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이 사유의 결원·재변·악포 금지 등에 관해 이르다
조강(朝講)에 나아갔다. 상이 이르기를,
"명분은 비록 학교(學校)를 높이고 중히 여긴다 하지만, 실지는 허술한 일이 많다. 어제 허굉(許硡)의 말을 듣건대, 사유(師儒)가 결원(缺員)이 많아 교회(敎誨)할 사람이 없다 하니, 마땅히 시급하게 가려서 차임(差任)하되 오래 맡김으로써 권장하게 해야 한다."
하매, 영사 권균(權鈞)이 아뢰기를,
"사유에 합당한 사람은 오직 이득전(李得全) 뿐인데 이미 다른 관사(官司)로 옮겼고 임추(任樞)는 사성(司成)이 되었다가 상사를 만나. 지금 다시 사유에 가당한 사람을 가리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성균관은 일이 없는 자리지만 병이 있는 사람에게 이 직을 맡기면 반드시 항시 사진(仕進)하지 아니하여 소임을 방치한다. 소위 사유인 사람은 한갓 교회만 하는 것이 아니니, 마땅히 적임자를 구득하여 유자(儒者)에게 향방(向方)을 가르치게 해야한다."
하였다. 장령 표빙(表憑)이 아뢰기를,
"요사이 재변이 겹쳐 생기므로 겨울에 뇌성하고 지진하는 것과 겨울 일기가 봄처럼 따뜻한 것을 사람들이 심상하게 여깁니다. 이는 반드시 민원(民怨)이 있는 소치이니, 상하가 마땅히 각기 수성(修省)하여 하늘의 꾸지람에 응답해야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재해와 이변이 겹쳐 생기는 것을 내가 어찌 심상하게 여기겠는가?"
하매, 헌납(獻納) 어영준(魚泳濬)이 아뢰기를,
"아래서 인사(人事)가 잘못되면 위에서 천변(天變)이 일게 되는 법이니, 어찌 불러들이게 될 일이 없겠습니까? 요사이 민생들이 곤궁이 막심하고, 또한 듣건대 외방(外方)의 관리들이 부지런히 봉공(奉公)하지 않는 사람이 많아 행정이 해이해졌는데도 홀만하여 조정의 뜻을 준행하지 않는다 하니, 진실로 마땅히 각도의 관찰사에게 유시를 내려 각기 직무를 닦아 거행하도록 함이 어떠하리까?
또, 악포(惡布)030) 의 금지를 바야흐로 시행하고 있지만, 부유한 상인과 큰 상고들은 기탄 없이 사용하고, 가난한 지아비나 빈궁한 지어미는 두어 필의 베를 가지고 아침 저녁의 생계를 마련하려다가, 도리어 그런 금법에 걸리어 마침내 속공(屬公)당하고 빈 주먹으로 구걸하며 저자에서 울부짖는 사람이 많이 있으니, 이는 매우 원통스러운 일입니다. 옛사람의 말이 ‘한 사람이 뜻을 잃고 구석을 향해 울게 되면 온 대청 사람이 그 때문에 즐겁지 못하게 되는 법이다.’ 했습니다. 하물며 지금은 원망하는 백성이 이처럼 많으니 말해 뭐하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대신들의 의논이 심사 숙고(深思熟考)하지 않은 것이 아닐 것이고 나도 필시 저자 가게들의 폐단을 친히 보고 이런 의논을 한 것이라 여겨지기에, 내가 그 의논을 재가하여 그런 베들을 속공하도록 한 것이다. 다만 악포가 민간에 많이 있을 것인데, 하루아침에 너무 가혹하게 금단하다면 민생들의 폐해가 없지 않을 것이다."
하매, 영준이 아뢰기를,
"악포 금지는 왕정(王政)의 시급한 일이 아니니, 마땅히 먼저 해야 할 일을 힘쓰지 않고, 한갓 그 말단의 것만 힘씀은 역시 왕자(王者)의 행정이 아닙니다.
옛적에 주(周)나라 문왕(文王)이 정사를 시작하여 인(仁)을 베풀 적에 반드시 환과 고독(鰥寡孤獨)031) 을 우선 돌보았습니다. 대범 환과 고독은 매우 미미한 것이어서 마땅히 먼저해야 할 것이 아니었으나, 문왕이 반드시 이 네 가지 사람을 먼저 돌본 것은 뜻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 악포의 금단을 환과 고독에게는 시행하고 부유한 상인이나 큰 상고에게는 시행하지 아니하여, 빈궁한 사람은 더욱 빈궁해지고 부유한 사람은 더욱 부유해지므로, 빈궁한 사람들의 원망이 한이 없으니 이는 화기를 손상하여 재변을 불러들일 수 있는 일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금단하는 법령을 중지해서는 안 되고 진실로 마땅히 점차로 제거되게 해야 한다. 다만 속공(屬公)하는 법은 공편하지 못한데, 지난번에 의논을 하기게 내가 만일 속공한다면 이득이 공(公)에 돌아갈 것이니, 백성들이 어디에 힘입게 되겠느냐고 했었다."
