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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90권, 중종 34년 5월 18일 을유 1번째기사 1539년 명 가정(嘉靖) 18년

수령의 부정과 민폐의 견감에 대한 시독관 윤원형, 정언 최희맹의 건의

조강에 나아갔다. 시독관 윤원형이 임문(臨文)하여 아뢰기를,

"선왕이 마을을 십(什)·오(伍)로 짝지은 제도212) 는 바로 도둑을 막는 데 뜻을 둔 제도입니다. 일단 도둑이 일어난 뒤에는 방비를 잘하더라도 그것은 최하의 수단이고, 도둑이 일어나기 전에 근본을 다스리는 것이 옳습니다. 대체로 도둑이라 하여 그들의 마음이 어찌 다 흉포하기만 하겠습니까. 위에 있는 사람이 제대로 보살펴 주지 못하여 굶주림과 추위가 그들에게 닥치면 도둑으로 변하는 것은 부득이한 일입니다. 맹자(孟子)도 ‘위로 부모를 섬길 수 없고 아래로 처자를 기를 수 없으면, 풍년이래야 죽도록 고생만 하고 흉년이 들면 죽음을 면치 못한다.’ 하였습니다. 참으로 그렇게 되면 노약자는 시궁창에 굴러 떨어질 것이고 강장한 자는 사방으로 흩어질 것이니, 그러고서 백성이 도둑으로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백성을 보살피는 책임을 오로지 수령들에게만 맡기고 있는데, 요즈음 수령이 된 자들은 거의가 가렴 주구하는 자들로서 빼앗기만을 일삼기 때문에 중국 사행이 한번 지나가고 나면 민력(民力)이 바닥이 납니다. 거기에다가 가뭄까지 이처럼 심하여 밀·보리가 다 말라 버렸으니, 풍년이 들 조짐은 이미 아닌 것 같습니다. 백성을 소생시킬 정책을 미리 강구해야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도둑은 굶주림과 추위를 못 이겨서 생기는 것이니 제대로 보살펴서 백성들이 굶주리고 추운 상황에 이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바로 도둑을 막는 근본이다. 백성을 보살피는 책임이 수령들에게 있으니, 각별히 유시를 내리는 것이 마땅한데도 유시를 예사로이 보아 넘기고 힘써 받들어 행하지 않으니 사실 도움은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유시를 내리지 않을 수도 없다."

하였다. 윤원형이 아뢰기를,

"요즈음 민폐는 한 두 가지가 아니어서 낱낱이 거론하기가 어렵습니다. 듣건대, 내수사(內需司)에서 신유년부터 외방에다 사채(私債)를 놓아 오다가 병자년에 민폐가 있다 하여 혁파하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놓지 않고 있으나 신유년부터 병자년까지 받아들이지 못한 변리(邊利) 【사채를 불린 이자.】 를 모조리 계산하여 백성들에게서 징수한다는데, 그것을 만약 자모법(子母法)으로 따져 계산하면 10석의 사채가 10년이 되면 1천 석으로 불어납니다. 세월이 오래되어 빚을 쓴 자들이 도망을 가기도 하고 혹은 죽고 없으므로 빚을 그의 겨레붙이를 찾아 독촉하며 징수합니다. 시골의 가난한 백성들이 힘들여 농사를 지어 겨우 공채(公債)나 상환하는 처지인데, 내수사의 서제(書題)들이 해마다 가혹하게 거두어 들이니, 그 폐단이 어찌 우연한 것이겠습니까. 내수사의 사채를 부득이 받아들여야 한다면 그 본수(本數)만을 받고 변리는 따지지 않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서제들이 이를 빙자하여 폐단을 일으키는 것을 상께서도 마땅히 아셔야 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내수사의 사채를 각읍에서 받아들여 관창(官倉)에 쌓아 두게 한 지 오래되었다. 서제들이 지나치게 하는 폐단은 없을 것이다."

