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문관 부제학 권예 등이 복성군의 제거를 아뢰니 전교하다
홍문관 부제학 권예 등이 차자를 올렸다.
"화환(禍患)의 기미가 드러나지 않은 데에 숨겨져 있어도 현명한 사람은 오히려 그 기미를 알아차리기 때문에 환란이 닥쳐올 것을 생각하며 미리 예방합니다. 하물며 살을 저미는 화가 이미 구제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는 데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대체로 사람이 곤란한 일을 당해서 조처할 경우, 사정에 끌려 고식적으로 하는 사람이 많고 먼 앞날을 생각하여 용단(勇斷)을 내리는 사람은 적습니다. 이는 은혜가 의(義)를 가려 공적인 것이 사적인 것을 이기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미(李嵋)의 일가가 오랫동안 흉모를 품고 분수에 벗어나는 지위를 엿보아 왔습니다. 역적 홍여는 장획(臧獲)을 시켜 내수(內竪)231) 와 유대를 공고히 하여 은밀히 의논하면서 못하는 짓이 없었습니다. 역비(逆婢)가 체포당하던 날 갑자기 글을 저장하는 상자를 불태웠으니, 미(嵋)가 그 어미와 교통하면서 역적 모의를 한 정상이 분명히 드러나 숨길 수가 없습니다. 전하께서는 당연히 작은 안스러움을 참고 대의에 의거 제재하셔야 되는데도 매양 간인(奸人)들의 입에 오르지 않았다고만 핑계대십니다. 이는 사적인 온정이 마음을 가려 스스로 죄악의 소재를 모르시는 것입니다.
미(嵋)는 바로 나라의 화를 빚어 내는 하나의 매개체입니다. 역모가 자주 일어나는데도 천형(天刑)을 시행하지 않고 있으니, 뒷날에 화 일으키기를 즐기는 무리들이 이를 빙자하여 난을 유발시키게 되면 엄청난 환란이 종묘 사직에 닥치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 가서는 아무리 뉘우치고 구제하려 해도 일이 이미 크게 무너져 손을 쓸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적자(賊子) 하나를 비호하기 위해 스스로 화의 근원을 남겨두어서야 되겠습니까. 적자 하나의 생사(生死)와 종묘 사직의 안위(安危)를 견주어본다면 어느 것이 중하고 어는 것이 가볍습니까? 신들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일을 가지고 일찍이 조처하려 하는 것이라면 전하께서 오히려 결단하기를 어렵게 여길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역적의 정상이 이미 확연히 드러났고 지얼(支孼)들이 죄를 받았는데도 수악(首惡)만이 빠졌으니, 실형(失刑)이 너무 심합니다.
신들이 천위(天威)를 범하면서 여러날 차자를 올려 논하는 것은, 단지 종묘 사직의 대계를 위한 것뿐입니다. 삼가 전하께서는 속히 사정(私情)을 끊으시어 종묘 사직을 편안하게 하소서."
- 【태백산사고본】 37책 74권 66장 A면【국편영인본】 17책 431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사법-치안(治安) / 변란-정변(政變)
- [註 231]내수(內竪) : 미(嵋)를 가리킴.
○弘文館副提學權輗等上箚曰:
禍患之機, 藏於未形, 明者猶能燭微、思患, 而豫防之。 況剝膚之禍, 已至於難救之地耶? 凡人臨難處置, 牽私姑息者多, 慮遠勇決者少, 蓋由恩能掩義, 公難勝私也。 嵋之一家, 久畜兇謀, 覬覦非分之地, 逆賊洪礪, 指使臧獲, 締結內竪, 密議暗約, 無所不至。 其逆婢見捕之日, 遽火藏書之篋, 嵋與其母, 交通謀逆之狀, 昭昭難掩。 殿下當忍小不忍, 制以大義, 而每諉於不騰奸口。 是煦煦私意, 蔽於方寸, 自不知罪惡之所在。 嵋乃國之一禍媒也。 逆謀屢作, 不施天刑, 異日樂禍之徒, 籍此交亂, 使滔天之患, 迫於宗社。 當此時, 雖欲悔救, 事已大潰, 措手無地。 護一賊子, 自貽奇禍, 則一竪之生死, 宗社之安危, 孰輕、孰重? 臣等若以未著之事, 欲早爲之所, 則殿下尙或難斷, 今逆狀大露, 支孽伏辜, 而首惡獨漏, 失刑甚矣。 臣等冒觸天威, 累日論箚, 祗爲 宗社大計而已。 伏願殿下, 亟割私情, 以安宗社。
- 【태백산사고본】 37책 74권 66장 A면【국편영인본】 17책 431면
- 【분류】정론-간쟁(諫諍) / 사법-치안(治安) / 변란-정변(政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