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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57권, 중종 21년 6월 2일 계축 1번째기사 1526년 명 가정(嘉靖) 5년

시강관 강현이 경명군이 죽을 때 세자가 조강에 참여한 것은 친친의 도리에 어긋남을 지적하다

조강에 나아갔다. 시강관 강현(姜顯)이 글에 임해서 아뢰기를,

"‘빈례(賓禮)로 방국(邦國)의 제후들과 친한다.’ 한 대문에 대해 해설하는 자가 ‘분수로 말하면 임금과 신하고 정(情)으로 말하면 손님과 주인이다.’ 했습니다. 또 ‘빈사(賓射)151) 의 예(禮)로 오래 사귄 벗을 친한다.’ 한 대문에 대해 해설하는 자가 ‘천자가 세자(世子) 적에 사귄 벗을 가리킨다.’ 했습니다. ‘길흉(吉凶)의 오복(五服)을 분별한다.’ 한 대문에 대해 해설하는 자가 ‘흉복(凶服)은 다섯 가지, 곧 참최(斬衰)·자최(齊衰)·석최(錫衰)·시최(緦衰)·의최(疑衰)다.’ 했습니다.152) 이상은 옛날 천자가 대부(大夫)·사(士)를 위해서 이와 같은 복(服)을 입었던 것 같습니다. 대저 임금과 신하 사이는 분수는 비록 엄하지만 정은 서로 가깝기 때문에 성인(聖人)이 이렇게 예를 만든 것입니다. 더구나 지친(至親)인 형제 사이야 말해 뭐하겠습니까? 주(周)나라에 이르러 귀한 이를 존경하는 예(禮)가 생겨 친척을 친하는 의(義)가 점점 강쇄(降衰)되었기 때문에 ‘제후에게는 복이 없어지고 대부에게는 강쇄한다.’ 했습니다. 왜냐하면 친척을 친하는 의가 중하기는 하지만 귀한 이를 존경하는 예가 더욱더 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귀한 이를 존경하는 가운데 친척을 친하는 의가 없을 수 없으므로 어긋남이 없이 병행(竝行)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대저 자주 경연(經筵)에 나가시는 것은 매우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경명군(景明君)이 죽은 지 7일도 못 되었습니다. 귀한 이를 존경하는 예로 말하면 복(服)이 없기는 합니다만, 귀한 이를 존경하는 예를 시행하는 가운데 의당 친척을 친하는 의도 존속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또 세자(世子)께서 잇달아 서연(書筵)을 여는 것은 학문에 근면하기 때문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제왕(帝王)의 학문은 많이 읽는 데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어릴 때부터 임금과 신하의 의와 친척을 친하는 은정(恩情)을 계도(啓導)해 주는 것도 학문입니다. 종실(宗室)은 매우 절친한 사이이므로 분수를 앞세울 수 만은 없는 것입니다. 또 듣기로는 그날경명군이 일찍 죽었는데도 오히려 조강(朝講)에 나아갔었다고 합니다. 경명군이 죽음에 임박했는데도 상께서 모르셨으니, 신은 진실로 군신의 분수가 지극히 엄하다는 것을 압니다만, 친애하는 의에 있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아뢴 말이 지당하다. 그러나 경명군은 당초 미미한 서증(暑證)이었는데 갑자기 죽은 것이다. 그래서 내가 즉시 몰랐었으므로 조강에 나간 것이고, 조강이 끝난 뒤 비로소 들었다. 지금은 정조(停朝)153) 의 기간이 이미 지났고 또 여러 날 경연(經筵)을 폐했기 때문에 이제 비로소 나온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9책 57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16책 513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왕실-의식(儀式)

  • [註 151]
    빈사(賓射) : 옛 사례(射禮)의 하나로 임금이 빈객(賓客)들과 같이 조정에서 활을 쏘는 것을 말한다.
  • [註 152]
    ‘흉복(凶服)은 다섯 가지, 곧 참최(斬衰)·자최(齊衰)·석최(錫衰)·시최(緦衰)·의최(疑衰)다.’ 했습니다. : 이는 모두 《주례(周禮)》에 나오는 말이다.
  • [註 153]
    정조(停朝) : 국상(國喪)이나 원로(元老) 대신이 죽었을 때와 비상한 재변이 있을 때에 관리들에게 3일간 집무를 중지시키던 일을 말한다.

○癸丑/御朝講。 侍講官姜顯臨文曰: "賓禮, 親邦國, 釋之者曰: ‘以分言之, 則君臣也; 以情言之, 則賓主也。’ 又曰: ‘以賓射之禮, 親故舊、朋友。’ 而釋之者曰: ‘指王之爲世子時, 故舊、朋友者也。’ 又曰: ‘吉凶之五服。’ 而釋之者曰: ‘凶服五, 則斬衰也、齊衰也、錫衰也、〔緦〕 衰也、疑衰也’ 【此皆《周禮》語。】 蓋古之天子, 其爲大夫士, 至有服如此。 大抵, 君臣之間, 分則雖嚴, 而情則相親, 故聖人以是制禮, 而況至親兄弟之間耶? 至時, 貴貴之禮出, 而親親之義漸殺, 故曰: ‘諸侯絶, 大夫降。’ 何者? 親親之義雖重, 而貴貴之禮, 爲尤重也。 然貴貴之中, 不可無親親之義, 當使之幷行, 不悖。 大抵, 數御經筵, 甚美事也, 然今景明君之卒, 不過七日。 以貴貴之禮言之, 雖無服, 貴貴之中, 當存親親之義也。 且世子連開書筵, 爲勤學也。 然帝王之學, 不在多讀。 在幼時, 啓迪其君臣之義, 親親之恩者, 無非學也。 宗室, 切親之間, 不可徒以分爲先也。 且聞, 其日景明君早卒, 而尙御朝講。 臨卒而自上猶未知, 臣固知君臣之分至嚴也, 然其於親友之義何如?" 上曰: "所言至當。 但景明君初以暑證微恙, 遽至於卒。 其日予未知之, 故御朝講, 講罷後始聞之。 今則停朝已過已累日, 廢經筵, 故今始御之。"


  • 【태백산사고본】 29책 57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16책 513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왕실-의식(儀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