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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64권, 중종 23년 12월 22일 기축 1번째기사 1528년 명 가정(嘉靖) 7년

의정부·육조·한성부·중추부·비변사가 모여 야인을 꾀어 잡는 일에 관해 의논하다

의정부·육조·한성부·중추부·비변사가 빈청(賓廳)에 모여 만포(滿浦)의 도둑 괴수를 꾀어 내어 잡는 일을 의논하였다. 영의정 정광필·우의정 이행·이조 판서 홍숙(洪淑)·예조 판서 윤은보(尹殷輔)·공조 판서 조원기(趙元紀)·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조계상(曺繼商) 이자견(李自堅)·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 김당(金璫)·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이권(李菤)·우윤(右尹) 유관(柳灌) 등의 의논은 불가하다 하였는데, 정광필이 아뢰기를,

"이 일은 신들의 생각에 지극히 어렵다고 여겨지나 전일 이미 다 의득(義得)하였거니와, 대저 나라의 큰 일은 품은 생각을 죄다 아뢰어야 하겠으나 변방(邊方)의 모책에 관한 일을 소신(小臣)이 집착하여 할 수 없으므로 전일 의논한 것을 따르고자 하여 이제 감히 따로 의논을 아뢰지 않습니다. 대저 대간(臺諫)·시종(侍從)이 논한 것이 참으로 옳습니다."

하였고, 좌의정 심정(沈貞)·병조 판서 이항(李沆)·좌찬성 김극핍(金克愊)·좌참찬 안윤덕(安潤德)·형조 판서 신공제(申公濟)·동지중추부사 김석철(金錫哲) 이지방(李之芳)·호조 참판 손주(孫澍)·형조 참판 이사균(李思鈞)·병조 참의(兵曹參議) 윤임(尹任)·참지(參知) 유윤덕(柳潤德) 등의 의논은 가하다 하였는데, 심정이 아뢰기를,

"신의 의논은 정광필 등과 다릅니다. 과연 대간의 생각과 같다면 정광필이 아뢴 것이 매우 마땅하겠습니다마는, 신의 생각으로는 당초에 중신(重臣)에게 변방의 일을 오로지 맡겼으므로 으레 맡겨서 성취하도록 요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중앙에서 멀리 절제(節制)하며 의논이 한결같지 않아서 시비가 서로 어지러워지면 이것은 오히려 길가에 집을 짓는 것과 같아서 따를 바를 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또 허굉의 공사(公事)를 보면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 만포 첨사 이형순의 첩정(牒呈)에 따라 계본(啓本)을 만든 것이니, 이 일이 그 생각에 맞으므로 따로 공사를 만들어 아뢰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저 허굉의 절제에 따라 공효(功效)를 이루도록 요구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였고, 정광필·심정·이행 등이 아뢰기를,

"요즈음 3∼4일 동안 밤에 백기(白氣)가 하늘에 비끼고 낮에는 천기(天氣)가 또 분명하지 않은데, 신들은 그것이 어떤 상(象)인지를 확실히 알지 못하나, 선유(先儒)가 ‘병상(兵象)은 곧 변이(變異)를 나타내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곧 사라지지 않고 간밤에 또 하늘에 깔렸으니, 이러한 일은 상께서 공구 수성(恐懼修省) 하셔야 할 것이며, 또한 이것을 변방에 하유(下諭)하셔야 하겠으나 천상(天象)이 어느 일을 지적하는 것이라고 하유하셔서는 안됩니다. 대저 성찰(省察)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였는데, 전교하기를,

"변장(邊將)이 살해당하였으므로 치욕을 잊을 수 없는 일이며, 치욕을 씻는 일을 끝내 또한 거행하지 않는다면 모르거니와 부득이 해야 할 일이라면 이 적인(賊人)들이 나오는 기회를 타서 잡으면 치욕을 씻을 수 있을 것이니 허굉에게 변방의 일을 맡겨야 한다. 그리고 행여 잘못 조치하는 일이 있으면 절로 조정의 책망이 있을 것이니 그가 하는 것을 보아서 조치해야 옳을 것이다. 또 백기가 하늘에 깔린 변은 나도 보았고 이제 대신이 병상이라고 아뢰었는데, 이것은 역시 재이(災異)이니 변방의 조치하는 일과 모든 정사(政事)할 즈음에도 놀랍고 두려워하여 닦고 살펴야 한다."

하였다. 정광필이행 등이 아뢰기를,

"신들의 생각으로는 이번에 쇄환(刷還)하는 사람을 차라니 받지 않고 말지언정 이렇게 해서는 안되겠습니다. 한 늙은 여자를 쇄환하는 일로 나오는 무리가 50인이나 되는 것은 우리 나라의 대우가 어떠한지를 보려는 것이니 그 계책을 진실로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잡는 일도 반드시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며, 이제 기회를 버리지 않고 잡더라도 뒷날의 뉘우침이 또한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들은 저들이 반드시 나오려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거니와, 나오지 않는데도 헛된 일에 계책을 베풀었다가 일이 끝내 이루어지지 않으면, 저들도 이 꾀를 알아서 우리 나라를 믿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 일을 이루지는 못하고 한갓 우리의 얕은 꾀를 누설하여 변방의 말썽을 돋우게 될 것입니다. 변방의 일은 진실로 쉽사리 요동하여서는 안되는 것이니 이 일은 지극히 어렵습니다. 한두 해 동안 치욕을 씻지 않더라도 오히려 해롭지 않으니, 함부로 허술한 계책을 만들어 변방에 일을 일으키고 말썽과 화난을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속임수를 변장이 계청(啓請)하였더라도 조정은 본디 억제하고 쓰지 않아야 할 것이며, 일을 성취하더라도 이 때문에 그 변장을 논상할 수는 없습니다."

