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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84권, 중종 32년 3월 14일 계사 4번째기사 1537년 명 가정(嘉靖) 16년

천사의 통사 배정과 등과록 등의 일에 대해 대신들과 의논하다

정원이 영접 도감의 뜻으로 아뢰기를,

"이전에도 천사의 방 통사는 각각 2사람씩 배정하는 것이 준례였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각각 2사람씩 배정하여 강(江) 가에 나가 맞이하도록 했었는데, 그 뒤 중로(中路)에서 원접사가 따로 통사 홍겸(洪謙)을 상사(上使)의 방에 배정하고 송희온(宋禧溫)을 부사(副使)의 방에 배정하였으며, 서울에 들어온 다음에 홍겸은 잉임(仍任)하고 송희온은 옮겨 두목의 방 통사를 삼았습니다. 오늘 부사가 통사를 배정한 단자를 가져다 보며 성을 내어 말하기를 ‘내가 두목인 줄 알았는가? 어찌하여 두목의 통사로 하여금 나를 노상(路上)에서 맞이하게 하였는가? 이 나라에서는 나를 매우 천하게 대접한다. 내가 어찌 하루라도 여기에 머물겠는가?’ 하며, 즉시 떠나려고 하다가 상사가 억지로 만류하자 ‘오늘은 우선 머무르겠지만 내일은 마땅히 떠나 돌아갈 것이며, 오늘의 초청한 잔치에도 역시 나가지 않겠다.’고 했다 합니다. 이는 비록 통사를 옮겨 배정한 것 때문에 화를 낸 것이긴 하나, 곧 무역 일 때문에 화를 낸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하니, 상이 승지들을 인견(引見)하고 이르기를,

"배정한 다음에 함부로 바꾸었으니 부사가 성내는 것이 당연하다."

하자, 좌승지 황헌(黃憲)이 아뢰기를,

"천사가 서울에 들어온 다음에 즉시 송희온을 옮겨 두목 방의 통사로 삼았으니 천사가 알지 못했던 것이 아닌데, 오늘에야 비로소 성낸 말을 하였으니 딴 뜻이 있는 듯싶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는 한갓 사역원이 살펴서 하지 않은 잘못만 있는 것이 아니라 관반 역시 잘못한 것이다. 또한 그 사라 능단(紗羅綾段)이 어찌 두목의 사사 물건이겠느냐? 이는 반드시 천사가 가지고 온 것인데도 두목의 사사 물건이라고 핑계대며 무역하려한 것이다. 그러다가 오늘 아침에 형편상 무역은 곤란하다는 뜻을 말하자, 천사가 무역 일 때문에 화가 났으면서도, 통사를 옮겨 배정한 것을 구실삼게 된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하였다. 도승지 박홍린(朴洪鱗)이 아뢰기를,

"우선은 무역을 허락하였다가 지나치게 한다면 금지하는 것이 합당할 듯합니다."

하고, 동부승지 박수량(朴守良)은 아뢰기를,

"저자 사람들이 어제 이미 두목들과 물건 값을 흥정했으므로 그들의 생각에는 무역 할 수 있다고 여겼을 것인데, 이제는 또 막았기 때문에 실망하여 화를 내게 된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오늘 아침에 절반만 무역하라는 것으로 이미 분부했는데 지금 사세가 이와 같으니 전부를 무역하게 해주는 것이 옳겠다."

하였다. 황헌이 아뢰기를,

"부사가 그처럼 화를 냈으니 승지를 보내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빨리 승지를 보내 설유하라."

하였다. 박수량이 아뢰기를,

"지금 천사에게 ‘통사에 관한 일은 유사의 잘못이다. 전하께서 듣고 황공(惶恐)스러움을 견디지 못하시어 즉시 유사를 데려다 하옥하여 죄를 다스리게 하고, 다시 근신(謹愼)한 통사 한 사람을 가리어 송희온을 대신하여 곁에서 일을 보게 하도록 하셨다.’ 한다면 합당할 듯합니다."

