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광필·홍언필·김극성·성세창 등이 종묘의 재변과 홍제원의 재변을 의논드리다
상이 종묘에 친제하고 동틀녘에 환궁하였다. 선정전(宣政殿) 처마밑에 나아가 상이 이르기를,
"저번 종묘 뜨락의 소나무에 벼락이 떨어졌으나 그래도 태묘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번에는 태묘와 매우 가까운 곳에 벼락이 떨어졌으니, 하늘이 보여준 재변이 심상치 않다."
하니,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정광필(鄭光弼)이 아뢰기를,
"대저 재변은 헛되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찌 응하는 바가 없이 그러하겠습니까. 신이 오랫동안 밖에 있다가 조정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조정의 잘잘못에 대해 아는 것이 없고, 또 미처 벗들 사이에 들은 것도 없습니다. 다만 밖에서 들으니 지난번 사람들 【삼흉(三凶)을 가리킴.】 이 일을 논할 적에 조금이라도 말썽이 있어 마음에 맞지 않으면, 조정을 뒤흔드느니 국시를 뒤흔드느니 하여 대간은 오로지 공격에만 전력하였다고 합니다. 이와 같았다면 국시가 어찌 한시라도 안정된 때가 있었겠습니까. 초야(草野)사람의 말이더라도 쓸 수 있으면 쓰고 쓸 수 없으면 쓰지 말면 그만인데도 이처럼 함정을 설치하여 기필코 해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마침내 위는 귀가 먹고 아래는 입이 막혀 조정 안에 감히 발언할 자가 없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에 어찌 이와 같은 일이 있겠습니까. 생각이 있는 자는 숨김없이 다 말하게 하고 합당하지 않은 말이 있더라도 견책하지 않아야 되겠습니다.
그리고 백성의 고통이 지금보다 더 심한 때는 없었습니다. 어찌 일일이 다 아뢸 수 있겠습니까마는, 수십년 이래 민생의 고통이 이미 심해진데다 근래의 5∼6년 사이에 극도에 이르렀기 때문에 백성들이 생업을 잃어서 농사에 종사하는 자가 적습니다. 또 서울과 외방 관원들의 자봉(自奉)이 너무 지나쳐 검소함을 숭상하지 않기 때문에 폐단이 더욱 많습니다. 이밖에 따로 깊은 뜻이 있는 문제는 신이 아직 모릅니다."
하고, 좌의정 홍언필은 아뢰기를,
"지난 역사를 상고하여 보니, 동진(東晉) 안제(安帝) 때에 태묘의 망새에 벼락이 떨어졌는데, 사신(史臣)이 제사를 제대로 지내지 않아서 이러한 하늘의 꾸지람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망새뿐만 아니라 기둥까지 벼락맞아 꺾여졌습니다. 당 헌종(唐憲宗)의 원화(元和) 연간과 목종(穆宗) 때에 또 태묘의 망새에 벼락이 떨어지고, 개희(開禧)123) 3년124) 에도 망새에 벼락이 떨어졌는데, 다 태묘를 범하였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공신당의 배위(配位)가 있는 곳에 떨어진 것과는 다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됩니다.
요사이 간인(奸人)이 제거되고서 노성한 사람들이 조정에 돌아왔고 진실로 쓸만한 사람이 있으면 위에서 발탁하여 쓰므로, 뭇사람의 뜻에 맞지 않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성종께서는 사람을 알아보는 데 밝아서 훌륭한가의 여부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 4품 이상 관원을 쓴 적이 없었습니다. 오늘날 시종(侍從)과 대간(臺諫)의 대열에 있는 신하 가운데 상께서 모르는 자가 누구이겠습니까. 다만 근래 파직된 자가 너무 많고 대간이 남의 과실을 논박함에도 반드시 먼저 파직시키고 나서 추고할 것을 아뢰니, 이 폐단은 고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오래된 사람도 긴요하지 아니한 일로 파직당하는 자가 있으니, 반드시 먼저 이 폐단을 제거하여 인후한 기풍을 연 뒤에야 훌륭한 사람이 많아서 국세(國勢)가 튼튼하여질 것입니다."
