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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85권, 중종 32년 8월 15일 신유 1번째기사 1537년 명 가정(嘉靖) 16년

대간이 이희보의 일을 아뢰어 대신들과 논한 후 가자를 개정·추고하도록 하다. 헌부가 이만손의 체직을 아뢰다

대간이 아뢰기를,

"대사성 이희보(李希輔)는, 전일에 상이 학교를 순행할 때 ‘친림반궁전(親臨泮宮箋)’이라 출제(出製)하고 사사로이 유생을 접견하였으며 독권관(讀券官)437) 이 되어서는 또 자신이 제목을 내었으니 친시할 적에 사사로이 정을 쓴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을 차마 하였으니 마음 쓰는 것이 지극히 사특합니다. 추고하여 치죄하시고 입격한 유생들은 아울러 개정하게 하소서."

하고, 헌부가 또 아뢰기를,

"광주 목사(光州牧使) 이만손(李萬孫)은 인물이 혼암하고 용렬하며 나이도 많아 노쇠하여 전에 수령이 되었을 때 비루한 일이 많이 있었으므로 다시 백성을 다스리는 직책에 제수해서는 안 됩니다. 속히 체직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이만손의 일은 아뢴 대로 하라. 이희보의 일은 윤허하지 않는다. 다만 전제(箋題)의 일은 지극히 놀랍다. 참으로 이와 같다면 입격한 유생들은 개정하는 것이 마땅하다. 시험 날짜가 이미 박두하였으니 오늘 안으로 삼공과 예조 판서를 불러서 회의하게 한 다음에 대간에게 답해야 한다. 또 이희보를 정원에 명소(命召)하여 그 전제를 시험에 낸 사람이 누구이며 합격한 사람들도 이 제목을 알고 있었는가를 묻고, 또 그 당시 함께 임명된 시관들을 불러 그 제목이 희보가 낸 것인가, 아닌가를 물어 보라는 내용으로 속히 물어서 아뢰라."

하였다. 영의정 김근사, 우의정 윤은보, 예조 판서 심언경 등이 같이 의논하여 아뢰기를,

"지금 간원이 아뢴 것을 보니 지극히 놀랍습니다. 유생을 친시할 때 이희보가 전제(箋題)를 거듭 냈는지 여부는 자세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과거는 중요한 일이라 간원이 지금 그의 외람한 처사를 논집했습니다. 사정을 핵실하는 동안 입격한 유생들은 우선은 시험에 응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하고, 시관 김인손(金麟孫)·권예(權輗)·정백붕(鄭百朋)·정옥형(丁玉亨)·박홍린(朴洪鱗) 등이 아뢰기를,

"친시할 적에는 시험 문제를 반드시 많이 내고 가려서 아뢰어 수점(受點)한 다음에 쓰는 것이 예입니다. 그 날 수점한 전제는 참으로 희보가 낸 것입니다."

하였다. 묻기를 마치고 김인손 등이 잠시 물러나자, 또 이희보를 불러 묻기를,

"전제는 누가 낸 것인가?"

하니, 답하기를,

"출제할 때 상시관(上試官)이 으레 모두 주장해서 합니다. 그러나 신이 대사성의 직임에 제수되었으므로 출제할 수 있느냐고 묻기에, 신이 ‘한나라 군신이 천자가 벽옹에 임해서 노학자에게 인사한 것을 하례하다.[漢朝群臣賀車駕臨雍拜老]’는 제목으로 안을 제시하였습니다. 상시관 소세양(蘇世讓) 등이 좋긴 좋은데 반드시 옛날에 지은 사람이 있을 것이니 다른 제목으로 바꾸어 내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그렇다면 오늘날의 일로 출제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답하였습니다. 상시관 등이 즉시 신이 출제한 것을 고쳐서 ‘태학생 등이 임금이 반궁에 친림한 것을 사례하는 전[太學生等謝車駕親臨泮宮箋]’으로 출제했으니 사실 신이 출제한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이 제목은 ‘사(謝)’이고 신이 낸 것은 ‘하(賀)’입니다. 하와 사는 문장의 체가 크게 다르니 이것이 더욱 사실이 밝혀지는 부분입니다."

하였다. 묻기를 마치고 희보가 잠시 물러났다. 김인손 등을 다시 들어오게 하여 묻기를,

"희보는 ‘내가 낸 제목이 아니다.’ 한다. 이것은 누가 낸 것인가?"

