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언필·윤탁으로 하여금 《대학》을 토론케 하다
선정전(宣政殿)에 나아가 유생(儒生)들을 강(講)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유생의 강(講)이 끝나면 좌우에서 《대학(大學)》 1부를 가지고 논란(論難)하도록 하라."
하매, 심정(沈貞)이 아뢰기를,
"홍언필(洪彦弼)과 윤탁(尹倬)으로 하여금 좌석에 나와 논란하게 함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그리하라.’ 하였다.이행(李荇)이 윤탁에게 말하기를,
"《시경(詩經)》에 ‘아름다운 문왕(文王)께서는 아, 끊임없이 공경하셨네.’에서, 문왕이 지극한 선[至善]에 머물렀다는 뜻을 자세히 아뢰시오."
하니, 윤탁이 아뢰기를,
"《대학》에서 문왕의 사적을 이같이 말한 것은 지극한 선에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문왕이 왕계(王季)369) 를 하루에 세 번씩 뵈었다는 사실을 보아서도 문왕이 효에 머문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천하를 3분하여 그 2분이 상(商)나라에 반기를 들었는데, 그들을 거느리고 주(紂)를 섬긴 것은 남의 신하가 되어 경(敬)에 머문 것임을 역시 알 수 있습니다. 문왕의 정치의 근본은 덕을 밝히는 데 있었으므로 관저(關雎)와 인지(麟趾)의 교화370) 가 양양하게 천하에 넘쳐 사람들은 모두 악행을 선행으로 바꾸었으며, 우(虞)나라와 예(芮)나라의 임금들이 잘잘못을 질정(質正)하러 그 경내에 들어가니, 농사짓는 사람들은 밭두둑을 서로 양보하고 그 수도에 들어가니 대부(大夫)와 사(士)가 서로 양보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두 임금은 이에 전토를 다투지 않고 물러갔다고 합니다. 양자강(揚子江)과 한수(漢水) 사이의 비루하던 습속은 변화하여, 남녀의 도리가 발라지고 혼인의 시기를 놓치지 않으며 규문(閨門)의 교화가 사방으로 퍼지니, 문왕이 덕을 밝히고 백성들을 새롭게 한 공적이 지선(至善)의 경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문왕의 인품이 밝고 공경스러운 데서 비롯된 것으로 ‘좋은 명성이 끊이지 않는다.’느니, ‘아, 밝게 나타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문왕의 덕의 순수함이여, 그 순수함 또한 그치지 않는도다.’ 한 말들은 모두가 그 인품이 밝고 공경스러운 소치입니다."
하였다. 이행이 말하기를,
"혈구의 도[絜矩之道]371) 가 어찌 홀로 임금만이 하는 것이겠는가? 신하된 사람도 반드시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되겠소?"
하니, 언필이 아뢰기를,
"윤탁은 이학(理學)에 정통하지만 신은 본디 이학을 모릅니다. 《대학》의 삼강령(三綱領) 팔조목(八條目)은 모두 덕을 밝히고 백성을 친하게 하는 일인데, 소위 혈구라 하는 것은 내 마음으로 천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마치 구(矩)372) 로 사물을 헤아리는[絜] 것과 같습니다. 또 진서산(眞西山)373) 의 《대학연의(大學衍義)》에는 역대 제왕의 일이 완전히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어 귀감(龜鑑)이 되니, 마땅히 진강(進講)해야 할 책입니다. 구준(丘濬)의 《대학연의보(大學衍義補)》는 의논이 순정(純正)하지 못한 것이 있는데 진강한 지는 오랩니다. 권질(卷帙)이 매우 많으므로 쉽게 진강을 마칠 수가 없습니다. 이 책은 혼자 열람하시기에는 마땅하나 진강하기에는 부적합하니, 《대학연의》를 가지고 진강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였다. 심정이 아뢰기를,
"언필의 말은 바로 홍문관의 뜻입니다. 《연의보》는 의논이 광대하고 문장이 자세합니다만 정자(程子)나 주자(朱子)가 본다면, 취하는 말이 반드시 많지 많을 것입니다. 전일 정광필(鄭光弼)이 경연(經筵)에서 이 책으로 바꾸어 진강하자고 하였는데 ‘옛일의 연원을 널리 알 수 있으므로 군신(群臣)을 접대할 때에 이 책으로 강하는 것이 좋다.’고 해서였습니다. 그러나 홍문관은 이 책은 지리(支離)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크게는 천하를 다스리는 법도와 작게는 세세한 일들이 모두 갖추어져 있으니, 이는 폐할 수 없습니다."
