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강에서 특진관 고형산이 장수 선발과 별등포 등지의 둔전 설치 등에 관해 아뢰다
주강에 나아갔다. 임금이 이르기를,
"명나라 사신이 거쳐오는 일로(一路)의 각 고을에는 군사와 군기(軍器) 등의 일에 대하여 예비하지 않을 수 없다."
하매, 특진관 고형산이 아뢰기를,
"우리 나라는 삼면(三面)으로 적의 침략을 받는 위치에 있으니 군사에 관한 일이 가장 중요한데, 현재 장수에 적당한 사람이 없습니다. 단지 황형·유담년 등 몇 사람이 있었지만 이제 황형은 죽었고 유담년은 비록 살아 있으나 병이 있어 건강하지 못합니다. 그 나머지 당상관 가운데는 역시 맡길 만한 사람이 없으며, 있다 하더라도 모두 외임(外任)에 나가 있습니다. 근래 국가가 태평을 누린 지 오래어서 군무(軍務)가 해이해졌습니다. 모름지기 장수에 합당한 사람을 가려 뽑아서 군졸들이 우러러 볼 데가 있게 하고 따라서 모든 기무(機務)를 위임해야 합니다. 급박한 일을 당했을 적에 갑자기 적임자를 선발하여 쓸 수는 없는 일입니다. 유장(儒將) 가운데 대사(大事)를 감당할 수 있는 자는 이장곤(李長坤) 한 사람뿐인데 병 때문에 직(職)에서 물러나 집에 가 있고, 그 다음 당상관 가운데 적격자는 3∼4인뿐입니다만 당하관(堂下官)이라고 어찌 적격자가 없겠습니까? 대저 힘을 다해서 미리 준비하여 두는 것과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갑자기 대응하는 것과는 그 효과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신이 전일 평안도 종사관(平安道從事官)으로 있었습니다. 그때 장성(長城) 쌓는 일에 대하여 의논할 적에 모두들 ‘반드시 20만 명이 있어야 그 일을 완성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팔도(八道)의 백성을 전부 징발해도 일을 완성시키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근래 지형을 상세히 살펴보니 일을 완성시키기가 쉬울 것 같았습니다. 만약 적격자가 절도사(節度使)에 임명된다면 성 쌓는 일을 잘 조처할 것이고 아울러 백성도 폐(弊)를 받지 않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평안도의 군량(軍糧)은 내지(內地) 각 고을의 용정미(舂正米)746) 를 희천(熙川)·귀성(龜城) 등 고을에 모았다가 나누어 주고 있습니다. 이는 각 고을에서 실어나르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평안도에서도 5∼6일 길이므로 군량을 가져오는 폐단이 적지 않습니다. 이 뜻은 관찰사 허굉(許硡)이 이미 아뢰었습니다. 강계(江界)의 둔전(屯田)747) 은 신이 호조 판서로 있을 때 아뢰어 설치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그곳의 백성을 다 구휼할 수가 없습니다. 벌등포(伐登浦) 등처에는 농사지을 만한 빈 땅이 많으니 호조로 하여금 절목(節目)을 마련하여 개간(開墾)하게 한다면, 둔전 2천여 경(頃)748) 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이산(理山)·강계(江界) 등 백성들의 식량에 도움을 줄 수 있고 따라서 내외(內外)에서 실어나르는 폐단도 없앨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상토보(上土堡)는 멀리 떨어져 외로이 있으므로 방어(防禦)하는 일이 긴급합니다. 이곳은 우선적으로 완비해야 될 지역인데도 군사와 성 쌓는 일 등이 모두 완비되지 않고 있으니 반드시 적격자를 얻어 맡겨야 할 것이요 법(法)에 따라 임명하여서는 안 됩니다. 모름지기 대신(大臣) 등과 의논하여 처리하도록 하소서."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이런 등등의 일은 해사(該司)와 대신이 합의(合議)하여 처리해야 하는데, 근래 장수의 재목이 과연 부족하다. 황형이 갑자기 죽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었고 이장곤 역시 병을 앓고 있으니, 이보다 더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쓸 만한 무신 당상(武臣堂上)이 내지(內地)의 수령으로 보임된 자가 많은 것은 진실로 불가한 일이다. 장수에 합당한 사람을 미리 선발하여 둠으로써 유사시에 대비해야 한다."
하매, 형산이 아뢰기를,
"무신은 김수담(金粹潭)·조현범(趙賢範)뿐인데 이미 내지의 수령으로 나가 있고 문신에는 반석평(磻碩枰)·최세절(崔世節)·김세준(金世準)·이기(李芑) 등이 모두 무재(武才)가 있습니다. 이들도 스스로 자신들의 무재가 쓰일 수 있는 것임을 알고 있으므로 자못 무사(武事)에 관하여 마음을 쓰고 있습니다. 대저 양계(兩界)749) 의 군무(軍務)는 노인으로서는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비록 이 임무에 합당하다 할지라도 산천의 높고 낮음과 도로가 평탄하고 험함을 몸소 답습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러한 일을 어찌 다른 사람을 시켜 그가 보고 들은 것에 의하여 조처할 수 있겠습니까? 반드시 건장한 사람들에게 위임하여 연습을 시키고 따라서 이에 관한 모든 사업(事業)을 주관하게 해야 합니다. 이러한 사람은 직책의 높고 낮음에 구애없이 단지 인기(人器)가 합당하다는 것만으로 불차탁용(不次擢用)하는 것도 무방할 것입니다. 신이 근래 양계(兩界)에 갔을 때 비록 높은 데 올라가 관망해야 할 곳이 있었지만, 늙고 힘이 없어 올라갈 수 없는데야 어쩌겠습니까? 이장길(李長吉)은 무예는 남보다 뛰어나지 못하지만 그의 재간(才幹)은 훌륭하여 현재로선 그보다 나은 사람이 없습니다. 신이 그가 재능이 있다는 말을 들어온 지 오랬는데 근일 함께 다니면서 그의 소위를 살펴보니 계책(計策)이 참으로 뛰어났었습니다. 이제 대간이 그의 행실에 그릇된 점이 많다는 것으로 논박을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나인(內人)에게 빌붙은 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아우 장곤(長坤)을 구제하고 가문(家門)의 화를 면하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신이 호조 판서로 있을 적에 그 실정을 자세히 알았었습니다만, 공론(公論)이 저러하니 어떻게 다 알 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끝까지 버려서는 안 될 사람입니다."
