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중종실록45권, 중종 17년 8월 9일 임오 6번째기사 1522년 명 가정(嘉靖) 1년

관리들의 연회, 왕실의 사치, 법령 시행 등에 관한 대사간 유관 등의 상소문

대사간 유관(柳灌) 등이 상소하기를,

"신 등이 삼가 살피건대, 전하께서 즉위하신 이래로 부지런히 정치를 하시되 오직 천명(天命)을 두려워하셨는데, 근자에 음양이 차서를 잃어 우박의 재변과 한재(旱災)·황재(蝗災)가 생겨서 성상의 염려를 끼치게 하였고, 또 원묘(原廟)에서 사람을 벼락친 재변이 생겨서 상하가 공구한 마음으로 분주하게 대책을 찾았으나 그 재변의 원인을 구명하지 못했습니다. 신 등은 삼가 듣건대, 인사가 아래에서 실수하면 천변이 위에서 응한다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하늘의 견고(譴告)가 어찌 헛된 반응이겠습니까? 신 등의 생각에는 전하께서 하늘에 응하는 도리에 있어서 참다움을 다하지 못하고 정치에 있어서도 혹 결여된 바가 있는 듯 싶습니다. 삼가 보건대 전하께서는 재변을 만나 공구하시어 편하게 계실 겨를도 없이 정전(正殿)을 피하시면서까지 두려워하고 삼가는 마음으로 천심에 답하시니 수성(修省)하는 도리가 극진합니다.

그런데 통탄할 일이 있습니다. 하늘이 재변을 보임이 심상치 않으니 마땅히 상하가 서로 수성하고 감히 안일함을 생각하지 않아야 할 것인데, 항간에서는 연락(讌樂)의 일을 태연스럽게 행합니다. 비관(卑官)·소리(小吏) 같은 것은 말할 것도 못되지만, 육조(六曹)의 낭관(郞官) 같은 자들도 공공연히 모여서 제진(齊進)이니 벌례(罰禮)310) 니 칭하며 음악을 크게 베풀고 방자하게 즐기는 놀이를 합니다. 이들 뿐만 아니라 의정부는 여러 관사(官司)의 우두머리인데도 매양 들으면 사인사(舍人司)에서 손님을 초청하여 노래 부르고 술 마시는 연회를 다른 부서보다 배나 하는데, 그것을 고풍(古風)이라 하면서 조금도 폐지하려 하지 않습니다. 위에서는 감선 철악(減膳撤樂)하며 공구 수성(恐懼修省)하시기에 겨를이 없는데, 아래서는 위의 뜻을 본받지 않고 태연하게 놀이를 하며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습니다. 육조와 정부는 만 백성이 우러러보는 곳인데 먼저 잘못을 저지름이 이와 같고 사람들도 그것을 예사로 보며 괴이한 것임을 알지 못하니 나라에 금법(禁法)이 있다 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사대부들은 의복·음식에 사치를 힘쓰고, 심지어 시정배들까지도 공경(公卿)과 맞먹을 정도로 참람하게 사치를 숭상합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등급이 없어지고 명분이 정해지지 못할 것입니다. 신 등은 이런 일에 통심(痛心)하여 그 원인을 깊이 궁구하였더니, 전하의 검소한 생활이 하(夏)나라 우왕(禹王)이 검소한 음식을 먹고 주(周)나라 문왕(文王)이 소박한 옷을 입었던 일과 같다는 것을 듣지 못했고, 근일 모든 왕자들의 혼례의 사치는 예전에 비해서 더욱 심합니다. 아, 임금의 한 몸은 만 백성의 표본인데 전하의 가정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신 등은 전하께서 통솔하는 방법이 극진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궁정(宮庭)과 외방은 엄격한 구별이 있으니, 근엄으로 주본을 삼아서 바깥의 말이 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안의 말이 바깥에 나가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인데, 신 등이 듣건대 바깥 사람이 거리낌없이 멋대로 궁위(宮闈)에 출입하여 언어가 전파된다 합니다. 이로부터 안의 말이 밖에 흘러나오니 이에 따라 밖의 말이 안에 들어간다는 것도 알 수가 있습니다. 내외의 구별이 이처럼 엄격하지 못하고 언어의 전파됨이 이처럼 쉽다면, 후일 여알(女謁)의 참소하는 단서가 여기에서 싹틀까 신 등은 염려하는 바 입니다. 아, 전하의 가정(家政)이 이 지경이니, 전하의 수신 제가(修身齊家)가 제대로 실행된다고 볼 수 있겠습니까?

