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삼도의 진구책과 어염에 대해 논의하다
영의정 장순손(張順孫), 좌의정 한효원(韓效元), 우의정 김근사(金謹思)가 아뢰기를,
"신들이 일후(日候)를 보건대 동풍이 연속하여 부는데도 전혀 비가 내릴 조짐이 없어 밀과 보리의 이삭이 여물지 않아서 생민이 이미 의뢰할 데가 없어졌습니다. 금년에도 만약 추수를 하지 못하면 하삼도(下三道)는 곡식을 옮겨다 진구(賑救)할 방책이 없으므로, 신들은 어떻게 조처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전에는 곡식을 사 온 일이 있었으나 지금은 곡식이 귀하여 사기도 어렵습니다. 살아갈 계책을 백방으로 생각해 보아도 방도가 나오지 않으니 경비를 줄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전에 은(銀)을 캐게 해서 세금을 받아들였었으나 중국(中國)에 들어가 쓰는 것을 금하기 위하여 중지하고 시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연에서 나는 것은 폐기한 채 쓰지 않을 수 없으니, 이제 은을 캐게 해서 세금을 받아들여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만약 중국에 가지고 가는 것을 금할 수 없어서 허가할 수 없다면, 서장관(書狀官)으로 하여금 일일이 조사해서 금지하게 하면 될 것입니다. 어염(魚鹽)의 이로움은 천하에 통행되는 것이므로 우리 나라 또한 어염을 판매한 예(例)가 있으니, 해조(該曹)로 하여금 별도로 마련(磨鍊)하게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그리고 각 고을에 장속(贓贖)한 면포 등의 물건은 양계(兩界)293) 에 나누어 보내는 것이 예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장속한 물건을 본도에 저장해 두고 그것으로 곡식을 사들여서 군자(軍資)에 보충토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또 듣기로는 밀과 보리의 이삭이 여물지 않았으므로 백성이 먹을 것이 없어 농사를 짓지 못하다고 하니, 이는 작은 일이 아닙니다. 송흠(宋欽) 【전라도 감사임.】 이 배사(拜辭)할 때 백성을 구휼하고 농사에 힘쓰도록 특별히 전교하시고 다른 도도 별도로 하유(下諭)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기를,
"금년 봄에는 소나기가 자주 내려 곡식이 조금 무성하였었다. 그러다가 근일에는 동풍이 연속하여 불면서 비가 올듯하면서도 내리지 않고 더위마저 극심하다. 금년에도 이러하면 경외(京外)의 저축이 바닥날 것이니, 장차 어떻게 구제할 것인지 심히 걱정스러워 음식이 목에 넘어가지 않는다. 경비를 감하는 것과 어염의 세는 마땅히 아뢴 대로 하라. 하삼도의 장속 면포는 그 숫자가 적지 않으니, 송흠이 내려갈 때 이것으로 곡식을 사도록 내가 하교하겠다. 각도에도 하유하도록 하라. 은을 캐게 하는 일은, 한번 그 폐단의 근원을 열어놓으면 지탱할 수가 없는 형세가 될 것이고 또 듣기로는 은을 캘 때에 군인을 모아 연(鉛)을 캐느라고 땅을 깊이 파고 들어가다가 압사하는 수도 있다고 한다. 은이 나는 곳이 많다고는 하지만 단천(端川) 한 곳뿐이다. 부경(赴京)하는 사신들도 역시 은은 금할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생사를 돌보지 않고 몰래 가지고 가기 때문에 금지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지금 세금을 바치게 하고 금지하지 않는다면 그 폐단은 끝내 막을 수가 없게 된다. 그리고 심연원(沈連源)이 ‘외방에는 버려진 아이가 많으니 거두어 기르는 자에게 영원히 키우도록 허락해야지 연한(年限)을 둔다면 누가 거둬 키우려 하겠는가?’ 하였는데, 이 일은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하였다. 장순손이 아뢰기를,
"버려진 아이를 거두어 기르는 것에 연한을 둔다면 반드시 거둬 키우려는 자가 없을 것이니, 마땅히 율문(律文)을 상고하여 다시 아뢰겠습니다. 은을 캘 때 압사할 폐단이 있다 하는 것은, 상의 분부가 지당하십니다. 다만 부경(赴京)하는 사람이 몰래 가지고 가는 것은 서장관이 철저히 조사한다면 금하는 것이야 무슨 어려움이 있겠습니까마는, 그 죄가 사형에까지 이르기 때문에 차마 가벼이 고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은을 캘 수 있는 곳은 많이 있으나 사람들이 모두 숨기고 사사로이 캐어 쓰고 있습니다. 신들이 아뢴 것은 생재(生財)의 방도이기에 아뢰는 것입니다."
