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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84권, 중종 32년 4월 30일 무인 1번째기사 1537년 명 가정(嘉靖) 16년

진하사의 선래 통사 우종이 서계한 내용

정원이 진하사(進賀使) 정옥형(丁玉亨)의 선래 통사(先來通事) 우종(禹鍾)의 말을 가지고 아뢰기를,

"정월 27일에 북경에 도착하고 2월 3일 방물(方物)을 진상하고 13일에 하마연을 했습니다. 태자를 낳은 빈(嬪) 왕씨(王氏)가 2월 11일에 동궁(東宮)으로 옮겼다고 들었는데, 동궁은 곧 정궁(正宮)입니다. 태자를 낳았기 때문에 정궁으로 옮긴 것입니다. 황제가 또 다른 빈에게서도 아들을 낳았다고 합니다. 황제가 선제(先帝)의 능침(陵寢)에서 3월 1일 제사를 친히 거행하려고 2월 24일에 천수산(天壽山)에 행행하였다가, 서호(西湖)를 두루 유람하고 3월 6일 경사로 돌아왔는데, 이번의 친제는 태자를 위해 비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조신(朝臣)들이 상소하여 태자를 책봉하기를 청했지만 성지(聖旨)에 윤허하지 않았으므로 언제 책봉하게 될지 확실하게 알 수 없습니다. 또 듣건대 안남국(安南國)의 역신(逆臣) 막등영(莫登瀛)이 국왕 여씨(黎氏)의 땅을 빼앗고 조공하는 길을 막아 조공을 행하지 못하게 하였는데, 그 나라의 사신 정유료(鄭惟憭)가 조정에 아뢰므로 조정에서는 허실을 알고자 하여, 정유료를 인하여 별도로 그 나라에 사신을 보낸다고 했습니다.

3월 15일에는 상마연(上馬宴)을 하려다가 황후 장씨(張氏)를 이날 출빈(出殯)하므로 20일로 물리어 거행하였고, 25일에 상사(賞賜) 및 따로 내리는 표리(表裏)를 받았습니다. 신들이 북경에 들어간 뒤로는 천자가 한번도 조회를 보지 않았기에 칙서는 받지 못했는데, 이달 27일에 황제가 또 삼공과 육원(六媛)을 거느리고 천수산에 행행하였다가 4월 4일에 경사로 돌아와서도 조회를 보지 않으므로, 10일에야 조회는 없이 칙서를 받았습니다. 12일에 길을 떠났고 13일에 통주(通州)에서부터 먼저 와 21일에 요동에 도착했는데, 천사들이 머무르고 있은 지가 이미 5일이나 되었습니다. 22일에 세 대인(大人)과 총병관(摠兵官)을 뵙고 이어 도찰원(都察院)으로 천사를 뵈러 갔는데, 천사가 한 낮이 되어서야 일어나 대청(大廳)으로 나와 앉더니, 의물(儀物)을 갖추고서 신을 불러 들어와 뵙게 했습니다. 이어 ‘몇달이나 머물렀으며 어째서 먼저 오는가?’ 하기에 ‘황제께서 조서가 내려가지도 않았는데 먼저 진하하는 것을 기쁘게 여기시어 따로 칙사(勅賜)가 있었으므로 본국의 사신이 먼저 저를 보내 전하께 계달하게 해서이다.’ 하였습니다. 두 사신이 서로 돌아보며 웃다가 이어 ‘당신들 중국말 할 줄 아는가.’ 하므로, 통사 강진(康鎭) 등이 ‘중국 말을 안다.’고 하였습니다. 천사들이 신을 불러 앞으로 다가 오게 하더니, 두 사신이 일어서서 ‘우리들을 위해 전하게 문안드려 달라. 너무나 후하신 뜻에 감사하므로 글로 써서 당신들에게 부치고 싶지만 당신들의 길이 너무 바쁘므로 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이어 음식을 내오도록 명하여 자못 성의있게 대접하였으며, 또 원접사(遠接使)에게도 안부를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 천사들이 5월 초에는 요동에서 출발하겠지만, 언제 광녕(廣寧)에 도착하고 또 언제 북경에 도착할지는 알지 못하겠습니다. 《대명회전(大明會典)》은 아직 편수가 끝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압해관(押解官)280) 은 이달 23일에 요동의 통원보(通遠堡)에서 만났었는데 ‘24일에는 요동에 들어가야 하지만 일대의 역말이 피폐하기 때문에 빨리 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전교하였다.

