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도 순변사 고형산이 의주의 성을 쌓은 것과 그 방어의 상황에 대해 아뢰다
평안도 순변사(平安道巡邊使) 고형산(高荊山)이 복명(復命)하니, 사정전(思政殿)에서 인견(引見)하고 이르기를,
"의주(義州)의 성(城)을 오래도록 쌓지 못했었는데 이제 쌓았으니 매우 아름다운 일이다. 방어(防禦)의 상황은 어떤가?"
하매, 형산이 아뢰기를,
"신이 가서 보니, 돌이 15리(里)쯤에 있었으므로 성을 쌓을 수 있다고 여겨 감사(監司)로 하여금 역군(役軍)을 동원하여 역사를 시작하게 했었습니다. 그러자 그 곳 사람이 모두들 ‘우리 조부(祖父) 적부터 쌓으려고 했었으나 쌓지 못했는데 어떻게 쌓을 수 있겠는가?’ 하자, 감사·병사(兵使)는 모두 어렵게 여겼고 차사원(差使員) 등도 역시 어렵게 여겼었습니다. 그러나 신은 그래도 쌓을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마침 일기(日氣)가 따뜻하여 겨우 25일 만에 역사를 끝냈습니다. 역사를 잘 감독하지 않은 수령(守令)은 바로 태천 현감(泰川縣監) 윤희조(尹希祖)·영유 현령(永葇縣令) 이창령(李昌齡)·영변 판관(寧邊判官) 서자통(徐自通)이었으며, 의주 목사(義州牧使) 이기(李芑)는 신의 뜻을 체념(體念)하여 힘을 다해 감독했습니다. 그리하여 강변(江邊)이 모두 튼튼하게 완비(完備)되어 함경도의 경우처럼 허술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단지 적(敵)들이 노략질하는 것에 대해서는 권관(權管)692) 을 탓할 것이 아닌 것이, 적들이 들어오는 길목마다 모두 보(堡)를 설치하여 놓았기 때문에 군사력이 분산되어 형세가 잘 지킬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절도사(節度使) 역시 이 폐단을 알고는 있으나 감히 아뢰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안주(安州)는 험요(險要)한 지역에 있기 때문에 만일 급박한 일이 발생하더라도 믿을 만한 곳이므로 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군량(軍糧)이 넉넉하지 못하니 깊이 우려해야 할 것입니다. 또 토군(土軍)693) 들이 제일 싫어 하는 것은 보첩(堡疊)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습니다. 보첩 안의 거처하는 곳을 볼 것 같으면 벽에 흙을 바른 집이 없이 모두 하루만 묵어가는 곳처럼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 황해도 군사의 번(番)을 드물게 해주는 일에 관해서는 신이 독단할 바가 아니기 때문에 감사(監司)·병사(兵使)에게 문의했으나 그들의 의논이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의논을 하나로 결정하게 했으나 아직 결말을 보지 못한 채 올라왔습니다. 또 상토진(上土鎭)은 어떻게 고쳐야 할지를 모를 정도였습니다. 오만진(五萬鎭)은 상토진과의 거리가 30리인데 그 사이가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적들이 모두 이곳을 통하여 왕래하고 있으니 본성(本城)을 물려서 쌓고 민호(民戶)를 더 들여보낸다면 함경도와 성세(聲勢)가 서로 의지되어 반드시 당당한 형세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모름지기 대신들과 이에 대한 편부를 의논하소서."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고형산은 성품이 순박 정직하고 근검(勤儉)하여 남의 비방을 감수하면서 나라 일에 힘을 다했다. 그리고 전곡(錢穀)과 군병(軍兵)을 다스리는 재능이 더욱 뛰어났었다.
- 【태백산사고본】 21책 41권 5장 B면【국편영인본】 16책 3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왕실-국왕(國王) / 군사-관방(關防) / 군사-군역(軍役) / 군사-군정(軍政) / 역사-사학(史學)
○平安道巡邊使高荊山復命, 引見于思政殿曰: "義州之城, 久未得築, 今則築之, 深可嘉也。 防禦形止何如?" 荊山曰: "臣往觀之, 則於十五里有石, 故以爲可築, 而令監司發軍始役。 其處人皆曰: ‘自吾祖父時, 欲築而不能也, 何能築之?’ 故監司、兵使, 皆以爲重難, 差使員等亦以爲難。 臣則以爲, 猶可爲也。 適値日候溫和, 才二十五日畢役矣。 守令, 不能董役者, 乃泰川縣監尹希祖、永柔縣令李昌齡、寧邊判官徐自通, 而義州牧使李芑, 體臣之意, 盡力爲之, 江邊皆牢固完備, 不如咸鏡道之虛疎。 但敵人作賊, 不罪權管, 而隨賊所入之路, 便皆設堡, 故力分, 而勢不能守也。 節度使亦知此弊, 而不敢啓矣。 安州乃據險之地, 如有緩急, 所恃以爲重者也, 而軍糧不裕, 所當深慮。 且土軍所病, 無如疊入之甚。 見其所居, 無塗壁之家, 皆如一日經過之所。 且黃海道軍士疎番事, 非臣所可獨斷, 問於監司、兵使, 議論有不同, 故更令歸一, 而未及來矣。 且上土鎭, 不知何以革之。 五萬嶺與上土之間, 三十里空虛, 故賊之往來, 皆由此出, 體城退築, 加入民戶, 則與咸鏡道, 聲勢相倚, 必有堂堂之勢矣。 須與大臣, 議其便否。"
【史臣曰: "荊山, 性朴直儉勤, 不避詆謗, 盡力國事。 治錢穀、軍兵, 尤其所能。"】
- 【태백산사고본】 21책 41권 5장 B면【국편영인본】 16책 3면
- 【분류】인사-임면(任免) / 왕실-국왕(國王) / 군사-관방(關防) / 군사-군역(軍役) / 군사-군정(軍政) / 역사-사학(史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