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도 관찰사가 도내의 효행과 절의를 보고하다
평안도 관찰사 윤은보(尹殷輔)가 치계하였다.
"함종현(咸從縣) 전(前) 여수(旅帥) 유인달(劉仁達)은 독자(獨子)로 천성이 지극히 효성스럽습니다. 아비는 일찍 여의었고 어미를 모시고 가난하게 살면서도 봉양하는 음식과 침구(寢具)를 비롯한 제구(諸具)를 어미의 마음에 맞게 하는 등 진심으로 효양(孝養)했습니다. 어미가 죽자 집 북쪽에 장사지내고 묘 곁에 여막을 짓고, 여묘살이를 하면서 한 번도 집에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몸소 제물을 장만해서 아침저녁으로 전제(奠祭)했고 양념 친 반찬을 먹지 않은 채 삼년상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나서도 자기집 한 칸을 사당(祠堂)으로 만들어 아침저녁 전제했고, 또 생시와 다름없이 출타할 때와 돌아왔을 때는 반드시 영전에 고했습니다. 참으로 지성스러운 효자입니다. 유학(幼學) 유인석(劉仁碩)은 본성이 지극히 효성스러워 부모의 뜻을 잘 받들었습니다. 장가들어 살림을 나 살면서도 하루에 세 번씩 와서 뵈었고, 아비 유계선(劉繼先)이 광질(狂疾)에 걸려 날로 점점 심해져서 거의 죽게 되어서는 밤낮으로 곁에서 간호했습니다. 온갖 약을 써도 효험이 없자 손가락을 끊어 효험을 보았다는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의 얘기를 보고, 몰래 도끼를 가져다 스스로 손가락을 끊어 불에 태운 다음 이를 빻아 물에 타서 드리니, 그 병이 드디어 치유되었습니다. 그 뒤 아비가 죽자 삼년상을 치르면서 양념 친 음식을 먹지 않았고, 어미를 자기 집으로 모셔놓고 마음을 다해 효성으로 봉양했습니다.
운산군(雲山郡) 유학 유해(兪諧)의 양녀(良女) 출신 아내 중지(中之)는 남편이 중풍(中風)에 걸려 죽을 뻔했다가 다시 살아나기를 거의 1년이나 계속했었습니다. 그리하여 정성껏 약시중 드노라 밤새도록 자지 않고 하루종일 먹지 않은 적도 허다해서 형용이 바싹 야위었습니다. 남편이 죽자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다가 시부모가 굳이 권해서야 비로소 죽을 마셨습니다. 자식들이 춥고 배고프다고 울부짖어도 돌아보지 않은 채 재물을 다 들여 제물(祭物)을 정하게 마련해서 1백일 간의 전제(奠祭)를 폐하지 않았습니다. 시부모가 모두 늙어서 생계를 도모할 수 없는 형편이었으므로 몸소 베를 짜서 직접 팔아다가 근근히 봉양했습니다. 아무리 궁핍해도 매달 1일과 15일의 전제를 빠뜨리지 않았고, 삼년상을 마친 뒤에는 친정 부모가 청상 과부된 것을 딱하게 여겨 개가(改嫁)시키려 했지만 맹세코 죽음으로 거절했습니다. 그리고는 남편이 살았을 때와 똑같이 시부모의 음식 봉양과 안후를 보살폈습니다. 순안현(順安縣) 기자전(箕子殿)의 참봉(參奉) 박만근(朴萬根)은 독자로, 본성이 매우 효성스러웠는데 한 살 때 아비를 여의었습니다. 어미를 섬김에 있어서는 부드러운 안색으로 뜻을 잘 받들었고 아침저녁 문안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어미가 죽자 묘 곁에서 여묘살이하면서 한 번도 집에 오지 않았고, 직접 제물(祭物)을 만들어 아침저녁 전제하였습니다. 술을 가까이하지 않았고 양념 친 음식을 먹지 않았으며, 삼 년을 한결같이 하루에 세 번씩 통곡했습니다. 가산군(嘉山郡) 갑사(甲士) 방권(方權)의 아내 윤씨(尹氏)는 남편이 죽자 집 앞에다 묘를 쓴 뒤 제청(祭廳)을 지어 침석(枕席)을 마련해놓고, 벽에는 화상(畫像)을 걸어놓았습니다. 몸소 제물을 마련해서 죽은 이 섬기기를 산 사람 섬기듯 아침저녁으로 전제(奠祭)하였고 지금까지 10년 간을 삼년상 때처럼 몸이 야위도록 슬퍼하고 있습니다. 동생이 개가(改嫁)하라고 권하자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면서 더욱 굳게 수절(守節)하고 있으니, 성의(誠意)가 눈물겹고 절조가 비길 데 없이 훌륭합니다."
- 【태백산사고본】 29책 57권 28장 A면【국편영인본】 16책 522면
- 【분류】윤리-강상(綱常)
○平安道觀察使尹殷輔馳啓曰: "咸從縣前旅帥劉仁達, 以獨子, 天性至孝。 早喪其父, 陪母窮居, 奉養之物、寢處之具, 惟適所欲, 盡心孝養。 及其母歿, 葬于家北, 結廬墓側, 一不還家。 躬執祭物, 朝夕行奠, 不食鹽菜, 以終三年。 以其家一間爲祠堂, 朝夕設奠, 出告反面, 一如生時, 孝出至誠。 幼學劉仁碩, 性本至孝, 承順父母, 娶妻出居, 日三來見。 其父繼先得狂疾, 日漸加發, 幾至死域。 日夜在側, 百藥無驗。 閱《三綱行實》, 見斷指得效事, 潛引斧, 自斷手指, 燒磨調水以進, 其疾遂愈。 其後父死, 居喪三年, 不食鹽菜, 迎母于其家, 盡心孝養。 雲山郡幼學兪諧妻良女中之, 其夫中風, 幾死復蘇者, 幾至一年。 奉藥日勤, 終夜不寐, 竟日忘食, 形容枯槁。 及其夫死, 不食勺飮。 舅姑强勸, 始歠粥。 子女皆幼, 呼寒啼飢, 猶不暇顧。 竭財盡力, 精具祭物, 不廢百日之奠。 舅姑皆老, 不能謀生, 故自織自賣, 僅得奉養。 雖窮乏, 每設朔望之奠。 三年後, 父母哀其窮寡, 欲改嫁, 誓死拒之。 舅姑朝夕之奉、溫凊之供, 一如夫在之時。 順安縣 箕子殿參奉朴蔓根, 以獨子, 性本仁孝。 年一歲時喪父, 事母承顔養志, 晨昏定省。 及其母沒, 結廬墓側, 一不到家, 親執祭物, 朝夕設奠。 不近酒、不食鹽菜, 日三哭泣, 終始不怠。 嘉山郡甲士方權妻尹氏, 喪夫, 家前成墳, 造祭廳, 設枕席, 畫像掛壁。 親執祭物, 朝夕哭奠, 事亡如存, 哀毁切至, 于今十餘年守喪。 同生勸改嫁, 仰天號泣, 守節益堅, 誠意懇惻, 操節無比。"
- 【태백산사고본】 29책 57권 28장 A면【국편영인본】 16책 522면
- 【분류】윤리-강상(綱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