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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47권, 중종 18년 4월 25일 병신 4번째기사 1523년 명 가정(嘉靖) 2년

대간이 왕자군들의 제택 제도에 대해 아뢰다

대간이 전의 일을 아뢰고, 헌부가 아뢰기를,

"근래 왕자군들의 제택(第宅)의 제도가 지나친 폐단을 모름지기 위에서 개정한 연후에야 아랫사람들이 법을 어기는 일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혜정 옹주의 집을 금원군(錦原君)의 집 지은 예에 따르라 하셨으나, 《대전(大典)》에 실린 대로 따라야지 하필 전일 제도보다 지나치게 지은 집을 따라 토목 공사를 일으킬 게 뭐 있습니까? 강원도 백성은 양전(量田)에 이미 지쳤고 충청도의 고을들은 바야흐로 군적(軍籍)을 고치고 있으니, 이렇게 고을의 재목을 내려보내게 하는 일은 일체 정지시켜야 합니다. 예조 판서는 육경(六卿) 중 그 직임이 제일 중하기 때문에 반드시 여러 성재(省宰)를 거친 자로 차임합니다. 김극성은 전조(銓曹)에서 의망(擬望)하지 않았는데 상께서 특별히 제수하였으며 인물 또한 그 직임을 감당할 만합니다만, 예문 제학에는 합당하지 않으니 개정(改正)하기를 청합니다. 수찬(修撰) 신영(申瑛)은 출신(出身)한 지 한 달 만에 갑자기 시종(侍從)에 서임되었으니 체직하소서. 직강(直講) 허흡(許洽)은 좌랑(佐郞)에서 송서(送西)171) 된 지 오래지 않았는데 승품(陞品)하였으니 매우 지나칩니다. 개정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왕자군들의 제택에 대한 일은 과연 《대전(大典)》에 왕자(王子)로부터 사서인(士庶人)에 이르기까지의 집 제도가 각각 실려 있으나, 지금도 한결같이 그 제도를 따르는지는 알 수 없다. 조종조 적에도 왕자들의 집은 역시 한결같이 《대전》을 따르지는 않았었는데, 지금 혜정 옹주의 집은 단지 70간으로 비록 제도보다 지나친 듯하나 반드시 용도를 헤아려 지었을 것이니 고칠 수 없다. 고을의 재목을 흘러내려 운반하는 일도 해사에서 민폐(民弊)를 생각해서 양도(兩道)에 분담시킨 것이다. 예문 제학은 과연 문한(文翰)의 직임이고 김극성(金克成)도 고사(固辭)하니, 아뢴 대로 체직하라. 허흡(許洽)은 비록 송서(送西)한 지는 오래지 않았으나 좌랑이 된 지 이미 오래이니 고칠 수 없다. 신영(申瑛)은 비록 출신한 지는 오래지 않았으나 정부(政府) 및 이조(吏曹)의 의논이 같았고 홍문록(弘文錄)172) 에도 수록하였으니, 빨리 서용했다 해서 방해될 게 무엇인가. 나머지도 윤허하지 않는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4책 47권 42장 A면【국편영인본】 16책 209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정론-간쟁(諫諍) / 재정-역(役) / 농업-임업(林業) / 주생활-가옥(家屋) / 왕실-종친(宗親)

  • [註 171]
    송서(送西) : 중추부(中樞府) 또는 오위(五衛)의 직으로 보내는 것. 실직(實職)을 면하되 아직 사환(仕宦)을 면하지는 않거나 실관(實官)의 자리가 없는데 벼슬을 주어서 써야 할 경우 등에 송서한다.
  • [註 172]
    홍문록(弘文錄) : 홍문관(弘文館)의 교리(校理)·수찬(修撰) 등에 임명될 만한 후보를 선거하는 기록. 우선 홍문관의 7품 이하인 관원, 즉 박사(博士)·저작(著作)·정자(正字)가 문과 방목(文科榜目)을 상고하여 합당한 사람을 베껴낸 다음, 홍문관의 부제학(副提學)·응교(應敎)·교리·수찬 등이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이름에 권점(圈點)을 치는데, 이것을 본관록(本館錄) 혹은 홍문록이라 한다. 이 본관록을 가지고 다시 의정(議政)·참찬(參贊)·대제학(大提學)과 이조(吏曹)의 판서(判書)·참판(參判)·참의(參議) 등이 모여 권점을 치는데 이것을 도당록(都堂錄) 또는 정부 홍문록(政府弘文錄)이라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홍문록에 의하여 궐원이 생겼을 때 차점 이상을 얻은 사람을 임금에게 아뢰어 교리·수찬에 임명한다.

○臺諫啓前事。 憲府啓曰: "近來, 諸君第宅過制之弊, 須自上改之, 然後下人自不得違法。 惠靜翁主之家, 令依錦原君家造成。 當遵《大典》所載, 何必從前日過制之家, 乃興土木乎? 江原之民, 已困於量田, 忠淸之邑, 方開軍籍。 如此, 村木流下, 一切可停。 禮曹判書, 六卿之中其任最重, 故必以歷試省宰者差之。 金克成非銓曹所擬, 自上特授矣, 然人物亦可堪任者也。 但藝文提學則不合, 請改正。 修撰申瑛, 出身踰月, 遽敍侍從, 請遞之。 直講許洽以佐郞, 送西未久, 而陞品, 至爲過越, 請改正。" 傳曰: "諸君第宅事, 果於《大典》有自王子以至士庶人, 各有家制, 然今未知一遵其制也。 雖在祖宗朝, 王子家舍則亦不一從《大典》。 今惠靜之家只七十間, 雖似過制, 然必計其用處而爲之, 不可改也。 村木流下事, 該司亦計民弊, 分定兩道也。 藝文提學, 果文翰之任。 克成亦自固辭, 其依啓遞之。 許洽雖送西未久, 然爲佐郞已久, 不可改也。 申瑛出身雖未久, 政府及吏曹同議, 錄于弘文, 雖速敍何妨? 餘亦不允。"


  • 【태백산사고본】 24책 47권 42장 A면【국편영인본】 16책 209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정론-간쟁(諫諍) / 재정-역(役) / 농업-임업(林業) / 주생활-가옥(家屋) / 왕실-종친(宗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