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에게 전별연을 행하다
상이 막차(幕次)에서 견여(肩輿)183) 를 타고 중문(中門) 아래 이르러 가마에서 내리니, 두 사신이 중문까지 나왔다. 상께서는 문 오른쪽에 서고 두 사신은 문 왼쪽에 섰다가 서로 양보하며 대청 안으로 들어섰다. 상사가 말하기를,
"전일에 경회루의 못 석교(石橋) 이름을 ‘청홍(晴虹)’이라고 했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청홍’을 고쳐 ‘장홍(長虹)’이라 하는 것이 합당할 듯합니다."
하고, 이어 경회루·응수정(凝秀亭)·장홍교(長虹橋)·서봉정(棲鳳亭)·공순당(恭順堂)·백상루(百祥樓) 등의 액자(額字) 쓴 것을 내놓았고, 부사는 또한 쌍룡송(雙龍松)·반규송(盤虯松)·납청정(納淸亭)·쾌재정(快哉亭)·임진정(臨津亭)·해운정(海雲亭) 【강릉(江陵)에 있는 판서(判書) 심언광(沈彦光)의 별장임.】 등의 액자 쓴 것을 내놓았다. 상이 두 사신의 앞에 나아가 서로 읍하기를 마치고, 상이 말하기를,
"주신 것이 많으므로 사례하는 절을 하고 싶습니다."
하니, 천사가 말하기를,
"전하께서도 주신 것이 매우 많습니다. 전하께서 어찌 사례하는 절을 할 것 있겠습니까."
하고, 서로 읍만 하고 각기 자리에 앉자고 극구 청했다. 환다례(換茶禮)을 행한 다음에 상이 역관을 시켜 천서에게 말하기를,
"우리 나라 종계 일은 어제 이미 다 말씀드렸습니다. 이인임은 강헌왕(康獻王)184) 과 같은 때의 사람인데 강헌왕을 이인임의 아들로 했다니, 우리 나라의 한없는 수치와 모욕이 되는 일입니다. 또한 이인임의 소위인 대악(大惡)과 부도(不道)를 강헌왕에게 가해 놓았으므로 자손된 사람으로서 원통함을 씻으려고 생각하였지만 이제까지 되지 않았습니다. 그전에 이 두 가지 일을 가지고 주청하여 준허를 받아 이미 고치기를 준허하신 성지(聖旨)가 있으니, 바라건대 대인께서 조정에 돌아가면 힘을 다해 고쳐주심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두 사신이 서로 말하기를,
"우리들이 이미 단자 및 전하께서 직접하시는 말씀을 받고 가는데 감히 힘써 하지 않겠습니까. 다만 지금 바야흐로 《대명회전(大明會典)》을 다시 편수하니 만일 이번에 다시 아뢰어 성지를 받게 되면 우리들도 마땅히 조력하겠습니다. 이렇게 되면 사세가 쉬울 듯합니다."
하자, 상이 말하기를,
"영락(永樂)·정덕(正德) 무렵에 바야흐로 《대명회전》을 편수한다는 것을 듣고서 무자년에 사신을 보내 주청하니, 황제께서 주청에 의거하여 ‘사관에게 회부하여 채택해서 시행한다.’는 것으로 성지가 있었습니다. 이번에 다시 주청하고 싶지만 번독(煩瀆)한 듯하므로 황공하여 감히 하지 못합니다."
하니, 천사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어찌하여 무자년에 주준(奏准)한 성지를 등서하여 우리들에게 주지 않았습니까? 우리들이 성지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위와 같은 대답을 한 것입니다. 만일 우리들이 그 성지를 가지고 조정에 돌아간다면 힘 쓰기가 쉽습니다."
하고, 부사가 말하기를,
"이번에 바야흐로 《대명회전》을 편수하는데 상사께서 그 일을 맡을 것이니, 그런 성지가 있다면 하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하였다. 상이 술 대접하는 예를 마치자, 천사들이 말하기를,
"우리들이 이미 오늘은 양화도를 유람하기로 결정했으니, 세자께서 술잔을 돌린 다음에는 단지 한두 대신들만 술잔을 돌리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또한 우리들의 오늘 유람에는 기녀와 악공은 제외하고 단지 한 항아리의 술만 가지고서 서너 재상과 함께 가서 유람하고 돌아오면 됩니다. 술은 마땅히 양화도에 가서 실컷 마실 것이니 지금은 많이 마시고 싶지 않습니다."
