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폐단에 관한 전교. 김안로 등이 올린 인재 양성의 여섯 가지 조목
성균관 지사(成均館知事) 김안로(金安老), 동지사(同知事) 유보(柳溥)와 김인손(金麟孫), 대사성(大司成) 원계채(元繼蔡)가 아뢰기를,
"신들은 교육하는 직책에 있으면서 이렇다 할 공적도 없는데다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여, 근래에는 유생들이 전혀 학교에 나오지 않을 뿐더러, 나오는 자가 있어도 대개는 글도 안 읽고 글짓기도 안 합니다. 때문에 경학(經學)과 사장학(詞章學)이 다 함께 없어져가고 있어 온갖 수단으로 바로잡으려고 애써 보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것이 모두 사장(師長)이 된 신들이 못난 탓입니다. 그런데도 무릅쓰고 있는 것이 매우 미안스러우니, 신들을 체직시켜 주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근래에 유생들이 학교에 잘 나오지 않아서 사장학과 경학이 다 예전같지 못하다는 것은 나도 염려가 되어 경연(經筵)에서 논란하였으나, 이것은 온 조정이 같이 염려할 일이다. 저번의 권장 절목(勸奬節目)에서도 벌써 상세한 방안이 제시되었거니와, 근일에 또 전강(殿講)·정시(庭試)를 보이려 하고 있으나 날씨가 추워서 일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시행하지 못하는 것이다. 유생이 학교에 잘 나오지 않을 뿐이 아니라, 학관(學官)도 해이해져서 잘 가르쳐 주지를 않는다. 그러므로 저번에 대간이 아뢴 대로 학관을 파직시켜 연말의 서계(書啓) 때에도 서용하지 않은 것은 그를 징계하는 까닭에서였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관학(館學)의 학관들이 부지런히 가르치지 않은 소치이지, 관각(館閣) 당상관들의 잘못이 아니다. 스승이 비록 가르쳐주고 싶어도 유생이 스스로 즐겨 배우지 않는다면, 이는 종아리를 때리고 겁을 주어서 될일도 아니다. 저번에 마련한 절목 외에 또 시행할 만한 일이 있는지 모르겠다. 배우는 자의 폐단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한심하다 할 만하다. 다른 관원으로 대신한다 해도 또 어찌 경들보다 낫겠는가. 사직하지 말라."
하였다. 김안로 등이 아뢰기를,
"이제 성상의 분부를 받들고 매우 감격하였습니다. 신들이 인재를 양성하는 무거운 임무를 띠고서 하는 것도 없이 구차히 지내고 있으므로, 저번에 따로 절목을 세워 권장하여 보았지만, 여전히 이와 같습니다. 성상께서 이처럼 심한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때문에 와서 아뢰는 것입니다. 그리고 학생의 일은 말로 아뢴다면 전달되는 사이에 행여 빠뜨린 게 있을까 싶으니 대략 조목을 만들어 아뢰겠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김안로(金安老) 등이 올린 조목 【안로가 본래 이 일을 아뢰기 위하여 먼저 사피하였다.】 은 이러하다.
"첫째, 사장(詞章)과 경술(經術)이 본래 경중은 있습니다. 그러나 경전(經傳)의 공부를 보조함에 있어 문장이 아니고는 되지 않으며, 그 체(體)와 용(用)이 서로 작용을 하므로, 어느 하나를 빼놓아도 안되며, 또 갈래를 지어 둘로 여겨도 안됩니다. 게다가 교린(交隣)과 사대(事大)의 교령(敎令)과 사명(辭命)은 정사를 보조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며, 또 남의 문장을 봄에 있어서도 이보다 더 밀접한 것이 없습니다. 지난날에 더러 사부(辭賦)로 사람을 취한 것도 어찌 이유가 없었겠습니까. 또 문장을 배우는 방법에도 그 순서가 있어야 되기 때문에 처음 배우는 선비는 먼저 사(詞)와 부(賦)를 읽혀서 문리(文理)를 안 뒤에야 대책(對策)을 시험하여 시무(時務)를 통달합니다.
