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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실록 40권, 중종 15년 9월 17일 신미 2번째기사 1520년 명 정덕(正德) 15년

영의정 김전·좌의정 남곤 등이 김세준이 상소한 일을 의논하여 아뢰다

영의정 김전(金詮)·좌의정(左議政) 남곤(南袞)·우의정(右議政) 이유청(李惟淸) 등이 김세준이 상소한 일을 의논하여 아뢰기를,

"박산(朴山)경원(慶源)의 성 밑에 살면서 부령(富寧)에서 아내를 얻어 제마음대로 드나드는데 전혀 막지 않고 수령 중에도 노인(路引)을 준 자가 있으므로 박산이 꺼림없이 드나드는 것을 따져 묻는 자가 있으면 ‘상자 안에 노인이 있다.’ 한다는데 노인을 준 수령을 추고(推考)까지 하면 소요하겠으나, 이런 사람은 아무 일 없이 버려 둘 수 없으니, 감사(監司)·병사(兵使)에게 비밀히 일러서 드나드는 것을 금지시키고, 주장합(主張哈)을 지금 칠 수는 없으니, 변장을 시켜 변경을 삼가 지키게 하고는 문책하지 않는 것이 마땅합니다. 은을 캐는 일은, 상인을 시켜 캐도록 허가하면 죄다 중국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김세준은 군자(軍資)를 장만할 계책이 없으므로 그와 같이 아뢰었으나, 상인을 시켜 캐어 가고 곡식을 바치게 한다면 곧 금지하는 법을 무너뜨리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이 은을 봉해 두더라도 도둑 맞으면 나라에 보탬이 없을 것이니, 신 등은 공천(公賤)에게 그 공물(貢物)을 줄여 주고 이것을 캐서 공물로 삼도록 하면 아마도 자손에 이르기까지 제 물건을 지키듯이 하여 나라에 보탬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절목(節目)은 해조(該曹)에서 스스로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종성(鍾城)의 성자는 오진(五鎭)598) 중에서 가장 약하므로 김세준이 한 해에 한 면씩 쌓으려는 것이니, 그 계책이 옳을 듯합니다. 그러나 종성뿐 아니라 다른 무너진 진성(鎭城)도 감사에게 물어 살펴서 고쳐 쌓는 것이 옳습니다. 또, 김세준은 외관(外官)으로서 나라의 일을 잊지 않으니, 또한 하서(下書)하여 답하셔야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은을 캐는 일은, 금지하는 법이 있어도 백성이 몰래 캐어 중국으로 들여가는 것을 막을 수 없는데, 만약에 또 백성에게 캐는 것을 허가한다면 아마도 뒷 폐단이 있을 것이다."

하였다. 삼공(三公)이 이어서 아뢰기를,

"신 등이 듣건대 요즈음 석강(夕講) 때에 재상 줄에 있으면서, 조광조(趙光祖)를 사사(賜死)한 것을 그르다고 아뢰어 이제까지도 의논이 정해지지 않게 한 사람이 있다하니, 재상 줄에 있는 사람으로서도 이러할 수 있겠습니까? 추고(推考)하소서. 또, 서지(徐祉)가 전라도 병사(全羅道兵使)가 되었으나, 남방은 일이 없는 곳이 아닌데, 서지가 어찌 그 직임에 합당하겠습니까? 서울에 있다면 맡을 만한 직임이 있을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전에 석강 때 김세필(金世弼)이 강론(講論)할 즈음에 지나친 일이라고 하므로 내가 다시 말하지 않았으나, 조정에서 그 죄명을 바루어 죄주었는데, 김세필이 재상줄에 있으면서 오히려 이런 말을 하였으니, 나도 그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강론 때의 일 때문에 추고까지 한다면 지나치지 않은가?"

하매, 삼공이 또 아뢰기를,

"의논이 정해지지 않아서 이제까지도 반복하는데, 전지(傳旨)를 내려 추고하는 것이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김세필이 말한 것을 위에서 이미 그르게 여겼으나, 제가 위에서 지나치게 한 일이라 하므로 다시 말하지 않았는데, 이제 대신이 아뢴 것이 과연 마땅하니, 추고하더라도 어찌 깊은 뜻을 두는 것이 있겠는가? 파직하여 징계하고, 또 후진의 선비가 김세필의 망령된 의논을 알게 하는 것이 어떠한가?"

