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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90권, 중종 34년 5월 27일 갑오 1번째기사 1539년 명 가정(嘉靖) 18년

불사를 제대로 살피고 궁중안을 엄하게 다스리게 하다

부제학 최보한(崔輔漢) 등이 상차하기를,

"요사스런 중이 궁성에 잠입하여 금어(禁御)가 가까운 곳에서 여러 날을 숨어 있다가 다행히 잡히기는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확실한 증거를 갖추어 자세히 심문해 보지도 못한 채, 형신을 질질 끌다가 매듭을 짓지 못하고 죽게 되었습니다. 그의 정상이 드러나지 않아서 이변을 측량할 길이 없고, 인심은 인심대로 답답하여 놀라움이 더욱 깊어만 갑니다. 요사스런 중의 허망한 말이야 믿을 것이 없겠으나, 그가 말한 보담(寶曇) 【보담은 김해의 중인데, 거짓 내지(內旨)를 핑계하고 대중을 현혹시키고 부처를 받들다가 죄를 받은 자이다.】 을 따랐다는 것이나, 행사(行思) 【행사는 봉은사의 중으로 그 절 주지(住持)가 되어 역시 내지를 핑계삼아 부처를 받들던 자이다.】 를 따른 것과 또 건춘문을 출입했던 점들은 사람들의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여 식견 있는 이가 듣고는 한심하게 생각하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 구중(九重)의 문을 달고 혼시(閽寺)215) 가 지키어 출입증이 없이는 들어갈 길이 없는데, 만일 중들이 그 사이에다 발을 들여놓았다면, 궁위(宮闈)가 제멋대로여서 아무런 법금이 없다는 것을 알 만합니다. 신들이 항간에서 듣기로는 여러 산에 향을 내리는 궁사(宮使)가 줄을 이었고, 내탕(內帑)에서 가져다가 부처 공양과 중 시주를 한다고 합니다. 비록 부처를 좋아한다는 명분은 없지만 부처를 좋아하는 실제는 있는 것입니다. 학문이 고명하신 성상께서 이설에 미혹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신들이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그러나 금방(禁防)이 주밀하지 못하다는 것은 역시 성상의 밝음이 미처 살피지 못한 것입니다. 시속의 추향을 사람들이 듣고 의혹하여 가까이서부터 멀리 전파되면 변명하기가 어렵습니다. 30여 년에 걸친 내성(內聖)216) 의 학문과 우문(右文)의 정치로서 허탄하고 요사스런 무리들에 의해 맑고 밝은 교화가 더럽혀진다면 어찌 통탄스럽지 않겠습니까.

요사스런 중은 이미 죽었지만, 그가 끌어들인 무리를 다 추궁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 가운데에 보담·행사 같은 무리는 그 중의 입에만 올랐던 인물이 아니라, 교활하고 약으며 속임수가 많아 사람들의 분노가 쌓인 지 오래입니다. 심지어는 남몰래 유력자에게 연줄을 대어 많은 재물을 모으고, 궁중에서 내려준 것이라고, 칭탁하면서 자랑을 하여 대중을 미혹시켰습니다. 그러고도 오래도록 죽임을 당하는 데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 실형(失刑)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뿐이 아닙니다. 중들을 쓸어 버리고 사찰을 헐기 위하여 관원을 파견하기까지 하였으니 법이 엄하지 않았던 것도 아닌데, 차관(差官)이 돌아오고 나면 바로 다시 짓고 수리하였습니다. 수령들은 그것을 보고도 사역(私役)으로 인한 이해 관계 때문에 금하려 들지 않고, 감사도 국법을 무시하고 못 들은 체합니다. 중이 도성에 들어오는 것은 나라의 일정한 금령(禁令)이 있는데도 바리 들고 가사 입은 자가 거리를 멋대로 다니면서 이리저리 연줄을 찾아 거리낌없이 드나들고 있습니다. 이처럼 단속히 극도로 해이해져서 성을 넘어 들어오는 변괴까지 빚어 냈으니, 이 한 가지만 보더라도 기강이 서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들은 한 두 명의 요사스런 중이 온 나라의 이목을 현혹시킬 수 있으리라고 여기는 것은 아니며, 또 성상께서는 학문이 고명하시어 사정(邪正)의 구별에 혼동을 일으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압니다. 다만 그의 공초가 궁곤(宮壼)과 관계되므로 여러 사람들이 의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하께서 학문을 정일하게 닦으시고 가법을 바로 세우시어 궁중 안이 언제나 엄숙하고 정돈되어서 안과 밖이 서로 범접 못하고 속임수를 부릴 곳이 없게 만드신다면, 간사한 무리들이 제아무리 구실을 붙이려 해도 할 수 있겠습니까.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요사스런 중의 허튼 수작이 괴이할 것 없다고 여기지만 마시고, 모든 것이 엄숙하지 못함이 큰 걱정거리임을 생각하시어 소홀하기 쉬운 곳에 더 힘써 미연에 방지하소서."