하고, 한효원은 아뢰기를,
"신이 전에 함경도 관찰사로 있을 때 보았는데, 은을 캐는 일은 과연 상의 분부처럼 압사하는 폐단이 있었습니다. 또 다른 곳에서 은이 난다는 말을 듣고 그 근처 사람들을 추문(推問)하였으나 굳게 감추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형신(刑訊)까지 하면서 철저히 추문한 뒤에야 사실대로 공초(供招)하였고 캐어 보니 과연 은이 있었습니다. 전에 캔 곳보다 더 많았습니다만, 많은 백성들이 몰래 캐어 가므로 지금은 바닥이 났다 합니다. 이렇게 보면 은이 나는 곳이 한 곳뿐이 아닙니다. 단, 국금(國禁)이 이와 같기 때문에 캐지 못하는 것이지, 백성에게 캐서 팔게 한다면 캐기는 쉬울 것입니다."
하고, 장순손은 아뢰기를,
"국금이 비록 빈틈이 없다지만 부경하는 사신 일행 중에 은을 가지고 가지 않는 자가 없어서 함경도로 들어가는 부상대고(富商大賈)는 모두가 은 캐는 것을 업으로 삼는다 합니다. 신들은 생재의 방도가 없기 때문에 이렇게 아뢰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의 하교가 지당합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8책 75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17책 442면
- 【분류】광업-채광(採鑛) / 재정-국용(國用) / 재정-잡세(雜稅) / 군사-병참(兵站) / 구휼(救恤)
- [註 293]양계(兩界) : 함경도와 평안도.
○乙未/領議政張順孫、左議政韓效元、右議政金謹思啓曰: "臣等看日候, 東風連吹, 頓無雨徵。 兩麥旣不實, 生民已無賴矣。 今年若未有秋, 則下三道, 無推移賑救之策, 臣等未知何以爲之。 前有貿穀之事, 而今則穀貴難貿, 生財之道, 雖百計無由出矣。 蠲減經費何如? 前者欲採銀納稅, 而禁用於上國, 故止而不行。 然天之所生, 不宜廢而不用。 今許採銀納稅, 以補不足何如? 若以爲不能禁於赴京, 則使書狀官歷歷搜覓, 禁之可也。 魚鹽之利, 天下通行, 我國亦有魚鹽貿賣之例。 令該曹別爲磨鍊何如? 凡各官贓贖緜布等物, 分送兩界, 例也。 然今之贓贖, 藏置本道, 務令貿穀, 以補軍資何如? 且聞兩麥不實, 百姓無食, 不能耘耔云。 此非細事, 宋欽 【全羅監司。】 拜辭時, 恤民務農事, 別爲傳敎, 他道亦別下諭何如?" 傳曰: "今年春時, 驟雨頻下, 禾穀稍盛, 近日東風連吹, 欲雨不雨, (早)〔旱〕 氣尤甚。 今年如此, 則京外儲竭, 將何以救濟? 予甚憫焉, 食不下咽。 減省經費及魚鹽之稅, 當如啓。 下三道贓贖緜布, 其數不貲宋欽下去時, 以此貿穀事, 予當敎之。 各道下諭亦可也。 採銀事, 一開弊源, 則勢不可支。 且聞採取之時, 聚軍掘鉛, 掘土深入, 時或壓死。 出銀之處, 雖曰多矣, 唯一端川而已。 赴京使者, 亦云: ‘銀不得禁之者, 不計生死而潛齎, 故禁之尤難。’ 云。 今若納稅而無禁, 則其弊終不得遏矣。 且沈連源云: ‘外方多有遺棄兒, 其有收養者, 宜永給使用。 若有年限, 則誰肯收養乎?’ 云。 此事何如?" 順孫等啓曰: "遺棄兒若有年限, 必無收養之人, 當考律文更啓之。 採銀時恐有壓死之弊, 上敎至當。 但赴京人潛持者, 書狀官苟能窮探, 則禁之何難? 以其罪至於死, 故不忍輕告。 採銀處雖多, 人皆諱之, 私自採用。 臣等所啓, 爲其生財之道也。" 效元啓曰: "臣前爲咸鏡道觀察使見之, 採銀事, 果如上敎, 有壓死之弊。 又聞他處亦出銀, 推問其近處之〔民〕 , 固諱不言, 至於刑訊窮推後直招。 使掘之, 果有焉, 比前掘處尤多, 而民多偸採, 故今則已盡。 以此觀之, 産銀處非一也。 但國禁如此, 故不能採之。 若許民採貿, 則採之必易矣。" 順孫又啓曰: "國禁雖緊, 赴京之行, 無不齎銀, 富商大賈入咸鏡道者, 皆以採銀爲事。 臣等以無生財之道, 故以此啓之, 然上敎至當。" 傳曰: "知道。"
- 【태백산사고본】 38책 75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17책 442면
- 【분류】광업-채광(採鑛) / 재정-국용(國用) / 재정-잡세(雜稅) / 군사-병참(兵站) / 구휼(救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