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조서 및 칙서의 내용
이른 아침 상이 모화관(慕華館)에 나아갔다. 조서가 도착하려 할 즈음, 상이 면복(冕服)을 갖추고 소차(小次)138) 에 나가 있으니 원접사의 종사관 임형수(林亨秀)가 달려와서 아뢰기를,
"조사(詔使)가 곧 이를 것입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천사의 시편(詩篇)과 원접사가 화답한 것을 모두 써 가지고 왔는가?"
하므로, 임형수가 회계하기를,
"천사가 지은 것은 모두 정서했으나 원접사가 화답한 것은 미처 정서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평안도 이전에서 창화한 시는 모두 책을 만들어 가지고 왔으니 지금 입계할 것입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조서가 연조문(延詔門)에 이르자 상이 절하는 자리에 나아가 다섯 번 절하고 세 번 머리를 조아리는 예를 행하였다. 【왕세자·백관·유생도 같이 하였다.】 이어 승여(乘輿)가 먼저 도착하고 조사는 광화문(光化門) 밖에 이르러 산대(山臺) 놀이를 구경하고 한참 뒤에 들어왔다. 상이 의식대로 조서를 받으니 그 첫째 조서는 다음과 같다.
"천운(天運)을 받들어 황제는 조서한다.
짐은 들으니 천지가 혼돈(混沌)하여 삼재(三才)139) 가 아직 정립(定立)되지 못하였을 때 천지를 개벽(開闢)한 것은 오직 상제(上帝)께서 주재하시었도다. 상고하건대, 지난 원(元)나라 나쁜 무리들이 우리 중화(中華)를 어지럽히자 우리 고황제(高皇帝)께서 나오시었도다. 그 다음 대업(大業)을 세워 고황제의 공렬(功烈)을 이룩하신 분은 우리 태종 황제(太宗皇帝)이시며, 밝은 운세(運勢)를 거듭 여시어 이전의 융성함을 더욱 성하게 하신 것은 우리 황고(皇考)의 공덕이시었다. 이에 경사가 중첩하고 은택이 쌓이어 오늘에 이르렀다. 짐(朕)은 이제 철모르는 어린 나이에 황제라는 무거운 책임을 받았고 변변찮은 몸이 외람되게 하늘의 크고 깊은 돌보심을 거듭 입었으며, 어리석고 재주없는 사람이 황공하게도 상제의 융숭한 은혜를 흠뻑 받아 지위가 왕공(王公) 이하 억조 창생의 위에 오르고, 사해(四海) 만백성의 존경을 받는 자리에 군림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상제(上帝)·황조(皇祖)·태종(太宗)·황고(皇考)의 마음에 맞도록 보답코자 종일토록 생각한 지가 17년이나 되었다. 더구나 더할 수 없는 황제라는 큰 이름을 하늘로부터 얻었음에랴.
또 후에는 스스로 생각하기를 ‘천자로서 선조를 추숭(推崇)하는 것이 어버이를 섬기는 정과 같은 것이니 어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또 저 푸른 하늘은 높고 광대하기가 한이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짐은 단지 어리석은 정성을 다할 뿐이다. 이미 이달 1일 상진(上辰)140) 에 표문(表文)을 갖추어 친히 신민을 거느리고 환구(圜丘)에 나아가 황천 상제께 큰 존호를 배상(拜上)하였다. 