하니, 임금이 이르기를,
"장길의 일에 대해서는 대신들도 모두 애매하다 하니 그 인물을 폐기(廢棄)할 수 없었다. 그래서 대간이 아뢴 것을 윤허하지 않은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1책 41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16책 6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군사-관방(關防) / 군사-군정(軍政) / 인사(人事)
- [註 746]용정미(舂正米) : 찧은 쌀.
- [註 747]
둔전(屯田) : 과전법(科田法)의 실시에 따라 각 지방 주둔병(駐屯兵)의 군량(軍糧) 자급(自給)을 위하여 반급(頒給)하던 농지(農地)다.- [註 748]
경(頃) : 땅의 넓이 단위로 1경은 1백 묘(畝)를 말한다.- [註 749]
양계(兩界) : 함경도와 평안도.○御晝講。 上曰: "天使所歷一路各官, 軍士、軍器等事, 不可不備。" 特進官高荊山曰: "我國, 三面受敵, 軍士最重。 當此之時, 將無其人, 只有黃衡、柳聃年數人, 而今衡已死, 聃年雖存, 身有病不健, 其餘堂上官中, 亦無可任者, 雖或有之, 皆置于外。 近者, 國家昇平日久, 軍務解廢, 須擇將帥可當者, 以爲軍卒所瞻仰, 委以兵機可也, 臨倉卒之際, 不可遽爲振作其人, 而用之。 儒將中足以當大事者, 唯李長坤一人而已, 以病廢在于家, 其次堂上中三、四人而已, 堂下人亦豈無之? 大抵, 着力治務者, 與無備卒應者, 其效有異。 臣前爲平安道從事官, 其時議築長城, 皆以爲: ‘必以二十萬衆, 當就其功。’ 然則雖盡發八道之民, 未易立功。 近者看審, 事若易就, 若節度使得人, 則庶可以善處其事, 民不受弊。 且平安道軍食, 以內地各官舂正之米, 聚諸熙川、龜城等官, 分與之。 此, 非但各官輸運之難, 五、六日程途, 取食之弊, 亦不爲少, 此意, 觀察使詐硡已啓之。 江界屯田, 臣爲戶曹判書時, 啓而設之, 然不可以此, 盡恤其民。 伐登浦等處, 多閑曠可耕之地, 令戶曹磨鍊, 使之開墾, 可作屯田二千餘頃, 理山、江界等民, 可以資食, 而內外輸運之弊, 從可除也。 且上土堡孤單懸絶, 防禦事緊, 此所當先備之地。 軍士與築城等事, 咸不完實, 必須得人而任之, 不可徒以法爲之, 須與大臣等議處爲當。" 上曰: "此等事, 該司與大臣, 可以合議處之。 近者, 果乏將帥之人。 黃衡不意遽亡, 李長坤亦罹疾病, 不幸孰甚焉? 武臣堂上可用者, 多補內地守令, 此固不可。 將帥可當者, 可預選以備用也。" 荊山曰: "武臣, 只有金粹潭、趙賢範爲內地守令, 文臣則潘碩枰、崔世節、金世準、李芑等俱有武才。 此人等亦自知其武才可見售, 故頗用意於其事也。 大抵, 兩界軍務非老人所可爲, 衰老者雖當此任, 山川平峻、道路夷險, 無以身親履之。 如此之事, 豈可資人見聞, 而能爲之? 必委之年少輩, 使之鍊習, 以爲一主事業, 可也。 如此之人, 不可拘以職之高下, 只以人器相當, 超遷越敍, 亦無妨也。 臣, 近往兩界, 雖有登陟觀望之處, 衰老無力, 奈不能攀附, 何? 李長吉弓弩之力, 雖不過人, 其才幹俊捷, 當時無出其右者。 臣, 久聞其能, 近日帶行, 觀其所爲, 其計慮謀畫, 固非尋常之類。 今者, 臺諫以所行多誤, 方駁不止。 其攀附內人, 非爲自己, 乃所以救弟長坤, 以免門禍之意。 臣, 曾爲刑曹判書時, 頗悉其情, 然公論如彼, 何能盡知之? 但不可終棄之人也。" 上曰: "長吉事, 大臣皆以爲曖昧。 且其人物, 不可廢棄, 故不允臺諫之啓矣。"
- 【태백산사고본】 21책 41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16책 6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군사-관방(關防) / 군사-군정(軍政) / 인사(人事)
- [註 7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