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곤·이유청·권균 등이 여제·파방·회례연·입거 등에 대해 아뢰다
남곤(南袞)·이유청(李惟淸)·권균(權鈞) 【이상은 삼공(三公)이다.】 ·고형산(高荊山)·안윤덕(安潤德)·유담년(柳耼年)·한형윤(韓亨允) 【이상은 비변사(備邊司)이다.】 ·이행(李荇)·홍숙(洪淑) 【찬성(贊成)이다.】 ·이항(李沆) 【참찬(參贊)이다.】 ·김석철(金錫哲)·심순경(沈順徑)·이지방(李之芳)·이사균(李思鈞) 【이상은 비변사이다.】 등이 아뢰기를,
"평안도의 여역(癘疫)에 관한 일은, 신들이 조보(朝報)852) 를 보고 매우 놀랐으나, 그치게 할 방도를 생각해 내지 못하였습니다. 문종조(文宗朝)에 제문(祭文)을 친히 지어 치제(致祭)한 뒤에 병이 과연 그쳤으나, 이와 같지는 않습니다. 황해도 극성(棘城)에서 홍건적(紅巾賊)853) 이 많이 패망(敗亡)하였는데, 이 때문에 황주(黃州)·봉산(鳳山) 등에서 사람이 많이 병들어 죽었다 하여 문종(文宗)께서 제문을 친히 지어 치제하였습니다. 이번 평안도의 병은 군졸이 패망하기 때문이 아니고 여역이 치성하여 각 고을에 두루 번진 것이니, 신들은 제사를 베푸는 것이 마땅한지 모르겠습니다. 여역의 기(氣)는 겨울이 되면 그쳐야 마땅한데 지금도 아직 치성하니, 참으로 재변입니다. 특별히 제문을 지어 조관(朝官)을 보내어 중앙에서 여제(厲祭)854) 를 베푸는 것이 마땅할 듯합니다. 또, 제사를 베푸는 것은 재변을 물리치는 일에 가까우니, 모든 일이 정리(正理)에 맞은 뒤에야 백성에게 보일 수 있는데, 여제라면 사전(祀典)에 뚜렷하게 실려 있으니 거행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한 방면의 백성이 이토록 많이 죽으므로 조정(朝廷)에서 이미 수성(修省)하기는 하나, 회례연(會禮宴)855) 도 멈추어 수성하고 공구(恐懼)하는 뜻을 보이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과거에 관한 일은 매우 중대하므로, 조금이라도 외람한 일이 있으면 반드시 파방(罷榜)856) 하는 것이 규례이나, 황해도의 감시(監試)는 같은 날에 시취(試取)하지 않았더라도 다른 도의 유생(儒生)이 미처 다시 가지 못하였을 것이므로, 전일 하문하셨을 때에 신들이 다시 시험하지 말아야 한다고 아뢰었습니다. 서얼이 시험에 들어가는 것은 문을 들어갈 때에 잘 살피지 않아서 그런 것이니, 시장(試場) 안에서 외람한 일이 아닙니다. 파방은 중대한 일이니, 지금 다시 시험할 수 없습니다.
입거(入居)할 사람의 기한을 늦추는 일은 과연 평안도에서 사람이 바야흐로 죽는데 지금 다른 도의 백성을 재촉하여 입거시키는 것은 온편치 못할 듯하나, 국령(國令)이 이미 정해졌는데 다시 일러서 기한을 늦춘다면 옳지 않을 듯합니다. 평안도의 여역이 그치지 않을 형세라면 추곡(秋穀)이 성숙하기를 기다려서 옮겨 들여보내고, 조금 덜해진다면 봄날씨가 따뜻해지기를 기다려서 들여보내는 것이 옳겠습니다. 이제 듣건대, 전라도에서 입거할 사람을 바야흐로 뽑아 보낸다 하는데, 다 뽑기를 기다리자면 봄이 되어야 할 것이니, 그때에 가서 입거시키도록 해조(該曹)를 시켜 짐작해서 하게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선산(善山)에서 여악(女樂)을 설립한 일은 신들이 아직 상세히 듣지 못하였으나, 해조(該曹)의 공사(公事)가 없는데 마음대로 설립하였다면, 본도(本道)의 감사(監司)에게 물어야 할 것입니다. 또, 평안도 감사의 계본(啓本)에 ‘의주(義州)에서 성을 쌓을 때에 도망한 군사를 받아들여 붙여 살게 한 자를 반은 입거시켰으나 반은 아직 다 들여보내지 않았는데, 죄다 뽑아 들여보낸다면 소란할 듯하니, 아직 들여보내지 않은 자는 곡식을 바치고 죄를 속(贖)하게 하여 군자(軍資)에 보태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였는데, 신들의 생각으로는 같은 죄로 반은 이미 입거하였으면 속을 거두어 군자에 보태는 것이 국용(國用)에 보탬이 되더라도 사체에 있어서 온편치 못할 듯하니, 한결같이 들여보내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또, 함경 남도 병사 최한홍(崔漢洪)의 계본에 ‘적생역(積生驛)에 행영(行營)을 두어 방수(防戍)하기를 청합니다.’ 하였는데, 변방의 일을 아는 자는 다 ‘이곳은 지세(地勢)가 마땅하다.’ 하나, 신들의 생각으로는 큰 진(鎭)을 둔다면 영노비(營奴婢)가 나가 있게 할 방도가 없으므로 할 수 없을 듯합니다. 별해보(別害堡) 땅에 고을을 두는 일은, 신들도 함경도에는 사람이 적으므로 아전(衙前)·관노비(官奴婢)가 나가 있게 할 방도가 없으므로 고을을 둘 수 없다고 생각하나, 여연(閭延)·무창(茂昌)에서 이곳을 거쳐 함흥(咸興)에 이르는 길이 매우 가까운데, 행여 여연 등에 적변(賊變)이 있으면 별해보 땅이 매우 외로우니, 혹 토병(土兵)으로 지키거나 입거시켜서 성을 더 쌓아 지키도록 해사(該司)를 시켜 공사(公事)를 만들게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하니, 전교하였다.
