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에 분정 등록을 상고하려는 이유를 전교하다
정원에 전교하였다.
"당초 희릉 자리를 잡을 때에 동쪽과 서쪽으로 길을 나누어서 각각 상지관을 보내 살피게 하였더니, 서쪽에서 돌아온 자는 경릉(敬陵) 근처에다 보아놓고, 동쪽에서 온 자는 헌릉(獻陵)의 백호(白虎) 밖에다 보아놓았었다. 내가 경릉 근처에 있는 산은 그 곁에 정인사(靜仁寺) 옛 터가 있으므로 군인이 그 터 위에 있는 돌을 능소에 쓸 것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에 헌릉의 산을 쓰도록 명하였었다. 이것으로 보면 희릉의 산은 바로 내가 정한 것이지, 그때의 관원들이 스스로 정한 것이 아니다. 그 당시 제조 등은 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 중에 다른 마음을 품은 자가 한두 사람이 있었다고는 하더라도 사람마다 어찌 모두 한결같았겠는가. 상지관 역시 한 사람이 아니었는데, 어찌 모두가 한 사람의 지시를 따라 감히 흉측한 일을 했겠는가. 더구나 그때는 아직 박씨가 다른 뜻을 갖지 않은 때가 아니었던가. 작서(灼鼠)의 변이 일어난 뒤에 와서야 사람들은 모두 그를 의심하게 되었던 것이다. 희릉의 초상 당시는 그 세력이 아직 형성되지 않았으니 그에 아부하여 음모를 꾸민 자가 없었을 것 같다. 또 상지관들이 길을 갈라 가서 산을 살펴보고 온 뒤 합문(閤門) 밖에 와서 일을 아뢸 때, 사관(史官)은 그 대략만을 기록해 놓았을 뿐이다. 어찌 한갓 이 기록만을 가지고 네 사람 【황득정·성담기·조윤·송당(宋璫)이다.】 이 합동으로 산을 살펴보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런 때문에 그 당시의 분정 등록(分定謄錄)을 상고해 보려고 한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43책 85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18책 81면
- 【분류】왕실-종사(宗社) / 사법-탄핵(彈劾)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甲辰/傳于政院曰: "當初禧陵卜宅之時, 東西分道, 各送相地官而看審, 西歸者, 得於敬陵近地, 東來者, 得於獻陵白虎之外。 予以爲敬陵近地之山, 則其傍有靜仁寺故基矣。 軍人用其基上之石於陵所, 故命用獻陵山矣。 以此觀之, 禧陵之山, 予乃定之, 非其時官員等所自定者也。 當其時, 提調等非一人, 其中雖有一二人懷異心者, 人人豈皆如一乎? 相地官等, 亦非一人, 豈皆聽從一人之指, 而敢爲凶慘之事乎? 況其時, 朴氏未有異志, 及乎灼鼠變起, 然後人皆疑之。 當其禧陵初喪, 其勢未成, 似無阿附, 而陰謀之者也。 且相地官等, 於分道看山之後, 詣閤門外啓事之時, 史官記其大槪而已。 豈可徒以此, 而謂四人 【黃得正、成聃紀、趙綸、宋瑭。】 一同看審乎? 是以, 欲考其時分定謄錄耳。"
- 【태백산사고본】 43책 85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18책 81면
- 【분류】왕실-종사(宗社) / 사법-탄핵(彈劾)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