하고, 이행은 아뢰기를,
"《대학연의보》는 석강(夕講)에 하면 안되고 조강에 해야 합니다. 석강 때에는 장수(張數)를 배로 하여 한 번 죽 훑어보는 식으로 진강해야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미 진강을 시작했으니 중간에 폐지할 수 없다. 마땅히 장수를 배로 해서 한 번 죽 진강하여야 한다."
하였다. 이행이 아뢰기를,
"전에는 남행(南行)인 자가 청현직(淸顯職)에 오르는 것도 무방했으며 삼공(三公)이나 대간에 오른 자도 많았었습니다. 이번에 대간이 아뢴 것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곧은 것을 들어 쓴다는 것이나, 인재를 등용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매우 방해가 되는 것입니다."
하고, 심정은 아뢰기를,
"과거는 인재를 가려 쓰는 방법입니다. 옛날에는 도덕(道德)이 있거나 공명(功名)이 있거나 절의(節義)가 있거나 한 선비들이 있었는데, 삼대(三代) 이후로는 도덕 있는 선비가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지금 과거를 통해 출신한 사람들은 모두가 사장(詞章)이나 기송(記誦)하는 자들이니 어찌 귀중한 것이 있겠습니까? 과거에는 급제하지 못했지만 재주가 있으면서 등용되지 못하는 자가 많습니다. 조종조에서는 남행을 따지지 않고 등용하여 큰 직임을 맡은 이도 많았으니, 신분을 구별해서는 안됩니다. 공자 같은 성인도 일찍이 위리(委吏)374) 도 지냈고 승전(乘田)375) 노릇도 했습니다. 공자의 문제자(門弟子)로 계씨(季氏)의 집에 벼슬살이한 사람도 있었으니, 이를 통틀어 일률적으로 논하는 것은 더욱 부당합니다. 근자의 김굉필(金宏弼)과 정여창(鄭汝昌)은 모두 심학(心學)을 주로 한 사람들인데, 여창은 전에 참봉이 되었다가 과거에 급제한 뒤 역시 한림(翰林)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예만 따른다면 인재 등용하는 길에 어찌 방해됨이 없겠습니까?" 【검열(檢閱) 김백순(金伯醇)과 최경홍(崔景弘)은 출신 전에 참봉을 지냈기 때문에 대간이 논박하여 개정했다.】
하고, 이행은 아뢰기를,
"이는 모두 부형들의 잘못입니다. 부모된 자들이 나이 어린 자제들을 학문에 힘쓰도록 하지는 않고, 청탁으로 남행이 되게 합니다. 때문에 연소한 사람으로서 출사하기를 꾀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대간은, 한림(翰林) 등의 직임이 안된다는 말이지 인물을 가지고 논계한 것이 아니다. 남행이라고 하여 매양 청현직에 오를 수 없다면 과연 방해가 된다. 이는 연소한 사람들이 과거(科擧)의 업(業)은 닦지않고 남행을 구함으로써 한때의 사습(士習)이 점차 비루하게 되기 때문에 시폐(時弊)를 고치기 위하여 아뢴 것이다."
