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은보 등이 전라도 관찰사 김정국이 폐를 진술한 계본에 의해 의논하여 아뢰다
영의정 윤은보(尹殷輔) 등과 이조·병조와 당상(堂上)이 함께 의논하여 아뢰었다. 【전라도 관찰사 김정국(金正國)이 폐를 진술한 계본에 의한 것이다.】
"1. 보병(步兵)의 번가(番價)를 해조에서 작정한 지가 이미 오래되었으나 대신 번서는 자가 오히려 법을 두려워하지 않고 수다히 마구 징수하기 때문에 빈한한 군사가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날마다 유망(流亡)하게 된다고 하였으니, 과연 관찰사가 아뢴 대로라면, 각 고을의 수령에게 경내의 보병의 번가를 수에 따라 수합(收合)하고 도장을 찍어 감봉(監封)한 다음 번상(番上)하는 보병 중에 재간이 있고 믿을 만한 사람에게 책임지워 병조에 올려보내게 하소서. 그리하여 병조에서 각처에 나누어 보내면 각처 관원들이 상고하여 봉(封)하여 날인한 다음 나누어주면 멋대로 받는 폐단이 없게 될 것입니다. 다만 영선(營繕)하는 각처에 분정(分定)된 자는 다른 곳보다 몇 갑절이나 역사(役事)가 고되니 짐작하여 정한 수로는 역사를 지탱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따라서 공조(工曹) 및 선공감 제조(繕工監提調)가 별도로 규찰하여 그 역사(役事)를 되도록 너그럽게 하여 감당하지 못하게 하지 말고, 감역관(監役官) 등이 전처럼 역사를 삼가지 않거나 대신 번서는 자가 대신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면 감역관을 중죄로 논하소서.
2. 당초에 각 진보(鎭堡)에 목궁(木弓)을 비치한 것은 궁력(弓力)이 겨울과 여름에는 증감(增減)이 없기 때문인데 해마다 만들어 두었습니다. 그 가운데 해가 오래되어 파괴된 활은 해마다 수리하느라 폐단이 군졸에게 미치게 된다 하였으니, 관찰사가 아뢴 바에 따라 이제부터는 다시 만들지 못하게 하고 그 목궁을 저축하는 데도 참작하여 일정한 액수를 정하여 파괴된 숫자에 따라 보수하고 오래되어 쓰지 못할 것은 가난한 군졸에게 나누어 주게 하소서.
3. 전라도 우수사 유홍(柳泓)의 계본에 의하면, 군영에 소속되어 배를 조종하는 긴요한 사람들은 경차관(敬差官)의 입회하에 수를 헤아려 마련하게 하고 그대로 머물러 살도록 해야 합니다. 다만 제주도는 역시 외딴 섬이므로 문안(文案)에 기록된 정군(正軍) 및 향리(鄕吏)를 쇄환(刷還)하지 않는 것은 온당치 못한 것 같습니다. 병조로 하여금 문안에 기록되었는지의 여부를 고찰하여 강제로 원적(原籍)에 돌려보내게 해야 합니다.
4. 함경도 길주(吉州) 이북의 각 고을이 하나같이 흉년이 들었는데 현재 남아있는 곡식으로 구활(救活)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변진의 군량을 다 털어서 지급할 수는 없기 때문에 곡식을 옮기는 일은 부득이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만 도내 남쪽 고을의 곡식을 다 털어 옮겼다가 갑자기 변경(邊警)을 만나게 된다면 먼 외방(外方)의 곡식을 빨리 옮길 수가 없어 궁색한 것을 보충하기가 어렵습니다고 하였는데, 관찰사의 계본에 의하면 단천(端川) 이남의 곡물을 따뜻한 봄이 된 다음 수량을 헤아려 마땅한 때에 조운(漕運)하여 부족한 수를 보충하고 또 강원도·경상도 등의 변군(邊郡)의 곡식을 헤아려 옮겨 차차 보충케 하는 것이 합당할 것입니다.
5. 목장에서 유실된 말은 전적으로 목자(牧子)들이 훔쳐낸 것이 아니라 혹은 수적(水賊)에게 도둑맞을 수도 있고 또 벼랑에서 떨어져 죽을 수도 있으니 애매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가(馬價)를 징수하지 않으면 경계할 줄을 모릅니다. 목장내에 좋은 망아지가 많은데 다른 사람에게 마구 팔아넘기는 폐단을 끝내 방지할 수 없으니, 이 조항은 거행하지 마소서.
