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중종실록 58권, 중종 21년 12월 8일 병진 2번째기사 1526년 명 가정(嘉靖) 5년

언로·세자·인사·사습 등에 관한 홍문관의 상소문

홍문관 부제학(弘文館副提學) 김유(金鏐) 등이 소(疏)를 올렸다. 그 대략은, "국가가 태평한 지 오래서 사방이 편안해지자 인심이 편안에 젖어 매사를 걱정없는 듯이 보고 있습니다. 전하(殿下)께서는 정치를 함에 있어 잘 다스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있지만 통절하게 자책하는 성의는 없으며, 대신들은 그럭저럭 겉치레만 일삼을 뿐 몸을 돌보지 않고 충성을 바칠 뜻도 없습니다. 따라서 덕(德)이 하늘의 뜻에 부합되지 않았으므로 하늘의 경계가 날마다 발생했고, 은택이 백성들에게 내려가지 않았으므로 흉년이 해마다 잇달았습니다. 이 모두가 화(禍)의 근원을 철저히 살피지 않았기 때문에 폐단의 근원이 아직도 남아 있는 탓입니다.

옛 제왕(帝王)이 비방목(誹謗木)과 진선정(進善旌)346) 을 세운 것은 널리 구언(求言)347)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구언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말을 들어주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구언해놓고 들어주지 않거나 들어주어도 성실하게 하지 않는다면, 그 누가 임금의 위엄을 범해가면서 바른 말을 진달하여 하겠습니까?

삼가 살피건대 전하께서는 지난번 천둥의 변(變)이 있었을 때 근심하고 삼가는 마음에서 중외(中外)에 하유(下諭), 죄를 자신에게 돌리면서 구언할 때의 전지 내용은 매우 정성스러웠습니다. 그러나 분부가 내린 뒤, 안으로 모든 관리와 밖으로 초야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도 응대하는 사람을 못보았습니다. 이는 서로 아첨만 숭상하면서 우물쭈물 입을 다물고만 있었으므로 점차로 마음이 시들해진 탓입니다. 전하께서도 이런 사실을 모르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열고 성의를 폄에 있어 정성스레 다시 묻는 뜻이 있다는 말은 못들었고, 잘못된 일을 답습만 할 뿐 끓는 물에서 손을 빼듯 타는 불을 끄듯이 서둘어 고치려 한다는 말은 못들었습니다. 피전 감선(避殿減膳)은 삼가는 데 절실한 일이긴 하지만, 격물(格物)·치지(致知)의 성심을 다하지 못한다면 이 또한 말절(末節)이 되고 맙니다.

또 근래 재변을 만나 구언(求言)할 적에 넓은 팔도에서 봉사(封事)348) 을 올린 사람이 겨우 몇 사람뿐이었으니, 그 말을 채용하지는 않더라도 너그러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 가운데는 특별히 우대하여 추허받을 만한 것도 있고, 광언(狂言)이라는 것으로 뒤로 미루어 놓을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행되는 것은 없이 그로하여 비방만 받게 되니,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야 누가 입을 열려고 하겠습니까?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순(舜)임금이 자신의 의견은 버리고 남의 좋은 의견을 따랐던 것과, 한고조(漢高祖)가 간언(諫言) 따르기를 고리 굴리듯 한 것을 본받으시어 성총(聖聰)을 넓히시고 언로(言路)를 여심은 물론 광직(狂直)함을 너그러이 포용함으로써 바른 말을 다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아름다운 말을 날마다 진달하게 해서 아랫사람의 정이 막히지 않게 해주시면 더없는 다행이겠습니다.