"조종조에서 조관(朝官)을 보내어 제사를 베푼 일은 나도 귀로 들었을 뿐인데 과연 대신이 아뢴 것과 같이 황해도에서 제사를 베푸는 일과는 같지 않으나, 아뢴 대로 중앙의 땅에서 제사를 베푸는 것은 괜찮겠다. 또, 지금 모든 잔치는 다 폐지하였으나, 정조(正朝)의 회례연은 근래 오래 거행하지 않았으므로 거행하려 하였다. 그러나 상하의 예(禮)는 평안한 뒤에야 회연(會宴)할 수 있는데 지금 여역이 치성하니, 회례연을 멈추도록 하라. 입거에 관한 일은, 홍문관(弘文館)이 봄이 된 뒤에 들여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므로 소(疏)의 뜻이 이러하겠으나, 나도 병이 치성한 곳에 백성을 몰아 들여보낼 수 없다고 생각하므로, 병이 덜해지기를 기다려 그 뒤에 들여보내도록 전에 이미 전교하였다. 대저 여역은 봄·여름에는 치성하나 가을·겨울에는 반드시 그치는 것인데 지금 아직도 치성하니, 내년 봄에 전라도에서 입거할 사람을 다 뽑거든 짐작하여 들여보내도록 해조(該曹)를 시켜 공사를 만들도록 하라. 파방(罷榜)은 중대한 일이다. 방을 낸 뒤에 곧 파한다면 그래도 괜찮겠으나, 방을 낸 지 이미 오래 지나서 소문에 따라 파하기를 청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선산에서 여악을 마음대로 회복한 일은 아뢴 대로 해조를 시켜 감사(監司)에게 물으라. 평안도 감사와 함경 남도 병사가 치계한 일은 대신이 아뢴 대로 하라."
- 【태백산사고본】 26책 52권 39장 B면【국편영인본】 16책 361면
- 【분류】군사-군역(軍役) / 군사-관방(關防) / 호구-이동(移動) / 풍속-풍속(風俗)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보건(保健) / 왕실-의식(儀式) / 인사-선발(選拔)
- [註 852]조보(朝報) : 조정(朝廷)에서 있었던 일을 날마다 적어서 반포하는 문서.