하니, 김인손 등이 모두 탄식하기를,

"전하가 하문하시니 우레 소리가 지척에서 나는 것인데 이 같을 수 있습니까. 희보가 처음에 ‘한조군신하거가임옹배로표’라는 제목으로 낸 안을 직제학 채세영(蔡世英)이 종이에 썼는데 신들이 ‘좋긴 좋은데 반드시 옛날에 지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다시 다른 제목으로 내야 한다.’ 하였습니다. 희보가 또 ‘태학생등하거가친림반궁전’을 냈고 채세영이 또 썼는데, 신들은 다만 ‘하(賀)’자를 ‘사(謝)’자로 고쳤을 뿐입니다. 소세양이 또 ‘예조가 경연에서 《통감찬요》를 진강할 것을 청하는 전[禮曹請於經筵進講通鑑纂要箋]’이라는 제목으로 안을 냈으므로 신들은 희보가 처음에 낸 제목을 버리고, 세양의 제목을 으뜸으로 썼고 다음에 희보가 처음 낸 제목을 써서 서계하였는데, 마침 희보의 제목에 낙점(落點)하였습니다. 지금 채세영도 여기에 와 있습니다. 이는 진정 희보가 낸 것입니다."

하니, 김근사 등에게 전교하기를,

"전제(箋題)를, 희보는 자기가 낸 것이 아니라 하고 동시에 시관이 되었던 재상 5인은 모두 희보가 낸 것이라고 하였다. 재상 5인이 같은 말을 하였으니 희보가 바르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다만 합격한 유생은 직부(直赴)하게 하거나 서책을 내리라는 명이 정해졌으니, 이른바 ‘친시하기 앞서서 사사로이 유생을 접했다.’고 한 것을 물은 다음에 개정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였는데, 김근사 등이 회계하기를,

"희보가 바르지 않은 것은 알 수 있습니다. 유생은 추문할 수 없습니다. 합격한 유생은, 다른 상(賞)이라면 그래도 괜찮지만 전시(殿試)·회시(會試)에 직부하게 하는 것은 안 됩니다."

하였다. 근사 등에게 전교하기를,

"지금 의논한 대로 입격한 유생들을 개정하는 것이 옳다. 허위라고 한다면 비록 서책 등의 물품이라도 상줄 수 없다."

하고, 정원에 전교하기를,

"희보는 하문할 때에도 정직하게 계달하지 않았으니 그 사휼함이 지극하다. 대간이 아뢴 대로 가자를 개정하고 추고해야 한다. 유생을 논상하는 승전을 거행하게 하지 말 일로 다시 승전을 받들라."

하고, 대간이 답하였다.

"희보가 정직하지 않은 것은 알 수 있다. 가자를 개정하고 아뢴 대로 추고해야 한다. 입격한 유생의 일은 아울러 거행하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

사신은 논한다. 희보는 천성이 사특하고 아첨을 잘하며 또 지극히 탐하고 비루하여 사림(士林)에 용납되지 않아서 오래도록 외방에 물리쳐져 있었는데 이때에 와서 김안로에게 빌붙어서 대사성이 되었다가 상이 시학(視學)할 때에 송(頌)을 바쳐 왕을 치켜세우니 상이 즉시 상(賞)으로 2품을 가자하였다. 여러 사람들이 분하여 그를 논박하고 이로 인해 대간이 다시 사악하고 비루한 실수를 논하고 그 직책을 아뢰어 파직시키니 관중(館中) 선비들이 모두 좋아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3책 85권 44장 B면【국편영인본】 18책 95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 인사-선발(選拔)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註 437]
    독권관(讀券官) : 과거를 보일 적에 두었던 임시 관직. 전시(殿試)의 시험관으로 시험을 감독하고 글을 채점하여 우수한 것을 어전(御前)에서 읽었음. 의정(議政) 1인과 종2품 이상의 문관 2명으로 구성하였음.