세자(世子)는 나라의 근본으로 종묘(宗廟) 사직(社稷)의 중대함이 달려 있고, 하늘과 사람의 신망이 걸려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자를 보양(保養)하는 도리에 조금도 미흡한 점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삼가 살피건대 동궁(東宮)349) 께서는 타고 난 천품에 일찍부터 지각이 있으시어 춘추가 장성해지시자 덕기(德器)가 이미 이루어졌으므로, 빈사(賓師)를 예우(禮遇)함에 있어 조금도 실수가 없으십니다. 학문에 부지런하시어 자신도 모르게 날로 진보되므로, 교화가 마음과 함께 완성되어 매사를 도(道)에 맞게 하는 것이 타고난 본성 같았습니다. 이는 전하의 슬하에 있을 적에 이미 익히 강회(講誨)하신 탓입니다. 그러나 세자께서 모르는 외부 사정이나 빈료(賓僚)들이 교도(敎導)할 수 없는 것은, 전하께서 고무시켜 인도하심에 있어 보호하는 도리를 다하는 데 달렸습니다. 부자(父子)간은 천성(天性)이므로 상하의 사이가 없습니다. 그러니 전하께서 사랑하시는 마음과 교도하는 방법이 어찌 끝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조종조(祖宗朝) 적에는 세자를 보좌할 사람을 선발하여 교회(敎誨)에 힘썼을 뿐만 아니라, 선발한 사람을 특별히 우대하여 흐뭇한 화기가 애애했었습니다. 심지어는 세자가 한 가지 책을 떼면 역시 연회를 내리고 사부(師傅)를 존경하는 뜻에서 몸소 잔을 들어 술을 권하는 등 마음을 기울여 할 수 있는 데까지 돌보았었습니다.

전하께서도 처음엔 세자를 보양하는 아름다운 뜻을 한결같이 선왕(先王)의 고사(故事)에 따라 준행했으므로 세자를 가르치는 도리를 옛날에 비겨봐도 부끄러움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근래에는 점점 처음만 못하시어 자주 시강원(侍講院)의 관원을 체직시켰습니다. 따라서 그럭저럭 결원(缺員)만 보충해서 상례로 베푸는 서연(書筵)만을 행할 뿐, 갖가지 방법으로 사부(師傅)를 높이고 존대하는 뜻이 있다는 말은 못들었습니다. 이는 덕을 도탑게 하고 가르침을 권장하시는 실상이 미진하여서인가 싶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빈료(賓僚)들을 권면해서 올바르게 보도(輔導)하는 정성을 다하게 하시고, 성의(聖意)를 여시어 덕성(德性)의 진취에 유익함이 있게 하소서. 이렇게 함으로써 국본(國本)350) 의 중함을 널리 보이시고 종묘 사직의 복된 터전을 닦으시면 더없는 다행이겠습니다.

임금은 하늘을 본받고 정위(正位)에 거하여 일국을 다스리는 것이므로 외정(外庭)과 내곤(內壼)351) 을 한결같이 보아야 함은 물론, 호령을 시행함에 있어서도 마음대로 하는 사(私)가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관작(官爵)이 사적으로 친한 자와 인격 없는 자에게는 내려지지 않고, 한결같이 공적으로 현능(賢能)한 이에게만 내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임금이 대를 이어 위복(威福)의 권병(權柄)을 쥐고 보위(寶位)에 오르게 되면, 애정에 고혹되고 편애(偏愛)에 빠져 궁곤(宮壼)을 바루지 못하고 내알(內謁)을 막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조정의 정사가 불공평해져 화패(禍敗)가 잇달게 되는데도 자신은 모르게 되니,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삼가 살피건대 전하께서는 영성(英聖)한 자질로 지정(至正)한 도에 밝히시어 국가를 한집안처럼 보고 백성을 내 몸같이 여기셨으니, 정령(政令)이 공평하고 상벌(賞罰)이 중도에 맞았다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임금의 덕은 한창 성한 데서 해태해지기 쉽고, 편사(偏私)는 정념(情念)에 따라 빠지기 쉬운 것입니다. 태종(太宗)은 당(唐)나라의 훌륭한 임금이었지만 끝내 십점(十漸)의 탄식352) 을 면치 못했거든, 하물며 태종만 못한 임금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한번 벼슬을 명하고 한번 정령을 냄에 있어 털끝만한 사라도 그 사이에 끼게 되면 그 화가 장차 하늘에까지 뻗치게 되는 것인데, 하물며 외인(外人)은 알 수조차 없는 깊숙한 궁궐 속에서 벌어지는 비빈(妃嬪)과 잉첩(媵妾)들의 오락과 내알(內謁)의 성행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진실로 내 마음가짐을 하늘에 떠있는 해처럼 하지 않는다면, 빠지지 않는 경우가 드뭅니다. 그 기미의 중대함이 이러하니 삼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또 지금은 대관(大官)을 임명할 적에 조정에서 의논하여 뽑지 않고 늘 특지(特旨)로 하기 때문에 명망(名望)이 흡족하지 못해서 탄박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작명(爵命)은 임금의 큰 권병(權柄)이니 위에서 발탁하는 것이 그른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조종조(祖宗朝)에서는 혹 의논해서 의망(擬望)353) 하라 명하여 사람들에게서 받는 신망(信望)을 살펴보기도 했으니, 이는 조정과 정치를 함께한다는 의의에서인 것입니다.