신 등이 보건대 전하께서는 자주 구언(求言)의 분부를 내리시나, 대간이 시정(時政)을 논집(論執)하여 여러 날 동안 대궐 문에 엎디어 있어도 오히려 윤허를 받아내지 못하고, 대신과 시종이 소장을 올려서 비록 비답은 받아내나, 전하께서 일찍이 한 가지 말을 채택하거나 한 가지 일을 행한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으니, 신 등의 생각에는 전하께서 간언(諫言)을 따르시는 것이 한갓 이름만 따를 뿐, 그 실지는 다하지 못한 듯싶습니다. 무릇 대간이 논한 바는 매우 시속의 병폐를 바로 맞힌 것인데, 만일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병폐를 구제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때문에 명철한 임금은 대간에 대하여 언론이 비록 과중하다 하더라도 반드시 너그럽게 포용하여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되 행여 그들이 말하지 않을까 염려하였고, 혼매한 임금은 과실 듣기를 싫어하여 가언(嘉言)과 선론(善論)을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을 뿐 아니라, 언어와 안색에 성냄을 나타내기도 하고 혹은 마음속에 노여움을 간직하기도 하여 일에 해를 끼치는 일이 많았습니다. 아, 간언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모두 임금의 한 마음에 있고 흥망(興亡)이 매인 것인데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무릇 선왕의 법은 시의(時宜)를 참작하여 후세에 끼친 것이니, 한때의 견해를 가지고 가볍게 여기거나 중히 여겨서도 안 되고 한 사람의 사견(私見)을 가지고 오르내려서도 안 됩니다. 이 법 준수하기를 마치 사시의 변함 없는 것처럼 한 다음에야 후세 사람 중에 죄진 자가 요행히 모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근일 정치는 법령이 행해지지 않고 만사가 해이하니 신 등의 생각에는 전하의 법을 준수함이 극진하지 못한 듯싶습니다.

전번 강징(姜澂)이 중국에 사신갔을 때 망령되이 비천한 꾀를 써서 후일의 폐단을 열어놓았는데도 그의 죄를 다스리지 않고 놓아주었으며, 이숭인(李崇仁)은 변경 수비를 제대로 못하였으니 군법이 가해져야 할 것인데, 파직되어 미처 집에 이르기도 전에 곧 그에게 벼슬이 제수되었습니다. 그리고 남의 신하된 자는 명을 받으면 의리상 사가에서 잘 수 없는데, 더구나 변방 사변이 한창 급해서 장수를 보내어 방어를 돕게 하는 때임에리까? 그런데 이안세(李安世)원팽조(元彭祖)는 명을 받들고 나갈 때 길을 우회하여 사가에 들르는 등 걸음을 지체하였으니 이는 조정의 명령을 받들고 무시한 행동입니다. 남방 군기의 절제권을 감사에게 전임하고 간곡한 유시를 내렸는데 이권(李菤)이안세는 왜적을 수색하던 날 감사와의 약속을 어기고 자기 마음대로 바다로 나갔으니 이는 군령을 무시한 것입니다. 신상(申鏛)은 이미 절제의 위임을 받고 주장(主將)의 책임을 맡았으면서도 호령을 제대로 못하여 여러 장수로 하여금 군율(軍律)을 잃게 하고 또 즉시 조정에 치문(馳聞)하지 않아 전임(專任)하고 유시한 전하의 뜻을 저버렸으니 그 죄 또한 큽니다. 국법과 군율이 줄곧 해이해지는데, 이를 다스리지 않으면 장차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겠습니까? 원컨대 전하께서는 법령을 시행하는 데 한결같이 경전(經典)을 따르시고 조금도 동요하지 마소서.

