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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51권, 중종 19년 8월 24일 병진 3번째기사 1524년 명 가정(嘉靖) 3년

대신들과 인재 등용·변방의 곡식 비축·입거 등에 관해 의논하다

전교하기를,

"이조 판서(吏曹判書)가 경연(經筵)에서 아뢰기를 ‘인물이 적어서 채워 차임(差任)할 수 없다.’ 하였는데, 변통할 방도가 있지 않겠는가? 오늘 대신이 다 모이니, 아울러 의논하게 하라."

하였다. 영의정(領議政) 남곤(南袞)·좌의정(左議政) 이유청(李惟淸)·우의정(右議政) 권균(權鈞)·우찬성(右贊成) 이행(李荇)·우참찬(右參贊) 이항(李沆) 등이 아뢰기를,

"이전(李恮)의 일은, 신들의 생각을 전에 이미 아뢰었습니다." 【상이 영산군(寧山君) 이전(李恮)을 양이(量移)하는 일을 물었으므로 정부(政府)가 옳지 않다 하고, 또 조정을 시켜 함께 의논하게 할 것을 아뢰었다.】

하였다.

병조 판서(兵曹判書) 홍숙(洪淑)·호조 판서(戶曹判書) 안윤덕(安潤德)·형조 판서(刑曹判書) 조계상(曺繼商)·예조 판서(禮曹判書) 윤은보(尹殷輔)·이조 판서 김안로(金安老)·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 한형윤(韓亨允) 등이 아뢰기를,

"당초에 조정(朝廷)이 종사(宗社)의 큰 계책을 위하여 이와 같이 처치하였으니, 아래에서는 아마도 다른 의논이 있을 수 없을 듯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전에 대신들이, 이와 같이 하는 것이 보전하는 방도라 하였고, 이제 다시 양이할 수 없다고 하거니와, 과연 간사한 사람이 때없이 이 사람을 구실 삼으니, 이 뒤로는 다시 의논하지 않아야 하겠다."

하였다. 남곤 등이 아뢰기를,

"변방을 방비하는 일은 멀리서 헤아릴 수 없으니, 양계(兩界)의 변장(邊將)을 시켜 방략을 조목으로 진술하여 올리게 한 뒤에 함께 의논하여 처치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곡식을 저축하는 일은 각별히 조치할 일이 없으나, 양계에서 상공(常貢)하는 초서피(貂鼠皮)602) ·학피(貉皮)603) ·토표피(土豹皮)604) 는 국용(國用)을 헤아려서 바치게 하고 그 나머지는 미곡(米穀)으로 갈음하여 바치게 하면, 국용이 모자라지 않고 백성도 마련하기 쉽고 군자(軍資)를 보탤 수 있겠습니다.

토호 품관(土豪品官)을 찾아 모으는 일은, 팔도에서 다 뽑아야 옳겠으나, 양계는 본디 그곳을 채우려는 것이므로 있더라도 형세가 다른 도로 옳길 수 없으니, 이것은 뽑지 않는 것이 옳겠습니다. 그 나머지 황해도·강원도·경기는 뽑을 만한 자가 있기는 하나, 어사(御史)를 시켜 뽑으면 소요할 듯하니, 사목(事目)을 만들어 감사(監司)에게 행이(行移)605) 하여 찾아 모으게 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인재를 등용하는 일은 요즈음 빈자리가 많은데 전조(銓曹)가 차출하여 채울 수 없다면, 이조 판서(吏曹判書)가 아뢴 대로 해야만 옳겠으나, 그렇게 하면 사태(沙汰)와 같은 듯하여, 전일 도태된 자는 그 일이 혹 확실하지 않고 새로 천거되는 자도 더할 것이 없으니, 해사(該司)를 시켜 인기(人器)를 헤아려서 등용하게 하소서.

또 입거(入居)시키는 일은, 처음에 공천(公賤)·사천(私賤)을 용은(容隱)하고 향곡(鄕曲)에서 무단(武斷)하는 호강(豪强)한 품관(品官) 등 세 가지를 뽑게 하였으나 이제 신들이 다시 의논하니, 호강하고 무단하는 무리를 수령과 유향소(留鄕所)가 뽑게 하면 원망하는 것을 두려워하여 뽑지 못할 것이므로 이들이 적발하기는 매우 어렵고, 많이 뽑아내지 못한다면 변방을 채우기에 넉넉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호강 등 세 조목 밑에 죄명(罪名)을 더 적어 아뢰니, 경차관(敬差官)을 시켜 낱낱이 거행하게 하면 아마도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무릇 호강하다는 자는 품관뿐이 아니고 서인(庶人)·천구(賤口)에도 혹 있으니, 모두 뽑는다면 넉넉히 변방을 채울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양민(良民)을 모점(冒占)한 일에 대해서는, 당초에 병조(兵曹)·형조(刑曹)가 함께 의논하여 마련한 것은 3구(口) 이상 모점한 것을 죄준다 하였으나, 이 조목은 불편한 듯하니, 1구 이상일지라도 뽑아서 입거시켜야 하겠습니다."