하매, 삼공이 또 아뢰기를,

"재상 줄에 있는 자를 까닭없이 파직하면 물의가 더욱 많아질 것이니, 추고하여 죄를 정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나는 추고하지 말고 파직만 하려 하였으나, 참으로 그 그름을 아니, 반드시 추고해야 한다면 추고하도록 하라."

하매, 김전 등이 분부를 듣고 기쁜 기색을 나타내며 승지(承旨) 박호(朴壕)에게 말하기를,

"영공(令公)들은 전교를 기초하시오."

하였다. 승지 윤희인(尹希仁)과 승지 김희수(金希壽)가 상의하여 전지(傳旨)를 기초하기를,

"전에 조광조의 죄상을 조정에서 함께 의논하여 율문(律文)에 따라 처치하였는데, 특진관(特進官)으로 입시(入侍)하여 강론할 즈음에 ‘조광조를 늘 믿고 사랑하다가 하루아침에 사사하였으니 매우 참담합니다. 이를 거울삼는 사람이라면 누구인들 마음을 다하여 일하려 하겠습니까? 상께서 이 허물을 아십니까?’ 하여, 재상 줄에 있으면서 조정의 의논이 정해지지 않게 하였으니, 추문(推問)하기를 청합니다."

하였는데, 상이 를 보고 분부하기를,

"그 ‘율문에 따라 처치하였다.’는 말 아래에 ‘국시가 이미 정해졌다[國是已定]’는 네 글자를 쓰고 ‘재상 줄에 있으면서’라는 말 아래에 ‘시비를 어지럽혔다[眩亂是非]’는 네 글자를 써야 마땅하다."

하였다.

사신은 논한다. 언로(言路)가 트이고 막히는 것은 나라의 보존과 위망에 관계되는 것인데, 삼공으로서 굳이 국문(鞫問)하여 다스리기를 청하였으니, 이른바 쓸모 없는 자이다. 이유청(李惟淸)은 박직(朴直)하고 무식하며, 남곤(南袞)의 대절(大節)은 이미 북문(北門)에서 떨어졌으므로599) 워낙 책망할 것도 없으나, 김전은 효행(孝行)과 청덕(淸德)이 있고 정직하고 평탄한 사람인데 이때에 이르러 역시 이런 말을 하니, 지식있는 사람들이 ‘김전은 어두운 병폐가 있다.’ 하였는데, 그 말이 마땅하다.

사신은 또 논한다. 말한 것이 잘못되었더라도 말한 사람은 죄줄 수 없으며, 말을 가리지 않고 아뢴 것도 임금을 믿기 때문이니, 위언(危言)하여도 죄주지 않는 것이 어찌 치도(治道)의 빛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삼공이 김세필을 죄주도록 청한 것을 애석하게 여기는 사람도 있었다.


  • 【태백산사고본】 20책 40권 35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690면
  • 【분류】
    군사-군정(軍政) / 군사-휼병(恤兵) / 군사-병참(兵站) / 외교-야(野) / 재정-역(役) / 신분-천인(賤人) / 광업(鑛業) / 사법-탄핵(彈劾)

