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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43권, 중종 17년 1월 12일 경신 1번째기사 1522년 명 가정(嘉靖) 1년

표빙·어영준·권균 등이 이장곤과 밀양의 연혁 등에 관한 일을 아뢰다

조강(朝講)에 나아갔다. 장령 표빙(表憑)이 아뢰기를,

"이장곤의 일을, 합사(合司)하여 귀양보내기를 계청(啓請)했었는데도 드디어 고신(告身)만 빼앗고 말았으니 또한 다행한 일입니다. 그런데 두어 달도 못되어 도로 주었으니, 정령(政命)이 어찌 이렇게 일정하지 못합니까? 시급히 도로 거두시기 바랍니다.

고형산은 몸이 아직도 강강하고 그가 국가에 관계되는 바가 중한 처지인지를 신은 모르겠으니, 궤장(几杖)을 준례대로 줄 수는 없습니다. 이번에 만약 쉽사리 이 사람에게 주어 버린다면, 뒷날 국가에 관계되는 바가 중한 사람이 있을 적에는 장차 어떻게 할 것입니까? 응당 주어야 할 사람은 송(宋)나라 때에도 문언박(文彦博)012)부필(富弼)013) 같은 사람인 연후에야 해당될 수 있었으니, 진실로 쉽사리 아무에게나 줄 수 없습니다.

또, 이위(李偉)박문조(朴文祖)의 일을 완강하게 논집(論執)한 것은 뒷 폐단을 염려하여 그런 것입니다. 이위문조는 본디 차등이 있는데 모두 체차(遞差)하도록 하였으니 이는 매우 공평(公平)하지 못하고, 문조는 진실로 파직(罷職)해야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위·박문조는 지금 바야흐로 추고(推考)하고 있기 때문에 모두 체직하도록 한 것이다."

하매, 헌납 어영준(魚泳濬)이 아뢰기를,

"《경국대전(經國大典)》 천거조(薦擧條)에 ‘천거받은 사람이 잘못되었을 경우에는 천거한 사람도 아울러 그의 죄에 연좌시킨다.’ 했습니다. 근래에 이 법이 방치된 지 이미 오래이기 때문에, 지난번 현량과(賢良科)의 천거 때 천거받은 자 중 그른 사람이 많았습니다. 신이 일찍이 정언(正言)·헌납(獻納)으로 있을 때 이런 뜻으로 논계(論啓)했으나 성의가 부족했기 때문에 조정이 거행하도록 하지 못했습니다. 이 법은 홀로 조종조(祖宗朝)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사마광(司馬光) 등도 모두 이런 법을 썼습니다. 지금 국가에서 만일 이 법을 시행한다면 어찌 사정을 쓸 폐단이 있겠습니까? 당초에 신의 말을 사용하여 이 법을 시행했다면, 비록 따로 과거(科擧)를 두지 않더라도 버려진 현자(賢者)가 없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이 법을 거행하지 않았음은 유사(有司)들의 과실이다."

하매, 영사 권균(權鈞)이 아뢰기를,

"천거하는 법은, 잘못 천거하는 죄가 있게 되기 마련입니다. 사람을 관찰할 적에 어찌 그의 마음은 다 알 수 있겠습니까? 다만 말하는 것에 따라 구하므로 이 때문에 잘못 천거하는 사람이 많아서 죄와 벌이 가해지니, 이래서 천거하기가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하고, 영준은 아뢰기를,

"한 나라의 인재를 전조(銓曹)가 어찌 그의 현명 여부를 다 알 수 있겠습니까? 주의(注擬)할 적에 매양 절간(折簡)014) 을 가지고 서로 통하는데 매우 국가의 체통이 아닌 것입니다.

