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실록 75권, 중종 28년 6월 10일 신사 3번째기사
1533년 명 가정(嘉靖) 12년
이항의 사사는 도사에게 하문토록 하다
정원에 전교하기를,
"이항(李沆)을 사사(賜死)할 때의 일을 도사(都事)에게 하문하여 아뢰라"
하였다. 승지 오준(吳準)이 도사 송연(宋珽)의 말로 아뢰기를,
"서울을 출발한 지 5일 만에 그 경내에 들어갔고 6월 2일 유시(酉時)263) 에 목사 김의형(金義亨)과 같이 앉아 항을 뜰 가운데 꿇어앉게 한 다음 그의 죄상을 읽어주었더니, 항이 ‘노사(奴事)의 노자는 무슨 노자이며 이른바 미(嵋)은 무슨 미자인가?’고 물었으므로 ‘노는 노비(奴婢)의 노자이고, 미는 바로 복성군(福城君)의 이름이다.’고 답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항이 ‘복성군과 박씨에 대해서는 신으로서는 아는 바 없다. 그러나 신(臣)이 조정에 죄를 짓고도 3∼4년을 연명하였으니 천은(天恩)이 중하다.’ 하고 드디어 약을 먹었으나 효과가 없자, 목매어 죽었습니다."
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8책 75권 7장 B면【국편영인본】 17책 437면
- 【분류】사법-행형(行刑) / 사법-치안(治安) / 변란-정변(政變)
- [註 263]유시(酉時) : 오후 5시∼7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