하므로, 상이 말한대로 하겠다고 하고, 또 천사에게 말하기를,
"어제 비단[緞子]과 서책 등 많은 물건을 주셨기에 답례품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찮은 물건이지만 성의를 표하는 것입니다."
하니, 천사들이 말하기를,
"귀한 물건을 많이 주시어 감히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하므로, 상이 말하기를,
"이는 다 토산품이고 그다지 귀한 것이 아닌데 어찌 그리도 많은 사례를 하십니까."
하고, 상이 또 말하기를,
"오늘 이후에는 다시 예연이 없으므로 두목들에게 두루 술을 대접하고 싶습니다."
하니, 천사가 말하기를,
"북경(北京)에서 온 자는 대청 안에서 먹이고 요동(遼東)에서 온 자는 처마 밑에서 먹이기 바랍니다."
하였다. 상이 두목들에게 줄 물건 단자를 내놓도록 하니, 천사가 말하기를,
"주시는 물건이 매우 많으므로 어떻게 치사를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소소한 음식을 내놓고 두목들을 대청 안으로 불러 장차 술을 먹이려는데, 천사가 말하기를,
"그 중에는 술을 마시지 못하는 자도 있으니 단지 한 잔씩만 먹이기 바랍니다."
하므로, 상이 말한 대로 하겠다고 하였다. 천사가 말하기를,
"이제 시간이 이미 늦었으니 회배(回杯)하고 양화도(楊花渡)에 나가 유람하였으면 합니다."
하므로, 상이 말한 대로 하겠다고 하였다. 천사가 말하기를,
"나에게 충정관(忠靖冠)·충정건(忠靖巾)·충정의(忠靖衣)·충정대(忠靖帶)가 있는데, 만일 전하께서 보시고 싶다면 보여드리겠습니다."
하므로, 상이 말하기를,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하니, 천사가 즉시 충청관과 충청건을 내놓으며 말하기를,
"중국의 법제에 이 관에는 경계(警戒)하는 말이 있으니, 사은사가 돌아올 때에 마땅히 등서하여 보내드리겠습니다."
하므로, 상이 매우 감사 하다고 하였다. 천사가 회배하기를 마치자, 상이 두 사신에게 한 잔씩 더 돌리겠다고 청하니, 상사도 잔을 들고 다가와 말하기를,
"한 번 작별한 다음에는 두 지역에서 서로 생각하느라 마음만 태울 것입니다."
하므로, 상이 말하기를,
"옛말에 ‘아득하여 넋이 나간다.’고 한 것이 바로 이를 이른 것입니다."
하니, 상사가 말하기를,
"《시경》에 ‘마음에 사랑하는데 어찌 말하고 싶지 않으리오.’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데 어느날인들 잊으리오. 하였고, 또 ‘이미 군자를 만나보니 화락하고도 예의가 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어찌 감히 전하를 잊겠습니까."
하므로, 상이 말하기를,
"대단히 감사합니다."
하고, 부사가 잔을 들고 다가와 말하기를,
"‘오른쪽으로 가도 타당치 않는 것 없고 왼쪽으로 가도 없는 것이 없도다. 군자가 만년토록 국가를 보존하리로다.’ 하였는데, 어찌 전하와 같은 군신(君臣) 사이를 이른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므로, 상이 매우 감사하다고 하였다. 잔치가 끝나자 상이 두 사신과 서로 사양하며 나와 어실(御室)로 들어왔다.
