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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77권, 중종 29년 7월 22일 정해 4번째기사 1534년 명 가정(嘉靖) 13년

송인수를 경상도 사천에 유배시키다

송인수(宋麟壽)경상도 사천(泗川)에 유배시켰다.

사신은 논한다. 인수채무택(蔡無擇)과 결탁하여 김안로(金安老)에게 붙었다가 그 뒤에 사당(邪黨)임을 깨닫고 배반했다. 안로가 심히 그를 미워하여 제주 목사로 임명해 쫓아내어 인수가 그 고통을 참을 수 없어 고을을 버리고 올라왔다. 이 때문에 논죄했는데 해당된 율보다 엄한 율로 다스리니 당시 사람들이 이를 마음아파했다. 당초 안로가 호오(好惡)의 뜻을 밖으로 내보이고 또 기묘 사화(己卯士禍) 때 파산(罷散)된 사람들을 서용(敍用)해야 한다고 부르짖었는데, 이는 실제로는 그의 본 마음은 아니었고, 이렇게 함으로써 사림(士林)들의 환심을 사려는 수작이었다. 인수는 바로 이 술책에 넘어가 그에게 귀부(歸附)했던 것이었다. 당시에 어떤 사람이 묘수좌(猫首座)의 설화를 지어내어 그를 풍자했는데 이때에 이르러서 과연 들어 맞았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옛날에 늙은 고양이가 있었다. 발톱이나 어금니도 모두 못 쓰게 되어서 쥐를 잡아먹는 재주도 이미 다했다. 쥐 잡아먹을 계책이 서지 않자 귓속의 털없는 부분을 뒤집어 내어 머리에 덮어쓰고 다니며 부르짖기를 ‘나는 이제 자비심을 발하여 삭발하고 중이 되었노라. 어떻게 부처님을 모시고 함께 정진하는 공부를 지어갈 수 없겠는가?’ 하였다. 쥐들은 그러나 여전히 두렵고 무서운 마음이 들어 감히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러다가 머리를 깎은 것 같은 모양을 엿보고 나서 크게 그 말을 믿게 되어 나와서 응접하고는 늙은 고양이를 웃자리로 추대하여 묘수좌(猫首座)라 하였다. 수좌는 제일 상석에 자리잡고 쥐들은 대소의 차례대로 서서 법석(法席)의 모임을 갖게 되었다. 빙둘러 한 바퀴 돌 즈음에 어린 쥐의 행렬이 수좌의 입 앞에 당하고 앞의 행렬이 부처님 뒤편 보이지 않는 곳에 이르게 되면, 잽싸게 후려잡아 냉큼 삼켜 버리곤 하였다. 이렇게 해서 무리들이 날로 줄어들자 어떤 자는 수좌의 소행이라고 의심을 하게 되었는데, 이에 대해 철석같이 믿게 된 자들은 성을 내기까지 하면서 그렇지 않다고 우겨대었다. 그러다가 급기야 수좌의 똥 속에 쥐의 터럭이 있는 것을 보고는, 그제야 늙은 고양이의 술책에 떨어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이 얘기의 작자는 사림(士林)을 쥐에 비유하려 했던 것은 아니고, 다만 그 뜻을 취해서 비꼬았던 것이니, 안로를 고양이에 비유했다고 하는 데 대해서는 그 뜻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사실 옛날에도 이묘(李猫)가 있었던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39책 77권 48장 B면【국편영인본】 17책 525면
  • 【분류】
    사법-행형(行刑) / 역사-편사(編史) / 인물(人物)

○流宋麟壽慶尙道 泗川

【史臣曰: "麟壽結諸蔡無擇, 付於安老, 後知其邪黨, 而背之。 安老甚疾惡, 黜爲濟州牧使。 麟壽不能耐苦, 棄邑而出來。 因此論罪, 出於律外, 時人痛之。 當初安老外示好惡之意, 又唱說當敍用己卯罷散之類。 是實非其本心, 欲因此爲取媚於士林之謀。 麟壽陷於其術, 而歸附之, 時人有以猫首座之說, 譏之者, 至是果合焉。 其說曰: ‘昔有老猫, (瓜牙)〔爪牙〕 皆病, 搏噬之才已盡, 無計捕鼠。 飜出耳內無毛之處, 冒之於頭而行, 呼唱曰: 「我則今已發慈悲之心, 削髮爲僧, 安得與大象, 共做精進之功乎?」 群鼠然猶畏服, 莫敢出矣, 及窺見髡頭之狀, 大信其言而出應, 推尊老猫, 爲猫首座。 首座居首, 鼠輩以大小之次而立, 爲法席之會。 繞旋之際, 細鼠之行, 當首座之口。 前行及佛後障蔽之處, 輒玃呑之。 以是徒象日縮, 或疑首座之所爲, 而信惑者, 至於發怒, 而言其不然。 及其考視首座遺(矢)〔失〕 中, 有鼠毛, 然後知其陷於老猫術中。’ 云。 爲此說者, 非以士林比鼠, 但取其意而譏之。 若以安老比猫, 則不是無意, 古亦有李猫焉。"】


  • 【태백산사고본】 39책 77권 48장 B면【국편영인본】 17책 525면
  • 【분류】
    사법-행형(行刑) / 역사-편사(編史)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