"지금 선래 통사가 서계한 것을 보건대 ‘황후 장씨가 앞서 붕(崩)하였는데 장사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전에 홍치(弘治)281) 의 황후(皇后)가 장씨(張氏)라고 들었는데, 가정(嘉靖)282) 의 폐출(廢黜)한 황후도 또한 장씨라고 한다. 만일 홍치의 황후라면 진위·진향사(陳慰進香使)를 들여보내야 할 것이니, 통사들에게 다시 물어보아 아뢰라."


  • 【태백산사고본】 42책 84권 73장 A면【국편영인본】 18책 72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동남아(東南亞)

  • [註 280]
    압해관(押解官) : 죄인을 감시하여 데리고 가는 관원.
  • [註 281]
    홍치(弘治) : 명 효종(明孝宗)의 연호. 즉 효종.
  • [註 282]
    가정(嘉靖) : 명 세종(明世宗)의 연호. 즉 세종.

○戊寅/政院啓曰: "進賀使丁玉亨先來通事禹鍾言云: ‘正月二十七日到北京, 二月初三日進方物, 十三日下馬宴, 聞生太子之嬪王氏, 於二月十一日, 移于東宮。 所謂東宮, 乃正宮也。 以生太子故, 移于正宮, 而皇帝又於他嬪得子云。 皇帝欲親行三月朔祭于先帝陵寢, 二月二十四日, 幸天壽山, 周覽西湖, 三月初六日, 還京師。 其親祭, 亦以爲繼嗣而祈禱云。 朝臣上疏, 請封太子, 聖旨不允, 不知的於何時冊封也。 又聞安南國叛臣莫登瀛, 奪據國王黎氏之土地, 阻梗朝路, 似不得修貢事。 其國使臣鄭惟憭奏朝廷, 朝廷欲知虛實, 因惟憭而別遣使臣于其國矣。 三月十五日, 當爲上馬宴, 而皇后張氏, 是日出殯, 故退行於二十日, 而二十五日, 受賞賜及別賜表裏, 而臣等入京之後, 天子一不視朝, 故不受勑書。 是月二十七日, 皇帝又率三公六媛, 幸天壽山, 四月初四日, 還京師, 猶不視朝。 乃於初十日, 免朝受勑書, 十二日發程, 十三日自通州先來, 二十一日到遼東, 天使留已五日矣。 二十二日, 謁三大人、摠兵官, 仍謁天使于都察院。 天使日午方起, 出坐大廳, 俱儀物, 招臣入謁, 仍問: 「留連幾朔乎? 又何以先來?」 答曰: 「皇帝喜詔書未到而先賀, 別有勑賜, 故本國使臣, 先送我啓達于殿下矣。」 兩使相顧而笑, 仍問曰: 「爾解華語乎?」 通事康鎭等曰: 「解華語矣。」 天使乃招臣至前, 兩使起立曰: 「爲我問安于殿下, 多謝厚意。 欲修書付爾, 爾行忙甚, 故未果耳。」 因命饋食, 待之頗款。 又令問安于遠接使云。 天使於五月初, 當離發於遼東也, 不知何時到廣寧, 何時到京師也。 《大明會典》, 時未畢修云。 押解官, 今月二十三日, 相逢於遼東 通遠堡, 二十四日, 當入遼東, 以一路驛馬疲弊, 故不得疾行云。’" 傳曰: "今見先來通事書啓, 言皇后張氏, 曾崩未葬云。 前聞弘治皇后, 乃張氏, 而嘉靖廢皇后, 亦張氏云。 若弘治皇后, 則陳慰、進香使, 當入送。 其更問于通事以啓。"


  • 【태백산사고본】 42책 84권 73장 A면【국편영인본】 18책 72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동남아(東南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