영상(領相)으로부터 3품(品)에 이르기까지 각기 세 사람씩을 천거하도록 하여 성안(成案)했다가 관직을 제수하되, 만일 장오(贓汚)를 범하거나 인륜에 어그러진 짓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경우엔 그를 천거한 사람을 죄준다면, 반드시 신중하게 가려서 천거할 것입니다. 천거할 때에 당해서도 자제(子弟)들이 죄 지은 것을 숨기지 않고 또 잘못 천거한 데 대한 죄를 입게 된다면, 분경(奔競)015) 이 없어지고 인재가 등용될 것입니다.

지난번에 따로 과거를 둘 때 처음에는 널리 사방에서 취한다고 해 놓고서, 정식으로 선발할 때에 이르러서는 자기들과 사사로운 사람들을 취했으니, 이보다 더 통탄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일은 여러 대신에게 물어서 그 가부(可否)를 의논하여 행해야 합니다.

또, 역로(驛路)가 잔악하고 피폐하여 양재도(良才道)가 더욱 근심하므로 찰방(察訪)이 한 번도 역에 나오지 않으니, 비록 시름과 원망이 있다 하더라도 장차 어디서 펴게 되겠습니까? 지난날에는 남행관(南行官)016) 으로 차임(差任)하여 보냈다가, 조정에서 그 잔악하고 피폐함을 생각하여 관계(官階)가 높은 문신(文臣)으로 차임했는데 비록 관계가 높은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매양 용렬하고 범상한 하류(下流)로 차임하여 보내므로, 그가 또한 ‘조정이 이미 나를 버린 것이다.’ 하고, 직무에 부지런하지 않아 날로 잔약해지고 피폐하게 되니, 신의 생각에는 전대로 남행관을 보내는 것이 그나마 나은 것만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하고, 권균이 아뢰기를,

"과연 영준(泳濬)이 아뢴 말과 같으니, 만일 남행관의 무신(武臣) 중에서 근검한 사람을 가려 차임하여 보내는 것이 합당할 듯합니다."

하고, 영준이 아뢰기를,

"밀양(密陽)은 곧 경상도의 중앙 지역으로서 변방에 사단이 있을 적에는 반드시 부(府)에 의뢰했는데, 명칭을 강등하여 현(縣)으로 만들면서부터는 구역[地界]이 분할 되어 매우 잔악하고 피폐하니, 만일 변방에 사단이 있으면 장차 어디다 의뢰할 것입니까? 또한 그때의 죄받은 사람 【박군효(朴君孝)가 아비 살해(殺害)한 것을 가리킨다.】 을 더러는 애매하다는 사람이 있으니, 이번에 다시 추문(推問)해 보야 혹시라도 애매한 점이 있다면, 그의 죄를 놓아주고 고을 명칭도 복구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원통과 억울도 풀리게 되고, 고을도 또한 여전해질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연혁(沿革)에 관한 것은 중요한 일이다. 당초에 천륜(天倫)의 큰 변이라 여겼기 때문에 고을 명칭을 강등한 것이다. 그러나 그 송사가 미진한 점이 있다는 것은 알지 못하는 일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2책 43권 55장 A면【국편영인본】 16책 91면
  •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윤리-강상(綱常) / 교통-육운(陸運) / 사법-법제(法制) / 사법-재판(裁判) / 왕실-경연(經筵) / 정론-간쟁(諫諍) / 인사-선발(選拔)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역사-고사(故事)

  • [註 012]
    문언박(文彦博) : 송대의 학자이자 명신. 자는 관부(寬夫), 시호는 충렬(忠烈). 4대의 임금을 내리 섬기며 50년 동안 장상(將相)의 자리에 있었다. 저서는 《노공집(潞公集)》이 있다. 《송원학안(宋元學案)》 2.
  • [註 013]
    부필(富弼) : 송대의 명신. 자는 언국(彦國), 시호는 문충(文忠). 문언박과 함께 정승으로 있었는데 세상에서 ‘부문(富文)’ 이라 일컬었다. 《송사(宋史)》 권313.
  • [註 014]
    절간(折簡) : 쪽지.
  • [註 015]
    분경(奔競) : 엽관 운동.
  • [註 016]
    남행관(南行官) : 공신(功臣) 또는 현직 당상관의 자손으로 과거(科擧)하지 않고 관원이 된 사람.

