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진관 김세필이 조광조에게 사사까지 내린 것은 지나쳤다 아뢰다
석강(夕講)에 나아갔다. 《논어(論語)》를 강독(講讀)하였다. 특진관(特進官) 김세필(金世弼)이 아뢰기를,
"여기에 이르기를 ‘군자(君子)의 허물은 일식(日蝕)·월식(月蝕)과 같아서, 허물이 있으면 사람들이 다 볼 수 있고, 고치면 사람들이 다 우러러본다.’ 하였습니다. 사람은 다 요(堯)·순(舜)이 아니니, 어찌 매사에 진선(盡善)할 수 있겠습니까? 필부(匹夫)일지라도 허물이 있으면 고치려고 생각해야 하는데, 더구나 온 백성의 위에 있는 임금이겠습니까? 임금이 잘못하고서 능히 고친다면 백성이 우러러보는 것이 어찌 해와 달이 광명만할 뿐이겠습니까? 근래 조정(朝廷)에서 경화(更化)한 일이 많은데, 변경하더라도 어찌 죄다 알맞게 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 5∼6년 동안 상께서 뜻을 기울여 잘 다스리려 하시매, 새로 사진(仕進)하여 일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옛것을 좋아해야 한다는 말이 채용되게 하여 조종(祖宗)의 구법(舊法)을 변경하여 이로부터 어지러워졌으나 대신이 그 폐해를 보고도 감히 말을 내지 못하니 그 폐해는 상하가 괴리(乖離)하여 정의(情意)가 통하지 않아서 마침내 구제하지 못하게까지 되었으므로, 부득이하여 조정에서 처치하여 개변(改變)하였으나, 어찌 알맞게 하여 뒷폐단이 없게 할 수 있겠습니까? 조광조(趙光祖)는 새로 사진하여 일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나, 어찌 간사한 마음이 있었겠습니까? 다만 세상을 경험하지 못하고 학문이 모자라므로 마침내 나라의 일을 그르치게 되었을 따름입니다. 처음에는 총애가 비길 데 없다가 하루아침에 단연히 사사(賜死)하셨으니, 이 일을 사책(史策)에 써서 만세에 전하면 만세 뒤에서는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신은 이 사람을 몰랐었는데, 접때 경연(經筵)에서 보니 사람됨이 경박하여 대신의 말일지라도 반드시 가로채서 제 마음대로 하므로, 신이 속마음으로 변변치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홍문관(弘文館)의 5∼6품 줄에 두었고 육조(六曹)에 출입시켜 쓸만한가를 시험하였으니, 어찌 쓸모 없는 재주였겠습니까? 잘못이 있거나 죄가 있으면 내쳐서 징계하는 것이 옳았을 것인데, 사사까지 하셨으니 지나칩니다. 김식(金湜)과 같이 간사한 자라면 처형하지 않을 수 없었겠으나, 조광조 같은 자야 어찌 간사한 마음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상께서 이것을 지나치다고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은총이 저러하다가 하루아침에 사사하셨으니, 일이 매우 참혹합니다. 미세한 죄수일지라도 어찌 차마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이후로는 조정(朝廷)의 기색(氣色)이 암담해질까 염려됩니다. 지우(智愚)의 신하가 있더라도 어떻게 안심하고 스스로 믿을 수 있겠습니까?"
하니, 상이 이르기를,
"조정의 일을 그르친 까닭은 그 시초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대우를 알맞게 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당초의 의논들이 괜찮다 하였고 혹 그가 어질다고 천거하기도 하였으므로, 이력이 없기는 하나 차서에 의하지 않고 등용하였던 것이다. 사사한 것으로 말하면, 조정에서 그 죄명을 정한 것이 이미 가볍지 않았으므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였다.
사신(史臣)은 논한다. 조광조 등은 행사가 지나치기는 하였으나 그 속마음은 간사하지 않았는데, 이제까지 한 사람도 쟁론(爭論)하여 드러내지 않았으므로, 뜻 있는 선비들이 슬프고 분하게 여겼다. 김세필은 학문과 강개(慷慨)가 있어서 비로소 이런 논의를 하였는데 그 말이 매우 격절(激切)하였으므로 듣는 사람들이 봉황(鳳凰)의 울음에 견주기까지 하였으나, 하옥(下獄)되자 살기를 바라서 말을 바꾸었으므로 지식 있는 사람들이 변변치 않게 여겼다.
- 【태백산사고본】 20책 40권 33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689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인물(人物) / 역사-사학(史學)
○御夕講, 講《論語》。 特進官金世弼曰: "此云: ‘君子之過也, 如日月之食, 過也, 人皆見之, 改也, 人皆仰之。’ 人非堯 舜, 何能每事盡善? 雖匹夫, 有過則要思改之。 況人主處億兆之上哉? 人主過而能改, 則百姓之仰之, 豈啻若日月之光明乎? 近來朝廷更化之事, 多矣。 雖變, 而豈能盡得其中哉? 去五六年間, 自上銳意思治, 新進喜事之人, 爭以好古之說見用, 而變更祖宗舊章, 從此亂焉。 大臣雖見其弊, 而不敢發言, 其弊至於上下乖離, 情意不通, 終莫之救。 不得已而朝廷處置改變, 然豈能得中而無後弊哉? 趙光祖, 新進喜事之人也, 然豈有奸心? 但未涉世, 而學問不足, 故卒至於誤國事爾。 初則尊寵無比, 而一朝斷然賜死。 書之史策, 以傳萬世, 萬世之下, 謂之何如? 臣未曾識此人, 頃於經筵見之, 爲人輕浮, 雖大臣之言, 必奪而自專之。 臣之私心以爲不肖人也。 然置之弘文館五六品之列, 出入六曹而試可, 則豈是不用之才哉? 有過有罪, 則斥逐而懲之可矣, 至於賜死過矣。 若金湜之奸妄, 不可不置刑, 如光祖者, 豈有奸心? 然未知自上以此爲過乎? 恩寵如彼, 而一朝賜死, 事甚慘酷。 雖微細罪囚, 豈忍如是乎? 自此以後, 臣恐朝廷氣色慘慘也。 雖有知遇之臣, 何能安心自恃?" 上曰: "所以誤朝廷事者, 由其始也。 待遇之失宜爾。 其初議論稍可, 而或薦其賢, 故雖無踐歷, 而敢登用不次耳。 其賜死, 則朝廷定其罪名, 已非輕矣, 不得不爾。"
【史臣曰: "光祖等事, 雖有過, 中心則無邪, 至今無一人爭論暴白, 志士悲憤。 世弼有學問、慷慨, 始有此論, 辭甚激切, 聞者至比於鳳鳴, 及其下獄, 求生變辭, 識者小之。"】
- 【태백산사고본】 20책 40권 33장 B면【국편영인본】 15책 689면
- 【분류】왕실-경연(經筵) / 인물(人物) / 역사-사학(史學)