아, 하늘의 견고(譴告)가 참으로 심상치 않은데 서정(庶政)의 실착이 이와 같으니 그 재변을 그치게 하는 방법에 있어서 실(實)을 얻는 것을 보지 못하겠습니다. 실이란 것은 성(誠)입니다. 천도(天道)는 지극히 성(誠)하여 쉬지 않으니, 임금이 그것을 본받아 순일(純一)해 마지않은 때문에 그 성을 간직하면 임금의 덕이 날로 닦이고 조금만 해이하면 임금의 마음이 방탕하게 될 것입니다. 원컨대 전하께서는 재변을 만나 수성(修省)함에 이 성을 잃지 마시고, 검소함을 숭상하고 사치함을 제거함에 이 성을 잃지 마시며, 내외의 구별을 엄격히 하고 간쟁(諫諍)을 받아들이고 법령을 시행하는 데에도 한결같이 이 성으로 하시면 서정(庶政)과 만사가 자연 수행되고, 천재와 시변(時變)도 상서로 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원컨대 전하께서는 유의하소서."

하니, 비답하기를,

"재변이 이처럼 심상치 않은데 상하 그 누가 놀라고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소론(疏論)은 시속의 병폐를 바로 맞혔다. 나의 성품은 원래 사치를 좋아하지 않고 검소를 힘쓴다. 그러므로 비록 내 일신은 사치를 숭상하는 일이 없으나, 다만 왕자·왕녀의 혼례가 있은 뒤부터 그 비용에 대해 물론(物論)이 있어 내 마음이 미안한데 어찌 사치에 대한 생각을 아니하겠는가? 또 나는 옛일을 약간 아는데 어찌 내외를 엄숙하게 하는 일을 항시 생각하지 않겠는가? 다만 종실(宗室)·외척(外戚)의 집에서 문안하러 왕래하는 사람과 대비전과 중궁전의 차비(差備)311) 가 왕래하는 일에 대해서는 내가 항시 모르고 있다. 정축년에도 공론이 이와 같았기 때문에 규정을 밝게 정했었고, 근래 또 상소가 있기 때문에 다시 엄한 분부를 하였다. 또 궁위에 출입하는 사람에 대해 너무 외람할까 염려한 때문에 이미 각전(各殿)의 승전색(承傳色)으로 하여금 3개월마다 서계(書啓)하도록 하였으니 단속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사가의 경우도 왕래하는 사람을 가장(家長)이 반드시 다 알지 못할 터인데, 더구나 금문(禁門)은 안팎이 현격한데 시야 밖의 일을 어찌 다 살필 수 있겠는가? 마땅히 엄한 분부를 해야 하겠다. 왕래하는 사람도 내가 다 알지 못하는데 하물며 여알(女謁)에 있어서랴? 더욱 금해야 하겠다. 비록 이 일이 없더라도 염려는 항시 있으니 더욱 살피겠다.

재변을 만나면 상하가 한 마음으로 공구 수성하여, 위에서는 피전(避殿)·감선(減膳)·철악(撤樂)하는데, 정부와 육조의 낭관은 태연히 유연(遊宴)하여 조금도 꺼리는 바가 없었으니 매우 잘못이다. 법사(法司)는 마땅히 규찰해야 하리라. 강징(姜澂)은 조정의 의논도 들어보지 않고, 중조(中朝)에 경사가 있으면 모두 우리 나라에 알리라는 일을 제 마음대로 예부(禮部)에 보고하여 후일의 폐단을 열어 놓았으니 과연 잘못인 듯하다. 그러나 사정으로 볼 때 용서할 만하기 때문에 버려둔 것이다. 이같은 일은 법사도 살펴야 한다. 신상의 일은 과연 주장으로서 호령하는 체통을 잃었다. 그러나 대신의 의논에서 이미 말하였고, 이권 등의 일은 추고하도록 이미 명하였다. 이종인은 과연 죄를 받았는데도 한 달이 채 안 되어 도로 수용(收用)하였다. 나도 처음에는 그를 수용하는 것을 난처하게 여겼는데, 조정의 의논이 이미 조방장(助防將)으로 정하여 내려보냈기 때문에 관직을 제수했을 뿐이다."