하고, 우의정 김극성은 아뢰기를,
"하늘에 응하는 데 성실로써 한다면 재변이 저절로 없어지거니와 성실로 하지 아니하고 한갓 겉치레로만 한다면 좋은 말을 하기로서니 무슨 보탬이 되겠습니까. 옛날 송 경공(宋景公)은 자신을 죄책하는 말을 하자, 형혹성(熒惑星)이 3사(舍)를 물러났습니다. 이것으로 본다면 선(善)은 반드시 징험이 있는데 악(惡)이라고 어찌 응함이 없겠습니까. 근래 상께서 백성을 돌보는 깊은 생각을 두어 여러 차례 출척(黜陟)의 명을 내렸으나 아래에서 받들어 행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백성의 고통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백성의 고혈(膏血)을 빨아다 좌우의 사람을 잘 섬기는 자는 사람들이 다 기리고, 자애와 정성을 다해 꾸밈없이 성의껏 하는 자는 도리어 헐뜯으니, 백성의 고통스러운 상황은 지난날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재변이 어찌 까닭없이 발생하였겠습니까."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출척은 엄격하고 분명하여야 될 것이나 관찰사가 전혀 삼가 살피지 않기 때문에 수령들도 백성을 보살피지 않는다. 그저께 대간의 아룀에 의하여 각도의 관찰사를 추고하라고 벌써 명하였다."
하니, 우참찬 성세창이 아뢰기를,
"옛말에, 재변이 많으면 그 나라는 번창하고 상서가 많으면 그 나라는 쇠망한다고 하였습니다. 대개 재변이 많으면 나라가 번창할 수 없음에도 도리어 번창한다 하고 상서가 많으면 나라가 반드시 쇠망하지 아니함에도 도리어 쇠망한다고 한 것은, 전대의 임금들이 반드시 재변이 많음으로써 두려워하고 깊이 생각하기 때문에 이내 나라가 번창하고, 상서가 많음으로써 소홀히 하고 교만을 피우기 때문에 반드시 쇠망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예부터 훌륭한 정치를 하는 임금은 반드시 훌륭한 사람을 얻어 그 정치를 돕도록 하기 때문에 잘 이루어지지 않는 일이 없습니다. 위에서 성심으로 믿고 맡기지 않고 아래에서 성의를 다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훌륭한 정치를 이룰 수 있겠습니까.
또 옛말에 ‘중화(中和)를 이루면 하늘과 땅이 잘 조화되고 만물이 제대로 발육된다. 또 중이란 천하의 대본(大本)이요 화란 천하의 달도(達道)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선비들의 상담(常談)이기는 하나, 임금이 재변을 없애는데는 중화를 버리고 다른 방도를 찾을 수는 없습니다. 진실로 어쩌다 중화의 도를 이루지 못하면 인심이 화합하지 못하고 인심이 화합하지 못하면 저절로 괴란(乖亂)이 이르러 재변이 그림자나 메아리처럼 일어날 것입니다.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중화의 설이 오활한 것 같기는 하나 재변을 구제하는 요점도 실로 이것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제 지난날의 폐습을 깨끗이 씻었다고는 하나 형옥(刑獄)을 다스리는 중에 어찌 억울한 일이 없었겠습니까. 지금은 경시(更始)의 초기이니 먼저 언로(言路)를 넓히고 잘못된 말이 있더라도 꾸짖지 말아서 뜻을 품은 자로 하여금 다 말할 수 있게 하며, 또 하찮은 일은 하지 않아야 국맥(國脈)을 끝없이 부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이 이렇게 아뢰는 것은 재변만을 염려해서가 아닙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언로가 막히고 열림은 마치 사람의 기혈(氣血)과 같아서 언로가 트이면 아래의 실정이 상달될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예조 판서 김안국(金安國)이 아뢰기를,
"임금이 좋은 말 듣기를 즐길 것 같으면 정사의 잘잘못과 민생의 고락에 대하여 듣지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오늘날 폐단 가운데 가장 큰 것이 토목 공사입니다. 왕자의 집들이 너무 크고 사치스럽기 때문에 백성들은 목재를 운반하기에 괴롭고 수군(水軍)은 영선(營繕)에 지쳐 있으니, 이같은 일이 어찌 있을 수 있겠습니까. 집이 크면 처음에는 편리하다 해도 후세에 자손된 자가 사치하거나 능력이 없으면 보존할 수 있는 자가 드물 것입니다. 복록(福祿)이 분수에 넘치면 반드시 패망하는 것입니다. 그 제도를 알맞게 하여 짓도록 한다면 자손들이 보존도 할 수 있고 폐단도 없을 것입니다. 옛말에, 나무의 재앙[木妖]이란 말이 있습니다. 오늘날 집의 웅장하고 사치스러움은 왕자·부마뿐만 아니라, 아래로 사대부와 서민의 집까지도 그러합니다. 반드시 이 폐단을 제거하여야 백성이 쉴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말은 상께서 잊지 마시고 즐겨 들으셔야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간각(間閣) 재목의 척수에 대한 규정을 고쳐 알맞게 하라고 벌써 명하였다. 내가 웅장하고 사치스럽게 짓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하였다. 정광필이 아뢰기를,
"영선할 적에 예사로 옛집을 헐고 다시 짓기 때문에 백성이 받는 피해가 갑절이나 심합니다."
