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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63권, 중종 23년 9월 28일 정유 4번째기사 1528년 명 가정(嘉靖) 7년

거둥 때 세자의 일에 관해 전교하다

시강원(侍講院)이 아뢰기를,

"신들이 세자(世子)가 아헌관(亞獻官)이 되는 의주(儀註)658) 를 보니, 이엄(二嚴)659) 에 세자가 먼저 돈화문(敦化門) 밖에 나아가 국궁(鞠躬)하여 지영(祗迎)하고 대가(大駕)가 지나간 뒤에 대가를 따라가는 일이 있는데, 지금은 세자가 어려서 종묘 동구(宗廟洞口)에 걸어가는 것은 매우 미안합니다. 성종조에 문소전에서 친제(親祭)한 예(例)를 보면 아헌관이 이엄에 먼저 나아가 있었던 일이 있으니 이 예를 본떠 미리 나아가 있게 하소서. 또 대가가 중명문(重明門)을 거쳐 나가면 이엄에 먼저 나아가도 미처 가지 못할 것이니, 짐작하여 미리 가 있다가 대가가 이르면 봉영(奉迎)하게 하소서. 또 세자가 먼저 나아가면 말을 타는 것이 옳겠으나, 세자가 어리니 소여(小輿)로 먼저 갔다가 환궁할 때에는 말을 타고 대가를 따르는 것이 옳겠습니다.

영릉(英陵)에 거둥하실 때에 지영하는 일은, 중국의 고례(古例)를 상고해 봐도 없었으나, 성종조의 의궤(儀軌)가 시강원에 있어 상고하니, 능에 참배할 때에는 으레 대주정에서 지영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자가 어리니 짐작하여 궐문(闕門) 밖에서 대가를 지영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또 행재소(行在所)에서 문안하는 도수(度數)는 시강원의 의제를 폐조(廢朝) 때에 반쯤 잃었으므로 전례는 상고할 수 없으나, 신들의 생각으로는 세자의 직분이 하루에 세 번 문안하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그런데 시강원의 인원수가 적어서 하루에 한 번 문안하더라도 가서 문안한 사람이 그날로 돌아올 수 없으므로 동궁(東宮)을 시위(侍衛)할 사람이 없을 것이니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니, 전교하였다.

"종묘에서 친제할 때에는 대가가 중명문을 길로 잡는데, 그렇게 하면 세자가 어리므로 문밖에서 지영할 수 없고 대궐 밖에 가 있을 수도 없으니, 이엄 전에 소여로 대궐 안으로부터 먼저 가 있다가 다른 헌관(獻官)과 함께 한때에 국궁하고 대가를 지영해야 옳겠고, 환궁할 때에도 갔던 길을 거쳐 뒤져서 환궁하는 것이 좋겠다. 영릉에 거둥할 때에는 세자가 어리니 어찌 멀리 도성(都城) 문 밖에 나가서 대가를 지영할 수 있겠는가? 궁성(宮城) 문 밖에서 영송(迎送)하는 것이 옳겠다. 문안하는 일은, 시강원의 관원수가 적으므로 하루에 한 차례 문안하더라도 관원이 오히려 모자라겠으나, 한 차례 문안하는 것이 좋겠다. 또 세자가 하루에 한 차례 문안하는 것을 미안하게 여기므로 또 내관(內官)을 시켜 문안하는데, 그렇게 하면 하루에 시강원 관원 1원(員)과 내관 1원이 되므로 이것은 두 사람이 문안하는 것이니 부족한 것이 아니다."


  • 【태백산사고본】 32책 63권 28장 A면【국편영인본】 17책 46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종친(宗親) / 왕실-궁관(宮官)

  • [註 658]
    의주(儀註) : 의례(儀禮)의 절차. 본디 의주(儀注)로 써야 할 것인데, 주(注)를 주(註)로 쓰는 것은 관습이다.
  • [註 659]
    이엄(二嚴) : 두 번째 계엄(戒嚴:엄숙히 할 것을 경계하는 것). 행사에 앞서 북을 쳐서 세 번 계엄을 알리는데 이것을 엄고(嚴鼓)라 한다. 거둥 때의 예를 들면, 초엄(初嚴)에는 거둥에 따라갈 군사 등이 정한 위치에 모이고 이엄에는 결진(結陣)하고 삼엄에는 행진(行陣)한다.

○侍講院啓曰: "臣等見世子爲亞獻官儀註, 則二嚴, 世子先詣敦化門外, 鞠躬祗迎, 大駕過行後, 隨駕之事有之。 今則世子年幼, 於宗廟洞步行, 至爲未安。 見成宗朝文昭殿親祭之例, 亞獻官, 二嚴, 先詣之事有之。 請倣此先詣, 且大駕若由重明門而出, 則二嚴先詣, 必不能及往。 請斟酌預爲先往, 而若大駕至則奉迎也。 且世子先詣, 則騎馬可也, 然年幼以小輿先往, 而及其還宮時, 則乘馬隨駕可也。 且英陵行幸時, 祗迎之事, 考于中朝之古例則無有, 而成宗朝儀軌, 在于侍講院故考之, 則拜陵時, 則例爲祗迎于大晝停也。 然世子年幼, 當斟酌而迎駕于闕門外何如? 且行在所問安度數, 則侍講院之儀軌, 當廢朝時, 爲半失之, 前例則不可考, 臣等之意以爲, 世子之職, 日三問安宜也。 侍講院官員數少, 雖一日一度問安, 其往問安之人, 必不能卽日還來。 東宮侍衛無人, 何以爲之?" 傳曰: "宗廟親祭時, 大駕以重明門爲道路, 然則世子年幼, 不可於門外祗迎, 又不可以闕外往也。 當二嚴之前, 以小輿自闕內先往, 與他獻官一時鞠躬迎駕可也。 還宮時, 亦以小輿, 由前道路, 落後而還宮可也。 英陵行幸時, 則世子年幼未壯, 豈可以遠出都城門外, 而迎駕耶? 宮城門外迎送可也。 問安之事, 侍講院官員數少, 雖一日一次問安, 官員猶爲不足, 然一次問安可也。 且世子以一日一次問安爲未安, 故又令內官亦問安。 然則一日, 侍講院官員一員、內官一員, 此二人問安, 非不足也。"


  • 【태백산사고본】 32책 63권 28장 A면【국편영인본】 17책 46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왕실-종친(宗親) / 왕실-궁관(宮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