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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60권, 중종 23년 2월 29일 신미 2번째기사 1528년 명 가정(嘉靖) 7년

정광필·이행·허굉이 흉년으로 배릉을 늦출 것을 아뢰다

영의정 정광필·우의정 이행·예조 판서 허굉이 아뢰기를,

"다음달 3일에 창릉(昌陵)078)경릉(敬陵)079) 에 몸소 배릉하시겠다는 전교는, 조종(祖宗)들께서 배릉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겨온 까닭이니, 당연히 시행해야 할 일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대주정(大晝停)080) 을 배설하는 일과 음식을 제공하는 일을 모두가 경기(京畿)에서 준비해야 하니, 어찌 그 폐단이 없겠습니까? 또 교량을 새로 놓아야 할 곳은 없다하더라도 어찌 손보아야 할 곳이 없겠습니까? 만약 금년의 농사가 큰 흉년이 아니라면, 진실로 작은 폐해 때문에 배릉하는 일을 중단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금년은 기근이 너무 극심하여 곡식을 먹는 백성은 얼마 되지 않음은 물론, 초식(草食)도 오히려 넉넉하지 못한 실정이어서 백성들의 간난과 곤궁이 극도에 달했습니다. 이런 때에 배릉(拜陵)하는 것이 어떠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3일은 바로 속절(俗節)로써 상전(上殿)에게 주물(晝物)081) 을 올려야 하니, 이 날에 행차하는 일이 어떠한지를 잘 모르겠습니다. 배릉하는 일을 잠시 늦추어 백성들의 폐해를 덜어 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전교하였다.

"나 역시 백성들의 폐해를 헤아리고 있었기 때문에 교량이나 도로를 수리하는 일과, 전지에 끼칠 피해 여부(與否)를 살펴보게 하였다. 지금 대신들이 아뢴 내용을 듣고 보니 매우 합당한 말이다. 농사가 극심한 흉작이 아니라면 조그마한 폐단이야 염두에 둘 필요가 없겠으나, 올해는 기근이 너무 극심하여 백성들의 폐해가 틀림없이 많을 것이다. 배릉을 중지하라."


  • 【태백산사고본】 30책 60권 59장 A면【국편영인본】 16책 639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농업-농작(農作)

  • [註 078]
    창릉(昌陵) : 조선조 제8대 왕인 예종(睿宗)과 계비(繼妃) 안순 왕후(安順王后)의 능(陵)으로, 경기 고양(高陽)에 있다.
  • [註 079]
    경릉(敬陵) : 조선조 세조(世祖)의 세자이며 성종(成宗)의 아버지인 덕종(德宗)과 그의 비(妃) 소혜 왕후(昭惠王后)의 능으로, 역시 고양에 있다.
  • [註 080]
    대주정(大晝停) : 임금이 행행(行幸)하는 중에 쉬면서 낮 수라(水剌)를 드는 곳.
  • [註 081]
    주물(晝物) : 간략한 음식상에 쓰는 음식물이다.

○領議政鄭光弼、右議政李荇、禮曹判書許硡啓曰: "來月初三日, 昌陵敬陵親拜事傳敎。 祖宗以拜陵爲重, 拜陵所當爲也。 但大晝停排設及物膳進排事, 皆出於京畿, 豈無其弊乎? 且雖無治橋梁之處, 然亦豈無修擧之事乎? 若年運暫爲不稔, 則固不可計其小弊, 而不爲拜陵也。 今年凶荒莫甚, 民之粒食者蓋寡, 草食且猶不裕, 民之艱窘極矣。 今者拜陵, 未知如何。 且初三日乃俗節, 當進晝物於上殿。 此日行幸, 未知何如?, 請姑勿拜陵, 以除民弊何如?" 傳曰: "自上亦計其民弊, 故橋梁、道路修治及田地踏損有弊與否, 已令問之矣。 今聞, ‘大臣所啓之意甚當。 但年不甚凶則小弊不可計也, 今年則凶荒太甚, 民弊必多。’ 其停之。"


  • 【태백산사고본】 30책 60권 59장 A면【국편영인본】 16책 639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농업-농작(農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