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실록 66권, 중종 24년 9월 13일 을사 2번째기사
1529년 명 가정(嘉靖) 8년
폐비 신씨와 복성군에 대한 김식의 상소문
충청도 부여(扶餘)에 사는 김식(金軾)이 상소하였는데, 그 대략은,
"신씨(愼氏)를 폐한 죄목324) 은 무엇입니까? 공자(孔子)는 얼룩소의 새끼라도 빛깔이 붉고 뿔이 똑바로 났으면 버리지 않는다고 했는데, 신씨의 덕은 얼록소만도 못하단 말씀입니까? 옛날 추연(鄒衍)이 슬픔을 품자 여름철에 서리가 내렸으니,325) 금년의 가뭄은 무어 괴이할 게 있습니까? 박씨(朴氏)를 축출하자 길가는 사람들도 모두들 무죄라고 했습니다. 신은 사사로 그에 대하여 평하건대 ‘복성군(福城君)은 나이가 세자보다 위이고 총애받는 어머니의 후원이 있으므로 잘못 생각한 자들은 여희(驪姬)가 신생(申生)을 무고한 것326) 과 같은 변이 일어나 국본(國本)327) 을 동요시킬 위험이 있지 않겠나고 우려할 것이라.’ 여겨집니다."
했는데, 말이 너무 황당하고 이치에 닿지 않았다. 상(上)이 이 소(疏)를 내리면서 전교하였다.
"입밖에 낼 수 없는 말들이 많아 지극히 경악스럽다. 평상시라면 죄줄 것이로되 구언(求言)한 뒤라 말 때문에 죄받으면 언로(言路)에 방해가 될까 두렵다."
- 【태백산사고본】 33책 66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17책 152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정론-간쟁(諫諍)
- [註 324]신씨(愼氏)를 폐한 죄목 : 신씨는 중종(中宗)의 첫째 왕후. 연산군 때 좌의정을 지낸 신수근(愼守勤)의 딸. 1506년 성희안(成希顔) 등이 종종 반정을 일으킬 때 연산군의 처남이요 중종의 장인인 신수근은 신하로서 임금을 폐할 수 없다고 반대하여 성희안 등에게 살해되었다. 반정이 성공하고 중종이 즉위하자 신씨도 왕후로 책봉되었으나, 자기들이 반역으로 몰아 죽인 사람의 딸이 왕후로 있는 것에 불안을 느낀 성희안과 유순정(柳順汀) 등의 책동에 의해 왕후가 된 지 7일 만에 본가로 쫓겨나 한많은 일생을 마쳤다. 영조(英祖) 15년(1739)에야 복위되었다. 단경 왕후(端敬王后).
- [註 325]
추연(鄒衍)이 슬픔을 품자 여름철에 서리가 내렸으니, : 중국 전국 시대(戰國時代) 제(齊)나라 임치(臨淄)사람. 연 소왕(燕昭王)의 존경을 받아 스승이 되었으나 다음 혜왕(惠王)이 즉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참소를 믿고 추연을 옥에 가두었다. 추연이 갇히자 여름철인데도 서리가 내리고 날씨가 추워 곡식이 자라지를 못하였다. 《열자(列子)》 탕문(湯問).- [註 326]
여희(驪姬)가 신생(申生)을 무고한 것 : 신생은 중국 춘추 시대 진 헌공(晉獻公)의 태자. 헌공의 총희(寵姬)인 여희가 자기의 아들 해제(奚齊)를 후사로 삼고자, 신생을 헌공에게 참소하여 곡옥(曲沃) 지방으로 내쫓았다.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은 여희가 계속 참소하자 진 헌공은 태자 신생을 죽이려고까지 하였다. 신생은 도망하라는 여러 사람의 권유를 뿌리치고, 끝내 자결하였다. 《춘추좌전(春秋左傳)》 희공(僖公) 5년·장공(莊公) 28년.- [註 327]
국본(國本) : 세자를 말함. - [註 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