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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51권, 중종 19년 6월 17일 경술 4번째기사 1524년 명 가정(嘉靖) 3년

회암사 중들의 내지를 사칭한 조세 포탈을 논한 홍문관의 상차

홍문관(弘文館) 【응교(應敎) 심사손(沈思遜)·교리(校理) 박우(朴祐)·박사(博士) 황염(黃恬)·저작(著作) 황헌(黃憲)·정자(正字) 송인수(宋麟壽).】 이 상차(上箚) 하기를,

"상교(象敎)376) 는 이적(夷狄)의 용습(俑習)377) 이고 정도(正道)의 모적(蟊賊)378) 입니다. 그 해로움이 양묵(楊墨)379) 보다 심하여, 숭봉(崇奉)하는 자가 복리(福利)는 보지 못하고 화(禍)만 더욱 참혹하게 얻었는데 멀리는 소량(蕭梁)380) , 가까이는 고려(高麗)의 일이 방책(方策)381) 에 있어 환히 살필 수 있습니다. 이제 듣건대 회암사(檜巖寺)382) 의 중들이 내지(內旨)를 받들었다 하면서 도량(道場)을 크게 열었으므로 도성 안 사람들이 몰려들어 절 문을 메우고 중을 먹이는 것이 무려 수천 명인데, 조세를 포탈하고 호적을 도피하여 손뼉치며 서로 경하한다 합니다. 한번 좌도(左道)383) 의 일을 행하면 사방이 다투어 나아가니 신 등은 본디 정일(精一)한 성학(聖學)384) 이 끝내 탄설(誕說)385) 에 유도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데 도리어 어찌하여 이러한 일이 있습니까? 사도(斯道)386) 를 숭상하고 이단(異端)을 배척하는 것은 예전의 융성하던 때 이래로 성대(盛大)만한 때가 없었는데, 어찌하여 처음과 끝이 이처럼 어그러집니까? 만화(萬化)의 근본을 짓는 데 일호(一毫)의 차를 움직이면 그 폐해가 장차 어리석은 백성으로 하여금 이륜(彝倫)을 아주 버리고 금수(禽獸)로 흘러들게 할 것이니, 명교(名敎)를 손상하고 치란(治亂)이 달려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명산(名山)의 여러 절에서 거의 아니하는 달이 없이 향화(香火)387) 를 행하는데 내수(內需)의 비용도 백성에게서 나오는 것이고 귀신이 날라다 주는 것이 아닙니다. 더구나 이제 해마다 흉년이 들어 굶어 죽은 주검이 잇달아 보이는데, 백성의 고통을 슬피 여기지 않고 낭비하여 놀고 먹는 자를 먹여 기르는 것은 치도(治道)에 조금도 도움이 없고 성덕(聖德)에 큰 누(累)가 되는 것입니다. 예전에 시 세종(柴世宗)388) 이 불상(佛像)을 부수어 민전(民錢)을 주조(鑄造)하고 호영(胡穎)389) 이 중을 매때려 어리석은 풍속을 없앤 것을 사가(史家)가 칭찬하였는데 지금까지도 이의가 없습니다. 전하의 명지(明智)는 위로 요(堯)·순(舜)과 짝하는데 시 세종·호영이 버린 일을 행하려 하십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경덕(敬德)에는 근본이 있음을 알고 부처를 받드는 것은 보탬이 없다는 것을 깨달으시어, 절을 헐고 중을 없애서 뿌리를 아주 끊고 사도(斯道)의 명백함을 밝혀 어리석은 백성의 미혹을 일깨우소서. 그러면 국가가 다행하겠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이제 차자(箚子)를 보니 매우 놀랍다. 이단의 일은 본디 이미 엄하게 끊었거니와 백성이 그 일을 하더라도 매우 다스려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도성 안 사람들이 시끄러이 들끓어 절 문을 메우고 중을 먹이는 것이 무려 수천 명이라고 말하였으나, 각도(各道)의 중을 죄다 합하더라도 어찌 그렇게까지 될 수 있겠는가? 전에 각도의 감사(監司)를 시켜 찾아서 충군(充軍)하게 하였으나, 혹 스스로 도망하여 숨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 있다. 이단의 일이 접때는 있을 수 있었으나, 이제는 내가 참으로 아주 끊었으므로 궁위(宮闈)390) 안에서도 하지 못한다. 여기에 내지를 받들었다고 칭한다 하였는데, 이것은 자전(慈殿)의 분부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겠으나 무릇 이러한 일은 내가 아주 끊은 지 이미 오랬거니와 자전께서 하시더라도 내가 어찌 알겠는가? 여기에 위로 요(堯)·순(舜)과 짝하는데 시 세종·호영이 버린 일을 행하려 한다고 말하였는데, 내가 조금이라도 한 일이 있다면 시종(侍從)이 이렇게 말해야 마땅하나, 지금 시종 및 조정(朝廷) 중에서 내가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이 말은 지나친 듯하다. 또 절을 헐고 중을 없애서 뿌리를 아주 끊으라고 말하였는데, 이것은 이미 감사를 시켜 찾아서 충군하게 하였으나 도망하여 숨었으므로 하지 못한 것이다. 전에 유자(儒者) 김위(金渭)가 상소(上疏)하여 원주(原州)에 있는 상원사(上元寺)의 불사(佛事)를 말하였는데, 추핵(推覈)하게 하였더니 미열한 과부들이 한 일이고 과연 내지에 의한 일이 아니었으므로 과부들이 다 죄받았다. 이번 일도 어리석은 백성들이 한 일인 듯한데, 추핵하게 하려 하나 이것은 승전(承傳)을 받들 것 없다. 대간이 들으면 스스로 추핵할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6책 51권 6장 B면【국편영인본】 16책 314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사상-불교(佛敎)