하였다. 심정이 아뢰기를,
"한창려(韓昌黎)376) 는 세 번 편지를 올려 등용되기를 구했으므로 후세의 기롱(譏弄)을 면치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곧 도(道)를 전한 사람377) 이기 때문에 후인들도 시비를 하지 못합니다. 지금 참봉이었기 때문에 청요직에 오르는 것을 허용치 않는다면, 어찌 방해됨이 없겠습니까? 인재를 쓰는 데에 있어서는 치우쳐서는 안됩니다."
하고, 언필은 아뢰기를,
"‘초야에 묻힌 훌륭한 선비를 들어 쓰지 못할 바엔 재상의 자제를 천거해 쓴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재상의 자제는 가정의 교육이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듣고 본 것이 반드시 다른 사람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문자를 어느 정도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인물이 쓸만하면 쓰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니, 상이 일렀다.
"이것을 예로 삼는다면 인재를 등용하는 데 방해가 될 것이니, 그렇게 할 수 없다."
- 【태백산사고본】 33책 66권 46장 B면【국편영인본】 17책 166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왕실-경연(經筵) / 인사-선발(選拔) / 역사-고사(故事)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풍속-풍속(風俗)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신분-양반(兩班)
- [註 369]왕계(王季) : 문왕의 아버지.
- [註 370]
관저(關雎)와 인지(麟趾)의 교화 : 관저는 《시경(詩經)》 국풍(國風) 주남(周南)의 수편(首篇)이고 인지는 그 마지막 편으로, 《모시(毛詩)》 서(序)에 의하면 모두 문왕(文王)과 그 후비(后妃)의 성덕(盛德)을 읊은 것이라 한다. 특히 관저편은 임금의 금슬 좋은 덕이 아랫사람에 미치는 것을, 인지편은 후비의 덕이 자손 종족에까지 미침을 칭송한 것이라 하였다.- [註 371]
혈구의 도[絜矩之道] : 자기 마음을 척도(尺度)로 삼아 남의 마음을 헤아려서 반드시 법도에 맞게 하는 것.- [註 372]
구(矩) : 방정(方正)한 곡척(曲尺).- [註 373]
진서산(眞西山) : 서산은 진덕수(眞德秀)의 별호.- [註 374]
위리(委吏) : 창고지기.- [註 375]
승전(乘田) : 가축의 사육을 맡은 벼슬.- [註 376]
한창려(韓昌黎) : . 창려는 한유(韓愈)의 별호.- [註 377]
도(道)를 전한 사람 : 한유는 자신의 저술인 원도(原道)를 통해 당시 노불(老佛)이 성행했던 풍조를 비판하고, 문장 중에서 《중용(中庸)》·《논어(論語)》·《맹자(孟子)》 등 유가(儒家)의 말을 인용하여 인의(仁義)의 본질, 정치의 의의를 설명하였다. 후한말 이후 침체했던 유학이 북송(北宋) 때부터 정치 지도이념으로 채택되게 된 공은 한유의 공이라 할 수 있으므로, 이렇게 말했다.○癸巳朔/御宣政殿講儒生。 上曰: "儒生講訖, 左右以一部大學, 可相論難。" 沈貞曰: "令洪彦弼、尹倬出坐論難何如?" 上曰: "可。" 李荇謂尹倬曰: "《詩》云: ‘穆穆文王, 於緝熙敬止。’ 文王止於至善之意, 其詳啓之。" 倬曰: "《大學》所以言文王事, 如是者, 爲其止於至善也。 