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토관 하계선이 사치의 폐단을 말하고 엄히 금할 것을 청하다
조강에 나아갔다. 검토관(檢討官) 하계선(河繼先)이 아뢰기를,
"사치의 폐단에 대해서는 예부터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옛사람이 말하기를 ‘사치의 폐해가 천재(天災)보다 심하다.’ 하였습니다. 우리 나라 사치의 풍습이 근래에 더욱 심해져서 서인(庶人)들조차 의복과 음식을 비할 데 없이 분수에 넘치게 하고 있으니, 법사(法司)가 엄히 금하지 않는다면 그 폐단을 이루 말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사치의 일은 경연(經筵) 때마다 대신이 말하였으므로 외방 사치의 폐단에 대하여 이미 유지를 내렸다."
하였다. 정언 허항이 이르기를,
"이 폐단은 모든 사람이 다 알고 있습니다. 제군(諸君)의 저택(邸宅)이 지나친 사치에 힘쓰고 사대부(士大夫)의 집도 제도에 지나칩니다. 그러므로 백성이 다투어 이를 본받아서, 부상 대고(富商大賈)는 그 집을 겉으로 검소한 듯이 하나 속은 매우 사치스럽게 꾸미며, 그 자녀의 혼사에 있어서 교자(轎子)를 타고 다니기고 하여, 법사가 법으로 이를 다스리려 하나 율문을 상고해 보면 그 죄가 크지 않은 까닭에 끝까지 추궁하지 않고 내버려 두기도 하므로 불미스러운 말이 많습니다.
또 근래에 대신이 대간을 선발하는 길이 넓지 않음을 말하였는데 신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근래에 조정의 인사(人士)로서 권간(權奸)에 빌붙어서 죄를 받은 자가 있고 더러운 행실이 있는데도 조심하지 않는 자가 있으니, 대간을 선발하는 길이 넓지 않은 것은 오로지 이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대간의 직책을 모두들 영화롭게 여겼으나, 근래 권간이 죄를 입을 때에 공론이 대간에서만 나왔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재화를 두려워 하여 대간이 되기를 좋아하지 않으며 부형된 자도 이를 경계합니다. 따라서 대간된 자도 힘을 다하는 자는 적고 회피하기를 꾀하는 자가 많습니다. 그런데 지금 대신은 방관(傍觀)만 하고 그 일을 맡지 않으니 정사(政事)가 대각(臺閣)으로 돌아가는 폐단을 또한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상께서 먼저 마음으로 시비를 정하시어, 대신이 일을 하지 않으면 태도를 확고히 하지 않음을 책하시고 대간이 말하지 않으면 사특하다는 것으로 죄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위복의 권한이 상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조정의 일에 대해서는 대신과 대간은 자기들의 생각을 말해야 하며 그냥 묵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근래 권간이 죄를 입은 것에 대하여 대간은 ‘그 죄가 마땅하다.’ 하고, 대신은 ‘너무 지나치다.’ 하여 시비가 서로 맞지 않은 까닭에 죄를 입은 자도 조정의 공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니, 이는 대신의 과실이다."
하였다. 영사 한효원이 아뢰기를,
"허항(許沆)의 말이 매우 타당합니다. 상께서 먼저 시비를 굳게 정하신다면 어떠한 말로도 능히 움직이지 못할 것이고, 진언하는 자도 그 생각을 다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대간을 선임하는 길이 좁다는 말은 무슨 뜻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대간을 선임하는길이 넓어서 외임(外任)으로부터 들어와 지평(持平)이나 정언(正言)이 된다면 민간의 질고(疾苦)를 상께서 먼저 알 수 있다고 생각한 때문에 이와 같이 말을 하였으리라 여깁니다. 그러나 근래에는 조정에 일이 있으니 대간을 뽑고 임용하는 데에 신중하지 않을 수 없으며, 전조(銓曹)도 잘 헤아려서 조처하여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대간의 길이 좁다는 말은 대신이 이미 아뢰었다. 그러나 여기 【대간을 가리킴.】 에 쓸 만하면 쓰고 그렇지 못하면 다른 곳에 써서 형편에 따라 옮겨 쓰면 된다. 대간의 길을 넓힌다 하여 사람을 가리지 않고 뒤섞어 쓴다는 것도 옳지 못하다."
하였다. 허항이 아뢰기를,
"위복(威福)의 말을 신이 경연 때마다 거듭 아뢰어 번거로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관계됨이 매우 크기 때문에 매양 말한 것입니다. 또 재상이나 대간은 다같이 신하이니 응당 한마음으로 충성을 바쳐야 하는데 어찌 서로 미워하기에 이른단 말입니까?"