○庚申/御朝講。 掌令表憑曰: "李長坤事, 合司論請竄逐, 止奪告身, 亦幸矣。 不數月而還給,政令何若是不定乎? 請速還收。 高荊山身尙康强, 其爲係國家輕重, 臣不知也, 几杖不可以例賜也。 今若輕與此人, 則後日, 待係國家輕重者, 將何以哉? 應賜者, 在朝如文彦博富弼, 然後可以當之, 固不可輕易與人也。 且李偉朴文祖事, 强爲論執者, 慮後弊也。 李偉朴文祖自有差等, 而皆令遞差, 是甚不便, 文祖固當罷之。" 上曰: "李偉朴文祖時方推考, 故皆命遞之耳。" 獻納魚泳濬曰: "《經國大典》薦擧條曰: ‘擧非其人, 則擧主竝坐其罪矣。’ 近來, 此法廢之已久, 故頃者, 賢良科薦擧時, 多有擧非其人者。 臣曾爲正言、獻納時, 以是意論啓, 而誠意不足, 故不能使朝廷擧行矣。 此法, 非獨自祖宗朝始也, 司馬光等皆用此法。 今國家若行此法, 則豈有容私之弊哉? 當初, 用臣言而行此法, 則雖不別設科擧, 將無遺賢矣。" 上曰: "此法擧行與否, 有司之過也。" 領事權鈞曰: "薦擧之法, 有謬擧之罪, 觀人何能盡知其心乎? 但從言語而求之。 以此, 謬擧者多, 而罪罰加之, 此, 所以難於薦擧者也。" 泳濬曰: "一國人才, 銓曹豈能盡知其賢否乎? 注擬之時, 每以折簡相通, 甚非國體也。 自領相至三品, 各擧三人, 成案除職, 若有犯贓汚、悖常之人, 則當罪其擧主, 必當愼擇而擧之矣。 當其擧也, 不避其子弟有罪也, 亦被其失擧之罪, 則奔競息, 而人才用矣。 頃者別設科時, 初云: ‘廣取於四方。’ 而至於正選, 取其私己者, 痛孰甚焉? 此事當問諸大臣, 議其可否, 而行之。 且驛路殘弊, 良才道尤極, 而察訪一不到驛, 雖有愁怨, 將何所伸理乎? 昔時則以南行官差遣, 朝廷慮其殘弊, 差以秩高文臣。 雖曰秩高者, 而每以庸凡下流差遣, 彼亦曰: ‘朝廷旣舍我矣。’ 不勤職事, 日至殘弊。 臣意以爲, 莫若仍舊遣南行之爲愈也。" 權鈞曰: "果如泳濬所啓。 如擇其南行、武臣中, 勤儉者差遣, 則似當。" 泳濬曰: "密陽慶尙道中央之地, 有邊患, 必資於此府。 自降號爲縣, 地界分割, 甚爲殘弊。 若有邊患, 將何所資? 且其時被罪者。 【指朴君孝弑父事也。】 人或謂之曖昧。 今若更推, 而如或涉於曖昧, 則赦其罪, 而復其號也。 如此則冤抑得釋, 而邑亦如舊矣。" 上曰: "沿革重事。 當初以爲, 天倫大變, 故降號, 然其訟之有所未盡者, 未之知也。"


  • 【태백산사고본】 22책 43권 55장 A면【국편영인본】 16책 91면
  •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윤리-강상(綱常) / 교통-육운(陸運) / 사법-법제(法制) / 사법-재판(裁判) / 왕실-경연(經筵) / 정론-간쟁(諫諍) / 인사-선발(選拔)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