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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83권, 중종 32년 2월 20일 기사 4번째기사 1537년 명 가정(嘉靖) 16년

홍문관 부제학 성윤 등이 불교가 흥하게 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상차하다

홍문관 부제학 성윤(成倫) 등이 상차하기를,

"엎드려 생각하건대 가법이 바르고서야 치화(治化)에 근본이 있고, 이단이 없어지고서야 오도가 일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어찌 가법을 무너뜨리고 이단을 받들고도 치화를 가져오고 오도를 밝힐 수 있는 자가 있겠습니까. 화장사에서 부처를 공양한 일이 이미 내지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면 누가 전하께서 모르셨다 하겠으며, 혹 모르셨다 하더라도 누가 가법이 엄하다고 하겠습니까. 위에서 숭상하면 아래에서는 반드시 그림자처럼 따르는 법입니다. 내지가 한 번 내려지자 백성들의 미혹이 더욱 심하여, 앞 다투어 숭상하고 선동하고 꾀어서 바람에 쏠리고 물결에 흔들리는 듯하니, 이 때를 놓치고 누르지 않으면 막기 어려운 형세가 될 것입니다. 오도와 이단이 소멸하고 신장하는 기틀이 참으로 여기에 있으니, 식견있는 사람이 듣고 본다면 누가 한심해 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전하께서 마음 쓰실 곳인데, 통렬히 고치신다고는 아직 듣지 못하였고, 다만 시사를 멈추고 허물을 살피는 것으로 사람들이 바라는 바를 위안하여 답하려고 하십니다. 임금이 잘못이 있으면 마땅히 날마다 어진 사대부를 만나 시비를 논란하여 곧바로 회복하여야 합니다. 시사를 멈추는 것이 어찌 허물을 살피는 실제가 되겠습니까. 새로 세운 절이 왕성(王城) 곁에 가까이 있으니 또한 내지가 향하는 바를 헤아려서 세운 것이 아닌지 어찌 알겠습니까. 그 하는 짓을 받아들이고 빨리 없애지 않으면 더욱 성하여 억제하기 어려워져서 슬기로운 사람이 있더라도 그 뒷일을 잘 처리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정(邪正)이 흥성하고 쇠퇴하는 꼬투리가 이미 뚜렷한데도 말하는 자가 느릿하여 성실하게 논하지 않으니, 신들은 통탄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내치를 엄하게 하여 가법을 바루고, 이단을 물리쳐 오도를 밝히소서. 그러면 더 없이 다행하겠습니다."

하였는데, 밤 초고(初鼓)086) 에 상이 이 차자를 정원에 내리며 이르기를,

"이 차자 끝에 ‘느릿하여 논하되 성실하지 않다.’ 한 것은 누구를 가리켜 말한 것인가. 대간을 가리켜 말한 것인가? 홍문관에 물어서 아뢰라."

하자, 곧 정자(正字) 윤인서(尹仁恕)를 불러서 전교의 뜻으로 물었더니 ‘이단이 성쇠하는 기틀은 매우 큰데, 대간이 논한 것이 시원하지 않으므로, 차자 끝에 한 말은 대간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하니, 홍문관에 답하였다.

"화장사에서 부처를 공양한 일을 내가 처음에는 몰랐으나, 이단이 성쇠하는 기틀이 크다. 당초에 나도 놀랐으므로, 시사를 멈추고 허물을 살피려 하였다. 이제 차자에 시사하지 않는 것을 그르다고 논한 것을 보니, 또한 마땅하다. 절을 새로 세운 일은 요즈음 법사의 공사를 보니, 빌어먹는 중 세 사람이 인왕산(仁王山) 밖에 초막을 만들었는데 지극히 놀라우므로 법사가 이미 통렬히 다스렸다. 차자 끝에 대간을 논박한 말이 있으니, 대간은 갈아야 할 형세이다."


  • 【태백산사고본】 42책 83권 61장 A면【국편영인본】 18책 31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상-불교(佛敎) / 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 [註 086]
    초고(初鼓) : 밤을 5등분한 첫 시간. 계절에 따라 조금 빨라졌다 늦어졌다 하고 길이도 달라지나 대개 술시(戌時)에 해당하며, 지금 서울의 표준시로 오후 7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의 약 두 시간이다. 예전에는 북을 쳐서 밤 시각을 알렸다.

○弘文館副提學成倫等上箚曰:

伏以家法正, 然後治化有本; 異端去, 然後吾道可興。 豈有毁家法、奉異端, 而能致治明道者哉? 華藏供佛之擧, 旣云內旨, 則孰云殿下之不知? 如或不知, 孰謂家法之嚴乎? 上之所尙, 下必影從。 內旨一下, 民惑滋甚, 爭尙扇誘, 風靡波蕩。 失今不抑, 勢將難遏。 吾道、異端消長之機, 實在於此, 有識聞見, 孰不寒心? 此正殿下動念之地, 而未聞痛革之擧, 徒以停視事省愆, 慰答人望。 人君有過, 當日接賢士大夫, 論難是非, 不遠而復。 停視事, 豈足爲省愆之實哉? 新創佛寺, 近在王城之側, 亦安知不揣內旨之所向而爲之哉? 若聽其所爲, 而不急去之, 則滋蔓難制, 而智不能善其後矣。 邪正盛衰之端已判, 而言者悠悠, 論而不誠, 臣等竊痛焉。 伏願殿下, 嚴內治以肅家法, 闢異端以明吾道, 不勝幸甚。

夜初鼓, 上以箚字, 下于政院曰: "此箚末所謂言者悠悠, 論而不誠者, 指何人而言耶? 指臺諫而言耶? 問于弘文館以啓。" 卽招正字尹仁恕, 以傳敎意問之, 則曰: "異端盛衰之機甚大, 而臺諫之論不快, 故箚末之言, 指臺諫而發也。" 答弘文館曰: "華藏供佛之事, 予初不知也, 然異端興衰之幾大矣。 當初予亦驚駭, 故欲停視事而省愆也。 今見箚子所論, 以不視事爲非也, 亦當矣。 新創佛寺事, 近觀法司公事, 有乞糧僧三人, 於仁王山外, 造成草幕, 至爲駭愕, 故法司已痛治之矣。 箚末有駁臺諫之言, 臺諫, 勢當遞之。"


  • 【태백산사고본】 42책 83권 61장 A면【국편영인본】 18책 31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사상-불교(佛敎) / 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