삼가 생각해 보건대, 이 세상 만물은 모두 하늘에 근본을 두었으니 짐은 백성과 만물을 위하여 하늘 섬기는 마음으로 이미 미미한 정성을 다하였다. 오직 인간의 근본은 조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것이 바로 근본을 추모하는 정성인데, 실로 우리 황조의 큰 공업(功業)을 이렇게 밝히는 일은 전에 없었다. 그러므로 첫째 진일(辰日)에 책보(冊寶)141) 를 받들어 황후와 함께 신첩(臣妾)들을 거느리고 태묘(太廟)에 나아가 존호를 올렸다. 황조의 성호(聖號)는 태조 개천행도 조기입극 대성지신 인문의무 준덕성공 고황제(太祖開天行道肇紀立極大聖至神仁文義武俊德成功高皇帝)라 하고, 고황후(高皇后)께서는 처음으로 음교(陰敎)를 닦아 진실로 하늘의 덕을 도왔으므로 존호를 가상(加上)하여 효자정화 철순인휘 성천육성 지덕 고황후(孝慈貞化哲順仁徽成天育聖至德高皇后)라 하였다. 뒤에 태종 황제께서 능히 태조의 큰 공업을 완성하셔서는 창업(創業)과 수성(守成)의 공이 갖추어졌으므로 전 9월 11일에 존호를 올려 성조 계천홍도 고명조운 성무신공 순인지효 문황제(成祖啓天弘道高明肇運聖武神功純仁至孝文皇帝)라 하였다. 전에는 계추(季秋)에 대향(大享)의 식전(式典)을 베풀었으니 이는 백성을 위하는 일인 바, 복을 내려준 데 대한 감사로서 왕자(王者)의 큰 일이다. 그래서 의식(儀式)은 경의(經義)의 정도(正道)를 따르고 특별히 종사(宗祀)의 법식(法式)을 거행하였다. 더구나 우리 황고께서는 드러나지 않은 덕행이 상제에게까지 알려졌고, 전대를 빛내고 후대를 열었으니 종(宗)으로 묘호(廟號)를 올림이 마땅하기에 이달 11일에 공경히 존호를 올려 예종 지천수도 홍덕연인 관목순성 공검경문 헌황제(睿宗知天守道洪德淵仁寬穆純聖恭儉敬文獻皇帝)라 하였다. 이달 21일에 공경히 궁궐의 오른편 동북쪽 모퉁이의 현극보전(玄極寶殿)에서 상제(上帝)를 향사(享祀)하고, 황고를 받들어 상제에 배향(配享)하였다.
이에 육기(六氣)142) 가 다시 시작되는 때에, 구거(九擧)143) 로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식전(式典)에 규벽(圭璧)144) 을 받들어 올렸으니 상제께서 이미 은택을 내렸을 것이고 축백(祝帛)145) 을 받들었으니 황천의 감응을 받을 것이다. 짐이 충심으로 기꺼이 우러러 받드는 정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아! 하늘을 섬기고, 상제를 섬기고, 조고(祖考)를 섬기며, 교(郊)에서 대보(大報)를 드리고 당(堂)에서 대향(大享)을 올려 공덕(功德)에 보답하고 생성(生成)해 준 데 대한 보답을 함께 폈도다. 크신 하늘과, 크신 조고(祖考)에 아울러 다 하니, 신인(神人)의 경사가 빛나고 민물(民物)의 기쁨이 극도에 달하여 상제의 은혜가 흘러 넘친다. 혈기가 있는 자는 어버이 섬기기를 생각할지어다. 짐의 생각이 말로 나타났으니 보고 들은 모든 사람들은 의당 염두에 두고 삼가 알라. 중화에 선포하고 그대 동방에까지 미치니 공경할지어다."
두 번째 조서는 이러하다.
