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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87권, 중종 33년 7월 29일 경자 2번째기사 1538년 명 가정(嘉靖) 17년

요사이 지나친 저택은 법에 따라 헐어서 뒷날의 폐단을 막으라고 전교하다

전교하였다.

"왕자녀의 저택이 제도에 벗어난 것을 적간하였는데, 덕흥군(德興君)의 집은 50칸이므로 법전에 많이 벗어나지 않았으나 정신 옹주(靜愼翁主)의 집은 8칸, 숙정 옹주(淑靜翁主)의 집은 11칸이 각각 법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장무소(掌務所) 2칸과 마구 5칸은 왕자녀 집의 원도형에는 없지만 으레 다 있는 것이다. 이것을 제하고 따진다면 정신 옹주의 집은 3칸, 숙정 옹주의 집은 6칸이 제도에 벗어난다. 이것은 헐라. 적간은 공조가 하였으나 허는 일은 오부(五部)의 관원이 감독하게 하되, 서부(西部)와 중부(中部)에 있는 저택은 반드시 2부의 관원이 감독하게 하라. 그리고 헐어 버릴 때에는 각 집의 종들에게 미리 이르라."

사신은 논한다. 대간이, 유망(流亡)이 잇따르고 군사의 수효가 감소되는 것은 다 왕자녀의 저택이 제도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라고 논하였다. 이것이 어찌 6칸이나 3칸이 법제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말한 것이겠는가. 웅장한 집과 높은 담장으로 토목 공사의 사치를 극도로 부리건만 6칸이나 3칸 정도를 허는 것에 애를 쓴다. 겉으로는 간언을 따르는 척 하면서 실지로는 따르지 아니하니, 이것이 백성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미치지 않는 이유이다. 조종(祖宗) 때에는 왕자녀의 저택이 사대부(士大夫) 집의 제도하고 다름이 없었는데 성종 때에 비로소 터전을 넓게 잡고 집을 웅장하게 짓게 하여 그 유폐가 궁궐과 비슷하게 짓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것이 성종의 성덕(聖德)과 이모(貽謀)132) 에 누가 되었다.


  • 【태백산사고본】 44책 87권 64장 A면【국편영인본】 18책 194면
  • 【분류】
    주생활-가옥(家屋) / 왕실-종친(宗親) / 사법-법제(法制)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역사-사학(史學)

  • [註 132]
    이모(貽謀) : 조상이 남긴 교훈.

○傳曰: "王子女第宅過制摘奸, 則德興君家五十間, 不違法典矣。 但靜愼翁主家, 則八間, 淑靜翁主家十一間, 違法, 然掌務所二間及馬廐五間, 則王子女家舍圖形之外, 例皆有之。 除此而計之, 則靜愼翁主家三間, 淑靜翁主家六間, 爲過制。 此則當撤毁矣。 摘奸則工曹所爲也, 撤毁則其令五部官員監之。 第宅在於西部、中部, 此必兩部官員爲之, 然撤毁時, 預言于各宅奴子。"

【史臣曰: "臺諫所論, 流亡相繼, 軍額減耗, 由於王子女第宅過制者, 豈六間二間之過制而然也? 峻宇高墻, 窮極土木之侈靡, 屑屑於六間三間之撤毁, 外若從諫, 而內實不從, 此所以實惠之不及於民也。 夫自祖宗朝, 王子女第宅, 與士大夫家舍, 無異制, 成宗朝, 始大其基, 而壯其構。 其流之弊, 將至於侔擬宮闕。 此成宗聖德之累, 而貽謀之失矣。"】

中宗恭僖徽文昭武欽仁誠孝大王實錄卷之八十七


  • 【태백산사고본】 44책 87권 64장 A면【국편영인본】 18책 194면
  • 【분류】
    주생활-가옥(家屋) / 왕실-종친(宗親) / 사법-법제(法制)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