하니, 전교하였다.

"조정이 변방의 일을 조윤손(曺閏孫)허굉에게 맡긴 까닭은 서방의 근심을 잊으려는 것이었다. 처음에 이미 가려 차출하여 맡겼는데 이제 또 일마다 따르지 않으면 또한 섭섭한 것이니, 허굉과 변장에게 맡겨서 절제(節制)하게 해야 할 것이다."


  • 【태백산사고본】 32책 64권 53장 B면【국편영인본】 17책 92면
  • 【분류】
    외교-야(野) / 정론-간쟁(諫諍) / 과학-천기(天氣)

○己丑/議政府、六曹、漢城府、中樞府、備邊司會于賓廳, 以議滿浦賊魁引誘捕獲事。 領議政鄭光弼、右議政李荇、吏曹判書洪淑、禮曹判書尹殷輔、工曹判書趙元紀、知中樞府事曺繼商李自堅漢城府判尹金壋、同知中樞府事李菤、右尹柳灌等議, 以爲不可。 光弼啓曰: "此事, 臣等之意, 爲重難。 前日議, 得已盡之矣。 夫議國大事, 所當盡陳所懷, 然關於邊謀之事, 不可以小臣執著爲之, 故欲從前日所議。 今不敢別爲議啓。 大抵臺諫、侍從之論, 誠是也。" 左議政沈貞、兵曹判書李沆、左贊成金克愊、左參贊安潤德、刑曹判書韓亨允、戶曹判書申公濟、同知中樞府事金錫哲李之芳、戶曹參判孫澍、刑曹參判李思鈞、兵曹參議尹任、參知柳潤德等議, 以爲可。 沈貞啓曰: "臣之議, 與鄭光弼等有異。 果如臺諫之意, 則鄭光弼所啓至當。 但臣之意以爲當初, 以重臣專委邊方之事, 固當委任責成。 今若從中遙制, 議論不一, 是非相奪, 則是猶作舍道傍, 莫適所從。 且見許硡公事, 非自爲之。 乃因滿浦僉使李亨順牒呈, 而爲啓本也。 此事, 必合於其意, 故不別爲公事以啓也。 大抵從許硡節制, 而責其成效可也。" 鄭光弼沈貞李荇等啓曰: "近者三四日, 當夜白氣橫天, 晝則天氣又不分明。 臣等不能的知其何象, 然先儒以爲兵象, 是變異之事也。 不卽消去, 去夜又布天。 如此之事, 所當自 上恐懼、修省也, 亦當以此諭于邊方, 然不可以天象, 指的其某事, 而下諭也。 大抵省察, 可也。" 傳曰: "邊將遇害, 義不可忘恥。 雪恥之事, 終亦不擧則已矣, 不得已爲之之事, 則乘此賊人出來之機, 而捕獲, 則庶可以雪恥矣。 當以許硡委任邊事, 而幸有誤爲措置, 則自有朝廷之責矣。 當見其所爲, 而處之可也。 且白氣橫天之變, 予亦見之。 今大臣啓之以兵象, 此亦災異。 邊方措置事及凡一應政事之間, 亦當驚懼而修省焉。" 鄭光弼李荇等啓曰: "臣等之意以爲, 今此刷還之人, 寧不受, 而已不可如此爲之。 以一老女刷還事, 其徒之出來者, 至於五十人。 欲觀我國待遇之如何, 其計固難測也。 捕獲之事, 亦未必成也。 今不乘機捕獲, 而後日之悔, 亦或有之, 然臣等意, 彼人等, 必不肯出來。 若不出來, 而虛事設計, 事竟不成, 則彼人等, 亦知此謀, 不信我國也。 若此則不成其事, 而徒洩我輕淺之謀, 挑其邊釁也。 邊方之事, 固不可輕易搖動。 此事至爲重難。 一二年不爲雪恥, 猶無害也, 不可妄爲虛疎之計, 而開邊生事, 構釁、結禍也。 如此詐術, 邊將雖爲啓請, 朝廷固當抑而不用。 假令成事, 又不可以此論賞其邊將也。" 傳曰: "朝廷以邊方之事, 委之於曺潤孫許硡者, 欲其忘西顧之憂也。 初旣擇差委任, 今又事事不從, 則亦必缺望。 當委任許硡與邊將, 使之節制可也。"


  • 【태백산사고본】 32책 64권 53장 B면【국편영인본】 17책 92면
  • 【분류】
    외교-야(野) / 정론-간쟁(諫諍) / 과학-천기(天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