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루각에 친히 나아가기로 하다
김익수에게 전교하기를,
"보루(報漏)의 일은 조종조에서도 중히 여겼다. 그래서 세종이 흠경각(欽敬閣)에서 몸소 지휘하신 것은 천문(天文)과 관계되기 때문이었다. 지금 새로 만든 것이 인정과 파루에 모두 절로 울린다고 하는데 이는 조종조에도 없던 것이니, 내가 어찌 보고싶지 않겠는가. 꼭 이런 이유로만 가보려는 것은 아니고, 오는 24일은 마침 동교(東郊)에 거둥할 일이 있으니, 도중에 동궁(東宮)에 들러 잠시 서연청(書筵廳)에 머물려고 한다. 그래서 서연청을 둘러본 다음 동교로 향할까 하는데, 이것이 안 될 것은 아니겠지만 일반적인 놀이나 관람의 유가 아니니 영상과 좌상 두 제조에게 하문해 보라."
하였다. 김근사와 김안로가 의논드리기를,
"혼천의(渾天儀)는 옛 제왕들이 천상(天象)을 헤아려서 절기를 알려주던 기구이고 연루 갈오(蓮漏渴烏)도 역대로 있어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절로 울려서 시간을 알리는 제도가 있었다는 말은 못들었습니다. 그런데 세종께서 거룩한 슬기로 특별히 창작하신 것으로, 만든 의도는 옛 조상들의 뜻과 같지만 그 방법의 신묘함은 어느 때보다 훌륭하였습니다. 이것은 시간만을 편리하게 알려줄 뿐 아니라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의 일에 부지런하다는 의의도 내포되어 있으니 참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도리에 관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옛 제도가 세월이 오래됨에 따라 와전(訛傳)되어 진실을 잃을까 두려워서 다시 새 보루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거룩하신 세종께서 만드신 제도의 오묘함을 후세에 길이 전하는 것이 바로 그 뜻을 이어받고 발전시키는 참뜻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장난감이나 구경거리가 아니고 또한 궐내에 있으니, 상께서 친히 가보셔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니, 전교하였다.
"오는 24일 선인문(宣仁門)으로 들어가 서연청에서 잠시 머물렀다가 보루각의 자격(自擊) 절차가 갖추어진 다음에 내시를 거느리고 들어가 보겠다. 그때에 백관은 장막(帳幕)에 물러가 있으라. 내가 두루 돌아본 뒤 서연청으로 다시 돌아가겠다. 그러고 나서 문밖이 정리되거든 어가(御駕)가 동교로 향해 떠나게 하라."
- 【태백산사고본】 41책 82권 31장 B면【국편영인본】 17책 678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과학-역법(曆法)
○傳于金益壽曰: "報漏之事, 祖宗亦重之, 故世宗於欽敬閣, 親自指揮者, 以其關於天文也。 今聞新制作人定罷漏, 皆爲自擊。 此則雖祖宗朝, 未有之制, 予亦豈不欲觀之乎? 雖非爲是往觀, 而來二十四日, 適有東郊之幸, 歷入少留於東宮, 書筵廳親見後, 發向東郊。 玆非不可, 而又非他遊觀之類也。 問于領相、左相兩提調處。" 金謹思、金安老議: "璿璣渾儀, 古昔帝王, 所以在天象、授人時者也。 蓮漏、渴烏, 歷代有作, 而未聞有自擊之制。 報漏之設, 在世宗朝, 創自聖智, 別出新規, 其制作之意, 實祖古昔, 而其神妙高出百代。 非特節晝夜。 正天時而已, 因是而敬天勤民, 實有關於治道。 舊制年久差訛, 深恐寢以失眞, 更作新閣, 使聖祖待制之妙, 永傳于後, 亦繼志述事之美意也。 此非遊豫戲玩之具, 其在禁中, 親臨視之, 恐無妨也。" 傳曰: "來二十四日, 入自宣仁門, 少留於書筵廳, 俟其報漏閣自擊節次咸備, 然後率內侍入觀, 而百官退在于帳幕, 覽遍後, 還出于書筵廳, 待其門外擧動整齊, 然後當動駕向東郊矣。"
- 【태백산사고본】 41책 82권 31장 B면【국편영인본】 17책 678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과학-역법(曆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