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연이 권간들의 권세와 간적의 무리를 더 살필 것을 아뢰다
사헌부 대사헌 양연(梁淵) 등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은 이러하였다.
"우리 주상 전하께서는 어려운 때를 당하여 태평한 국운을 여시고 부지런히 다스리신 지 32년이 되었습니다. 통치하는 성과가 뚜렷이 나타나기도 전에 재난이 잇달아 일어났으니, 난이 극도에 달하였을 때 다스렸지만 난망(亂亡)의 기미가 복철(覆轍)한 뒤에도 생겨나며, 간당(奸黨)이 결성되었을 때 깨끗이 물리쳤으되, 간사한 자취가 그들을 몰아낸 그날로 또 뒤따랐습니다. 그리하여 인심이 비꼬이고 대세가 이미 기울어져서 삼흉(三凶)이 권세를 마음대로 하던 때에 이르러서는 종사의 위태로움이 아슬아슬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 조종(祖宗)의 신령이 돕고 성상의 슬기로운 판단에 힘입어 많은 간인(奸人)이 복죄(伏罪)하고 조정이 다시 편안해졌습니다. 이는 바로 옛것을 변혁시켜 새롭게 하며 술렁이는 인심을 진정시켜 화평을 이룰 때인 것입니다. 그런데 간인을 처벌하라는 명을 내리자마자 곧 조침(趙琛)을 벼슬하도록 하시고 이환(李芄)을 또 서용하게 하시어 현명한 자와 간사한 자가 섞여서 사진하게 되는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심지어 홍여(洪礪)의 악함은 천지에 용납되지 못할 것이고 귀신과 사람이 함께 분하게 여기는 바인데도 오히려 한 사람의 완동(頑童)531) 을 위하여 당연히 묻지 않아야 할 것을 물으셨으니, 어찌 그를 변호하시는 마음이 그를 너무 총애하는 사정(私情)에서 일어나 뭇사람의 의심이 가까스로 진정된 때에 다시 저해하는 결과를 부르는 일이 없다고 하겠습니까. 그래서 이미 결단한 죄와 이미 결정된 의논을 다시 분간할 수 없는 지경에다 두고서 여러 사람의 마음을 의혹하게 만드니, 그것이 어찌 뭇사람의 뜻을 진정시키며 여러 사람의 마음을 화합하게 하는 것이겠습니까.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다시 더 살피소서.
지난번 권간들이 권세를 부릴 때에 전하께서 호오(好惡)의 기준을 심정(沈貞)과 이항(李沆)의 간사함에 잃어 버리셔서 끝내 죽이고 귀양보내는 결과를 면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런 경우는 그 당시에도 살피고 뉘우쳐야 했을 것인데, 오히려 염려하거나 살피지 아니하여 다시 삼흉의 무리에게 실수하여 오늘날의 화를 이루게 되었으니 이것이 신들이 먼 장래를 염려하고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서 전하를 위하여 근심하는 것은 ‘태평한 세상에도 근심이 없을 수 없으며, 영명(英明)한 임금이라고 믿을 수 없는 법인데 더구나 임금의 좋아하고 미워하는 것이 한 번 위에서 나타나면 백성들이 아래에서 붙좇는 것은 그림자나 메아리보다 더 빠르므로 간사하고 정직한 자의 진퇴(進退)와 국가의 안위(安危)가 모두 여기에서 결정되는 것이니, 어찌 자세히 살피고 신중하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다시 더 살피소서.