  • [註 598]
    오진(五鎭) : 육진(六鎭) 중에서 가장 먼저 설치된 부령(富寧)을 제외한 다섯 진. 곧 경원(慶源)·회령(會寧)·종성(鍾城)·온성(穩城)·경흥(慶興).
  • [註 599]
    남곤(南袞)의 대절(大節)은 이미 북문(北門)에서 떨어졌으므로 : 북문은 경복궁(景福宮)의 북문인 신무문(神武門)을 가리키는 것, 중종 14년 11월 15일 밤에 남곤 등이 평소에는 닫아 두는 신무문을 열고 들어와 임금의 밀지(密旨)를 받아 당시 조정의 권세를 차지했던 조광조(趙光祖) 등을 잡아 가두었다 모두 죽이거나 귀양보내는 사화를 일으킨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領議政金詮、左議政南袞、右議政李惟淸等議金世準上疏事以啓曰: "朴山居于慶源城底, 而娶妻于富寧, 出入自恣, 了無禁防, 守令亦有給路引者, 故有責朴山無忌憚出入者, 則曰: ‘篋笥中, 自有路引云。’ 其給路引守令, 若至推考, 則必爲騷擾, 然此人則不可安然置之。 密喩監司、兵使, 使禁其出入。 住張哈今不可攻之, 令邊將謹守邊(彊)〔疆〕 , 置而勿問爲當。 採銀事, 許令商賈採之, 則盡入中原矣。 金世準以備軍資無計, 故其啓如此, 若令商賈採取而納粟, 則是毁禁防也。 但此銀雖封而見盜, 無益於國。 臣等以爲令公賤, 減其貢, 而採此爲貢, 則庶至子孫, 如守己物, 而有益於國矣。 其節目則該曹自當磨鍊。 鍾城之城, 於五鎭最殘, 故世準欲以一年築一面, 其計似可也。 然非獨鍾城也, 他餘頹敗鎭城, 亦可問于監司, 審察修築可也。 且世準以外官, 不忘國事, 亦可下書以答。" 上曰: "採銀事, 雖有禁防, 民之盜採而入上國者, 不可禁, 若又許民採取, 則恐有後弊。" 三公仍啓曰: "臣等聞近者夕講時, 有宰相之人, 以賜死趙光祖, 爲非而啓之。 至今議論不定, 豈以宰相之列而亦如此乎? 請推考。 且徐祉全羅道兵使。 南方非無事之地, 徐祉豈合厥任? 在京則有可當之任矣。" 上曰: "前者夕講時, 金世弼於講論之際, 以爲過擧, 故予不更言矣。 朝廷正其罪名而罪之, 世弼在宰相之列, 猶有是言, 予亦以爲非也。 然若因講論之事, 至於推考, 則無乃過乎?" 三公又啓曰: "議論不定, 至今反覆, 下傳旨推考何難焉?" 上曰: "世弼所言, 自上已非之, 而彼以爲上之過擧, 故不更言。 今大臣所啓果當矣, 雖推考, 豈有深意存焉? 罷其職以懲之, 又使後進之士, 知世弼妄議何如?" 三公又啓曰: "在宰相之列者, 若無端罷職, 則物論愈多矣。 推考定罪可也。" 上曰: "予欲勿推, 只罷職, 信知其非, 必若可推, 則推考可也。" 等聞敎, 喜動於色, 而謂承旨朴壕曰: "令公等, 可草傳敎。" 承旨希仁與承旨金希壽相議, 草傳旨曰: "前者趙光祖罪狀, 與朝廷共議, 依律處置, 而以特進官, 入侍講論之際以爲: ‘趙光祖, 常時信寵, 一朝賜死, 至爲慘惔。 人之鑑此者, 孰肯盡心爲事? 上知此過乎?’ 在宰相之列, 使朝廷議論不定, 請以推問。" 上見傳旨下敎曰: "依律處置之下, 當書國是已定四字, 於在宰相之列之下, 當書眩亂是非四字。"

【史臣曰: "言路通塞, 存亡所係。 三公而强請鞫治, 所謂焉用者也。 惟淸, 朴直無識, 之大節, 已落於北門, 固無足責, 金詮有孝行、淸德, 眞率坦夷, 至是亦有此言, 識者謂有暗病, 其說得矣。" 又曰: "所言雖失, 言者不可加罪, 不擇言而啓, 亦恃吾君而已。 危言而不之罪, 豈非治道之光也? 三公之請罪世弼, 人或惜焉。"】


  • 【태백산사고본】 20책 40권 35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690면
  • 【분류】
    군사-군정(軍政) / 군사-휼병(恤兵) / 군사-병참(兵站) / 외교-야(野) / 재정-역(役) / 신분-천인(賤人) / 광업(鑛業) / 사법-탄핵(彈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