하매, 표빙이 아뢰기를,
"외방(外方)의 베들은 그다지 악하지 않은데, 시중(市中)에 있어서는 절장 보단(絶長輔短)032) 하여 사용하고, 또한 두 새의 바디[筬]로 짜내는 사람들이 있으니 부득이 금단해야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죄를 결정하여 도로 내준다면 보단(輔短)하여 쓸 수 있겠지만, 속공한다면 비록 보단하여 쓰려한들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하매, 표빙이 아뢰기를,
"금단하는 방법을 백방으로 헤아려보아도 합당한 방법을 찾지 못하겠으니, 모름지기 면포(緜布) 양쪽 끝에 공서(公署)를 찍어 사용케 하고, 공서가 없는 것을 금단한다면 거의 금지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서로 속이는 술책은 금하지 않아서는 안 되는데, 무릇 시장의 물가가 한결같지 못함은 모두 위에 있는 사람들이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고, 영준이 아뢰기를,
"신하된 사람들이 능히 음양(陰陽)을 순조로와지게 하고 온갖 관사(官司)들이 각기 직책을 이바지하여 근본이 세워지게 된다면, 자연히 시절이 평화롭고 연사가 풍년들며 폐단도 장차 스스로 제거될 것인데, 어찌 목전의 폐단에만 구애되어 원대한 계책의 경영을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2책 43권 61장 A면【국편영인본】 16책 94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상업-시장(市場) / 인사-임면(任免) / 사법-법제(法制) / 과학-천기(天氣) / 역사-고사(故事)
- [註 030]악포(惡布) : 품질이 나쁜 베.
- [註 031]
환과 고독(鰥寡孤獨) : 환은 늙은 홀아비, 과는 늙은 과부, 고는 부모 없는 어린 시절, 독은 자식 없는 늙은이.- [註 032]
절장 보단(絶長輔短) : 잣수가 남는 것을 끊어 모자라는 것에 보충하는 것.○癸酉/御朝講。 上曰: "名雖崇重學校, 而實多虛疎。 昨聞許硡之言, 師儒多闕, 無敎誨之員, 宜亟擇差, 當久任而勸奬之。" 領事權鈞曰: "師儒可當者, 惟李得全, 而旣遷他司。 任樞爲司成, 而遭喪, 今可更擇師儒可當者, 最難得也。" 上曰: "成均館無事之地, 有病者任是職, 則必不常仕, 以廢其任。 所謂師儒者, 非徒敎誨而已, 當得其人, 以示儒者向方可也。" 掌令表憑曰: "近來, 災變疊作, 如冬雷、地震, 冬暖如春, 人視之爲尋常, 必有民怨所致, 上下宜各修省, 以答天譴。" 上曰: "災異疊見, 予意, 豈以爲尋常?" 獻納魚泳濬曰: "人事失於下, 則天變應於上, 豈無所以召之者乎? 近來, 生民之困, 極矣。 且聞, 外方官吏, 多有不謹奉公, 政有解弛, 慢不體朝廷之意, 固當下諭各道觀察使, 俾各修擧職事何如? 且惡布之禁, 方行, 如富商、大賈, 則行用不憚, 而貧夫貧婦, 將數叚之布, 計爲朝夕之資, 反犯其禁, 終被屬公, 空手丐乞, 而號泣於市者, 多有之, 此甚可冤。 古人云: ‘一人向隅而泣, 滿堂爲之不樂。’ 況今怨民如此其多乎?" 上曰: "大臣之議, 非不深思而熟慮之。 予以爲, 必親見市廛之弊, 而有是議, 予可其議而令屬公其布矣。 但惡布, 多在民間, 而一朝禁戢頗酷, 則不無民弊矣。" 泳濬曰: "惡布之禁, 非王政急務。 不務其所當先者, 而徒務其末, 亦非王者之政也。 昔周之文王發政施仁, 必先鰥寡孤獨。 夫鰥寡孤獨甚微細, 宜所不當先者, 而文王必先斯四者, 其意有在。 今惡布之禁, 行於鰥寡孤獨, 而不行於富商、大賈, 貧者益貧, 富者益富, 貧窮之怨, 不可紀極, 此, 足以傷和召災也。" 上曰: "禁斷之令, 不可中止, 固宜漸次除去可也, 但屬公之法未便。 往者, 大臣有議, 而予以爲, 若屬公則利歸於公, 民安所賴乎?" 表憑曰: "外方之布, 不至甚惡, 而至於市中, 則絶長補短而用之, 亦有用二升之筬, 而織出者, 不得已禁之。" 上曰: "決罪而還給, 則可以補短而用之。 若屬公, 則雖欲補短用之,何可得耶?" 表憑曰: "禁斷之方, 百般商量, 未得其宜, 須於緜布兩端, 用公署用之, 禁其無署, 則庶可禁戢矣。 相欺之術, 不可不禁, 凡市價不一, 皆由於在上者之不得其道矣。" 泳濬曰: "爲人臣, 而能燮理陰陽, 百司各供其職, 根本旣立, 自然時和、歲豐, 則弊將自袪矣。 豈拘目前之弊, 而不思經遠之謀乎?"
- 【태백산사고본】 22책 43권 61장 A면【국편영인본】 16책 94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상업-시장(市場) / 인사-임면(任免) / 사법-법제(法制) / 과학-천기(天氣) / 역사-고사(故事)
- [註 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