하고, 우부승지 황기가 아뢰기를,

"고쳐 정한 통사를 천사의 방으로 데리고 나아가 보도록 하는 것이 합당할 듯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 말이 지당하다. 지금 천사에게 ‘천사의 방 통사를 유사가 제 마음대로 고쳐서 정하여 지극히 잘못되었기 때문에 유사를 관원에게 내리어 죄를 다스리게 하고 통사는 이미 보충하였다.’고 한다면 합당하겠다. 또 그 무역하는 일은 다시 해사에 분부하여 빨리 시행하도록 하라."

하고, 이어 황기에게 분부하기를,

"태평관에 나아가 천사를 설유하라."

하고, 이어 전교하기를,

"‘국왕께서 이른 아침부터 편문(便門)에 【경회루 남문.】 에 나아가 대인들께서 오기를 기다리니 빨리 잔치에 나가시지요.’라고 말하게 하라."

하였다. 상이 대내(大內)로 들어갔다. 얼마 후에 경회루 남문에 나아가 이르기를,

"승지가 가서 잔치에 초청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거동이 빠를지 늦을 지 알지 못하겠으니, 사관(史官)을 보내 승지에게 ‘국왕께서 여러날을 모시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은 간절하게 잔치에 모시고 싶어 하시니 대인들께서 속히 가시기 바란다.’고 천사에게 말해 주라고 하라. 또 이전에도 천사가 혹시 어떤 일로 해서 화를 내게 되면, 일을 그르친 관원을 천사의 앞에 잡아다 놓고 그의 죄상을 들어 천사에게 말해주었고, 즉시 천사가 보는 곳에서 옥리(獄吏)에게 회부(回付)했었다. 성종조(成宗朝)에도 역시 그와 같은 일이 있었으니, 이번에도 또한 속히 의금부의 낭관을 보내 사역원(司譯院) 장무관(掌務官)을 뜰 가운데 잡아다 놓았다가, 천사에게 ‘이 관원이 장무관으로서 함부로 천사의 방 통사를 바꾸었으므로 죄가 크기에 국왕께서 옥리에게 회부하여 죄를 다스리도록 명하였다.’고 한다면 합당할 듯하니, 이런 뜻을 아울러 사관으로 하여금 관반에게 말해 주도록 하라."

하였다. 황기태평관에서 돌아와 아뢰기를,

"신이 태평관에 나아가 가운데 대청으로 들어가 천사를 뵙고 다가가 말하기를 ‘당초에는 각각 통사 3 사람씩을 두 천사의 방에 배정했던 것인데 유사의 불찰(不察)로 이렇게 되었다는 것을, 국왕께서 듣고 몹시 황공스럽게 여겨 즉시 다른 통사를 배정하여 송희온(宋禧溫)을 대신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니, 부사가 말하기를 ‘그러한 하찮은 일을 국왕께서 어떻게 아시게 되었습니까? 유사들도 역시 우연히 살피지 못한 일일 것인데 무슨 죄가 있겠습니까? 죄주지 말기 바랍니다.’ 하였습니다. 신이 다시 다가가 잔치에 초청했더니, 부사가 안색이 아무렇지도 않은 채 화평한 말로 답하기를 ‘마땅히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또 이런 하찮은 일로 특별히 내신(內臣)162) 을 보내시어 설유하시니 대단히 감사합니다. 장차 전하를 뵙고 치사하겠습니다.’ 하였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사역원의 장무관은 지금 잡아갔느냐?"

하였는데, 황기가 아뢰기를,

"신이 올 적에 길에서 의금부 도사를 만났었는데 장무관을 잡아가기에, 신이 ‘천사의 노여움이 다소 풀렸으니 태평관 문 밖에서 잠시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알았다. 또 천사가 회시(會試)에 관한 기록을 보고자 하는 것은 단지 글만 보고 말려는 것이 아리라 반드시 과목(科目)163) 의 인원 수를 알고자 하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한 차례 식년(式年)164)방목(榜目)165) 을 써서 보여주는 것이 합당할 것 같다."