전하께서 사람마다 특지로 제수하려 하신다면 선발이 정미롭지 못할 뿐 아니라 편사(偏私)의 누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태양과 같은 청광(淸光)을 넓히시어 털끝만한 누라도 다 없애소서. 그리하여 내치(內治)를 엄히 해서 궁곤(宮壼)을 바루시고 외정(外政)을 공평하게 해서 조정을 엄숙하게 함으로써 온나라 신민(臣民)들의 표준이 되고 자손 만대에 아름다운 계책을 전하신다면 더없는 다행이겠습니다.

근래 사기(士氣)가 진작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염치의 도가 없어져 인심이 날로 저속해지고 투박(偸薄)이 날로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벼슬하는 자는 구차스러운 마음을 지니게 되었고 선비들은 조급하게 벼슬에 나아가는 것으로 일을 삼고 있습니다. 따라서 입에서 젖내가 가시지 않은 자제(子弟)들도 관례(冠禮)354) 를 치르게 되면, 우선 벼슬에 나갈 것만 생각하고 공부에 대해서는 생각도 않습니다. 부형들도 학문을 권장하지는 않고 도리어 봉록에만 얼이 빠져 아침저녁으로 청탁하기에만 바쁜 실정입니다. 때문에 거리에는 책을 끼고 다니는 학생이 없고 조정에는 이익을 추구하는 풍조가 성해졌습니다. 수령(守令)은 백성을 가까이하는 벼슬이므로 가려 뽑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완악하고 탐욕스러운 무리들을 모두 급급히 외방에 제수하고 있으므로 비옥한 고을에 임명되기 위한 청탁 편지가 구름처럼 모여들어, 전조(銓曹)에서는 선발하기에도 정신이 없을 지경입니다. 그러다가 풍요롭지 못한 곳에 임명되면 온갖 간교를 다 부려 피하므로 조정에는 용인(用人)의 잘못이 있고 백성은 혜택입을 길이 없어졌습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근래 관료(官僚)들이 서로 모여 사람을 논해서 탄핵함에 있어 의논이 누설되지 않게 만전을 기하는 데도 이것이 즉시 밖으로 전파되어 은혜와 원수가 각각 귀결되게 되었습니다. 국가의 폐단으로 이보다 더 심한 것이 있겠습니까? 풍속이 퇴폐되고 기강이 위축되어 점점 저속해져가는데도 감히 중지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변이(變移)시킬 수 있는 기미를 포착하시어 사습(士習)을 바루고 교육하는 방법을 끝까지 강구해서 풍화를 선양하소서. 그리하여 염치의 문을 열고 이욕의 근원을 막아 사대부(士大夫)의 기(氣)를 배양하고 국가의 명맥이 오래가게 해주신다면, 더없는 다행이겠습니다."

