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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44권, 중종 17년 3월 4일 신해 1번째기사 1522년 명 가정(嘉靖) 1년

어사 파견·문신 수령 파견·서적 인출 등을 의논하다

조강에 나아갔다. 상이 이르기를,

"비록 천변(天變)이 없더라도 마땅히 어사를 보내 백성의 병폐와 고통을 탐문해야 하는데, 근래에 민중에게 폐가 되는 것 때문에 어사를 보내 탐문하지 않으므로 내가 마음이 편치 못하다."

하매, 영사 남곤이 아뢰기를,

"비록 어사를 보낸다 하더라도 수령(守令)된 사람들이 좋지 못한 일은 은휘(隱諱)하고 좋은 것만 내놓으며, 감사의 순행 때도 그러하므로 적발하기가 어려우니, 어사를 비록 보내기는 해야 하지만 만일 자주 보내게 된다면 이 역시 불가합니다. 중국에는 이미 안렴사(按廉使)가 있는데도 또한 어사를 두어 항시 한 지방에 있으며 그 지방일을 안찰(接察)하게 하니 이것이 이른바 외대(外臺)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나라는 중국의 예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적이 없는데 어사를 보내는 것이 비록 더러는 불가하기도 하지만 만일 민간의 병폐와 고통을 탐문하는 것으로 명분을 삼는다면, 백성들의 원통하고 답답한 일을 펴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장령 어득강(魚得江)은 아뢰기를,

"옛적에는 수령들이 감사 두려워하기를 범 두려워하듯이 했는데, 지금은 감사와 결탁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감사가 세력이 없는 사람이면 두렵게 여기거나 꺼리지 않아, 자신이 비록 불의(不義)한 짓을 하더라도 하등(下等) 매기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 여길 뿐이고, 감사인 사람들은 또한 문서(文書)만 가지고 단속할 뿐 깊고 은밀한 일을 적발하여 다스리지 못합니다. 이러므로 수령들이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고을 백성들이 비록 원통하고 답답한 일을 신고(申告)하고 싶으면서도 부민 고소(部民告訴)092) 의 금단에 구애되어 그들의 심정을 상달(上達)하지 못하니, 만일 적임자를 구하여 어사의 소임을 맡게 한다면 그들을 펴게 처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 사간 윤인경(尹仁鏡)은 아뢰기를,

"다른 도에는 수령들을 문신(文臣)으로 많이 차임(差任)하기 때문에 다스린 효과가 있지만 함경도는 문신을 교대하여 차임할 것을 전일에 건의했는데도 근래에 오로지 무신(武臣)만 임용(任用)하므로 임금의 교화가 이르지 못하게 되니 어찌 방어(防禦)만 일삼겠습니까? 요는 백성을 돌봐야 하니 교대로 문신을 차임하여 무신들이 본받을 데가 있게 하소서."

하니, 상이 이르기를,

"문신을 교대로 차임하는 일은 전에도 규정이 있었는데 근래에 거행하지 않는 것이니, 만일 교대로 차임한다면 무신들이 역시 두려워하고 꺼리는 바가 있어, 백성을 안정하게 하는 행정을 거의 실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였다. 득강·인경이 아뢰기를,

"이장곤의 일을 여러 달 논계(論啓)하였는데도 아직 윤허받지 못하므로 실망을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대간이 일을 폐하고 합사(合司)하는 것이 어찌 깊은 뜻이 없겠는가마는 다만 장곤의 죄는 파직만으로도 족하고 고신(告身)을 모두 빼앗기까지 함은 과중하다."

하매, 득강이 아뢰기를,

"지금 국가에서 법쓰기를 너무 가볍게 합니다. 국초(國初)에 헌릉(獻陵)093) 장사때 천현(穿峴)의 통로를 막자, 고개 밑에 머물러 있고 가지 않는 사람이 있으므로 누가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기를 ‘우리 조선(朝鮮)의 법은 3일을 넘지 않는다.’ 했었는데, 과연 3일 만에 그 길이 도로 통했으니 법을 가볍게 쓰는 것을 여기서 알수 있습니다. 당초에 장곤을 파직만 하였다면 물론(物論)이 혹 그것으로 족하게 여겼을지도 모르지만 이미 고신을 거두었다가 도로 주므로 물론이 분격(憤激)해 하는 것입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우리 나라는 기강(紀綱)이 없습니다. 지난해에 중국에서 채녀(採女)094) 한다는 소문이 중외(中外)에 퍼지자, 나이가 비록 8∼9세라 하더라도 귀천(貴賤)을 논하지 않고 하루 사이에 모두 혼례를 거행했었으니, 이는 천고에 큰 변으로서 놀라움을 견딜 수 없는 일입니다. 무릇 좋은 일은 비록 명령하여도 거행하지 않으면서 좋지 못한 일은 명령하지 않아도 스스로 거행합니다. 지금 악포(惡布)의 금단도 거행되지 않아, 개성부(開城府)에서는 오히려 3일 이내에 금단된 것도 조정에서 금단하는데도 아직 금지되지 않으니, 속공(屬公)시키는 것이 제일 편리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혼인한 일은 매우 놀라운 것이기 때문에 법사(法司)에서 이미 다스렸고, 악포 일은 이미 한성부(漢城府)로 하여금 법조(法條)를 세우도록 했다."