근래에 공부하는 자들이 과거를 보기에만 급하여 입에 젓 냄새가 나는 아이도 배우는 방법은 알지 못한 채, 먼저 대책을 익혀 요행을 바랍니다. 대저 대책이란 것도 흔하게 쓰는 체양(體樣)이 있어 표절하기가 쉬우므로 이전 사람의 진부한 말들을 주워모아 체양에 맞추어 얽어서 과거에 합격하려 하고, 문장에 대한 공부는 전폐한 채 익히지를 않습니다. 관중(館中)의 모든 과제(課製)나 정시(庭試)에 있어서도 조금이라도 등격(等格)에 맞는 자가 전혀 없으니 이는 부박(浮薄)한 무리 【기묘 사화 때의 사람들을 가리킴.】 가 자신들이 할 수 없음을 알고서, 사장은 말단이므로 배울 것이 못 된다고 주장하여 온 세상이 휩쓸린 것입니다. 오늘날 같은 또래 가운데 더러 문장으로 공부를 하는 자가 있으면 서로 조소(嘲笑)를 하니, 그 유폐(流弊)의 심각함이 오늘날에 이르러 더욱 고질이 되었습니다. 이러니 한심함을 견딜 수 없습니다. 올해 이후로는 식년시(式年試) 외의 별과 초시(初試)는 모름지기 사나 부 등을 이것 저것 2∼4편 씩 시험보이고 전시(殿試)에서만 간간이 대책을 넣어서 그 유폐를 바로잡으소서.
둘째, 경전(經傳)은 도(道)를 담는 도구이니 구두만 익히고 문의(文義)를 강론하지 않으면 깊은 뜻을 통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예전의 학자는 음석(音釋)과 훈고(訓詁)를 모두 스승에게 배웠고 모름지기 서로 모여 강론하고 스승에게 나아가 질문을 하여 학문을 일치시킨 뒤에야 강격(講格)에 합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성균관이나 사학(四學)에 들어가 공부하기를 좋아하였습니다.
근래에 공부하는 자들은 서로 강론을 하거나 질정을 받지 않고 각기 혼자서만 하며, 공부가 성숙하였다고 하는 자도 짧은 문장이나 외어 말이나 잘하고 강답(講答)하는 것만 일삼아 전(傳)과 주(註)를 찢어 나누고 구절대로 해석을 하여 요점만 간추려 읽고 문장 전체는 읽지 않습니다. 또 전체의 뜻을 통하여 아는 것은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강과(講科)에서 취하는 것이 대개 이러하여 이것이 점점 오래되자 이제는 강관(講官)으로서 듣고 있는 글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는 자도 적으니, 어떻게 선비의 학문을 바로잡고 이 폐습을 고치겠습니까. 지금 이후로는 강과에서 외는 것만을 보지 말고 모름지기 글의 뜻을 통달한 자를 뽑을 것이며, 강관도 부디 학문이 정숙(精熟)하고 일찍이 교수의 경력이 있는 자로 선발하여 참석시키고 경전의 뜻을 해석함이 옛날 합격한 자만 못한 자는 뽑지 말게 하소서.
세째, 식년시(式年試) 이외의 모든 별과는 정해진 규칙이 없습니다. 조종(祖宗) 때에는 문학을 하는 선비가 울창한 숲처럼 많았기 때문에 정원이 더러는 3백에서 6백 명까지 되어서 많은 사람을 뽑으려 했고, 그 중에는 요행으로 합격한 자도 있었지만 평소에 화려한 명망이 있던 사람이 대다수였습니다.