하였다. 박홍린이 아뢰기를,

"천사가 과거에 관한 기록을 보고자 하는 일을, 처음에는 잘못 생각하여 과거에 낸 글을 보고자 하는 것으로 여기고서 도감(都監)이 이미 예조로 하여금 등초(謄抄)하도록 했었습니다. 그런데 예조가 또 홍문관으로 하여금 등초하게 하자고 아뢰어, 지금까지도 결정되지 않아 미처 써주지 모했을 듯하니, 지극히 완만합니다. 또 등초하는 것을 단지 논(論)·부(賦)·대책(對策)을 각각 두 서너 수(首)씩만 하는 것은 더욱 옳지 않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갑과(甲科)는 몇명이고 을과(乙科)는 몇명이라고 써주는 것이 옳을 듯하다."

하였는데, 박홍린이 아뢰기를,

"천사가 과거에 관한 기록을 보고자 하는 것은, 대개 중국에는 《갑을집(甲乙集)》이 있어 과거에 급제한 사람의 방목(榜目)을 쓰고 아울러 그들의 글도 기록해 두기 때문에 이와 같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고, 황헌(黃憲)은 아뢰기를,

"지금 만일 방목을 써서 주었다가 혹시 글도 모두 보려고 하게 된다면, 거두어 모으기에 어려울 뿐만이 아니라, 짧은 시간에 지은 글들이 어찌 중국 사람들의 소견에 부합되겠습니까? 국가의 체면이 매몰하게 될까 싶습니다."

하고, 박홍린은 아뢰기를,

"우리 나라에도 《갑을집》이 있지만 다만 장원한 사람이 지은 글만 기록한 것으로 중국의 《등과록(登科錄)》과 같지 않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천사가 등과록을 보고자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였다. 좌의정 김안로 【김안로가 사역원 도제조로서 송희온(宋禧溫)의 일을 친히 아뢰었기 때문에 이 하문(下問)이 있은 것임.】 아뢰기를,

"글을 보고자 하는 것은, 이전에도 예부(禮部)가 매양 과거한 글을 보려고 하였지만 의론이 한결같지 않았기 때문에 써보내지 않았었습니다. 기순(祈順)이 왔을 적에도 역시 정문(程文)166) 의 체제를 보고자 하므로, 이전 사람들이 지었던 글을 가져다 보여주니, 하는 말이 ‘중국의 것과 다름이 없다.’고 했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이와 같은 일이 있게 될까 싶어서 각 체 속에서 두서너 수(首)씩 등초하여 유(類)로 모아 책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선 ‘《등과록》이 중국의 것과 같지 않아 단지 방목만 있고 글은 없으므로 창졸간에 쉽사리 거두어 모을 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하고, 박홍린은 아뢰기를,

"저번에 상께서 이미 우리 나라에도 역시 《등과록》이 있다고 답하셨는데, 만일 지금 《등과록》이 없다고 대답한다면 그른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또 뽑아낸 글도 다만 초본(草本) 두어 장 뿐입니다."

하고, 김안로가 아뢰기를,

"단자에 써서 준다면 괜찮겠지만 초본으로 보여줄 수는 없습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그저께 한강의 배 위에서 보건대, 천사는 성질이 조급하여 비록 소소한 일이라도 걸핏하면 말씨와 안색에 나타내고 언성을 높이는 일이 많았습니다. 세자께서 초청하는 잔치의 의주 속에 사신(使臣)이란 말이 나오자 천사가 매우 노하여 하는 말이 ‘세자가 감히 조사(詔使)를 칭하여 사신이라 할 수 있는가. 세자와 우리들이 동·서로 나뉘어 앉는 것도 역시 그르다. 하물며 전하께서 이미 서편 벽쪽에 앉았었는데 세자가 또한 서편 벽쪽에 앉는다면, 이는 군신·부자 사이에 있어 서도 차서가 없는 것이다.’ 하였고, 이어 붓을 가져다가 써서 신에게 보여주는데 ‘군신이 차서가 없게 되고 부자가 차례를 잃게 되는 것이다. [君臣無常 父子失倫]’ 하였기에, 신이 ‘사신(使臣)이라고 한 것은 곧 조정(朝廷)의 사신이라고 가리킨 말인데 다만 글이 뚜렷하게 되지 못했을 뿐이다. 전하께서 대인들을 지극히 공경하시는데 세자께서 공경하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또 이 의주는 세자께서 친히 마련한 것이 아니라, 예조가 이전부터 있었던 일에 의거하여 만든 것이다. 그렇다면 세자의 좌석을 어느 편으로 해야겠는가?’ 하니, 천사가 ‘우리들은 북편 벽쪽에 앉고 세자께서는 동편 벽쪽에 앉는 것이 옳다.’ 하였는데, 이 말이 과연 예에 맞는 듯합니다."