하였다. 윤원형이 아뢰기를,

"비록 각읍에서 받아들이게 하였더라도 변리까지 다 계산하여 그의 겨레붙이와 이웃에게서 받아들인다면 폐단이 큽니다. 그리고 또 민폐가 크기로는 기인(其人) 【각읍에서 향리를 윤번제로 사재감(司宰監)에다 입역(立役)하였는데, 그 입역한 자를 기인이라고 한다.】 보다 심한 것이 없습니다. 국가의 용도가 모두 회계(會計)가 있는데, 선공감의 숯과 사재감의 땔감만은 회계를 하지 않아 들여온 숫자만 기록할 뿐 쓰여진 숫자는 기록하지 않고 있습니다. 숯만 하더라도 1년에 들여온 것이 1만 3천여 석에 이르는데, 그 중 9천여 석이 간 곳이 없다고 하니, 낭비가 많다는 것을 이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처음 기인을 나누어 정할 때 너무 먼 평안도위원(渭原)·벽동(碧潼)이나 전라도강진(康津)·해남(海南) 같은 데까지 나누어 정하였으므로 민폐가 큽니다. 그렇게 멀리 떨어진 읍까지 다 나누어 정하지 않더라도 그 수가 1만 석 정도이면 국용에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서제가 내려간 것은 언젠가 충청도 관찰사 【윤개(尹漑).】 의 계본 때문에 내려 보낸 것이다. 숯과 땔감에 대한 폐단은 담당자가 살펴보라."

하였다. 정언 최희맹(崔希孟)이 아뢰기를,

"윤원형이 아뢴 것이 모두 지당합니다. 비단 숯·땔감뿐만 아니라 다른 각사(各司)에서 받아들이는 물건도 모두 그렇습니다. 국용에 별 상관없고 백성들에게 폐만 끼치는 것을 일체 견감하여야 합니다. 내수사의 사채도 없앤 지 이미 오래되었는데 해묵은 변리를 다시 백성들에게서 받아들인다면, 백성들의 원망이 어찌 적겠습니까. 어진 수령이 고을을 다스리면서도 창고의 곡식이 여유가 있으면 민간의 포흠(逋欠)을 장부에서 모두 없애 버려서 민폐를 제거하기도 하는데, 하물며 변리가 없더라도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 국가이겠습니까. 지금 만약 일일이 받아들인다면 백성들에게 원망을 살 뿐만 아니라 국가 체면도 손상됩니다. 모두 견감해 버리면 백성들도 조금이나마 혜택을 받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일렀다.

"변리를 독촉해 받는 폐단이 크다면 그것은 결코 해서는 안 된다."

【충청도 관찰사의 계본은 다음과 같다. "공주(公州)에 사는 내수사의 종 복대(卜代)가 서제들과 공모하여 본아문의 사채 변리를 백성들에게서 몰래 징수하여 민간의 소요를 일으켰습니다. 앞으로 다른 서제를 내려 보낼 때는 차사원(差使員)을 뽑아서 문권(文券)을 함께 상고한 후 분명하고 공정하게 시행토록 하소서."】


  • 【태백산사고본】 46책 90권 69장 B면【국편영인본】 18책 295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사법-치안(治安) / 구휼(救恤) / 재정-상공(上供) / 금융-식리(殖利) / 재정-역(役) / 재정-국용(國用) / 신분-중인(中人)

  • [註 212]
    마을을 십(什)·오(伍)로 짝지은 제도 : 십(什)은 십가(十家), 오(伍)는 오가(五家)로 십 가나 오 가를 한 통(統)씩으로 정한 호적 제도.