대체로 옛날에는 내부의 말은 문지방 밖에 나가지 아니하며 외부의 말은 문지방 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였는데, 그것은 안팎을 엄격하게 하여 간알(干謁)532) 을 막으려는 것입니다. 대저 궁실(宮室)이 엄숙하고 안팎이 단절된 다음에 가정의 도리가 올바를 수 있고 나라의 정치가 다스려질 수 있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래로 집안의 도리를 바로 잡으셔서 거의 관저(關雎)533) 의 아름다움과 짝할 만한데, 요즈음 여종[女奴]으로 궁중에 드나드는 자는 문안한다고 칭탁하고 있으며 간사한 자로서 틈을 엿보는 자는 사돈간에 연줄을 놓아 궁안의 말이 더러는 외간에 미치니, 외부의 말이 궁안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관 말직을 제수하는 것까지 모두 임금에게서 나오는 것인데, 정비(政批)534) 가 내리면 더러 그것을 의심하는 자가 말하기를 ‘아무개는 누구를 통해서 이 벼슬을 얻었고 아무개는 누구를 통해서 이 직임을 받았다.’ 하면서 그 길을 찾아 자취를 본뜨는 자가 많습니다. 큰 안건으로서 해당 관원이 마음대로 하기 어려운 것과 조정의 의논으로 결단하기 어려운 문제에 있어서는 그야 임금의 마음에서 결재가 나오겠지만, 한 것의 미미한 일이나 한 개인의 소원 같은 것을 연곡(輦轂)의 아래에서 이루고자 하는 자도 반드시 먼저 자랑하기를 ‘나의 일이 이루어질 것이며 나의 소원이 이루어질 것이다.’ 하는데, 그 결과를 보면 그가 자랑한 말과 들어 맞습니다. 이는 모두 안팎이 엄격하지 않은 것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의 의심을 일으키는 원인인 것입니다. 간적(奸賊)의 무리로서 몰래 천심(淺深)을 엿보며 안팎으로 근거를 굳게 잡은 자는 모두 이 길을 통하여 가만히 그 화를 빚어내고 있으니 이는 참으로 요즈음의 큰 걱정거리이며 전하께서 경험하셨던 일입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다시 더 살피소서.
대체로 사람의 마음은 누구나 처음에는 조심하다가 나중에는 게을러지는 법입니다. 이러므로 비록 그 처음은 있으나 끝마무리를 잘하기는 드물다고 한 것은 예나 지금의 공통된 근심입니다. 전하의 뜻이 처음에는 조심하셨으나, 중간에는 조금 소홀히 하셔서 지난번의 화를 부른 것입니다. 지금은 간인들을 깨끗이 쓸어 없애서 마치 처음 즉위하실 당시와 같습니다. 지금부터 경계하시어 혹시 조금이라도 게을리 마소서. 남들이 보지 않는 사이에도 두려워하고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삼가하며, 성찰(省察)하는 공부와 신독(愼獨)하는 정성이 나날이 새로워져서 중단함이 없도록 하며 정일(精一)한 공부를 마음의 은미한 곳에서 이루는 것으로 요긴함을 삼는다면, 마음이 이미 올바르게 되어 의지가 저절로 안정될 것입니다. 이것으로 호오(好惡)하여 호오가 올바르게 되고 이것으로 궁중을 통솔하여 궁중이 엄숙해지면 가는 곳마다 올바르게 되지 않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드나듦에 일정함이 없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며 처음에 조심하다가 나중에는 태만한 것은 사람의 상정(常情)이고 보면 태만하고 소홀한 생각이 마음 속에 싹트지 않아 나중에까지 그 처음 자세를 보전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점이 신들이 전하를 위하여 근심하는 것입니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다시 더 살피소서."
답하였다.
"지금 상소의 조목을 보니 매우 절실하고 타당하다. 내 마땅히 경계하고 반성하겠다. 훌륭하지 못한 자질로 외람되이 대통을 이어받은 지 30여 년이 되었는데, 다스린 성과는 나타나지 않고 화란이 서로 잇달아 조정이 안정되지 못하니 이것은 모두 내가 덕이 없기 때문이다. 어찌 부끄럽지 않겠는가. 경들의 말이 매우 절실하고 타당하니 내가 다시 더 유념하고 살피면 아마 앞으로는 미칠 수 있을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44책 86권 42장 A면【국편영인본】 18책 145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 사법-치안(治安) / 왕실-비빈(妃嬪) / 왕실-궁관(宮官)
- [註 531]완동(頑童) : 의리를 모르는 완악한 아이.