하였다. 박홍린이 아뢰기를,

"그저께는 천사의 말이 비록 그러했었지만 어제 세자께서 청한 연향 때는 대우함이 매우 공손하였고, 연향이 끝나 나올 적에는 천사들이 대문까지 나와 세자께 가마에 오르기 권하였습니다. 세자께서 사양하기를 ‘이런 예는 전하에게나 할 바인데 내가 어찌 감히 감당하겠습니까?’ 하니, 천사들이 듣고서 감탄하여 마지 않았습니다. 대저 거행하는 일이 예에 합당하게 되면 중국 사람들은 매우 기뻐합니다."

하고, 김안로가 아뢰기를,

"원접사 등에 있어서도 공손스럽고 삼가서 예를 행하면 매우 기쁘게 여겼습니다. 의정부와 육조가 청하는 잔치 때에도 좌석 배치가 매우 어렵겠습니다. 서편 벽쪽은 곧 전하께서 앉으시던 곳이어서 군신(群臣)들은 앉을 수가 없고, 동편 벽쪽은 서쪽보다 높은 데이어서 역시 앉을 수가 없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먼저 천사에게 물어보는 것이 합당하다."

하였다. 김안로가 아뢰기를,

"물어보면 오히려 정하기가 어려울 듯싶습니다."

하고, 박홍린은 아뢰기를,

"천사는 북편 벽쪽에 앉고 군신들은 동편 벽쪽에 앉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였다. 김안로가 아뢰기를,

"한강에서 유람할 적에도 역시 동편 벽쪽에 앉도록 했었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종친부·의정부·육조가 모두 잔치를 청하면 오래 머무르게 될까 싶으니, 겸하여 거행하면서 종재(宗宰)가 청하는 잔치라고 부르면 어떻겠는가?"

하였다. 김안로가 아뢰기를,

"겸하여 거행하는 것이 지당합니다. 천사들이 만일 잔치를 받지 않으려고 하면 굳이 청할 것이 없습니다. 하루라도 더 머무르게 되면 그 비용이 매우 많이 듭니다. 한강에서 보건대, 각사(各司)의 관원들이 한갓 시끄럽게만 하고 일은 담당하지 아니하여 천사들의 뜻에 맞지 않았었으니 지극히 부당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미 죄를 다스리도록 했다."

하고, 또 이르기를,

"오늘 잔치를 청할 적에 천사가 만일 무재를 보여주기 청한다면 마땅히 보여 주어야하나, 우리 나라에서 먼저 청할 것은 없다."

하였다. 김안로가 아뢰기를,

"만일 그들이 청하지 않는다면 우리 나라에서 굳이 먼저 청할 것은 없습니다. 또 천사들이 아직 잔치에 들어오지 않았을 때 미리 무재를 보여주기를 청한 일은 더러 있었지만, 어찌 잔치에 나오고 나서 청하겠습니까? 지난번 제천정(濟川亭)에서도 과녁을 차렸었는데, 천사의 말이 ‘오늘은 바람이 심하게 부니 활쏘기를 안 해도 된다.’고 했었습니다. 또 활과 화살을 증정하니 천사가 한참을 만져보며 매우 기뻐하는 기색이 있었습니다."

하고, 박홍린은 아뢰기를,

"이번 천사는 잡희(雜戲)를 매우 좋아합니다."