6. 양계(兩界)에 입거(入居)한 사람이 도망하면 으레 원래 살던 곳에 살고 있는 일족이나 절린(切隣)을 형추하여 도망간 사람이 현신(現身)하도록 독촉하여도 오히려 숨겨주고 돌려보내는 일이 심히 적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애매하다고 하여 다만 세 차례로만 추문을 한정한다면 숨겨둔 자가 두려워하여 징계되는 일이 없고 도망간 자도 도로 배소(配所)에 다시 들어가지 않으니 이 계책도 거행하지 마소서.
7. 수군(水軍)의 궐호(闕戶)가 보병(步兵)의 배가 넘고 따라서 일족이나 절린들이 해를 받는 것도 더욱 심합니다. 방어가 긴요치 않은 내진(內鎭)을 혁파하고 거기에 소속된 수군은 다른 진에 옮기도록 하는 것이 무방할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평산포(平山浦)는 내지라고는 하나 관방의 긴요에 대해 일찍이 세심하게 헤아리지 않고 단지 수졸(水卒)들이 보고한 것에 의하여 갑자기 혁파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합니다. 이에 대한 계책도 거행하지 마소서.
8. 크게 별시(別試)를 거행할 때 먼 고을에 사는 유생은 향시 합격자만 올려보내어 모든 유생들이 상경하는 폐단을 제거해야 마땅할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조종조(祖宗朝)에 없었던 것이므로 별도로 새로운 예를 만들 필요가 없으니 이 계책도 거행하지 마소서.
9. 진도군(珍島郡)은 땅이 좁고 사람이 적어 세공생도(歲貢生徒)를 감하는 것이 마땅할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다만 한번 그 예가 열리면 기타의 제도(諸道) 각 고을 가운데 인물이 많지 않은 곳에서도 이를 본받아 번거롭게 신청할 것입니다. 그 신청을 사세상 모두 따르기가 어려우니 이것 또한 거행하지 마소서.
10. 진도군 부지산(富之山)은 당초 목장을 혁파하여 둔전(屯田)으로 만들었으니, 이것은 실로 국가의 대계인 것입니다. 따라서 둔전의 소출이 적다 하여 쉽사리 혁파하여 거민(居民)에게 절급(折給)하게 해달라는 계책도 거행하지 마소서.
11. 순천(順天)의 돌산도(突山島) 둔전은 해마다의 소출이 많이는 1천 석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를 부근이 각 고을 거민에게 환상(還上)에 의거하여 절급하는데, 길이 멀어 수송이 곤란하여 으레 모두가 베[布]를 사가지고 왔다가, 자기 곡물로 충납(充納)하므로 폐가 적지 않습니다. 가까이에 있는 경상도 진주(晉州) 등 고을에 사는 거민에게 적당히 헤아려 옮겨다 환상에 의거하여 분급(分給)하게 한다면 편의할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허다한 곡물을 억지로 타도의 다른 고을 백성에게 지급한다면, 수납(授納)할 때에 폐가 적지 않을 것이고 백성들도 심히 고통스럽게 여길 것이니, 이 계책도 거행하지 마소서.