○辛酉/臺諫啓曰: "大司成李希輔, 前日幸學時, 親臨泮宮箋出製, 私接儒生, 及爲讀券官, 又自出其題。 親試之時, 循私用情, 忍爲如此之事, 用心至爲邪慝。 請推考治罪, 其入格儒生等, 請竝令改正。" 憲府又啓曰: "光州牧使李萬孫, 人物昏庸, 年且衰耗, 前爲守令時, 多有鄙陋之事。 不可復爲莅民之職, 請速遞。" 答曰: "李萬孫事如啓, 李希輔事不允。 但箋題之事, 至爲駭愕。 實爲如是, 則入格儒生, 改正當矣。 試日已迫, 今日內, 招三公及禮曹判書, 使之會議, 然後可答臺諫也。 又李希輔, 命召于政院, 問其箋題出試某儒, 而其中格人等, 亦知此題者乎? 又招其時同任試官等, 問曰, ‘其題希輔之所出耶? 否耶。’ 此意速問以啓。" 領議政金謹思、右議政尹殷輔、禮曹判書沈彦慶等, 同議啓曰: "今觀諫院所啓, 至爲駭愕。 親試儒生時, 李希輔箋題重出與否, 未之詳也, 然科擧重事, 諫院今方論執猥濫。 事情究覈之間, 其入格儒生, 姑勿許試似當。" 試官金麟孫權輗鄭百朋丁玉亨朴洪鱗等啓曰: "凡親試時, 所試之題必多出, 而擇啓受點, 然後用之, 例也。 其日受點箋題, 實希輔之所出也。" 問畢, 金麟孫等姑退。 又招李希輔問曰: "箋題誰之所出耶?" 答曰: "凡出題時, 上試官, 例皆主掌爲之, 然以臣爲大司成之任, 問曰: ‘可以出題矣’, 臣以擬朝群臣賀車駕臨雍拜老出題。’ 上試官蘇世讓等, 以爲好則好矣, 必有古作矣, 更出他題。 臣答曰: ‘然則以今日之事, 出題何如?’ 上試官等, 卽改臣之所出之題, 以太學生等謝車駕親臨泮宮箋出之, 實非臣之所出也。 況此題, 謝, 而臣之所出者, 賀也。 賀謝表體, 大有不同。 此尤發明處也。" 問畢, 希輔小退, 更進金麟孫等問曰: "希輔以爲, 非我所出之題, 此是何人之所出耶?" 金麟孫等, 皆嘆息曰: "殿下下問, 雷霆咫尺, 而有如是哉? 希輔初出擬朝群臣賀車駕臨雍拜老表, 直提學蔡世英書之。 臣等以爲好則好矣, 然必有古作矣, 更出他題可也。 希輔又出太學生等賀車駕親臨泮宮箋, 蔡世英又書之。 臣等只改賀字爲謝字矣。 蘇世讓又出擬禮曹請於經筵, 進講《通鑑纂要》箋, 臣等棄希輔初出之題, 用世讓之題爲首, 次用希輔後出之題書啓, 而適落點於希輔之題。 今蔡世英亦來, 此實是希輔之所出也。" 傳于金謹思等曰: "箋題, 希輔則以爲, 非己所出, 同時試官宰相五人, 則皆以爲希輔之所出也。 宰相五人同辭, 希輔之不直明矣。 但儒生入格者, 已定直赴及書冊之命。 所謂私接先製儒生問之, 然後改正如何?" 謹思等回啓曰: "希輔之不直見矣, 儒生不可推問也。 入格儒生, 他賞則猶可也, 不可使直赴於殿試、會試也。" 傳于謹思等曰: "今依所議, 入格儒生等改正可也。 以爲虛僞, 則雖書冊等物, 猶不可賞也。" 傳于政院曰: "希輔不直啓達於下問之時, 其爲邪譎極矣。 依臺諫所啓, 加資改正, 而推考可也。 儒生論賞承傳, 勿令擧行事, 更奉承傳, 亦可也。" 答臺諫曰: "希輔之不直見矣。 加資改正, 而依所啓推考可也。 入格儒生之事, 竝勿擧行爲當。"

【史臣曰: "希輔性本邪諂, 又極貪鄙, 不容於士林, 長斥於外。 至是, 攀附金安老, 得爲大司成。 及上視學, 乃獻頌褒贊, 卽命賞加二品, 下情憤鬱, 駁奪之。 因此臺諫, 更論邪鄙之失, 啓罷其職, 館中之士, 皆賀。"】


  • 【태백산사고본】 43책 85권 44장 B면【국편영인본】 18책 95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 인사-선발(選拔)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