하고, 김안로가 아뢰기를,

"그날 한강에서도 천사가 투호(投壼)하기만 좋아할 뿐 강도 산도 구경하지 않았습니다. 또 이전에 기순(祈順)이 천사로 왔을 적에 개성부(開城府)에서 기녀(妓女)들을 여염(閭閻)에 보내어 요란하게 악기 소리를 내도록 했었는데, 천사가 듣고서 즐거워 했었고, 《조선부(朝鮮賦)》167) 에는 ‘봄바람에 날리는 주막 깃대[春風酒旆]’니 ‘달밤에 악기 소리[夜月管絃]’니 하는 말이 있는데, 이를 가지고 더러는 고사(故事)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저께 한강에서 유람할 적에도 또한 기녀(妓女)와 악공(樂工)으로 하여금 마치 구경하는 사람인양 하여 강 위에 나타나게 하고 기녀 728명이 한군데 모여서는 춤을 추게도 하고 노래를 부르게도 했습니다. 천사가 보고서 묻기를 ‘이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하기에, 신이 대답하기를 ‘그들은 여염집 사람들입니다.’ 하니, 천사가 ‘이는 태평 시대의 현상입니다.’ 하였습니다. 또 잔치를 차리는 처음에 기녀·약공을 들여놓으려 하니, 천사가 ‘지금 이런 사문(斯文)들의 모임에 기녀·악공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했습니다. 그러나 기녀·악공이 들어오자 천사가 즐거워하며 어린 기녀를 시켜 혼자 춤추게 하고서 한참 동안 눈여겨 보았고, 다른 기녀가 갈마들어 춤추게 되자, 천사가 ‘됐다’고 하고는 앞서의 기녀로 하여금 연속해서 춤을 추게 했습니다. 서편 벽쪽의 재상중에 기녀·악공을 돌아보고 있는 사람이 있자, 천사가 웃으면서 ‘어찌하여 기녀의 춤만 쳐다 보고 우리들과는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하였는데, 이런 농담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하였다. 김안로가 이어 종계(宗系)를 개정한 단자를 가져다 상의 앞에다 펴놓으면서 아뢰기를,

"전에 이시(李時)가 예부 상서(禮部尙書)로 있을 적에 여러 차례 주청했었습니다. 이시가 지금은 각로(閣老)가 되어 《대명회전(大明會典)》을 감수하고 있고, 상사가 그의 낭관으로 있으니, 이 단자를 천사에게 주어 가지고 돌아가서 이시에게 보이도록 하는 것이 무방합니다."

하니, 상이 중관(中官)168) 을 시켜 그 단자를 가져다가 보고 나서 이르기를,

"이인임(李仁任)이인인(李仁人)으로 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중국에서 그렇게 된 것인가? 우리 나라에서 그렇게 된 것인가?"

하였는데, 김안로가 아뢰기를,

"중국의 자음(字音)은 인(仁)과 임(任)의 음이 서로 같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그렇게 된 것이라면 음이 같아서 잘못 전해진 것이니 또한 분명하게 말을 해주어야 한다."

하였다. 박홍린이 아뢰기를,

"지금 듣건대 상사(上使)가 를 지어 당선(唐扇)169) 두 자루에다 써서 전하께 드리려고 한다는데, 홍겸(洪謙)이 그 부채를 가지고 있다가 관반(館伴)에게 보였다고 합니다."

하고, 김안로가 아뢰기를,

"홍겸은 글을 알기 때문에 천사가 지은 시구(詩句)를 때때로 외어서 전해 주었습니다."

하니, 상이 일렀다.

"천사가 여기 와서도 만일 투호(投壼)를 하려고 한다면 미리 준비하지 않아서는 안 될 것이니, 즉시 궁방(弓房)의 투호를 내다가 훈련원(訓鍊院) 관원을 시켜 화살 척도(尺度)를 요량해 두도록 하라. 또 종친(宗親)·조관(朝官) 중에 투호에 능한 사람 7∼8명을 미리 뽑아 대기시키라."