"천운을 받들어 황제는 조서한다. 짐은 임금으로서 천명(天命)을 받들어 천하에 군림하니 막중한 것은 큰 근본이 관계된 일이다. 이 때문에 우(禹)임금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 법을 따라 인심을 귀일시켰다. 근래, 짐은 황천이 굽어살펴 주시는 은혜에 힘입어 원자(元子)가 탄생하고 수년 동안에 큰 조화(造化)가 연이어 내렸다. 돌아보건대, 짐은 어떤 사람이기에 상제의 은덕을 크게 받고 황조(皇祖)께서 내려 주시는 은혜와 열성(列聖)께서 쌓아 놓은 큰 공적과 황고(皇考)의 높은 공덕과 황비(皇妣)의 무한한 자애로운 사랑이 깊은 것인가. 짐은 이러한 큰 은혜를 받아 오늘에 이르렀다. 생각하건대, 조종(祖宗)의 가법(家法)이 갖추어져 있고 자후(慈后)의 말씀이 간절하시니, 짐 또한 심중으로 바라는 바였는데 문무 제신들이 여러 번 청하고 좌우의 대관(大官)들이 힘써 도와 모두들 나라의 근본을 정할 시기가 바로 지금이라 하였다. 짐 또한 생각해 보니, 장구하게 나라를 편안히 다스리려면 모름지기 일찍 태자를 세우는 일이다. 겸하여 번방(蕃邦)이 중하기 때문에 근본을 세우는 일과 함께 시행한다. 마침 어제의 좋은 날을 잡았으니 어제가 바로 이달 1일이었다. 짐이 몸소 황천과 황조께 공경히 청한 뒤 여러 신하들을 나누어 명하여 방택(方澤)146) 과 열성(列聖)과 대사직(大社稷)과 제사직(帝社禝)의 신기(神祇)에 고하게 하고 크게 책보(冊寶)를 반포하였다. 원자(元子) 재학(載壑)을 황태자(皇太子)로 삼고, 둘째 아들 재후(載垕)를 유왕(裕王)으로 봉하고, 세째 아들 재수(載圳)를 경왕(景王)에 봉하였다. 길한 의식을 이루고 나니 진실로 신인(神人)의 바람에 흡족하고 책봉하는 큰 일을 아울러 거행하니 진정 국가의 영광스러움이 더하도다. 만방에 전파하여 알리노니 모두가 잘 알도록 하라."
칙서(勅書)는 이러하다.
"황제는 조선 국왕에게 칙유(勅諭)하노라. 짐이 황태자를 세우고 아울러 두 왕(王)을 봉했으니 은혜가 천하에 미쳤다. 생각하건대, 왕은 동방의 번병(蕃屛)으로 대대로 제후로서의 도리를 닦았으니 의당 은택을 베풀어 그대의 충근(忠勤)에 답해야겠다. 특별히 한림원 시독(翰林院侍讀) 화찰(華察)과 공과 급사중(工科給事中) 설정총(薛廷寵)을 정사(正使)와 부사로 삼아서 보낸다. 조서를 받들고 아울러 왕과 왕비에게 비단을 예물로 보내니 사신이 이르면 하사물을 받고 특별히 예우하는 짐의 본의를 알 것이다. 이렇게 하유한다."
- 【태백산사고본】 46책 90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18책 272면
- 【분류】외교-명(明)
- [註 138]소차(小次) : 왕의 거둥 때 잠깐 쉬기 위하여 장막을 쳐 놓은 곳.
- [註 139]
삼재(三才) : 천(天)·지(地)·인(人).- [註 140]
상진(上辰) : 매월의 첫째 진일(辰日).- [註 141]
책보(冊寶) : 책봉하는 글과 인장.- [註 142]
육기(六氣) : 음(陰)·양(陽)·풍(風)·우(雨)·회(晦)·명(明).- [註 143]
구거(九擧) : 희생(犧牲)을 들어 아홉 번 제사함.- [註 144]