근래에는 선비의 풍습이 게을러지고 비루하여 온 세상이 무식하여 큰 과거를 보일 때면 선비는 구름처럼 모여들지만, 지난날과 같이 동료 가운데서 우뚝 뛰어난 자를 보지 못합니다. 선비의 학풍은 이와 같은데, 정원의 수효는 예전의 규정과 같아서 반드시 그 수효를 채우려 하기 때문에 체제와 격식이 맞지 않은 자도 함께 취하여 간신히 그 정원을 채웁니다. 상께서 친림(親臨)하여 책문을 시험보일 때 대과(大科)에 장원한 자도 글이 조리를 이루지 못하여 남의 웃음을 사니 이는 과거를 천시하게 만들어 국가의 체모를 욕되게 함이 너무 심합니다. 이것으로 보면 많이 뽑고자 하는 것이 혼잡하여 정선을 기하기 어려운 폐해를 끼치기만 하고 선비를 권장하고자 하는 것이 공부를 폐지하고 요행수를 넘보는 문만을 열어주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이후부터는 별과 초시에 부디 정원을 정하지 말고 여러 차례에 걸쳐 모든 편(篇)을 시험하여 등격이 우수한 자만 뽑고 그렇지 못한 자는 탈락시켜 혼잡하고 속이려는 폐단이 없게 하소서.
네째, 서도(書徒)291) 의 법은 근일에 학생들이 공부를 하지 않는 폐단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식년시(式年試)와 대거 별시(大擧別試) 외에는 모두 서도에 의거 응시를 허락하였으나, 해마다의 별시를 모두 대거로 하였으므로 서도의 법을 시행할 수 없게 되어 형식적인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 이후로는 대거 별시에도 서도를 함께 반영시키게 하소서. 그리고 흥학조(興學條) 안의 모든 사항을 하나하나 시행하여 계속 오래오래 지켜 게을리하지 않는다면 아마 유익할 것입니다.
다섯째, 생원(生員)과 진사(進士)의 시험은 서도(書徒)에 의거 원점(圓點)을 쳐서 응시시키기 때문에 더러 성균관에 나오는 자도 있습니다. 그러나 유학(幼學)은 여섯달마다 있는 도회(都會)에서만 서도를 반영할 뿐, 그 외에는 다른 법이 없기 때문에 사학(四學)의 생도들이 해이해져서 학관에 나오지를 않습니다. 지금 이후로는 서울이나 지방을 막론하고 서도에 의거 원점을 정하여 향시(鄕試)나 한성시(漢城試)에 응시할 수 있게 법을 정하되 향시는 별도로 빈공(賓貢)292) 의 법을 엄격히 하여 공부하는 자를 권장하소서.
여섯째, 학문을 일으키고 인재를 장려하는 것은 오로지 조장(條章)만으로는 되지 않으므로 고무 진작시키는 방도를 조장 밖에서도 찾아야 합니다. 성상께서는 오직 성의를 다하셔야 합니다."
전교하였다.
"아뢴 절목(節目)은 매우 합당하다. 아뢴 대로 시행하라."
- 【태백산사고본】 40책 80권 63장 A면【국편영인본】 17책 625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丁酉/成均館知事金安老、同知事柳溥ㆍ金麟孫、大司成元繼蔡啓曰: "臣等職帶養育之地, 無所建明, 不能稱職, 而近來儒生, 專不就學。 雖有就學者, 類皆不讀、不製, 故經學詞章, 俱爲掃地。 百計欲矯, 已無所容其力矣。 是皆臣等爲師長, 無狀之過也。 徒爲冒處, 至爲未安。 請遞臣等。" 傳曰: "近來儒生等, 不樂就學, 詞章經學, 皆不如古。 予亦軫念, 而論難於經筵, 此朝廷所共慮也。 前者勸奬節目, 旣已詳盡矣, 近日, 又欲爲殿講、庭試, 而日氣寒凍, 不得視事, 故未能爲矣。 