하니, 답하였다.

"요사스런 중이 성을 넘어 든 것도 재변은 재변이다. 위아래 할 것 없이 누가 놀라지 않겠는가. 다만, 은수의 초사가 들쭉날쭉 변사가 심하여 사실로 받아들일 수 없다. 이것이 불사(佛事)와 관계는 없으나 이번 일을 계기로 하여 더욱 살펴야 할 것이고, 궁중 안 역시 가일층 엄하게 다스려야 할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46책 90권 74장 B면【국편영인본】 18책 298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법-치안(治安) / 사법-재판(裁判) / 사상-불교(佛敎) / 왕실-종사(宗社)

  • [註 215]
    혼시(閽寺) : 문지기 노릇하는 환관.
  • [註 216]
    내성(內聖) : 속으로 성인 덕을 갖춘 것.

○甲午/副提學崔輔漢等上箚曰:

妖僧潛入宮城, 迫近禁禦, 竄伏累日, 幸就擒執, 不復具備證左。 詳鞠審問, 而刑訊重沓, 遽使殞斃, 情緖莫露, 變異不測。 人心悶鬱, 駭怪彌深。 妖僧誣妄之言, 固不足信, 而其所謂或從寶曇, 【寶曇, 金海僧人, 以假托內旨, 惑衆供佛被罪者。】 或因行思, 【行思, 奉恩寺僧, 爲寺住持。 亦托內旨, 事佛者。】 出入建春門一端, 足以益人疑惑, 而有識聞之, 罔不寒心。 設門九重, 閽寺守之, 通籍之外, 無路自達。 萬一緇髡之徒, 容迹其間, 則宮闈之蕩然無禁, 此可知矣。 臣等聞之道路, 降香諸山, 宮使相望, 輸運內帑, 供佛施僧。 雖無好佛之名, 而有好佛之實。 臣等固知聖學高明, 不爲異說所迷, 而使禁防不密者, 亦睿鑑之所未及照臨也。 然流俗所趨, 人聽已惑, 自近傳遠, 難以辨明。 以三十餘年內聖之學, 右文之治, 而顧使僞誕妖怪之輩, 汚衊淸明之化, 豈不痛哉? 妖僧旣斃, 其所逮引, 似難窮詰。 如所謂寶曇行思之類, 不但騰此僧之口, 巧黠詐誣, 積人之憤久矣。 至如陰緣蹊徑, 多蓄貨寶, 托稱內賜, 誇耀惑衆, 而久稽顯戮, 豈非失刑? 不特此也。 刷括僧徒, 毁撤寺刹, 至於遣官, 法非不嚴, 而差官纔返, 旋復構葺, 守令利私役, 而不之禁, 監司慢國禁, 而若不聞。 僧入都城, 國有常禁, 而持鉢衣緇者, 恣行街里, 勸誘因緣, 出入無忌。 糾禁解弛之極, 馴致越城之變。 擧此一隅, 亦可知紀綱之不立也。 臣等非以一二妖僧, 得以惑一國之耳目, 且知聖學之明, 必不眩於邪正之別矣。 秪其所供, 干涉宮壼, 不能無群情之疑怪。 殿下苟能學就精一, 家法有截, 常使宮禁之中, 莊肅齊整, 外內不相接, 欺蔽無所容, 則奸細之人, 雖欲藉口, 其可得乎? 伏願殿下, 勿以妖僧誕妄, 爲不足怪, 惟以不肅, 爲大可憂, 加功於易忽之地, 遏流於涓滴之初。

答曰: "妖僧越城之事, 亦是災變, 上下孰不驚駭哉? 但誾修招內, 所言變詐不一, 不可取實也。 此則不干於佛事也, 然因事益察可也。 宮禁更加禁斷焉。"


  • 【태백산사고본】 46책 90권 74장 B면【국편영인본】 18책 298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법-치안(治安) / 사법-재판(裁判) / 사상-불교(佛敎) / 왕실-종사(宗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