하였다. 득강이 아뢰기를,

"우리 나라는 서적을 인출하는 데가 교서관(校書館) 하나뿐이라, 비록 학문에 뜻을 두는 사람이더라도 서적을 구입할 수 없기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중국에는 서사(書肆)가 있기 때문에 배우고 싶은 사람들이 쉽사리 구입하여 배워 익히니, 지금 저자 안에 서사를 설치한다면 사람들이 모두 구입하여 그 편리함을 힘입게 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서사에 관한 일을 지난 기묘년에 이미 절목(節目)을 마련했는데 지금 거행하지 못하고 있으니 마땅히 해조(該曹)에 묻겠다."

하였다. 득강이 아뢰기를,

"지금 인재가 모자라는 것은 오로지 조금 배워 작록(爵祿)받을 계책만 하기 때문입니다. 지난날에 생원(生員)·진사(進士)된 사람들의 제술한 것이 모두 보잘것이 없었고, 또한 경의(經義)를 다루는 사람이 대개 적기 때문에 식년(式年) 회강(會講)095) 의 인원수가 차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오로지 근년(近年)의 쌓인 폐습(弊習) 때문이니 마땅히 따로 새 법조(法條)를 세워 권장하고 지도해야 합니다."

하고, 남곤은 아뢰기를,

"근래에 학교(學校)의 일을 권장하는 데도 배우는 사람들이 취지를 달리하여 한결같이 마음 다스리기를 근본으로 삼는데, 이른바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이 승가(僧家)에서 벽을 향하고 앉아 도를 연마하는 것과 같아서 우리 유가(儒家)의 마음 다스리는 길과 같지 않습니다. 지금의 학문한다는 사람들이 향방이 희미하니 마음 아픈 일이라 하겠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학교에 관한 절목(節目)이 극진하게 되지 않은 것이 아닌데, 이제 또 더 실시한다면 너무 번거롭게 되지 않겠는가? 마땅히 사유(師儒)를 선택하여 오래 맡도록 한다면 효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

하였다. 득강이 아뢰기를,

"요사이 공사(公事)에 있어 매양 어필(御筆)을 받게 되는데, 옛적에는 어서(御書)는 비록 한자라 하더라도 자손들에게 보물이 되었었습니다. 신 등이 공청(公廳)에서 더러는 걸터앉아 펴 보려면 진실로 마음에 미안스럽습니다."

하고, 대사헌 윤은보(尹殷輔)는 아뢰기를,

"중국 조정에서는 묵칙(墨勅)이란 제도가 있다는데 신이 알지 못하오니, 승지를 시켜 판부(判付)096) 하심이 어떠하리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는 내가 창시(創始)한 것이 아니라 곧 조종조(祖宗朝) 이래의 옛일이다. 만일 매사를 판부하느라 왔다갔다하게 된다면 일이 반드시 적체될 것이기 때문에 조율(照律)이나 공감기(功減棄) 같은 일들은 부득이 손수 쓰는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2책 44권 15장 B면【국편영인본】 16책 103면
  • 【분류】
    사법-법제(法制) / 사법-재판(裁判) / 외교-명(明) / 정론-간쟁(諫諍)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상업-시장(市場)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변란-정변(政變) / 왕실-경연(經筵)

  • [註 092]
    부민 고소(部民告訴) : 관하(管下) 백성이 자기들 관장(官長)을 고소하는 행위.
  • [註 093]
    헌릉(獻陵) : 태종의 능.
  • [註 094]
    채녀(採女) : 처녀를 뽑다.
  • [註 095]
    회강(會講) : 식년은 정기적으로 과거보이는 해, 곧 태세(太歲)에 자(子)·오(午)·묘(卯)·유(酉)가 드는 해로 4년마다 한 번씩 돌아온다. 회강은 경서(經書)를 배송(背誦)하는 강경(講經) 시험.
  • [註 096]
    판부(判付) : 주안(奏案)을 결재하는 것.