- [註 853]
홍건적(紅巾賊) : 중국 원(元)나라 말기에 일어난 도적인데, 홍건으로 표시를 하였으므로 이 이름이 붙었다. 관군에게 쫓긴 이들 약 4만 명이 고려 공민왕(恭愍王) 8년(1359) 겨울에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평양까지 점령하였다가 고려 관군의 공격을 받고 거의 전멸하였고, 그뒤에는 수군(水軍)으로 황해도 평안도 해안에서 노략질하다가 공민왕 10년에 다시 10여만 명의 무리로 침입하여 개경(開京)까지 들어왔으므로 왕이 안동(安東)으로 피하였다가 수복하였다.- [註 854]
여제(厲祭) : 횡사(橫死)하거나 후사(後嗣)가 없는 귀신을 제사하는 것.- [註 855]
회례연(會禮宴) : 동짓날 또는 정월 초하룻날에 세자(世子) 및 백관(百官)이 임금 앞에 모여서 하례(賀禮)하고 축수(祝壽)하며 벌이는 잔치, 이때 내전(內殿)에서는 세자빈(世子嬪)과 명부(命婦)가 왕비 앞에서 거행한다.- [註 856]
파방(罷榜) : 과방(科榜)을 파함. 과거(科擧)에 합격한 사람의 명단을 발표한 뒤에 그것을 무효로 돌리는 것.○己亥/。 南袞、李惟淸、權鈞 【三公。】 高荊山、安潤德、柳潤年、韓亨允 【備邊司。】 李荇、洪淑 【贊成。】 李沆 【參贊。】 金錫哲、沈順徑、李之芳、李思鈞 【備邊司。】 等啓曰: "平安道癘疫事, 臣見朝報, 甚爲驚愕, 不得思其止熄之道耳。 文宗朝親製祭文致祭後, 病果寢熄, 然與此不同。 黃海道 棘城, 紅巾之賊車多敗亡。 以此, 黃州、鳳山等處, 人多病死, 而文宗親製祭文致祭矣。 今者, 平安道之病, 則非因軍卒之覆亡, 而癘疫熾盛, 徧染各邑, 臣等未知設祭之爲宜也。 癘疫之氣, 至冬當息, 而今亦尙熾, 實爲災變也。 別製祭文, 遣朝官, 設厲祭于中央似宜。 且設祭, 近於禳災。 凡事, 須合於正理然後, 可以示諸民也。 若厲祭則著在祀典, 行之當矣。 一方百姓死, 亡至此, 朝廷雖已修省, 會禮宴亦停之, 以示修懼之意何如? 科擧事, 甚爲重大。 若少有猥濫, 則必罷榜例也。 然黃海道監試, 則雖不同日試取, 他道儒生, 必不及再赴, 故於前日下問時, 臣等以不當改試啓之耳。 庶孽入試, 乃入門時不詳察, 而然也, 非場中猥濫事也。 罷榜, 重大, 今不可改試也。 入居人緩期事, 果於平安道人方死亡, 今以他道之民, 促令入居, 似未便。 然國令已定, 若復開諭緩期, 則似不可也。 平安道癘疫, 若無寢息之勢, 待秋成移入, 若稍歇則待春和入送可也。 今聞, 全羅道入居人, 時方抄發云。 若待其畢抄, 則必至於春時, 至此然後入居事, 令該曹斟酌爲之何如? 善山女樂設立事, 臣等未之詳聞。 若無該曹公事, 而擅便設立, 則當問于本道監司矣。 且平安道監司啓本云: ‘義州築城時, 逃亡軍許接者, 爲半入居, 而其半, 則時未盡入, 若盡抄入則似爲騷擾, 其未入送者, 請令納粟贖罪, 以補軍資何如’ 云。 臣等意以爲, 一般之罪, 其半旣入居, 則收贖補軍, 雖有益於國用, 於事體未便。 請一樣入送何如? 且咸鏡南道兵使崔漢洪啓本言: ‘請於積生驛, 設行營, 防戊’ 云。 知邊事者, 則皆云。 ‘此處地勢宜當。’ 臣等意則以爲, 若設大鎭, 則營奴婢出處無由, 恐未能爲也。 別害地設邑事, 臣等亦以爲, 咸鏡道人物數少, 衙前、官奴婢出處無由, 不可設邑也。 但自閭延、茂昌, 經此地至咸興, 路甚便近。 幸於閭延等處, 有賊變, 則別害之地, 甚孤單。 或以土兵守護, 或令入居, 而城子加築守護事, 令該司爲公事何如?" 傳曰: "祖宗朝遣朝官設祭事, 予亦耳聞而已, 果如大臣所啓, 而與黃海道設祭事, 不同矣, 然依所啓, 於中央之地, 設祭可也。 且今者, 凡宴皆廢。 但正朝會禮宴, 近久不行, 故欲行之, 然上下之禮, 平安然後, 可以會宴也。 今癘疫熾酷, 則會禮宴停之可也。 入居事, 弘文館意以爲, 開春後當入送, 故疏意如此。 然予亦以爲, 病熾之地, 不可驅民入送, 故待其病歇而後, 入送事, 前已傳之矣。 大凡癘疫, 春夏則熾盛, 秋冬則必寢息也, 而今尙熾盛, 其於來春, 待全羅道入居人(必)〔畢〕 抄, 斟酌入送事, 令該曹爲公事可也。 罷榜重事也。 出榜後, 卽罷則猶可也, 出榜已久, 隨所聞請罷, 不可也。 善山女樂擅復事, 其依所啓, 令該曹問于監司。 平安道監司及咸鏡南道兵使馳啓事, 其依大臣所啓, 爲之。"
- 【태백산사고본】 26책 52권 39장 B면【국편영인본】 16책 361면
- 【분류】군사-군역(軍役) / 군사-관방(關防) / 호구-이동(移動) / 풍속-풍속(風俗)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보건(保健) / 왕실-의식(儀式) / 인사-선발(選拔)
- [註 8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