  • 【태백산사고본】 42책 84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18책 45면
  • 【분류】
    외교-명(明)

  • [註 162]
    내신(內臣) : 승지를 말함.
  • [註 163]
    과목(科目) : 과목 출신(科目出身)의 준말. 곧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하는 사람. 또는 과거의 시험 종목.
  • [註 164]
    식년(式年) : 과거 보이는 시기로 정해진 해. 곧 태세(太歲)에 자·오·묘·유(子午卯酉)가 드는 해. 3년마다 한 번씩 돌아온다.
  • [註 165]
    방목(榜目) : 과거에 급제한 사람의 성명을 적은 것.
  • [註 166]
    정문(程文) : 과거 볼 때에 쓰는 일정한 법식을 문체.
  • [註 167]
    《조선부(朝鮮賦)》 : 성종 때 사신으로 왔던 명나라 동월(董越)이 우리 나라의 풍토(風土)를 부(賦)의 문체로 서술한 책. 자주(自註)를 곁들였고 1권으로 되었음.
  • [註 168]
    중관(中官) : 내시.
  • [註 169]
    당선(唐扇) : 중국 부채.

○政院以迎接都監意啓曰: "前者, 天使房通事, 各定二人, 例也。 而今亦各定二人, 往迎於江上, 而後於中路, 遠接使別定通事洪謙于上使房, 而宋禧溫于副使房, 入京後, 仍洪謙, 而移禧溫爲頭目房通事。 今日副使, 取通事分定單子見之, 怒曰: ‘我爲頭目乎? 何以使頭目通事, 迎我於路上乎? 此地待我甚賤, 我何以一日留此乎?’ 卽欲發行, 而上使强止之, 故今日則姑留, 而明日則當發還矣。 今日請宴, 亦不可赴云。 此雖發怒於通事移定, 恐是發怒於貿易事也。" 上引見承旨等曰: "旣定之後, 擅自移易, 副使之怒宜矣。" 左承旨黃憲曰: "天使入京之後, 卽移宋禧溫爲頭目房通事, 天使非不知之, 而今日始發怒言, 恐有他心也。" 上曰: "此非徒司譯院不察之過, 館伴亦誤爲之也。 且其紗羅綾段, 豈是頭目之私物乎? 此必天使所自齎來, 而託言頭目之私物, 欲爲貿易, 而今朝言其貿易勢難之意, 恐天使之怒, 發於貿易之事, 而托於通事之移定也, 何以爲之?" 都承旨朴洪麟曰: "姑許貿易, 而若至於濫, 則止之似當。" 同副承旨朴守良曰: "市裏人等, 昨日已與頭目, 高下其直, 彼意以爲可以貿易, 而今又防之, 故缺望而發怒也。" 上曰: "今朝減半許貿事, 已敎之矣, 今之事勢如此, 專數貿給可也。" 曰: "副使之發怒如此, 遣承旨解諭何如?" 上曰: "急遣承旨, 開諭之。" 守良曰: "今可言於天使曰: ‘通事之事, 有司之過也。 殿下聞之, 不勝惶恐, 卽將有司, 下獄治罪, 而更擇謹愼通事一人, 代禧溫給事於左右耳。’ 云, 則似當。" 右副承旨黃琦曰: "其改定通事, 率詣天使房, 使見之似當。" 上曰: "此言至當。 今言於天使曰: ‘天使房通事, 有司擅自改定, 至爲誤矣, 故其有司, 下吏治罪, 而通事已充數矣。’ 云, 則至當。 且其貿易, 更敎該司, 急速施行。" 仍敎黃琦曰: "詣大平館, 開諭于天使, 因傳曰: ‘國王自早朝出御便門, 【慶會南門。】 