  • [註 376]
    상교(象敎) : 불교(佛敎)의 별칭. 석가모니가 죽은 뒤에 제자들이 사모하길 마지않아 드디어 나무를 깎아서 불상을 만들어 숭배하였으므로 이렇게 부른다.
  • [註 377]
    용습(俑習) : 나쁜 전례를 따른 풍습.
  • [註 378]
    모적(蟊賊) : 뿌리와 마디를 갉아먹는 벌레. 양민(良民)을 해치는 악인(惡人)의 비유.
  • [註 379]
    양묵(楊墨) : 양주(楊朱)와 묵적(墨翟). 다 중국 전국(戰國) 때 사람. 양주는 위아설(爲我說)을, 묵적은 겸애설(兼愛說)을 주장하여 이 두 설(說)이 천하에 성행하였는데, 맹자(孟子)는, 위아는 임금을 무시하고 겸애는 아비를 무시하는 것이라 하여 이단(異端)으로 보고 극력 배척하였다.
  • [註 380]
    소량(蕭梁) : 중국 동진(東晉) 뒤에 일어난 남조(南朝)의 양(梁)나라. 임금의 성이 소씨이므로 이렇게 말한다.
  • [註 381]
    방책(方策) : 목판(木版)과 죽간(竹簡). 예전에는 방책에 글을 적었다. 그러므로 기록·문서 등의 뜻으로 쓴다.
  • [註 382]
    회암사(檜巖寺) : 경기도 양주군(楊州郡)에 있다. 고려 충숙왕(忠肅王) 때에 창건, 우왕(禑王) 때에 중건하였으며, 조선 성종(成宗) 때에 정희 왕후(貞熹王后:세조비(世祖妃))가 승하한 세조를 위하여 정현조(鄭顯祖) 등에게 명하여 중수하였다.
  • [註 383]
    좌도(左道) : 사도(邪道). 불교를 가리킴.
  • [註 384]
    성학(聖學) : 임금의 학문.
  • [註 385]
    탄설(誕說) : 황당한 말. 불교를 가리킴.
  • [註 386]
    사도(斯道) : 유교를 가리킴.
  • [註 387]
    향화(香火) : 불공을 드리느라 향불을 피우는 것.
  • [註 388]
    시 세종(柴世宗) : 오대(五代)의 하나인 주(周)나라의 세종 시영(柴榮).
  • [註 389]
    호영(胡穎) : 송 이종(宋理宗) 때 사람. 사녕(邪佞)을 좋아하지 않고 신이(神異)를 말하는 것을 더욱 싫어하여 가는 곳마다 음사(淫詞)를 헐었다. 광동 경략 안무사(廣東經略按撫使)로 있을 때에 조주(潮州)의 어느 절에 있는 뱀을 사람들이 위하는 것을 알고 그 뱀을 죽이고 절을 헐고 중을 죄주었다.
  • [註 390]
    궁위(宮闈) : 왕비의 거처.