- 【태백산사고본】 42책 84권 33장 A면【국편영인본】 18책 52면
- 【분류】외교-명(明) / 왕실-종친(宗親)
○上自幕次, 乘肩輿, 至中門下輿, 兩使出門。 上立門右, 兩使立門左, 相讓而入廳內。 上使曰: "前日慶會池石橋, 名以晴虹, 更思之, 改晴虹爲長虹似當。" 仍慶會樓、疑秀亭、長虹橋、棲鳳亭、恭順堂、百祥樓等額字進之。 副使亦以雙龍松、盤虬松、納淸亭、快哉亭、臨津亭、海雲亭 【在江陵, 判書沈彦光別墅。】 等額字進之。 上就兩使前, 相揖訖。 上曰: "所賜多矣。 欲謝拜。" 天使曰: "殿下所賜甚多, 殿下何用謝拜?" 强請相揖而各就座, 行換茶禮後, 上使譯官言於天使曰: "我國宗系之事, 昨已陳之悉矣。 仁任與康獻王, 爲一時之人, 以康獻王爲仁任之子云, 弊國之羞辱極矣。 且仁任所爲大惡不道, 加之於康獻王, 爲子孫者, 思欲雪冤, 而迄今不得矣。 前者以此二事, 奏請蒙準, 已有聖旨許改矣。 願大人還朝廷, 盡力改之何如?" 兩使相謂曰: "俺等已受單子, 及殿下面語而去, 敢不力爲之乎? 但今方重修《大明會典》矣。 今若更奏, 得蒙聖旨, 則俺等亦當助力。 如是則勢似易矣。" 上曰: "永樂、正德間, 聞方修《大明會典》, 戊子年遣使奏請, 而皇帝依奏請付史官採擇施行事, 已有聖旨矣。 今更奏請, 近於煩瀆, 惶恐未敢爲也。" 天使曰: "然則何不謄書戊子年奏準聖旨, 而給我乎? 俺等未見聖旨, 故答之如右耳。 俺若持此聖旨, 而還朝廷, 則用力易矣。" 副使曰: "今者方修《大明會典》, 而上使方任其事, 有此聖旨, 則不難爲矣。" 上行酒禮畢, 天使曰: "俺等今日已定楊花渡之遊。 世子行酒後, 只令大臣一二人行酒何如? 且俺等今日之遊, 除女樂, 只將一壺酒, 與宰相三四, 往遊而還可矣。 酒則當於楊花渡, 痛飮矣, 今不欲多飮。" 上曰: "依命。" 且告于天使曰: "昨日所惠段子及書冊等物多矣, 不可不回奉, 但菲薄之物, 只見誠耳。" 天使曰: "多賜貴物, 不敢當, 不敢當。" 上曰: "此皆主産, 非至貴物, 何至多謝?" 上又曰: "今日之後, 更無禮宴, 頭目等欲遍饋以酒。" 天使曰: "自北京來者, 請饋於廳內, 自遼東來者, 靖饋於簷下。" 上命以頭目等處贈給之物單子進呈, 天使曰: "所賜甚多, 不知所謝, 進小膳。" 頭目等招致廳內, 將饋酒, 天使曰: "此中亦有不能飮者, 請只饋一杯。" 上曰: "依命。" 天使曰: "今已日晩, 請行回杯, 而出遊於楊花渡。" 上曰: "依命。" 天使曰: "我有忠靖冠、忠靖巾、忠靖衣、忠靖帶, 殿下若欲見之, 則當進之也。" 上曰: "請欲見之。" 天使卽以忠靖冠、忠靖巾進之曰: "中原之制, 此冠有警戒之辭。 謝恩使還時, 當謄書以送。" 上曰: "多謝多謝。" 天使行回盃畢, 上請兩使加行一盃, 上使又執盃而進曰: "一別之後, 兩地相思, 心燋而已。" 上曰: "古云 ‘黯然消魂’, 正謂此也。" 上使曰: "詩云: ‘心乎愛矣, 何不謂矣? 中心藏之, 何日忘之?’ 又云: ‘旣見君子, 樂且有儀’, 何敢忘殿下乎?" 上曰: "多謝。" 副使執盃而進曰: "‘右之右之, 無不右之。 左之左之, 無不左之。 君子萬年, 保其家邦’, 豈不謂如殿下之君臣乎?" 上曰: "多謝多謝。" 宴訖, 上與兩使相讓而出, 入于御室。
- 【태백산사고본】 42책 84권 33장 A면【국편영인본】 18책 52면
- 【분류】외교-명(明) / 왕실-종친(宗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