하고, 정원에 전교하기를,

"지금 간원의 상소를 보니, 피전(避殿)할 때 정부 및 육조의 낭관이 연회를 열고 멋대로 즐기며 조금도 두려워하는 태도가 없었다 한다. 듣는 데는 선후가 있는 법이라 이런 일을 법사는 반드시 미처 듣지 못했을 것이니, 마땅히 법사·성상소를 불러서 이런 의견을 유시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3책 45권 58장 A면【국편영인본】 16책 154면
  • 【분류】
    군사-군정(軍政) / 인사-임면(任免) / 사법-법제(法制) / 정론-간쟁(諫諍) / 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 / 풍속-예속(禮俗) / 과학-천기(天氣) / 왕실(王室)

  • [註 310]
    제진(齊進)이니 벌례(罰禮) : 제진은 연희의 명칭인 듯하나 미상. 벌례는 관리 중에 잘못을 범한 자가 있을 경우 그에게 벌주(罰酒)를 사게 하여 같이 마시며 즐기는 일이다.
  • [註 311]
    차비(差備) : 여기서는 중궁전에 심부름하는 하인을 가리킨 듯하다.

○大司諫柳灌等上疏曰:

臣等伏見, 殿下卽位以來, 孜孜求治, 祗畏天命, 而近者, 陰陽失序, 雨雹、旱蝗之災, 旣軫聖慮。 又於原廟, 有震人之變, 上下恐懼奔走蒼黃, 罔究所由。 臣等竊聞, 人事失於下, 則天變應於上。 然則今之天譴, 亦豈虛應? 臣等恐殿下應天之道, 未盡其實, 而庶政之間, 或有所闕失也。 伏見, 殿下遇災而懼, 未遑寧處, 移避正殿, 小心敬畏, 思答天心, 其修省之道, 至矣。 嗚呼! 天之示變, 出於尋常, 當上下交修, 未敢懷安, 而閭巷之間, 讌樂自如。 卑官、小吏, 固不足道, 有若六曹郞官, 公然作會, 或稱齊進; 或稱罰禮, 大張音樂, 恣意歡謔。 非獨此也, 議政府, 百司之首, 而每聞舍人司, 邀賓速客, 歌吹宴飮之會, 尤倍於他, 稱爲古風, 未嘗少廢。 上則減膳、撤樂, 側修未暇, 而下不體上意, 遊衍自安, 略無畏忌。 六曹、政府, 在瞻仰之地, 而其先失之道, 至於如此, 人視以爲常, 恬不知怪, 猶謂國有法禁乎? 今之士大夫, 衣服、飮食, 務極奢侈。 至於市井人, 亦僭擬公卿, 漸而上之, 廉陛無等, 名分不定, 臣等竊嘗痛心。 而深究其源, 則殿下之儉己, 未聞如夏禹之惡食; 周文之卑服, 而近日, 諸王子婚禮之奢侈, 視古益甚。 嗚呼! 人主一身, 萬民之表, 而殿下之家事, 至於如此, 臣等恐殿下導率之方, 未盡其道也。 宮庭與外, 截然有別, 要當以嚴謹爲主, 使外言不入於內; 內言不出於外, 而竊聞, 外家之人, 雜進宮闈, 出入無常, 言語風傳。 自此, 內言頗出於外, 外言之入, 亦從可知矣。 內外之分, 如此其不嚴; 言語之通, 如此其甚易, 則臣等恐他日, 女謁讒譖之端, 自此而萌矣。 嗚呼! 殿下之家政, 至於如此, 殿下修齊之道, 可謂盡其實乎? 伏見, 殿下屢下求言之敎, 而臺諫論執時政, 伏閤累日, 尙未蒙允。 大臣侍從, 竝進疏章, 雖蒙批答, 睿旨懃懇, 未嘗聞採一言; 行一事。 臣恐殿下之從諫, 徒循其名, 而未盡其實也。 凡臺諫所論, 甚中時病, 若拒而不納, 病將難救。 故明君之於臺諫, 言論雖或過中, 必優容而喜納, 猶恐其不言。 庸暗之主, 惡聞過失, 嘉言、善論, 非徒拒而不納, 或發慍於言色; 或藏怒於中心, 其貽害後日者, 多矣。 嗚呼! 樂諫、厭諫, 皆在於人主之一心, 而興亡係焉, 可不戒哉? 夫先王之法, 斟酌時宜, 以垂後世, 不可以一時之見, 而輕重; 亦不可以一人之私, 而上下。 執此之法, 信如四時, 然後人之有罪者, 不得幸免矣。 近日, 政治之間, 法令不行, 萬事解隳。 臣恐殿下之遵法, 或未盡其實也。 頃者, 姜澂奉使上國, 妄用賤計, 以開後弊, 而釋不治罪。 李崇仁失禦邊境, 軍法所加, 而罷不及家, 旋授以爵。 人臣受命, 義不宿於家, 況邊報方急, 遣將助防, 而李安世元彭祖奉命出門, 枉路橫行, 是, 不有朝命也。 南方軍機節制, 專委監司, 丁寧下諭, 而李菤安世搜討賊之日, 違背約束, 擅自下海, 是, 不有軍令也。 申鏛旣受節制之命, 身任主將之責, 而不能號令, 使諸將失律。 又不卽馳聞于朝, 以負殿下委諭之意, 其罪亦大矣。 國法、軍律, 一至解弛, 此而不治, 將何以爲國? 伏願殿下, 用法施令, 一依經典, 無或少撓焉。 嗚呼! 天之譴告, 固非尋常, 而庶政之失如此, 其所以弭災之方, 未見其得實也。 夫實者, 誠也。 天道, 至誠無息, 人君法之, 純亦不已。 故一存其誠, 君德日修, 少有懈隙, 君心自蕩矣。 伏願殿下, 遇災修省, 勿失此誠; 崇儉、去奢, 勿失此誠。 至於嚴內外、納諫諍、用法令, 一出於此誠則庶政、萬事, 自然修擧, 而天災時變, 亦可轉以爲祥矣。 伏願殿下, 留意焉。