○弘文館上箚曰:

【應敎沈思遜、校理朴祐、博士黃恬、著作黃憲、正字宋麟壽。】 象敎, 夷狄之俑習; 正道之蟊賊。 其害甚於楊墨, 崇奉者未見福利, 得禍愈慘, 遠則蕭梁; 近則高麗, 事在方策, 昭然可鑑。 今聞, 檜巖緇流, 稱奉內旨, 大開道場, 都下奔波, 塡咽寺門。 飯僧無慮數千, 逋租亡籍, 抵掌相慶, 一擧左道, 四方爭趨。 臣等固謂精一 聖學, 終不誘於誕說, 而顧何有如此事耶? 尊尙斯道, 攘斥異端, 隆古以來, 莫如盛代, 何始終若是戾耶? 作萬化之原, 動一毫之差, 其弊將使愚氓, 滅棄彝倫, 流入禽獸。 斲喪名敎, 治亂所在, 可不懼哉? 名山諸刹, 潛行香火, 殆無虛月, 內需之費, 亦出於民, 非神運鬼輸也。 況今比歲凶歉, 餓莩相望。 不惻民隱, 糜穀游手, 無毫補於治道; 有大累於聖德。 昔柴世宗, 毁佛像, 鑄民錢; 胡穎, 杖僧人, 脫愚俗, 史氏稱美, 至今無異辭。 殿下明智, 上配, 而欲蹈賤棄事歟? 伏願殿下, 知敬德之有本; 悟奉之無益, 毁刹汰僧, 永絶根柢, 闡斯道之明白; 發愚民之聾惑, 國家幸甚。

傳曰: "今見箚子, 甚爲驚愕。 異端之事, 固已嚴絶, 假使百姓爲之, 所當痛治。 此言: ‘都下喧騰, 塡咽寺門, 飯僧無慮數千。’ 雖盡合各道僧人, 豈能至此? 前令各道監司, 推刷充軍, 而或自逃亡隱避, 不能爾。 異端之事, 曩者容或有之, 今則予固頓絶, 雖宮闈之內, 不得爲也。 此言: ‘稱奉內旨。’ 此必指言慈殿之旨也。 然凡此等事, 予之頓絶已久, 假令自慈殿爲之, 予豈知之? 此言: ‘上配, 欲蹈賤棄之事。’ 若予少有所爲, 則侍從當如此言之。 今侍從及朝廷, 孰不知予之不爲乎? 此言似過。 又言: ‘毁刹汰僧, 永絶根柢。’ 此則已令監司, 推刷充軍, 而逃隱未能耳。 前有儒者金渭, 上疏言原州上元寺佛事, 令核之, 則迷劣寡婦等所爲, 果非內旨事, 故寡婦等皆受罪。 此亦恐愚民等所爲, 欲令推之, 此不必奉承傳。 臺諫聞之, 必自推核矣。"


  • 【태백산사고본】 26책 51권 6장 B면【국편영인본】 16책 314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사상-불교(佛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