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정 남곤의 졸기
영의정(領議政) 남곤(南袞)이 졸(卒)했다. 나이는 57세다. 전교하였다.
"지금 대신이 죽었다는 말을 들으니 지극히 애통스럽다. 조참(朝參)·경연(經筵)·열무(閱武) 등의 일을 아울러 정지하고, 소찬(素饌)을 올리도록 하라."
사신은 논한다. 남곤은 문장이 대단하고 필법(筆法) 또한 아름다왔다. 평생 화려한 옷을 입지 않았고 산업(産業)을 경영하지 않았으며, 재주가 뛰어나서 지론(持論)이 올바른 것 같았다. 임종(臨終)할 때 평생 동안의 초고(草稿)를 모두 불사르고, 이어 자제들에게 ‘내가 허명(虛名)으로 세상을 속였으니 너희들은 부디 이 글을 전파시켜 나의 허물을 무겁게 하지 말라.’ 했고, 또 ‘내가 죽은 뒤에 비단으로 염습(殮襲)하지 말라. 평생 마음과 행실이 어긋났으니 부디 시호(諡號)를 청하여 비석을 세우지 말라.’ 했다. 병이 위급해지자 상이 중사(中使)를 보내어 죽은 뒤의 일을 물었으나 이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기묘년054) 에 남곤이 심정 등과 뜻을 얻지 못한 자들로 더불어 유감을 품고 같이 모의, 몰래 신무문(神武門)으로 들어가 임금의 마음을 경동(驚動)시켰다. 그리하여 사림(士林)을 거의 다 귀양보내게 했지만 그 형적(形迹)이 노출되지 않았으니, 그 재주는 따를 수 없다 하겠다. 그의 말에 ‘마음과 행실이 어긋났다.’ 한 것은 이를 가리켜 한 말인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사람도 자신의 죄를 알고 죽은 것이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 【태백산사고본】 29책 58권 24장 A면【국편영인본】 16책 552면
- 【분류】인물(人物) / 역사-편사(編史)
- [註 054]기묘년 : 1519 중종 14년.
○領議政南袞卒。 年五十七。 傳曰: "今聞大臣之卒, 至爲痛悼。 朝參、經筵、閱武等事, 竝停之, 其進素饌。"
【史臣曰: "袞, 文章富贍, 筆法亦麗。 平生不服華美, 不營産業。 才氣出衆, 持論似正。 臨終, 盡火平生草槁, 仍語子弟曰: ‘余以虛名欺世, 汝等愼勿傳播以重吾過。’ 又曰: ‘死後勿以段紗斂襲。 生平, 心與行違, 愼勿請謚、立碑。’ 病革, 上遣中使問身後事, 已不能言矣。 己卯年, 袞與沈貞輩不得志者, 挾憾同謀, 潛入神武門, 驚動上聽, 士林流竄殆盡, 而不露形迹, 其才不可及也。 其言: ‘心與行違。’ 者, 若指此而發則斯亦知罪而斃矣。 諡文敬。"】
- 【태백산사고본】 29책 58권 24장 A면【국편영인본】 16책 552면
- 【분류】인물(人物) / 역사-편사(編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