하고, 남곤이 홀로 아뢰기를,

"공채(公債)를 많이 받고도 호부(豪富)함을 믿고서 여러 해 동안 바치지 않는 자와 아비에게 불효하고 또 불목(不睦)하며, 죄가 강상(綱常)을 범하여 정리(情理)가 매우 중한 자도 아울러 입거시키소서."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6책 51권 45장 A면【국편영인본】 16책 334면
  • 【분류】
    향촌-지방자치(地方自治) / 호구-이동(移動) / 재정-공물(貢物) / 인사-임면(任免) / 사법-행형(行刑) / 왕실-종친(宗親) / 군사-군정(軍政) / 군사-병참(兵站) / 신분-신분변동(身分變動) / 금융-식리(殖利) / 윤리-강상(綱常)

  • [註 602]
    초서피(貂鼠皮) : 노랑가슴담비의 가죽.
  • [註 603]
    학피(貉皮) : 오소리 가죽.
  • [註 604]
    토표피(土豹皮) : 스라소니 가죽.
  • [註 605]
    행이(行移) : 공문을 보내는 것.

○傳曰: "吏曹判書於經筵啓曰: ‘人物數少, 不得塡差。’ 無乃有變通之道乎? 今日大臣皆會, 其竝令議之。" 領議政南袞、左議政李惟淸、右議政權鈞、右贊成李荇、右參贊李沆等啓曰: "事, 臣等之意。 前已啓之。" 【上問寧山君量移事, 政府以爲不可。 又啓, 令朝廷共議。】 兵曹判書洪淑、戶曹判書安潤德、刑曹判書曺繼商, 禮曹判書尹殷輔、吏曹判書金安老、漢城府判尹韓亨允等啓曰: "當初, 朝廷爲 宗社大計, 如此處置。 自下恐不可有他議也。" 傳曰: "前者, 大臣等云如此者, 乃其保全之道也, 今復以爲不可量移。 果奸人之, 以此人藉口者, 無歲無之, 後不當更議矣。" 南袞等啓曰: "備邊之事, 不可遙度, 請令兩界邊將, 條陳方略, 而上之然後, 共議處置何如? 儲穀事, 無各別措置之事。 但兩界常貢貂鼠皮、貉皮、土豹皮, 若量國用而貢之, 其餘以米穀代納, 則國用不虧, 而民亦易備, 可以補軍資。 土豪品官搜括事, 八道皆抄可也。 但兩界則本欲實之, 雖有之, 勢不可移他道。 此則勿抄可也, 其餘黃海江原京畿雖有可抄者, 而若令御史抄之, 則似乎騷擾, 請爲事目, 行移于監司, 使之搜括何如? 用人事, 今者窠闕多, 而銓曹不得差塡, 則依吏曹判書所啓, 爲之可也。 但如此, 則似若沙汰, 前日被汰者, 其事或不的實, 被新薦者, 亦無有所加, 請令該司, 量人器而用之。 且入居事, 初令以公私賤容隱, 武斷鄕曲, 豪强品官等三條抄之。 今臣等更議, 則豪强武斷者之類, 若令守令及留鄕所抄之, 則必畏怨, 不能抄, 故此輩摘發甚難。 若不能多數抄出, 則不足於實邊, 故今於豪强等三條下, 加列罪名, 而啓之。 若令敬差官, 一一擧行, 則庶可多得也。 且凡豪强云者, 非獨品官而已, 庶人、賤口, 亦或有之。 若竝抄之, 則足以實邊矣。 且冒占良民事, 當初, 兵、刑曹同議磨鍊, 冒占三口以上罪之云, 此條似不便, 雖一口以上, 可抄入居也。" 南袞獨啓曰: "多受公債, 恃豪富累年不納者, 與夫不孝不睦, 罪犯綱常, 而情理深重者, 請竝入居。"


  • 【태백산사고본】 26책 51권 45장 A면【국편영인본】 16책 334면
  • 【분류】
    향촌-지방자치(地方自治) / 호구-이동(移動) / 재정-공물(貢物) / 인사-임면(任免) / 사법-행형(行刑) / 왕실-종친(宗親) / 군사-군정(軍政) / 군사-병참(兵站) / 신분-신분변동(身分變動) / 금융-식리(殖利) / 윤리-강상(綱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