하고, 판윤 이기(李芑)는 아뢰기를,
"어제 홍제원(弘濟院)에도 큰 바람의 재변이 있어 마루가 울려 밀려났습니다. 바람이 워낙 강하여 사람과 말이 다니지 못하고 더러는 다리 밑에 떨어지기도 하였다니, 이것도 크나큰 재변입니다."
하고, 김안국은 아뢰었다.
"지금 종묘의 재변이 있었기 때문에 홍제원의 재변을 가볍게 여기나 신이 관상감 관원에게 가보도록 하였더니, 지붕 위의 기와 한가운데가 부러져 쌓여 있고 폭풍이 거세게 몰아쳐 상당히 오래된 나무가 뿌리째 뽑혔다 합니다. 하늘의 뜻은 헤아리기 어려운 바 이것도 비상한 재변입니다."
- 【태백산사고본】 44책 87권 51장 A면【국편영인본】 18책 187면
- 【분류】왕실-종사(宗社) / 왕실-의식(儀式) / 정론-정론(政論) / 역사-고사(故事) / 과학-천기(天氣)
○甲子/上親祭于宗廟, 昧爽還宮, 御宣政殿簷下。 上曰: "前者震廟庭松木, 然距太廟尙遠, 今則震於切近之地, 天之示變大矣。" 領中樞府事鄭光弼曰: "大抵災不虛生, 豈無所應而然也? 臣久在於外, 還朝未久, 其於朝政得失, 無有所知, 亦未及聞於朋友之間。 但在外聞之, 彼時之人, 【指三兇。】 議事之時, 少有言端, 不協於心, 則或云搖動朝廷, 或云搖動國是, 臺諫專務攻擊。 若是, 則國是安有一定之時乎? 雖草萊之言, 可用則用之, 不可用則只可勿用, 而設此機陷, 期欲致害, 故終至於上聾下塞, 朝廷之間, 無敢發言者。 今安有如此之事乎? 宜使有懷者, 盡言無隱, 而雖不合, 亦不譴罪可也。 且民瘼之苦, 無甚於此時, 安可縷縷盡啓乎? 自數十年來, 民生困瘁已甚, 而五六年間尤極, 故民失其業, 服事耕耘者少矣。 且京外官員, 自奉太過, 不尙儉約, 故弊端甚多。 如此之外, 又別有深意者, 則臣未之知也。" 左議政洪彦弼曰: "考之前史, 則東晋 安帝時, 震大廟鴟尾, 史臣以爲, 蒸嘗不數, 有此天譴。 非徒鴟尾也, 至震柱木折破之。 憲宗 元和間及穆宗時, 又震大廟鴟尾, 開禧五年, 亦震鴟吻。 此則皆犯於大廟, 與今功臣堂配位處所震, 異矣。 然不可以此而忽之也。 近來奸人已除, 老成還朝, 苟有可用之人, 則自上擢用者, 無不協於(牧)〔物〕 情者矣。 成廟明於知人, 四品以上官賢否, 無不的知而用之。 當今在侍從、臺諫之列者, 自上孰不知之? 但近來罷職者甚多。 臺諫之論人所失, 必以先罷後推啓之。 此弊不可不革。 久遠之人, 亦以不緊之事, 有至於見罷者。 必須先除此弊, 以開仁厚之風, 然後賢人多, 而國勢固矣。" 右議政金克成曰: "應天以實, 則災異自無。 若不以實, 而徒以文具, 則雖有好言, 何益之有! 昔宋 景公, 有罪己之言, 熒惑退舍。 以此見之, 善必有徵, 惡豈無應? 