○乙酉/御朝講。 侍讀官尹元衡臨文曰: "先王閭比什伍之制, 乃禁戢盜賊之意也。 盜賊興起然後, 雖善於備禦, 亦末也。 及其未形, 而先治其本爲當。 大抵爲盜賊者, 其心豈盡兇暴哉? 在上之人, 撫養不得其道, 使飢寒切身, 則其爲盜賊, 亦出於不得已也。 孟子曰: ‘仰不足以事父母, 俯不足以育妻子, 樂歲終身苦, 凶年不免於死亡。’ 苟如是, 則老弱塡于溝壑, 壯者散而之四方, 欲民之不爲盜賊難矣。 字牧之任, 專委守令, 而今之爲守令者, 率皆掊克之人, 惟以割剝爲事, 故一經使之行, 民力已竭。 加以旱勢至此, 兩麥盡枯, 已非豐登之候。 蘇復之策, 所宜預講。" 上曰: "盜賊之興, 迫於飢寒而然也。 撫養得道, 使民不至於飢寒, 乃弭盜賊之本也。 字牧之責, 在於守令, 所當各別下諭, 而視爲尋常, 不務奉行, 固無益也。 然亦不可以此而不爲也。" 元衡曰: "方今民弊不一, 難以枚擧。 竊聞內需司, 自辛酉年, 分給私債于外方, 丙子年, 以有民弊革罷矣。 今則雖不分給, 而追計辛酉丙子之間未收邊利, 【私債之滋殖者。】 盡徵於民。 若子母相計, 則十碩之債, 至於十年, 已爲千碩。 年歲已久, 其受債者, 或有逃避, 或有死亡, 故徵督於一族、隣里。 窮民勞苦耕穫, 謹備公債之償, 內需司書題, 年年責出甚苛, 其弊豈偶然哉? 內需司私債, 若不得已徵之, 則只收本數, 而勿計邊利何如? 書題憑藉, 作弊之事, 自上亦當知之。" 上曰: "內需司私債, 令各邑收積于官倉已久, 似無書題泛濫之弊矣。" 元衡曰: "雖使各邑收入, 盡計邊利而徵於族隣, 則其弊大矣。 民弊之大, 又莫甚於其人。 【各邑以鄕吏, 輪次立役于司宰監者, 謂之其人。】 國家用度, 皆有會計, 而獨繕工監之炭, 司宰監之燒木, 不爲會計, 只記所納之數, 而不記所用之數。 以炭言之, 一年所納, 多至一萬三千餘碩, 而九千餘碩, 無去處云。 浮費之廣, 因此可知。 當初其人分定時, 如平安道 渭原碧潼全羅道 康津海南等處, 極遠而亦皆分定, 民弊不貲。 雖不分定遠邑, 而其數止於一萬碩, 國用豈不有裕乎?" 上曰: "書題下去事, 嘗因忠淸道觀察使 【尹漑。】 啓本【啓本曰: "公州居內需司奴卜代, 與書題輩同議, 本司私(年) 〔債〕邊利, 濫徵於民, 民間騷擾。 他書題下送, 則擇定差使員, 同考文券明正施行" 云。】 而下送矣。 炭與燒木之弊, 有司察之可也。" 正言崔希孟曰: "元衡所啓至當。 非特炭與燒木也, 他各司所納之物, 莫不皆然。 凡不關於國用, 而貽弊於民者, 一切蠲減爲當。 內需司私債, 罷去已久, 而累年邊利, 復收於民, 民怨豈淺哉? 賢守令爲邑, 若庫有餘粟, 則民間逋欠, 皆滅簿籍, 以除民弊。 況國家雖無此邊利, 不足爲輕重, 今若一一收之, 非但取怨於民, 國體亦有虧損。 竝行蠲減, 則民受一分之惠矣。" 上曰: "督納邊利, 其弊果大。 此則決不可爲也。"


  • 【태백산사고본】 46책 90권 69장 B면【국편영인본】 18책 295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사법-치안(治安) / 구휼(救恤) / 재정-상공(上供) / 금융-식리(殖利) / 재정-역(役) / 재정-국용(國用) / 신분-중인(中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