12. 각도에 헐고 부서져 쓸모없는 병선(兵船)을 강제로 팔지 말고, 각 목장에 있는 전답은 대대로 경작하고 있는 자에게 허급(許給)하고, 진도의 지력산(智歷山) 전답을 돌려주는 것이 옳은지 여부는 호조로 하여금 마련하여 시행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 의논에 대해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5책 88권 60장 B면【국편영인본】 18책 224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군사-병참(兵站) / 군사-군역(軍役) / 군사-군기(軍器) / 호구-이동(移動) / 교통-수운(水運)
○領議政尹殷輔等, 與吏、兵曹堂上同議以啓 【因全羅道觀察使金正國陳弊啓本。】 "其一曰, 步兵番價, 該曹酌定已久, 代立者猶不畏法, 數多濫徵, 貧殘軍士, 不勝其苦, 日就流亡, 果如觀察使所啓。 令所在官, 境內步兵番價, 依數收合, 踏印監封, 番上步兵中, 有幹可信, 責付上送兵曹, 分送各處, 而各處官員等考驗, 封署分給, 俾無濫受之弊。 但營繕諸處分定者, 則力役之苦, 倍蓰於他, 只以酌定之數, 勢難支役。 令工曹及繕工監提調, 另加檢擧, 各其役事, 務要寬歇, 毋令不堪。 監役官等, 如前不謹役事, 以致代立者, 不肯許代, 則監役官重論。 其二曰, 當初各鎭堡, 木弓備儲者, 以弓力, 於冬夏果無增減, 故逐年造作, 但年久破毁, 歲勤修補, 弊及軍卒, 亦如觀察使所啓。 自今毋更造作, 其儲木弓, 酌爲定數, 隨毁隨補, 其歲久無用者, 分給貧卒。 其三曰, 全羅道右水使柳泓啓本, 據營屬操舟緊要各人, 眼同敬差官, 量數磨鍊, 許令仍居。 但濟州亦是孤島, 案付正軍及鄕吏, 不令刷還, 似爲未便。 令兵曹案付與否相考, 勒還元籍。 其四曰, 咸鏡 吉州以北各邑, 一樣失稔, 在所賑恤, 以時遺在穀數, 猶可救活, 邊鎭兵食, 不可傾儲以給。 移粟之擧, 所不得已, 但南官穀食, 倒廩移轉, 如或猝遇北道邊警, 則遠道之穀, 勢難卒致, 難以補窘。 依觀察使所啓, 端川以南穀物, 待春和斟酌多少, 隨宜漕運, 以充其數, 又量移江原、慶尙等道邊郡之穀, 次次充補似當。 其五曰, 牧場遺失之馬, 非專由牧子盜出, 容有見偸於水賊, 亦或墮崖自斃, 不無曖昧。 然不徵馬價, 則不知所戒, 場內良駒, 數多賣與於人。 猥濫之弊, 終不可防, 此條勿擧行。 其六曰, 兩界入居各人在逃, 則例於元居處, 一族及切隣, 刑推督現, 猶且掩匿, 勒還者甚寡。 今若論以曖昧, 只限三次, 則許接者無所懲懼, 在逃者亦無還入配所。 此策亦勿擧行。 其七曰, 水軍闕戶, 果倍步兵, 一族切隣, 受病益甚。 防禦不緊內鎭革罷, 其所屬水軍, 移定他鎭, 似爲無妨。 但平山浦, 雖云內地, 關防緊歇, 不曾審度, 秪據水卒所告, 遽卽革廢未穩。 此策亦勿擧行。 其八曰, 大擧別試時, 遠邑儒生, 卿試上送, 以除衆儒間關上京之弊, 似爲便當, 但此祖宗朝所無, 不必別生新例, 此策亦勿擧行。 其九曰, 珍島郡地窄人少, 歲貢生徒, 減除似當, 但一開其例, 他餘諸道各邑人物不敷處, 效此紛紜申請, 勢難盡從。 此策亦勿擧行。 其十曰, 珍島郡 富之山, 當初革牧場, 建置屯田, 實是國家大計。 不可以所出數少, 容易革罷, 居民折給, 此策亦勿擧行。 其十一曰, 順天 突山屯田, 每歲所出, 多至千石, 附近各邑居民, 以還上據給, 路遠難輸, 例皆貿布齎來, 以其己穀充納, 弊果不貲。 隣近慶尙道 晋州等官居民, 量移分給於所在官, 以還上充償, 似爲便當, 但許多穀物, 勒給他道, 他官之民, 授納之際, 弊必不貲, 民甚苦之。 此策亦勿擧行。 其十二曰, 以各道朽破無用兵船, 勿令勒賣, 各牧場內田畓, 連代執耕者還許, 珍島 智歷山田畓還給便否, 令戶曹磨(諫)〔鍊〕 施行何如?" 傳曰: "知道。"
- 【태백산사고본】 45책 88권 60장 B면【국편영인본】 18책 224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군사-병참(兵站) / 군사-군역(軍役) / 군사-군기(軍器) / 호구-이동(移動) / 교통-수운(水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