答曰: "災變非常, 上下孰不驚懼? 所論, 甚中時病。 予性不好奢侈, 務儉從約, 故雖無一己崇奢之事, 但自王子女婚禮之後, 物論言其費用, 予心未安, 豈不念哉? 且予粗識古事, 嚴肅內外之事, 豈不常念? 但宗室、外戚之家問安往來之人, 大妃殿及中宮殿差備往來之事, 予常不知也。 丁丑年, 有物論如此, 故申明定規, 近又有上疏, 故更加嚴勑。 且宮闈出入之人, 慮恐有猥濫, 故已令各殿承傳色, 每三朔書啓, 非不檢擧也。 大抵, 私家往來之人, 家長必不能盡知。 況禁門內外懸隔, 則眼外之事, 豈能致察? 當更加嚴勑, 往來之人, 予且不知, 況女謁乎? 尤當痛禁也。 雖無是事, 慮或有之, 更加省念也。 大抵, 遇災則上下莫不驚懼, 同心修省。 上則避殿、減膳、撤樂, 而政府、六曹郞官, 遊宴自安, 略無畏忌, 甚非也, 法司所當糾覈也。 姜澂不問朝廷之議, 中朝有慶事, 皆諭我國之事, 擅告禮部, 以開後弊, 果似失也。 然於情可恕, 故棄之, 如此等事, 法司亦當察之。 申鏛之事, 果不如主將號令之體, 然大臣之議, 已言之矣。 李菤等事, 已令推之。 李宗仁果受罪, 而不過旬朔, 又還收用, 予心初亦難之。 朝議已定以助防將, 下歸, 故除職耳。"傳于政院曰: "今觀諫院之疏, 避殿時, 政府及六曹郞官, 遊宴自樂, 恣意歡謔, 略無畏忌。 人之所聞有先後, 如此之事, 法司必不及聞見, 宜招法司城上所, 諭以是意。"


  • 【태백산사고본】 23책 45권 58장 A면【국편영인본】 16책 154면
  • 【분류】
    군사-군정(軍政) / 인사-임면(任免) / 사법-법제(法制) / 정론-간쟁(諫諍) / 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 / 풍속-예속(禮俗) / 과학-천기(天氣) / 왕실(王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