以朝王季日三之事, 見之, 文王之止於孝者, 可知, 而三分天下有其二, 而率商之叛國以事紂, 則爲人臣止於敬者, 亦可知矣。 文王之治, 本於明德, 而《關雎》、《麟趾》之化, 洋溢於天下, 故人皆變惡爲善。 如虞、芮之君, 欲質厥成, 而入其境, 則田者讓畔, 入其國, 則大夫士相讓焉。 兩君乃不爭田而退。 江漢之間, 習俗之汚, 卒然盡變, 男女以正, 婚姻以時, 閨門之化, 覃被四方。 可見文王明德、新民之功, 極盡於至善之地也。 此皆本於文王緝熙敬止, 而令聞不已。 於乎! 不顯, 文王之德之純, 純亦不已之言, 皆緝熙敬止之所致也。" 荇曰: "絜矩之道, 豈獨人君之所爲? 人臣亦當爲之。 其爲之, 亦何以耶?" 彦弼曰: "尹倬理學精通, 臣則本不知理學。 《大學》三綱、八條, 皆爲明德、新民之事, 而其所謂絜矩者, 以吾心, 量度天下之心, 如矩之絜物也。 且眞西山 《大學衍義》, 則歷代帝王之事, 無不備載, 有同龜鑑, 所當進講之書也。 丘濬 《大學衍義補》, 則其議論有不純正處。 進講已久, 而卷帙甚多, 未易畢講。 此書自上所當覽閱, 而不合於進講, 請以《大學衍義》, 進講何如?" 沈貞曰: "彦弼之言, 乃弘文館之意。 《衍義補》, 則議論闊遠, 文章纖悉, 然使程、朱見之, 則取擇之言, 必不多矣。 前日鄭光弼以此書, 換講於朝經筵者, 以其: ‘博古淵源, 於接待群臣, 以此講之可矣。’ 云。 而弘文館, 則以爲支離也。 然而大則治天下之法, 少則細微之事, 無不畢具, 不可以此廢之也。" 荇曰: "《大學衍義補》, 夕講則不可, 而當於朝講爲之。 夕講之時, 倍加張數, 而一遍進講可也。" 上曰: "已爲進講, 不可中廢。 當倍加張數, 而一遍進講耳。" 荇曰: "前則爲南行者, 無妨於淸顯之職, 以至於三公、臺諫者多矣。 今者臺諫所啓, 雖爲矯枉擧直之事, 然而用人之路, 甚有妨矣。" 貞曰: "科擧, 乃取人選用之路也。 在昔有道德之士, 有功名之士, 有節義之士, 而道德之士, 三代以下, 未之聞焉。 今之科擧所取者, 皆記誦詞章之人, 何有貴重者乎? 雖不中科擧, 有才不見用者多矣。 祖宗朝, 亦不計南行而用之, 多有當大任者, 不可區別也。 以孔子之聖, 嘗爲委吏矣, 嘗爲乘田矣。 孔門弟子, 有從仕於季氏之門者, 此尤不可一槪論也。 近者金宏弼、鄭汝昌, 皆爲心學之人也。 汝昌則前爲參奉, 而及爲科擧, 亦爲翰林。 若循此例, 其於擧用之路, 豈無妨害? 【撿閱金伯醇、崔景弘出身, 前爲參奉, 故臺諫駁遞。】 荇曰: "此皆父兄之過也。 然父兄者, 以年少子弟, 不使勉於學問, 請爲南行, 故年少之人, 冒進者多也。" 上曰: "臺諫以翰林等爲非者, 非爲人物而論啓也。 若以南行, 每不爲淸顯之職, 則果有妨矣。 此則年少之人, 不爲科擧之業, 求爲南行, 一時士習, 漸至卑汚, 故欲矯時弊而啓之也。" 貞曰: "韓昌黎三上書求用, 不得免後世之譏。 然此乃傳道之人, 故後人亦不能是非矣。 今以參奉之故, 不許淸要, 則豈不有妨? 用人不可偏僻也。" 彦弼曰: "草野遺逸, 若不得擧用, 則以宰相子弟薦用。’ 古有其語矣。 宰相子弟, 非徒有家庭之訓, 其聞見所得, 必異於他人, 故如有解文之人, 而其人物可用者, 當用之。" 上曰: "若以此爲例, 則於用人有妨, 不可爲也。"
- 【태백산사고본】 33책 66권 46장 B면【국편영인본】 17책 166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왕실-경연(經筵) / 인사-선발(選拔) / 역사-고사(故事)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풍속-풍속(風俗)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신분-양반(兩班)
- [註 3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