以待大人之至。 請速赴宴。’ 云, 可也。" 上入大內, 未幾, 出御慶會南門曰: "承旨已往請宴矣, 然其擧動, 未知早晩, 遣史官言于承旨曰: ‘國王累日不得陪侍, 故今日切欲侍宴, 請大人速臨事’, 言于天使。 且前者天使, 若或因事有怒, 則其誤事官吏, 拿致於天使之前, 以其罪狀, 言于天使, 卽於天使所見處, 付獄吏。 在成廟朝, 亦有如此之事。 今亦速遣禁府郞官, 將司譯院掌務官, 拿致于庭中, 言于天使曰: ‘此員以掌務官, 擅改天使房通事, 其罪大矣, 故國王命付吏治罪矣。’ 云, 則似當。 此意竝令史官, 言于館伴。" 黃琦歸自大平館啓曰: "臣詣大平館, 入謁天使於中大廳進曰: ‘當初各定通事三人, 兩天使房, 有司不察, 乃至於此。 國王聞之, 至爲惶恐, 卽定他通事, 以代禧溫耳。’ 副使曰: ‘如此微事, 國王何以知之? 有司等亦偶爲不察之事, 有何罪乎? 請勿罪之。’ 臣更進而請宴, 則副使顔色自若, 和言以答曰: ‘當依命。 且此爲微事, 而別遣內臣開說, 多謝多謝。 將見殿下而致謝。’ 云。" 上曰: "司譯院掌務官, 今已拿去乎?" 曰: "臣來時, 路逢禁府都事, 拿掌務官而去, 臣曰: ‘天使之怒稍解, 少待於館門外可也。’ 云" 上曰: "知道。 且天使欲見會試錄者, 非但欲觀其文而已, 必欲知科目之名數也。 予意以爲, 書一式年之榜, 以示之爲當。" 洪鱗曰: "天使欲見《登科錄》事, 當初誤料, 以爲欲見科擧之文, 都監已令禮曹抄之, 禮曹又啓, 令弘文館抄之, 而今猶不定, 似不及書贈, 至爲緩慢。 且其所抄, 只論、賦、對策, 各數三首。 此尤不可也。" 上曰: "以甲科幾人、乙科幾人書給, 似可也。" 洪鱗曰: "天使欲見《登科錄》者, 蓋以中原有《甲乙集》, 列書登科榜目, 而竝錄其文, 故欲見如是矣。" 曰: "今若書榜目以給, 而幸欲盡見其文, 則非徒收得爲難, 寸咎所製, 豈合華人之見? 恐至於國體埋沒也。" 洪鱗曰: "我國亦有《甲乙集》, 而只錄狀元所製之文, 不如中原之《登科錄》矣。" 上曰: "天使求見《登科錄》, 何以爲之?" 左議政金安老 【安老爲司譯院都提調, 因宋禧溫事親啓, 故有是問。】 曰: "欲見其文也。 前者禮部, 每欲見科擧之文, 議論不一, 故不書送也。 祈順之來, 亦欲見程文體制, 乃取古人所製之文示之, 則乃曰: ‘與中國無異。’ 云。 今者亦慮有如此之事, 故於各體中, 抄得數三首, 類聚成冊矣。 然今姑語之曰: ‘《登科錄》, 與中原不同, 只有榜目, 而無其文, 倉卒不可容易收合。’ 云, 爲當。" 洪鱗曰: "前者, 上旣以我國亦有《登科錄》答之, 今若更以無其錄答之, 則無乃不可乎? 且所抄之文, 只草本數紙而已。" 安老曰: "若書諸單子而給之則可, 不可以草本示之也。" 又曰: "昨昨臣於漢江船上詳見之, 天使性急, 雖小事, 輒見辭色, 多有厲聲。 世子請宴儀註中, 有使臣之語, 天使甚怒曰: ‘安有世子敢稱詔使爲使臣乎? 世子與俺等, 分東西以坐, 亦爲非矣。 況殿下旣坐於西壁, 而世子又坐於西壁, 則是於君臣父子間, 又無序也。’ 乃取筆, 書以示臣曰: ‘君臣無序, 父子失倫。’ 臣曰: ‘所謂使臣者, 乃指曰朝廷使臣也, 而特文不顯耳。 殿下敬大人至矣, 世子安有不敬之理乎? 且此儀註, 非世子所自制也, 禮曹據古事, 而爲之者也。 