하고, 한효원은 아뢰기를,
"허항의 말이 합당합니다. 재상과 대간이 각각 그 직책을 다한다면 조정이 화목하여서 근본이 자연 튼튼해질 것입니다."
하고, 검토관(檢討官) 박세옹은 아뢰기를,
"근일에 대신과 대간이 서로 화목하지 않기 때문에 조정이 편안치 못합니다. 상께서 항상 살피시어 시비를 굳게 정하신다면 조정은 저절로 편안해질 것입니다. 또 제군(諸君)의 저택이 매우 사치스럽습니다. 장온고(張蘊古)가 말하기를 ‘옥으로 대(臺)를 꾸미고 구슬로 방을 꾸민다 하여도 거처하는 곳은 무릎을 펼 만한 정도에 불과하다.’ 하였으니 이는 격언(格言)입니다.
신이 들으니 새문[新門] 【성문 이름.】 안에 빈 집터가 하나 있는데 제군의 저택을 짓기 위하여 주위의 인가(人家)가 헐리게 된다 합니다. 값을 많이 준다지만 빈약(貧弱)한 백성이 오래 살던 곳을 버리고 하루아침에 옮겨가야 하니, 인정에 어떠하겠습니까. 신은 온당치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빈 집터는 사람이 바친 것이고, 주위의 인가도 스스로 바친 것이지 강제로 취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가를 철거하는 것은 소요스러울 것 같으니 주위의 인가는 쓰지 않기로 하겠다."
하였다. 박세옹이 아뢰기를,
"신이 선왕조(先王朝) 제군의 저택을 보니, 오늘날처럼 사치스럽고 화려하지는 않았습니다. 얼마 전 선공감 제조(繕工監提調) 김근사(金謹思)가 선공감 정(繕工監正) 윤시영(尹時英)에게 ‘효령 대군(孝寧大君)의 옛 집 【나라에 바친 것.】 은 폐조(廢朝)017) 때에 새로 지은 것으로, 이제 허물어지기는 하였으나 목재나 돌은 모두 쓸 수 있으니, 지금 효순 공주(孝順公主)의 집을 지을 때에 이를 갖다 쓴다면 백성의 힘을 조금은 덜어주게 될 것이다.’ 했더니, 윤시영이 ‘이를 쓴다면 참으로 좋겠으나, 반드시 기꺼이 쓰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은 나무 하나, 돌 하나라도 이를 옮길 때에는 백성의 힘이 많이 소비된 것이니, 써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무릇 저택을 지을 적에 빈 터에다 새로 지을 경우에는 새 재목을 쓰고, 헌 집을 헐어서 고칠 경우에는 헌 재목을 가려 쓰는 것이 관례(慣例)이다. 유사(有司)를 시켜 그렇게 하도록 하겠다."
하였다. 박세옹이 아뢰기를,
"근래에 모든 관사(官司)가 해이하여 자기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습니다. 윤세호(尹世豪)는 한성부 좌윤(漢城府左尹)으로서, 이유없이 자리를 비우고 직무를 수행하지 않으니 매우 잘못입니다. 그러나 2품(品)의 재상을 이 때문에 체직한다면 사체에 어떠하겠습니까? 신은 온당치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니, 임금이 일렀다.
"근래에 각사(各司)가 직무를 수행하지 않는다는 뜻을 대간도 이미 아뢰었다. 2품의 재상이 이것으로 체직당한다는 것은 과연 말한 바와 같다. 그러나 윤세호는 본부(本府)의 직무를 폐하고 긴요치도 않는 일로 교서관(校書館)으로 돌아갔으니 매우 잘못이다. 체직한 것은 뒷사람을 징계하려는 것뿐이다."
- 【태백산사고본】 36책 72권 40장 A면【국편영인본】 17책 354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정론-정론(政論) / 왕실-경연(經筵) / 왕실-종친(宗親) / 건설-건축(建築) / 풍속-풍속(風俗) / 풍속-예속(禮俗) / 의생활(衣生活) / 식생활(食生活) / 주생활(住生活)
- [註 017]폐조(廢朝) : 연산군(燕山君)의 조정.
