 없단 말입니까. 신들은 따라서 도적에 기재되어 있지 않은 사찰을 철거하라는 법령을 만든 것도 전하의 성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마지못해 따른 것임을 알겠습니다. 2도(道) 【경기와 전라도.】 의 새로 창건한 사찰을 철거하고 난 다음에 철거하지 않은 다른 도의 사찰을 철거하라고 청하는 사람이 다시 없었던 것은, 필시 온 조정의 공경 대부들도 전하의 이런 마음을 탐지했기 때문이며, 다가오는 큰 해(害)에 대해 극언(極言)하는 사람도 따라서 없는 것입니다. 급기야는 궁궐에 잠입한 요승(妖僧)을 급박한 형벌로 죽게 함으로써 그 실정을 추궁할 수 없게 만들었으니, 이는 지금 당시뿐 아니라 만세 뒤에도 반드시 의심을 일으켜 분노를 품게 할 일입니다. 말이 여기에 이르니 한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들의 망령된 생각은 이렇습니다. 이단(異端)의 뿌리가 되는 곳은 반드시 봉선사와 봉은사인데, 이들이 떠받들어지게 된 것은 아마도 이들이 내수(內需) 【관사(官司)의 명칭인데 대내(大內)의 비용을 관장함.】 를 출입하면서 동궁(東宮)을 위해 불공을 드린다는 것을 빙자한 데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지금 중들이 다투어 경하하면서 서로 간절히 바라는 말을 들어 보면 반드시 동궁을 구실로 삼고 있습니다. 아, 전하께서 그처럼 내정(內庭)을 훈계하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시는데 동궁에 어찌 불교를 좋아하고 중들을 사모하는 자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동궁이 이미 장성한 뒤에 이렇게 빙자하는 괴이한 말이 사방에 파다하게 퍼졌으니, 신들은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픈 마음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소굴을 뒤집어엎고 근본을 막는 데는 이것이 좋은 기회입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신들의 상소를 받아들이어 두 사찰을 철거하고 두 중을 베지 않으시니, 신들은 이로부터 동궁을 구실로 삼는 일이 더욱 흥기될까 염려됩니다. 이 두 사찰을 철거하여 그 뿌리를 끊어버린다면 사방으로 엄금하지 않아도 여러 산사(山寺)가 절로 황폐하게 될 것이요, 이 두 중을 베어 주벌(誅罰)을 명백히 보인다면 금령(禁令)을 엄하게 만들지 않아도 요승의 화가 절로 없어질 것입니다.
삼가 전하께서는 급히 명백한 명을 내리시어 먼저 두 사찰을 철거하고 나서 도적에 기재되어 있는 사찰도 다 철거하소서. 또 내수(內需)에 출입하던 자들 가운데 저 두 중 같은 무리를 벤 다음에야 다시 요승이 생기지 않을 것이고 화란(禍亂)의 기미가 없어질 것입니다. 부디 전하께서는 유념하소서."
답하였다.
"그 두 중에 대해서는 경연(經筵)에서 들으니 법사에서 지금 추문하고 있다고 한다. 두 사찰은 도적에 기재되어 있을 뿐만이 아니라 바로 조종조(祖宗朝) 때의 사찰이다. 어떻게 경솔히 고칠 수 있겠는가. 또 이 소에 동궁을 위해 불공을 드린다는 것을 빙자한다는 말이 있는데, 어찌 이런 일이 있겠는가?그러나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니, 내가 계칙(戒勅)하여 세자를 올바른 길로 보도(輔導)하겠다."
- 【태백산사고본】 46책 91권 6장 A면【국편영인본】 18책 302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사상-불교(佛敎)
○成均館生員柳禮善等上疏曰:
臣等伏見昨日聖批所答, 而不能無疑焉, 故不顧臣等之無似, 而更有言焉。 臣等竊觀我國家, 役煩賦重, 民不堪其苦, 故一邑之爲僧, 至於數千, 一閭之爲僧, 至於數百矣。 僧徒之寔繁, 在今時極盛, 而莫不有父母兄弟, 則非所以嘯聚山谷, 匿跡爲盜者也。 若盡毁其所依之所, 而使無有投足之地, 則亦莫不各歸其父母兄弟之鄕, 而安居樂業於出作入息之化矣。 孰敢爲盜爲賊, 而貽朝廷搜討之患乎? 慮有此弊, 而不復毁寺, 則非特不快於一時, 抑恐不快於萬世也。 付圖籍之寺, 所以不毁者, 臣等益有所惑焉。 所謂圖籍者, 出於何代, 而有不可毁者, 抑別有關於治道, 而不可廢耶? 所謂圖籍者, 今世之圖籍, 而未必有關於治道, 則殿下操一國之柄, 而不能盡毁其付圖籍者乎? 毁其不付圖籍者, 而不毁其付圖籍, 則是爲僧之徒, 只聚於不付圖籍之刹, 而聚於付圖籍之刹耶? 毁其不付圖籍之令, 豈朝廷得體之道乎? 殿下欲遵一時已定之令, 而不毁其付圖籍者, 則臣等之惑尤甚。 夫損益時宜, 推古證今者, 乃帝王治道之大法, 則我朝廷朝立夕變之法, 抑不可爲損益乎? 殿下之損益時利者, 不爲不多, 而獨不可改不毁圖籍之令乎? 臣等知其毁不付圖籍之令, 亦非出於殿下之誠心, 而不得已而勉從者也。 是以, 旣毁二道 【京畿、全羅道】 新創之寺宇, 而更未有請毁他道之未毁者, 此必擧朝之公卿大夫, 亦探知殿下之淵衷, 而不極言將來之大害也。 故妖僧入宮城, 而急刑致斃, 不窮其情, 則非特有疑於今世而已, 使萬世之下, 將必起疑而懷恚矣。 言之至此, 可不寒心? 臣等之妄意, 則以爲異端之根柢, 必在於奉先、奉恩二寺, 而崇奉之權輿, 則豈不在於出入內需, 【司名, 掌內用。】 而籍東宮佛供者乎? 今之爲緇徒者, 所以爭相稱賀, 而交語跂足者, 必以東宮爲口實。 噫! 殿下之庭訓身正者, 有如是, 則安有東宮之好是敎慕是徒者乎? 然而自東宮旣長之後, 有此憑藉之怪說, 頗聞於四方, 臣等不勝拊心痛哭焉。 然覆巢穴塞本源, 此其機也, 而殿下不納臣等之疏, 不毁兩寺, 不斬二僧, 則臣等恐自此以後, 尤有所藉口而興起者矣。 若毁兩寺, 而絶其根柢, 則不必嚴禁四方, 而諸山之寺刹, 自至於荒廢, 斬此二僧, 而明正誅罰, 則不必嚴立禁令, 而自無妖僧之禍矣。 伏願殿下, 亟下明命, 先毁二寺, 而盡毁其付圖籍者, 又斬出入內需, 如二僧之徒者然後, 妖僧不復作, 而禍亂之機熄矣。 伏願殿下留心焉。
答曰: "二僧, 於經筵聞之, 法司時方推之云。 兩寺非特付於圖籍, 乃祖宗朝寺也。 何可輕改? 且此疏, 有籍東宮施佛供之說, 何有如此事乎? 然必有所以, 予可爲戒勑, 而世子亦當輔導以正也。"
- 【태백산사고본】 46책 91권 6장 A면【국편영인본】 18책 302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사상-불교(佛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