- [註 532]
○司憲府大司憲梁淵等上疏。 其略曰:
惟我主上殿下, 乘剝否之會, 開亨泰之運, 孜孜爲治者, 三十有二年, 治效之著未見, 而禍亂之作相尋。 治之於爲亂之旣極, 而亂亡之萌, 反尋於覆轍之後; 斥之於奸黨之已成, 而奸邪之迹, 復接竄逐之日。 人心乖角, 大勢旣傾, 至於三兇用事之日, 宗社之危, 岌岌殆哉! 幸賴祖宗之默佑, 聖上之明斷, 巨奸伏罪, 朝廷再安。 此正革舊惟新, 鎭安和平之日也, 而誅奸之命纔下, 遽進趙琛, 復敍李芄, 以啓賢邪混進之路。 至於洪礪之惡, 天地所不容, 神人所共憤, 而尙且爲一頑童, 問不當問, 能無起疑回之意於偏繫之私, 以招群情之疑阻於鎭定之時, 使已斷之罪, 已定之論, 復置疑似之地, 以貽群情之(或)〔惑〕 , 其何能鎭衆情, 而和群心哉? 伏願殿下, 更加省念焉。 頃在權奸之用事, 殿下之好惡, 偏失於貞、沆之奸, 終未免誅竄之擧。 此其時可以省悔, 而猶不之省念焉, 審察焉, 復失於三兇之黨, 而以致今日之禍。 此臣等長慮却顧, 爲殿下憂之曰: "治世不可爲無憂, 明主亦不爲恃也。" 況君之好惡, 一形於上, 民之趨向於下者, 捷於影響, 邪正之進退, 國家之安危, 莫不於玆決焉。 其可不審察而愼重之乎? 伏願殿下, 更加省念焉。 蓋古者, 內言不出梱, 外言不入梱, 所以嚴外而杜干謁也。 夫宮壼嚴肅, 內外隔絶, 然後家道得以正, 而國政得以理矣。 殿下卽位以來, 正家之道, 庶幾匹休於關雎之美, 而近日女奴之出入宮庭者, 托爲問安, 奸侫之窺覘陰隙者, 連於姻婭, 梱內之言, 或及於外間, 則外言之不入於內, 亦未可知也。 且其微官細職之除拜, 皆出於宸衷, 而及其政批之下, 或有疑之者曰: "某也何緣而得此官, 某也何因而受此職也", 尋求其路, 而擬迹者多矣。 至於該官之所難擅, 廷論之所難斷者, 則宜有裁於宸衷, 若以一事之微, 一人之願, 欲伸於輦轂之下者, 必先誇之曰: "吾事可成, 吾願可遂。" 及其事成, 與其所誇而符焉。 此皆由於內外之不嚴, 而起群下之疑也。 奸賊之徒, 潛窺淺深, 盤據內外者, 皆由此路, 而陰釀其禍。 此誠近日之所大患也, 殿下之所備嘗也。 伏願殿下, 更加省念焉。 大抵人情, 莫不謹於始, 而怠於終。 是以, 雖有其初, 鮮克有終者, 古今之通患也。 殿下之意, 能謹於初, 而少忽於中, 以致頃日之禍。 在今日, 痛掃群奸, 作一初服也。 戒自今, 毋或少怠, 恐懼乎不覩之際, 戒愼乎屋漏之中, 省察之功, 謹獨之誠, 日新而無間, 致其精一之功於心上之微者, 爲之要也, 則心旣爲之正, 而志自有定矣。 以之好惡, 而好惡得其正, 以之御宮闈, 而宮闈, 得其嚴, 無所往而不得其正矣。 然其出入無常者, 人之心, 而始謹終怠者, 人之情, 則安知怠忽之念, 不萌于中, 而不能保其初於厥終乎? 此臣等爲殿下憂之者也。 伏願殿下, 更加省念焉。
答曰: "今觀上疏條列, 至爲切當, 予當警省焉。 予以不穀, 叨承丕緖, 三十餘年, 未見治效, 禍亂相繼, 朝廷不靜, 皆以予否德之所致, 豈不愧哉? 卿等之言, 尤爲切當。 予更加留省, 庶追將來。"
- 【태백산사고본】 44책 86권 42장 A면【국편영인본】 18책 145면
- 【분류】정론-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 사법-치안(治安) / 왕실-비빈(妃嬪) / 왕실-궁관(宮官)
- [註 5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