○辛巳/御朝講。 檢討官河繼先曰: "奢侈之弊, 自古患之故, 古人有言曰: ‘奢侈之害, 甚於天災。’ 我國奢侈之習, 比來尤甚, 至於庶人衣服飮食, 僭踰無比。 法司若不嚴禁, 則其弊將有不可勝言者矣。" 上曰: "奢侈之事, 每於經筵, 大臣言之, 故外方奢侈之弊, 曾已下諭矣。" 正言許沆曰: "如此等弊, 人皆知之。 諸君第宅, 務極奢侈, 而士大夫之家, 亦皆過制, 故小民爭相效之。 富商大賈, 治其私第, 外示儉素, 內極侈靡, 至於子女嫁娶時, 或乘轎往來。 法司以法治之, 而考其律文, 則厥罪不鉅, 故或不克究竟而棄之。 以是多有不美之言矣。 且近者大臣言: ‘臺諫之路不廣, 臣亦以爲然矣。’ 然近來朝士, 有附權奸, 而被罪者, 有身有汚行, 而不檢者, 臺諫之路, 所以不廣, 職此故也。 古者臺諫之職, 人皆榮之。 頃者權奸被罪之時, 公論獨出於臺諫, 故人皆懼禍, 而不樂爲臺諫, 父兄亦以爲戒, 故爲臺諫者, 盡力者小, 謀避者多矣。 今者大臣傍觀, 不任其事, 政歸臺閣之弊, 亦不可不慮也。 今宜自上默定是非, 大臣不事, 則以模稜責之, 臺諫不言, 則以邪慝罪之, 則威福之權, 在於上矣。" 上曰: "朝廷之事, 大臣臺諫, 當各陳所懷, 不可容默也。 近來權奸被罪者, 臺諫則以爲: ‘厥罪當矣。’ 大臣則以爲: ‘大過’ 是非交相混淆, 故被罪者亦以謂: ‘非出於朝廷公論’ 此大臣之失也。" 領事韓效元曰: "許沆之言至當。 自上堅定是非, 則千言萬語, 不能搖撼, 而進言者, 亦得以盡其所懷也。 且臺諫路狹之言, 不知有何意也。 然必以爲臺諫之路廣闊, 而或自外任, 入爲持平正言, 則民間疾苦, 自上可以知之, 故如此云耳。 然近來朝廷有事, 擇任臺諫, 不可不謹, 銓曹亦當斟酌而爲之也。" 上曰: "臺諫路狹之言, 大臣已啓之矣。 然可用於此, 【指臺諫。】 則用於此, 不可用於此, 則用於他處。 推移用之可也。 若以爲廣臺諫之路, 而不擇其人, 冗雜爲之, 則是亦不可也。" 許沆曰: "威福之言, 臣每於經筵, 屢啓不已, 幾於煩瀆, 然以此言所關甚大, 故每言之耳。 且宰相臺諫, 同爲王臣, 則當一心貢忠, 何至於相惡乎?" 效元曰: "許沆之言當矣。 宰相臺諫, 各盡其職, 則朝廷和睦, 而根本自固矣。" 檢討官朴世蓊曰: "近日大臣臺諫, 不相和睦, 故朝廷不得寧靜。 自上常常省念, 堅定是非, 則朝廷自爾安靜矣。 且諸君第宅, 奢侈太甚。 張蘊古曰: ‘瓊其臺而瑤其室, 所居不過容膝。’ 此格言也。 臣聞之, 新門 【(娍) 〔城〕門名。】 內, 有一空代, 【營室之地謂之代。】 將營諸君第宅, 而四隅人家, 將見毁撤云。 雖曰多給其價, 而小民棄其舊居, 一朝播遷, 於人情何如? 臣以爲未便也。" 上曰: "空代, 人所獻也。 四隅人家, 亦自獻也。 非强取之也。 然毁撤人家, 似爲騷擾, 故四隅人家, 不用之矣。" 世蓊曰: "臣觀先王朝諸君第宅, 非如今時之侈麗矣。 頃者, 繕工監提調金謹思, 謂繕工監正尹時英曰: ‘孝寧大君舊宅, 【獻於國者也。】 廢朝時新造, 今雖毁撤, 木石皆可用也。’ 今營孝順公主第〔宅〕 時用之, 則民力少省矣。" 尹時英曰: "用之則固善矣, 然必不肯用之也。 臣以爲輸一木一石之際, 用民力, 亦已多矣。" 上曰: "凡營第宅, 新造於空代, 則用新材, 毁舊宅而改作, 則擇用舊材, 例也。 宜令有司用之耳。" 世蓊曰: "近來百司解弛, 不事其事。 尹世豪以漢城府左尹, 無故不坐, 廢其職事, 至爲非矣。 然二品宰相, 以此見遞, 於事體何如? 臣以爲未便矣。" 上曰: "近來各司廢職之意, 臺諫亦已啓之矣, 二品之人, 以此見遞, 果如所言矣。 然尹世豪廢其本府職事, 而以不緊之事, 歸校書館, 至爲非矣。 所以遞之者, 欲以懲後人耳。"
- 【태백산사고본】 36책 72권 40장 A면【국편영인본】 17책 354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정론-정론(政論) / 왕실-경연(經筵) / 왕실-종친(宗親) / 건설-건축(建築) / 풍속-풍속(風俗) / 풍속-예속(禮俗) / 의생활(衣生活) / 식생활(食生活) / 주생활(住生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