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정 정광필 등과 산릉 자리·능의 사대석 등에 대해 논의하다
영의정 정광필, 【영관상감사(領觀象監事)임.】 좌의정 심정, 【총호사(摠護使)임.】 산릉 도감 제조(山陵都監提調) 김근사(金謹思)·유여림(兪汝霖)·성세창(成世昌), 좌승지 황사우(黃士祐)가 산릉 자리를 둘러보고 와서 아뢰기를,
"옛 능의 왼쪽 청룡(靑龍)371) 가닥이 매우 좋은데, 새 묘혈(墓穴)의 서쪽 면(面)에 흙을 보충해야 할 데가 많이 있기는 했습니다마는, 그러나 그 맥으로 볼 때 이곳이 바로 요지입니다."
하고, 도면을 그려서 올렸다. 전교하기를,
"마땅히 새 혈 자리를 사용하겠으니 시급히 날을 가리라."
하니, 정광필 등이 또 아뢰기를,
"전에는 장사 날짜를 멀게 가렸던 것은 날씨가 추운 때에 승하하신 때문에 날씨가 따뜻해지기를 기다린 것입니다. 이번은 장사 시기가 추운 때에 박두하게 되어 장사를 시급히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아룁니다. 또 사대석(莎臺石)372) 을 쌓는 일은 국가의 초창기 때 군신(君臣)의 장례를 구별 있게 하고 싶어 쌓은 것인데, 그뒤에는 하지 않았고 세조 대왕께서도 분부가 있으셨습니다. 성종의 장례 때에 이르러서는 국장 도감 제조(國葬都監提調) 정문형(鄭文炯)이 유독 해야 된다고 했기 때문에 폐주(廢主)373) 가 그의 말대로 따랐었습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무너졌습니다. 이번에도 다시 한다 하더라도 또한 무너지게 될 가능성이 있어 유익함은 없고 폐단만 있을 것입니다. 공력이나 폐단을 헤아릴 것은 없지만, 날씨는 춥고 일이 급박하여 만든다 하더라도 뜻에 맞지 못하게 될까 싶습니다."
하였다. 전교하기를,
"사대석을 해야 아름다우니 공력이나 폐단을 고려할 것은 없지만, 과연 생각해 보니 하나라도 부서지게 되면 부득이 보수해야 하고, 자주 보수하는 역사를 한다면 분묘(墳墓) 위가 반드시 요란스러워질 것이어서 지극히 미안한 일이다. 또한 전례를 고찰하여 보면 사대석을 하지 않은 데가 많았으니 할 것 없다. 또 예문(禮文)으로 보면 다섯 달 만에 장사해야 하는데, 만일 예문대로 한다면 반드시 12월의 지극히 추운 때에 이르게 되니 장사 시기는 아랫사람들이 짐작해서 하도록 하라. 또 옛 능의 정자각(丁字閣)을 옮겨다 배설(排設)할 것인가, 두 군대로 나누어 배설해야 할 것인가. 전에 배설한 데는 몇 능이나 되는가? 예조로 하여금 서계(書啓)하게 하라."
하니, 정광필 등이 아뢰었다.
"공릉(恭陵)·순릉(順陵)·제릉(齊陵)·건원릉(健元陵)374) 에는 정자각을 따로따로 배설했고, 광릉(光陵)·창릉(昌陵)·경릉(敬陵)375) 은 옮겨 배설했습니다."
- 【태백산사고본】 35책 69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17책 248면
- 【분류】왕실-비빈(妃嬪) / 왕실-의식(儀式)
- [註 371]청룡(靑龍) : 집터나 묘자리의 뒤 주산(主山)에서 갈라져 뻗어나간 왼쪽의 산줄기. 여러 가닥일 경우는 안쪽 것을 내청룡(內靑龍), 바깥쪽의 것을 외청룡이라 함.
- [註 372]
사대석(莎臺石) : 봉분(封墳)의 흙이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 둘레에 병풍(屛風) 두르듯 세우는 판석(板石).- [註 373]
폐주(廢主) : 연산군임.- [註 374]
공릉(恭陵)·순릉(順陵)·제릉(齊陵)·건원릉(健元陵) : 공릉은 파주군(坡州郡) 조리면(條里面) 봉일천리(奉日川里)에 있는 예종(睿宗)의 계비(繼妃) 장순 왕후(章順王后) 한씨(韓氏)의 능. 순릉(順陵)은 성종의 왕비 공혜 왕후(恭惠王后) 한씨의 능으로 공릉의 남쪽 구릉에 있음. 제릉(齊陵)은 태조의 구비 신의 왕후(神懿王后) 한씨의 능으로 경기도 개풍군(開豊郡) 상도면(上道面) 풍천리(楓川里)에 있음. 건원릉은 태조의 능으로 동구릉(東九陵) 안에 있음.- [註 375]
광릉(光陵)·창릉(昌陵)·경릉(敬陵) : 광릉은 세조와 왕비 정희 왕후(貞熹王后) 윤씨(尹氏)의 능으로 양주군(楊州郡) 진접면(榛接面) 부평리(富坪里)에 있음. 창릉(昌陵)은 예종과 계비 안순 왕후(安順王后) 한씨의 능으로 서오릉(西五陵) 안에 있음. 경릉은 덕종과 왕후 소혜 왕후(昭惠王后) 한씨의 능으로 서오릉 안에 있음.○領議政鄭光弼 【領觀象監事】 、左議政沈貞 【摠裁護使。】 、山陵都監提調金謹思ㆍ兪汝霖ㆍ成世昌、左承旨黃士祐, 看審山陵, 而來啓曰: "舊陵左靑龍甚好, 新穴西面, 多有補土之處, 然其根脈乃全地也。 圖畫以進。" 傳曰: "當用新穴。 其速擇日。" 鄭光弼等又啓曰: "前者遠擇葬日者, 以其日寒時升遐, 而俟其日暖也。 此則葬期逼於寒時, 葬事不可不速爲, 故啓之。 且莎臺石事, 國初草創時, 欲別其君臣之禮, 故爲之, 而其後則不爲, 世祖大王。 亦有遺敎。 至於成宗之葬, 國葬都監提調鄭文炯, 獨以爲可爲, 故廢主從其言, 然未久而毁。 今雖復作, 亦有將毁之漸, 則無益而有弊。 其功與弊, 不必計之, 而但日凍事急, 雖作之, 恐未稱意。" 傳曰: "莎臺石爲美, 功弊不必計也, 果思之, 一有破毁, 則不得已修補矣。 數擧修補之役, 墳上必搖動, 至爲未安。 且考前例, 莎臺石不爲處多矣, 則不須爲也。 且以禮文見之, 五月而葬可矣, 若從禮文, 則必至於十二月極寒之時。 葬期自下斟酌可也。 且舊陵丁字閣, 可以移排耶? 分二處排設耶? 前者排設處幾陵耶? 令禮曹書啓。" 光弼等啓曰: "恭ㆍ順陵、齊陵、健元陵, 則丁字閣別爲排設, 光陵、昌陵、敬陵則移排。"
- 【태백산사고본】 35책 69권 14장 B면【국편영인본】 17책 248면
- 【분류】왕실-비빈(妃嬪) / 왕실-의식(儀式)
- [註 3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