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실록76권, 중종 29년 1월 21일 무오 2번째기사
1534년 명 가정(嘉靖) 13년
평안도 절도사 방윤 등을 인견하다
평안도 절도사 방윤(方輪)과 충청도 관찰사 정옥형(丁玉亨)이 배사(拜辭)하니 상이 인견(引見)하고 일렀다.
"백성을 구휼하는 것이 중요하며, 전최(殿最)도 신중을 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학교를 일으키고 농상(農桑)을 힘쓰는 등의 일도 힘써 조치하라."
사신은 논한다. 이보다 앞서 심정(沈貞)과 이항(李沆) 등이 뜻을 이룬 뒤로, 무릇 수령으로서 청렴하고 신중한 이가 있으면 지목하여 조광조의 남은 풍습이 있다고 배척하여 제거해 버리므로 수령들이 백성을 구휼하는 것은 힘쓰지 않고 오로지 횡렴(橫斂)만을 일삼으며 대신에게 아첨하여 붙좇으면서, 학교를 일으키고 농상(農桑)을 힘쓰는 것이 무슨 일인가도 몰랐다. 더러는 대신의 뜻에 아첨하여 따르면서 죄 없는 사람을 억울하게 죽이는 자도 있었다. 나쁜 풍습이 쌓여 구제하기 어려운 형세가 되어서 식견이 있는 사람은 그것을 근심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상도 그 폐단을 알고 이러한 하교가 있었다.
- 【태백산사고본】 38책 76권 56장 A면【국편영인본】 17책 495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왕실-국왕(國王) / 역사-편사(編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