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중종실록 67권, 중종 25년 1월 16일 정미 3번째기사 1530년 명 가정(嘉靖) 9년

서지·반석평·이사균·이권 등에게 관직을 제수하다

서지(徐祉)를 한성부 우윤에, 반석평(潘碩枰)을 충청도 관찰사에, 이사균(李思鈞)을 평안도 병마 절도사에, 이권(李菤)을 함경남도 병마 절도사에 제수하였다.

사신(史臣)은 논한다. 이사균(李思鈞)은 인물이 뛰어났다. 기묘 신진(己卯新進)040) 들이 집권할 때 전주 부윤(全州府尹)으로 좌천되어 갔었다. 기묘 신진들이 패한 뒤에 들어와 부제학(副提學)에 임명되었으니, 기묘 신진들에 대한 유감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기묘 신진들을 신구(伸救)하는 것으로 뜻을 세웠다. 그는 늘 기묘 신진들이 나를 논박했지만 내가 어찌 혐의를 품을 수 있겠느냐고 했었다. 당시의 소견이 이랬기 때문에 한 말인 것이다. 이는 사심(私心)이 있어서가 아니고 그의 도량이 이러했었다.


  • 【태백산사고본】 34책 67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17책 183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역사-편사(編史) / 인물(人物)

  • [註 040]
    기묘 신진(己卯新進) : 중종(中宗) 14년인 기묘년에 남곤(南袞)·심정(沈貞)·홍경주(洪景舟) 등 훈구재상(勳舊宰相)들에 의해 숙청(肅淸)된 조광조(趙光祖)·김정(金淨)·김식(金湜) 등 신진사류(新進士類)를 말함. 이를 기묘 사화(己卯士禍)라 하고 이 사화에 희생된 사람을 기묘 명현(己卯名賢)이라 함.

○以徐祉漢城府右尹, 潘碩枰忠淸道觀察使, 李思鈞平安道兵馬節度使, 李菤咸鏡南道兵馬節度使。

【史臣曰: "思鈞人物魁傑, 曾於己卯時, 貶爲全州府尹, 及己卯之敗, 入爲副提學。 不少挾憾, 專以伸救己卯爲志。 每言己卯之人, 雖駁我, 我何懷嫌乎? 其時所見如是故耳, 非有私心矣。 其度量如此。"】


  • 【태백산사고본】 34책 67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17책 183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역사-편사(編史) /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