○辛亥/御朝講。 上曰: "雖無天變, 當遣使問民疾苦。 近來, 以有弊於民, 不遣使問之。 予不安心。" 領事南袞曰: "雖遣御史, 爲守令者, 諱其不善之事, 而著其善, 於監司之行亦然, 故摘發爲難。 御史雖可遣, 若至頻數, 則此亦不可。 且中原則旣有按廉使, 又有御史, 常在一方, 按察一方之事, 此所謂外臺。 今我國不得依中原之例, 故無是職矣。 御史之遣, 雖或不可, 若以問民疾苦爲名, 則民之有冤悶者, 亦可伸理。" 掌令魚得江曰: "古者, 守令畏監司如畏虎。 今者, 交契監司者則已矣, 至於無勢者, 亦不畏憚以爲: ‘我雖爲不義之事, 不過下等, 而已。’ 爲監司者亦只以簿書而檢擧, 不能摘發深隱而治覈之, 此, 守令之所以不畏也。 邑民雖欲申告冤悶, 而拘於部民告訴之禁, 不能達其情。 若得其人, 而爲御史之任, 則亦可以伸理矣。" 司諫尹仁鏡曰: "他道則守令多以文臣差之, 故有治效, 咸鏡一道文臣交差事, 前亦建白, 而近來專用武臣, 此, 王化未達之地, 豈但以防禦爲事, 要當恤民耳, 請交差文臣, 使武臣有所矜式。" 上曰: "文臣交差事, 有前規, 而近不擧行。 若交差, 則武臣亦有所畏忌, 而安民之政, 庶可見矣。" 得江仁鏡曰: "李長坤累朔論啓, 迄未蒙允, 不勝缺望。" 上曰: "臺諫廢事、合司, 豈無深慮? 但長坤之罪, 罷職足矣, 至於盡奪告身, 則過重矣。" 得江曰: "今, 國之用法太輕。 國初葬獻陵時, 塞穿峴之路, 人有止其下, 而不去者。 人問其故, 答曰: ‘朝鮮之法, 不過三日。’ 果三日而還通其路, 用法之輕, 於此可見。 當初只罷職, 則物論或以此爲足矣。 旣收告身, 而又給之, 此, 物論之憤激也。" 又曰: "我國無紀綱。 去年中外聞中原採女之奇, 年雖八、九歲, 而不論貴賤, 一日之間, 盡行婚嫁之禮, 此, 千古大變, 不勝駭愕。 大抵, 事之善者, 則雖令而不行, 事之不善者, 則不令自行。 今惡布之禁, 亦不能行, 以開城一府猶能禁斷於三日之內, 以朝廷而禁斷, 尙不能止, 莫若屬公之爲便。" 上曰: "婚嫁事, 甚爲駭愕, 故法司已治之矣。 惡布事, 已令漢城府立條矣。" 得江曰: "我國書籍所出, 只校書一館耳。 雖志於學者, 無書籍可購, 故志不能就。 中朝則有肆, 故欲學者, 易得而講習之。 今於市中, 若設書肆, 則人皆得以貿買, 而資其利矣。" 上曰: "書肆之事, 其在己卯年, 已磨鍊節目, 而今不能擧行, 當問于該曺。" 得江曰: "今時人材之乏者, 以其專意小學, 以爲爵祿之謀。 往者爲生員、進士其所製, 皆無足觀。 且治經者蓋寡, 故不能滿式年會講之數, 此, 專由近年之積習也, 宜別立新條, 而勸導之也。" 南袞曰: "近來, 勸奬學校, 而所學者異趣, 一以治心爲本, 而所謂治心者, 如僧家向壁鍊道之爲, 非如吾儒所以治心之道也。 今之爲學者, 迷其所向, 可謂痛心。" 上曰: "學校節目非不盡矣。 今又加設, 則無乃煩耶? 宜擇師儒而久任, 則可收其效。" 得江曰: "近於公事, 每經御筆。 昔者, 御書則雖一字, 以爲子孫之寶。 臣等在公廳, 或踞坐而披閱, 實所未安於心。" 大司憲尹殷輔以爲: "中朝則有墨勅之制云。 其制則臣不可知, 使承旨判付, 何如?" 上曰: "此非予之所創也, 乃祖宗朝舊事。 若令每事判付往復, 則事必積滯。 是故, 如照律、功減棄等事, 則不得已手書矣。"


  • 【태백산사고본】 22책 44권 15장 B면【국편영인본】 16책 103면
  • 【분류】
    사법-법제(法制) / 사법-재판(裁判) / 외교-명(明) / 정론-간쟁(諫諍)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상업-시장(市場)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변란-정변(政變) / 왕실-경연(經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