○早朝, 上出慕華館。 詔書將至, 上具冕服, 出就小次。 遠接使從事官林亨秀馳來啓曰: "詔使將至矣。" 傳曰: "天使詩篇, 遠接使所和, 皆已書來耶?" 亨秀回啓曰: "天使所做, 皆已正書, 遠接使所和, 時未正書, 而平安道以前唱和之詩, 則皆已成冊持來, 今當入啓。" 傳曰: "知道。" 詔書至延詔門, 上出就拜位, 行五拜三叩頭禮, 【王世子、百官、儒生同。】 仍乘輦先到。 詔使至光化門外, 觀山臺雜戲, 良久乃入。 上受詔勑如儀。 其一詔曰:
奉天承運皇帝詔曰, 朕聞洪荒草昧, 三才未立, 追厥開天闢地, 於惟上帝宰御焉。 載稽往元, 醜亂我夏, 於惟皇祖高皇帝出焉。 次建寶圖, 以成高皇帝之烈者, 我太宗皇帝也。 申啓明運, 以光前勳之盛者, 我皇考功德焉。 於是慶鍾澤積, 至于今日。 朕方童昧之年, 丕受仔肩之重, 眇末不肖, 秪叨荷于天眷洪深, 愚暗不才, 欽感沐于帝恩隆大。 位處王公士兆之上, 君臨四國萬姓之尊, 圖報稱于上帝皇祖太宗皇考之心, 終日思惟, 十復七歲。 矧人君稱皇, 取莫大之名於天? 又後自謂曰: "天子而推崇, 如事父之情, 何未之思? 且蒼昊旻上, 未盡高覆廣徧之極?" 是以, 朕特竭愚念, 已於此月一日上辰, 祗具冊表, 親率臣民, 趨詣(圈)〔圜〕 丘, 拜上皇天上帝泰號。 卽復恭思, 萬類億物, 皆本乎天。 朕爲民物, 報事天之心, 旣少少盡, 惟人之本, 非祖何用? 是因追本之誠, 亦實昭我皇祖丕烈, 古前所無者, 故就一辰, 奉冊寶, 偕皇后率臣妾, 躬詣太廟, 崇薦皇祖聖號曰: 太祖開天行道肇紀立極大聖至神仁文義武俊德成功高皇帝。 高皇后, 肇修陰敎, 允輔天德, 加薦尊謚曰: 孝慈貞化哲順仁徽成天育聖至德高皇后。 後惟太宗皇帝, 克成太祖洪業, 功備創守, 前于九月十一日, 加尊爲成祖啓天弘道高明肇運聖武神功純仁至孝文皇帝。 初以季秋大亨之典, 所關爲民謝福。 王者大事, 式循經義之正, 特擧宗祀之章。 況我皇考, 玄德升聞, 輝前啓後, 宜薦宗稱, 卽此之十一日, 恭上尊號爲睿宗知天守道洪德淵仁寬穆純聖恭儉敬文獻皇帝。 是月二十一日, 祗大享上帝禮于宮右乾隅之玄極寶殿, 奉皇考配帝, 玆者, 六氣始復之辰, 九擧大報之典。 圭璧是奉, 仰上帝已垂欽; 祝帛是將, 荷皇天之錫鑑。 朕衷懽戴, 莫罄名言。 於戲! 事天事帝而事祖考, 郊大報與堂大享以同伸, 報功報德而報生成。 皇矣天、皇矣祖考, 斯竝盡, 慶豔神人, 忭極民物, 澤流帝惠。 有血氣者, 其思之以尊親。 言露朕情, 凡見聞者宜念哉, 而祗繹布干華夏, 曁爾東邦, 欽哉!
其二詔曰:
奉天承運皇帝詔曰, 朕惟人君, 奉天命而君臨天下, 所重者, 大本係焉。 是以, 自神禹至今, 率遵此道, 用一人心也。 比歲, 朕皇天俯眷, 元嗣克生, 數歲之間, 疊承洪造。 顧朕何人, 鉅膺帝德? 深惟皇祖垂裕之恩, 列聖積累之大。 皇考功德玄隆, 皇妣慈善廣萃, 朕躬顯受丕荷, 至有今日。 玆念祖宗家法具在, 慈〔后〕 囑切, 朕亦中冀, 文武群臣屢請, 左右元僚力贊, 咸以國本之定, 此其時也。 朕亦思惟, 欲圖久大之治安, 須早定立於儲貳, 兼以蕃輔之重, 故同建本而行。 適取昨旦元吉, 是維今月一日。 朕躬祗請命于皇天皇祖, 分命諸臣, 告于方澤、列聖、大社稷。 帝社稷神祗, 大頒冊寶, 立朕元子載壑爲皇太子, 封第二子載坖爲裕王, 第三子載圳爲景王。 吉典告成, 允協神人之望; 大封竝擧, 式增邦國之光。 播諭萬方, 咸使知悉。
其勑書曰:
皇帝勑諭朝鮮國王。 玆朕建立皇太子, 竝封二王, 覃恩天下。 念王屛蕃東方, 世修職貢, 宜加恩賚, 以答忠勤。 特遣翰林院侍讀華察、工科左給事中薛廷寵, 充正副使, 捧齎詔諭, 竝賜王及妃彩幣文錦。 至可受賜, 見朕優禮之意, 故諭。
- 【태백산사고본】 46책 90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18책 272면
- 【분류】외교-명(明)
- [註 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