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문관 부제학 윤은필이 여자와 고자 뽑는 등의 일 처리에 관해 아뢰다
홍문관 부제학 윤은필(尹殷弼)이 아뢰기를,
"칙서 중의 여자와 고자를 뽑는 등의 일을 명나라 사신은 굳이 칙서에 의하여 뽑아가려 하고 본국에서는 겸손한 말로 청하여 고식책(姑息策)을 쓰므로 서로 양보하지 않고 고집한 지가 10여 일이 되었으나 아직도 결정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이 일의 큰 기틀을 미리 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설사 명나라 사신이 본국의 청을 따라 뽑아가지 않는다 하더라도 중국 조정에서 선제(先帝)의 칙명을 받들어 거행하지 않았다고 하여 힐문하면 분국에서 장차 무슨 말로 대답할 것입니까? 외방 나라로서 염연(恬然)히 황제의 명을 받들지 않으면 중국 조정에서 결코 그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또 고자는 뽑고 여자는 뽑지 않는다는 것은 더욱 말이 안 됩니다. 한 칙서 중의 일을 어찌 스스로 마음대로 하여 어떤 것은 좇고 어떤 것은 안 좇겠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선제의 한때의 명이지만, 우리 나라 후일의 우환을 또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유조(遺詔)에서, 여러 나라 선녀(選女)로 내부(內府)에 모은 자를 다 놓아 보내게 한다 하였으니, 지금 여기에 의거하여 뽑아 바치지 않는 뜻으로 주달(奏達)하고, 고자 뽑는 일도 주품(奏稟)한 후에 처리해야 합니다. 내일 잔치에 명나라 사신이 반드시 이 두 가지 일을 가지고 전하께 청할 것인데, 전하께서 일단 대답하시면 후에는 변경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빨리 대신에게 명하여 다시 상확심정(商確審定)해서 자세히 처리함이 어떨까 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아뢴 말이 매우 사리에 합당하다. 내 생각에도 황제의 칙명이 본국에 왔는데, 봉행(奉行)할 일이 있으면 마땅히 곧 하고 봉행하기 어려운 일이면 사유를 갖추어 진주(陳奏)하여 회보를 기다려야 한다고 여긴다. 어찌 황제의 칙서를 놓아 두고 ‘대인의 은혜를 입으려 한다.’ 하며 비굴한 말로 꾀어서야 되겠는가? 만세 후에도 반드시 나무람이 있을 것이다. 설사 명나라 사신이 버려 두고 거행하지 않더라도 황제의 명을 크게 욕되게 하는 것이다. 의논하는 이들이 반드시 말하기를 ‘명나라 조정에 주청한 뒤에야 사리에 마땅하게 된다.’ 하는데, 칙사(勅使)가 관(館)에 있으니 바로 주청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따로 중도를 얻는 의논이 있어야 선처할 수 있을 것이다. 칙서의 사연이 황제에게서 나왔는데 행하고 행하지 않음이 사신의 손에 있는 것도 어그러진 일이 아닌가? 이러므로 어제 내가 대신들과 반복하여 의논해 말하기를 ‘봉행하기에 어려운 일이면 주청함이 있을 뿐이다.’ 하였다. 선제의 난명(亂命)은 의논하지 않더라도 새 천자가 만일 판단이 밝은 임금이라면 흠차(欽差)가 마음대로 중지하는 데 대하여 반드시 죄책이 있을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조정에 의논하지 않고 사사로이 사신과 의논해서 황제의 칙명을 받들지 않는다면 또한 문책이 있을 것이니 장차 무슨 말로 대답을 할 것인가? 다시 의정부에 말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1책 42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16책 39면
- 【분류】외교-명(明)
○弘文館副提學尹殷弼啓曰: "勑內採女、採宦等事, 天使强欲依勑採去, 而本國則遜辭以請, 爲姑息之計, 相持旬日, 猶未決定, 此事之大機, 不可不預定。 設使, 天使從本國之請, 不採去, 中朝以不遵奉先帝之勑命, 致詰, 則本國將何辭以對? 以藩國, 恬然不奉帝命, 中朝決不可不問其由。 且採宦而不採女, 尤甚無謂。 一勑內之事, 豈可自擅或從、或否? 然此乃先帝一時之命, 而我國後來之患, 亦不可不慮, 況於遺詔, 諸國選女聚諸內府者, 悉令放還。 今可據此, 以不採進之意奏達, 採宦事亦可奏稟, 然後處置矣。 明日之宴, 天使必以此兩事, 請於殿下, 殿下一語以對後, 難於更變, 亟命大臣, 更可商確審定, 而詳處之何如?" 傳曰: "所啓之言, 甚當事理。 予意亦以爲, 帝勑到于本國, 有奉行之事, 則當卽爲之, 若難於奉行之事, 則具由奏陳, 以待回報可也。 何以置帝勑, 而乃: ‘云欲蒙大人之惠。’ 爲誘說卑屈之辭乎? 萬世必有譏誚矣。 設使, 天使置不擧行, 其辱帝命甚大。 議者必曰: ‘奏請天朝, 然後歸於事理之當。’ 然, 勑使在館, 徑爲奏請, 亦所難爲, 則別有得中之議, 可善處之。 勑辭出於皇帝, 而行不行, 在於使价之手, 不亦乖乎? 是故, 昨日予與大臣等反覆議曰: ‘若難奉行, 則不過於奏請而已。’ 先帝亂命, 雖不論之, 新天子若明斷之主, 則欽差擅止, 必有罪責。 我國不奏朝廷, 私論使价, 不奉帝勑, 亦應有責, 將何辭答之? 其更言于議政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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