非但儒生, 不樂就學也, 學官慢不敎誨, 故前因臺諫所啓罷之, 而歲抄書啓時, 亦不敍用, 所以懲戒之也。 此皆館學下官, 不勤敎誨之所致, 非館閣堂上之失也。 師長雖欲敎訓, 儒生自不樂就, 非可以箠楚驅脅之也。 未知前日所磨鍊節目之外, 又有可行之事耶? 學者之弊, 至於此極, 可謂寒心。 雖使他員以代之, 又豈加於卿等乎? 勿辭。" 安老等啓曰: "今承上敎, 至爲感激。 臣等帶作成重任, 苟延日月, 無所作興。 前者雖別立節目, 以爲勸奬, 猶爲如此。 自上何以知若是之甚也? 是以來啓矣。 且學者之事, 以言啓之, 則轉傳之間, 恐或脫漏, 卽當略撰條列以啓。" 傳曰: "知道。" 安老等條列。 【安老本欲啓此事, 而先爲辭避。】 其一曰: "詞章、經術, 固有輕重, 然羽翼經傳, 非文不可。 其體用相須, 不可闕一, 亦不可岐而爲二也。 況交隣事大, 出敎令、飾辭命, 羽儀黼黻之用, 最爲關重, 而觀人文辭, 莫近於是。 在昔或以辭賦取人者, 豈無所謂? 且學文之術, 要有其序, 故初學之士, 始習詞賦, 以就文理, 然後乃試對策, 以通時務。 近來學者, 急於進取, 乳臭稚童, 學不知方, 先習試策, 以窺僥倖。 夫對策, 亦有俗樣體模, 可易剽竊。 掇拾前人陳腐, 依樣倣襲, 以規取科第, 詞藻之事, 頓廢不習。 凡於館中課製、或庭試, 稍合等格者, 亦絶無, 此乃浮薄之徒, 【指己卯之人。】 自視不能, 唱之以詞章末節, 不可學, 一世靡然。 今雖有儕流間, 或以文墨爲事者, 相與嘲笑, 其流弊之深, 至于今尤痼。 曷勝寒心? 今後式年外, 別擧初試, 須雜試詞賦等數四篇, 唯於殿試, 間以策問, 以矯流弊。" 其二曰: "經傳, 載道之具。 只習句讀, 不講文義, 無以通其奧趣, 故古之學者, 於音釋、訓誥, 皆有師授, 且須群居講習, 就師質問, 以同其學, 然後可以中講格, 故樂就館學。 近來學者, 不相師習, 各私其學, 其謂熟習者, 亦記誦小章, 以口便講答爲事。 其傳註, 分裂句解, 只抄要釋, 不讀全文, 又不要通解其義, 而科講所取, 率皆類是, 寢以積久, 講官之能解其聽者亦少, 其何以正士學, 而革此習乎? 今後講經, 不必專於記誦, 須取通達文義者, 且講官須擇精熟, 曾經師授者, 參之以黜釋義之不如舊格者。" 其三曰: "凡式年外別擧, 非有定規。 其在祖宗朝, 文學之儒, 蔚然林立, 故解額或三百、六百, 要在多取。 其間雖有幸中, 碩材名儒, 素著華聞者居多。 近來士習偸鄙, 擧世貿貿, 雖當大擧, 縫掖雲集, 未聞有人能雄鳴儕流, 如往日者也。 如是而解額之定, 猶倣舊規, 必欲取盈, 故雖體格不具, 俱收幷取, 苟充其額, 及臨軒親策, 擢魁大科者, 文不成理, 取笑於人。 其賤科第, 而辱國體甚矣。 以是而言, 其欲廣取, 徒貽混雜難精之害; 其欲勸士, 徒啓廢業覬幸之門。 今後別擧初試, 不須定額, 累試諸篇, 只取優入等格者, 其不中格者皆黜, 使無混雜苟僞之弊。" 其四曰: "書徒之法, 所以矯近日不學之弊, 故式年及大擧別試外, 皆以書徒許赴, 而頻年別試, 皆以大擧, 其書徒之法, 無施措之地, 只爲文具。 今後別試, 竝考書徒, 凡興學條內事件, 逐一行之, 無少間輟, 以之悠久不怠, 則庶有益也。" 其五曰: "生員, 進士, 以書徒爲圓點, 故或有就學者, 幼學, 則唯六月, 都會考書徒, 其他則無法, 故四學生徒, 怠散不就。 今後幼學, 通京外, 亦以書徒, 定其圓點, 許赴鄕、漢城試, 以爲定式, 鄕試, 別嚴賓貢之禁, 以勵學者。" 其六曰: "興學、勵材, 不可專以條章, 其鼓舞振作之道, 亦於條章之外求之, 唯在聖上致誠盡意而已。" 傳曰: "所啓節目至當。 如啓行之。"
- 【태백산사고본】 40책 80권 63장 A면【국편영인본】 17책 625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