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종실록 56권, 중종 20년 12월 14일 무술 3번째기사
1525년 명 가정(嘉靖) 4년
특진관 심순경이 도성 안의 도둑 방지 대책에 대해 아뢰다
주강에 나아갔다. 상이 특진관(特進官) 심순경(沈順徑) 【이때 포도장(捕盜將)이었다.】 에게 이르기를,
"전번에 포도군(捕盜軍)이 적기 때문에 병조로 하여금 더 주도록 했는데, 부지런히 잡고 있는가?"
하매, 심순경이 아뢰기를,
"원각사(圓覺寺) 부지에 지은 집들이 매우 많은데, 모두 남쪽과 북쪽에 문이 있어 드나드는 사람을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동대문 안에 수척(水尺)668) 들이 모여 지접하고 있는데, 양주(楊州) 근처에서 소와 말을 도살하여 먹을 것을 사들이는 수척들이 모두 여기에 모입니다. 도성 안의 도둑질은 이들의 소위인 듯싶으니, 신의 생각에는 두 곳의 인가와 인구 수효를 집계하여 장부에 자세히 기록해놓고 수시로 추쇄(推刷)하되 만일 얼굴이 생소한 자가 있을 때는 온 곳을 추궁하여 따진다면, 거의 도둑을 방지하는 방도에 도움이 있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마땅히 유사(有司)에게 의논해야 한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8책 56권 8장 A면【국편영인본】 16책 478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사법-치안(治安)
- [註 668]수척(水尺) : 양수척의 약칭. 곧 무수리. 후삼국(後三國) 때부터 고려 시대까지 떠돌아 다니면서 천역(賤役)에 종사하던 무리. 대개 여진(女鎭)의 포로 혹은 귀화인(歸化人)의 후예로서 관적(貫籍)도 부역(賦役)도 없이, 사냥과 고리를 만들어 팔아 생활했다. 광대·백정 등이 이들의 후예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