하였는데, 상(上)이 비망기(備忘記)355) 로 각 조목에 따라 모두 답하였다. 그러나 구언(求言)·궁곤(宮壼)·내알(內謁) 등등 몇 조항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 【태백산사고본】 29책 58권 3장 A면【국편영인본】 16책 542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왕실-종친(宗親) / 인사-임면(任免)

  • [註 346]
    비방목(誹謗木)과 진선정(進善旌) : 나라의 정사(政事)에 대해 잘못된 점을 지적해주고 유익한 말을 진달해 달라는 뜻. 비방목은 요(堯)임금 때 다리 가에다 나무 판자를 세워놓고 거기에다 정사의 잘못된 점을 기록하게 하던 나무. 진선정은 역시 요임금때 사통 오달의 네거리에 깃대를 세워놓고 정사에 유익한 말을 할 사람은 그 아래 서 있게 하던 깃발이다. 《대대례(大戴禮)》 보부(保傅).
  • [註 347]
    구언(求言) : 국가에 큰 재변이나 중대한 일이 있을 때 임금이 신하들에게 직언(直言)을 구하는 것.
  • [註 348]
    봉사(封事) : 밀봉(密封)해서 임금에게 아뢰는 것.
  • [註 349]
    동궁(東宮) : 세자.
  • [註 350]
    국본(國本) : 세자.
  • [註 351]
    내곤(內壼) : 내전(內殿)을 말한다.
  • [註 352]
    십점(十漸)의 탄식 : 열 가지 조짐에 대한 탄식. 당(唐)나라 정관(貞觀) 13년에 위징(魏徵)이 당 태종(唐太宗)에게 올린 상소(上疏)로,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한 열 가지 일의 조짐을 들어 극론(極論)했다. 《당서(唐書)》 위징전(魏徵傳).
  • [註 353]
    의망(擬望) : 전조(銓曹:이조(吏曹)와 병조(兵曹)임)가 어떠한 벼슬자리에 상당한 후보자를 천거하는 것. 대체로 후보자 3명의 이름을 임금에게 적어 올리면 임금은 그 가운데 한 명을 임명하는데 이를 삼망(三望)이라 한다. 부득이한 경우에는 한 사람의 이름만 적어올리는데 이는 단망(單望)이라 하다.
  • [註 354]
    관례(冠禮) : 아이가 성인(成人)이 되는 예식(禮式)으로 남자는 갓을 쓰고 여자는 쪽을 찐다. 원래 나이 20세에 하게 되어 있으나 조혼(早婚)의 풍속이 성행하면서부터 관례와 혼례를 겸했다.
  • [註 355]
    비망기(備忘記) : 임금의 명령을 적어서 승지(承旨)에게 전하는 문서다.

○弘文館副提學金鏐等上疏, 略曰:

國家昇平日久, 四野寧謐。 人心狃安, 視若無虞。 殿下有臨政願治之心, 而無痛自刻責之誠; 大臣有因循文具之事, 而無願效匪躬之意。 德未上孚, 而天警日作; 澤未下究, 而飢荒歲仍。 禍根不察, 弊源尙多。 古之帝王, 立誹謗之木; 建進善之旌者, 所以廣求言也。 然求言非難, 聽言斯難。 求而不聽, 聽之不誠, 則孰肯犯不測之威, 以進讜言哉? 伏見 殿下, 頃遭雷變, 憂慮惕若, 下諭中外, 罪己求言, 辭旨懇惻。 然而敎下之後, 內而百僚; 外而草澤, 未見一人有以應對。 脂韋相尙, 依違容默, 寢以委靡。 殿下非不知之, 而開心、布誠, 未聞有更訪懃懇之意, 徒襲謬擧, 未聞如救焚探湯之急。 避殿、損膳, 雖切於側身, 而未克盡格致之誠, 則亦歸於末節耳。 且屬者, 遇災求言, 八方之廣, 上封者, 纔數人而已, 言雖不採, 亦當優容。 或以優例見推; 或以狂言居殿, 無見其施行, 徒取其毁訕, 若非狂愚, 孰肯動其喙哉? 伏願殿下, 體虞舜之舍己;效漢祖之轉圜, 開張聖聰, 以闢言路, 包容狂直, 進盡忠讜, 使嘉言日進, 而下情無所阻, 幸甚。 世子, 國本, 係宗廟社稷之重, 而屬天地、神人之望, 保養之道, 不可少欠。 伏見, 東宮天資夙就, 春秋向長, 德器已成。 禮遇賓師, 少無愆失。 學不知倦, 日造罔覺。 化與心成, 中道若性。 此, 常在殿下膝下, 已熟講誨者也。 然外情之所未得知, 賓僚之所未得導者, 豈不在殿下, 誘引鼓動, 以盡保護之道乎? 父子, 天性, 無間於上下。 殿下鞠愛之心, 敎導之方, 其何極已? 然而在祖宗朝, 非惟選左右, 勤誨敎也, 待遇殊優, 涵濃董暢。 至於一晝講畢, 亦賜寵宴, 尊禮師傅, 執爵而酳, 傾心眷重, 無所不極。 殿下其始保建美意, 一遵先王故事, 蒙養之道, 視古無愧。 近年以來, 寢不及初, 數遞僚屬, 苟補缺員, 只行書筵恒例之事, 未聞多方隆重之意; 敦德勸敎之實, 恐有所未盡也。 伏願 殿下, 勉諭賓僚, 以盡保導之正, 開容聖意, 以益德性之就, 以示國本之重, 以基宗社之福, 幸甚。 人君, 體天居正, 以治一國。 外庭、內壼, 視之如一。 發號施令, 無自用之私。 官不及私昵; 爵罔及惡德, 惟其賢、惟其能, 一於公而已。 惟繼體昏主, 居豫大之位;操威福之柄, 情愛之所蠱惑, 偏繫之所萌孽, 不能正宮壼, 杜內謁, 以至朝政不公, 禍敗相尋, 而不自知也, 可不戒哉? 伏見殿下, 以英聖之資, 明至正之道, 視國家如一家; 視萬民如一己, 可謂政令平反, 賞罰得中矣。 然君德, 在豐豫而易怠, 偏私, 因情念而易惑。 太宗, 之令主, 卒未免十漸之歎, 況其後於太宗乎? 一命之爵;一令之出, 私或間於一毫, 禍將至於滔天, 況深宮蜎蠖之中, 外人不識之地, 妃媵之娛;內謁之盛? 苟非吾之心, 如日中天, 鮮不爲移入者。 其幾甚大, 可不愼歟? 且今大官之拜, 不謀政選, 恒出特旨, 地望未洽, 或見彈論。 爵命, 人主大柄。 自上甄拔, 未爲不可, 然祖宗朝或命議擬, 以觀衆望。 此, 與朝廷共政之意也。 殿下若欲人人而特除, 則非但簡拔之不精, 未免有偏私之累也。 伏願殿下, 廓天日之淸光, 絶絲毫之纖累, 嚴內治, 以正宮壼, 公外政, 以肅朝廷, 爲一國臣民之標準, 爲萬世子孫之貽謀, 幸甚。 比來, 士氣不振, 廉恥道喪。 人心日卑, 偸薄日甚。 當官者, 以苟且爲心;爲士者, 以躁進爲事。 乳臭子弟加冠之日, 先懷媒爵, 不念詩禮。 爲父兄者亦不勸學, 反急升斗, 干謁晨昏。 委閭無挾冊之生;朝著盛趨利之風。 守令, 親民之官, 在所當擇。 頑鈍饞饕之輩, 皆急外除, 擇郡肥饒, 請簡雲委, 銓曹眩於調選。 至於凋弊, 巧避萬端, 朝有用人之失;民無被澤之望。 不特此也, 近者, 僚宷相對, 論人彈事, 議非不完, 旋卽傳播, 恩怨有歸國家之弊, 豈有甚於斯者乎? 習俗頹敗, 氣象委靡, 漸以就下, 莫之敢止。 伏願殿下, 操變移之機, 以矯士習;盡敎育之方, 以宣風化;闢廉恥之門, 防移欲之源;以養士夫之氣, 以壽國家之脈, 幸甚。

上以備忘記, 隨各條,皆有所答, 而如求言、宮壼、內謁數條, 不及焉。


  • 【태백산사고본】 29책 58권 3장 A면【국편영인본】 16책 542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왕실-종친(宗親) / 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