近來自上軫念恤民, 屢下陞黜之命, 而下不奉行, 故民之疾苦則猶甚矣。 剝民膏血, 能事左右者, 人皆譽之, 慈祥愷悌, 悃愊無華者, 反遭毁謗。 百姓艱苦之狀, 無異於彼時矣。 災變之生, 豈無所召而然耶?" 上曰: "黜陟所當嚴明, 而監司專不謹察, 故守令尤不恤民矣。 頃因諫官之啓, 各道監司, 已令推之矣。" 右參贊成世昌曰: "古云: ‘災多者, 其國昌; 祥多者, 其國衰。’ 蓋災多則國不可昌, 而反爲昌, 祥多則國未必衰, 而反至於衰者, 前代人君, 必以災多爲懼而克念, 故國乃昌; 以祥多爲忽而驕逸, 故衰亡必至也。 自古善治之主, 必得賢者, 以助成其治, 故事無不濟矣。 若上不信任, 下不盡誠, 則其何以致治哉? 古云: ‘致中和, 天地位焉, 萬物育焉。 中者, 天下之大本; 和者, 天下之達道。’ 此雖儒者常談, 然人君消災之道, 捨中和而不可他求也。 苟或不致中和之道, 則人心不和, 人心不和, 則自至於乖拂, 而災異之出, 如影響焉。 豈不可懼哉? 中和之說, 雖似迂遠, 然救災之要, 實不外此。 今雖蕩滌舊弊, 然於刑獄之間, 豈無冤抑者乎? 今當更始之初, 先廣言路, 勿以失言爲訶責, 而使有懷者, 皆得盡言, 又不爲細瑣之事, 可以扶持國脈於無窮矣。 臣之此啓, 非但爲災異而啓之也。" 上曰: "言路通塞, 如人之血氣, 言路通, 則下情得達矣。" 禮曹判書金安國曰: "人君若樂聞善言, 則朝政得失, 民生休戚, 無不得聞矣。 當今弊中之大者, 土木之役也。 王子第宅, 過爲宏侈, 故百姓苦於輸木, 水軍則困於營繕。 安有如此之事乎? 大抵第宅之大, 其初雖以爲便, 若至後世, 爲子爲孫者, 或侈泰、或殘迷, 則能保者鮮矣。 凡福祿, 踰分則必敗矣。 若適中其制而造之, 則子孫亦可以保守而無弊矣。 古云: ‘木妖。’ 今時第宅之宏侈, 非但王子駙馬也。 下至士大夫民庶之家, 亦然。 必除此弊, 然後民得休息矣。 如此之言, 自上不忘而樂聞可也。" 上曰: "間閣材木尺數, 已令改規, 使之適中矣。 予非欲其宏侈也。" 光弼曰: "營繕之時, 例撤舊家而改造, 故民之受弊倍甚。" 判尹李芑曰: "昨日弘濟院, 亦有大風之變, 抹樓動退, 風勢甚猛, 故人馬不得行, 或墜落於橋下云。 此亦變之大者也。" 安國曰: "今有廟庭之變, 故以弘濟院之災, 爲輕也。 臣令觀象監官員往見, 則屋上之瓦, 中折積置, 暴風猛吹, 久遠之木, 盡拔其根云。 天意難測, 此亦非常之災也。"
- 【태백산사고본】 44책 87권 51장 A면【국편영인본】 18책 187면
- 【분류】왕실-종사(宗社) / 왕실-의식(儀式) / 정론-정론(政論) / 역사-고사(故事) / 과학-천기(天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