然則世子之坐, 何以爲之?’ 天使曰: ‘俺等坐北壁, 世子坐於東壁, 可也。’ 云, 其言果似合禮。" 洪鱗曰: "昨昨天使之言, 雖如彼, 昨日世子宴享之時, 待之甚恭, 至於享畢出來之時, 天使出門, 勸世子乘轎, 世子辭曰: ‘此禮, 殿下之所爲也。 吾何敢爲?’ 天使聞之, 嗟嘆不已。 大抵行事當禮, 則中原人甚喜之。" 安老曰: "如遠接使等, 行禮恭謹, 則亦甚喜之。 且議政府、六曹請宴時, 位次甚難。 西壁, 乃殿下之所坐也, 群臣不可坐也; 東壁, 又尊於西, 亦不可坐也。" 上曰: "先稟于天使爲當。" 安老曰: "雖問之, 而猶恐難定也。" 洪鱗曰: "天使坐北壁, 群臣坐東壁何如?" 安老曰: "漢江之遊, 亦許東壁矣。" 上曰: "宗親府、議政府、六曹, 皆爲請宴, 則恐其久留也。 兼行而名之曰, ‘宗宰請宴。’ 云, 則何如?" 安老曰: "兼行至當。 且天使若欲不受宴, 則不必强請也。 一日之留, 其費甚多矣。 且於漢江見之, 各司官員, 徒爲紛擾, 不任其事, 甚不稱天使之意, 至爲不當。" 上曰: "已令治罪矣。" 上又曰: "今日請宴時, 天使若請觀武才, 則當爲之也, 我國不必先請也。" 安老曰: "彼若不請, 則我國固不可先請也。 且天使未入宴之時, 預請觀武才, 則容或有之, 豈可已赴宴, 而請之哉? 頃於濟川亭, 亦設貫革, 而天使曰: ‘今日風亂, 不須射也。’ 云。 且贈以弓矢, 天使撫玩良久, 甚有喜色。" 洪麟曰: "此天使甚喜雜戲。" 安老曰: "其日於江上, 天使好打投壺, 江山亦不觀賞也。 且前於祈順天使來時, 開城府分送妓女於閭閻, 亂作絲竹之聲, 天使聞而樂之, 《朝鮮賦》, 亦有 ‘春風酒旆, 夜月管絃’ 之語, 以此或爲故事。 昨昨於漢江之遊, 亦令妓工, 若爲觀光之人, 而見形於江上, 有妓七八, 會于一處, 或舞或歌, 天使見而問之曰: ‘此何等人耶?’ 臣答曰: ‘此乃閭閻之人也。’ 天使曰: ‘此大平氣象也。’ 且設宴之初, 女樂將入陳, 天使曰: ‘今此斯文之會, 何用女樂爲?’ 然而女樂旣入, 天使樂之, 令少妓獨舞, 天使注目良久, 及他妓遞舞, 天使曰: ‘可仍令前妓連舞也。’ 西壁宰相, 有顧見女樂者, 天使笑曰: ‘何爲耽視妓舞, 而不與俺等言乎?’ 如此戲言不絶。" 安老仍以改宗系單子, 展于上前曰: "前者李時爲禮部尙書時, 累次奏請矣。 今爲閣老, 監修《大明會典》, 而上使爲其郞官。 今以此單子, 贈上天使, 使之齎還, 以示李時無妨。" 上令中官, 取其單子, 覽訖曰: "以李仁任李仁人者何耶? 出自中原乎? 出自我國乎?" 安老曰: "中原語音, 仁與任音相似, 故如此耳。" 上曰: "如此則其音同而誤傳, 亦可分明言之也。" 洪鱗曰: "今聞上使製詩, 書于唐扇二柄, 欲獻于殿下, 洪謙持其扇, 以示館伴也云。" 安老曰: "洪謙解文, 故天使所製詩句, 時時誦傳也。" 上曰: "天使來此, 若欲投壺, 則不可不預備也。 卽出弓房投壺, 而令訓鍊院官員, 尺量矢度可也。 且於宗親、朝官中能投壺者, 預選七八人以待之。"


  • 【태백산사고본】 42책 84권 20장 B면【국편영인본】 18책 45면
  • 【분류】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